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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the CATCHER in the RYE
J. D. Salinger (1919~2010)
[나의 어머니께]
(1)
난 이 이야기를 펜시 고등학교를 떠나던 그날부터 시작하고 싶다. 펜시 고등학교는 펜실바니아에 있는 애거스타운에 위치한 학교로, 아마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펜시는 나쁜 놈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부유한 가정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온통 사기꾼들 천지였다. 원래 학비가 비싼 학교일수록 사기꾼들이 들끓는 법이다.
(2)
선생님 내외는 각방을 썼다. 두 사람 모두 일흔 살쯤 되었을 것이다. ~~방안에 들어서는 순간 이곳에 오지 말아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선생은<애틀런틱 먼슬리>를 읽고 있었는데, 방안은 온통 약병이 흩어져 있었고, 박스 코감기 약 냄새가 가득했다.
스펜서 선생은 아주 가련하게 보였고, 초라한 목욕 가운을 입고 있어서 한층 더 그렇게 보였다. 나이 든 사람들이 잠옷이나 목욕가운 같은 것을 입고 있는 모습은 정말 끔찍하다. 앙상하게 마른 가슴이 드러나 보일뿐더러 뼈만 남은 다리까지 보이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보면 노인들의 다리는 새하얗고, 털이 하나도 없었다.
낙제시킨 데 대해서 불만이라도 있나?, 자네. 선생이 물었다. 아닙니다. 선생님! 불만이라니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3)
나같이 엄청난 거짓말쟁이는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다. 만약 내가 잡지 같은 것을 사러 가게에 갈 때, 누군가 어디 가느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오페라를 보러 간다고 거짓말을 한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스펜서 선생에게 운동기구를 가지러 체육관에 간다고 말했지만 그건 백 퍼센트 거짓말이다. 체육관에는 내 운동기구 같은 것은 있지도 않다.
펜시에서 나는 새로 지은 기숙사의 오센버거관에서 살고 있었다. 그곳은 오직 3학년과 4학년들만이 지내는 곳이었다. 난 3학년이고, 내 룸메이트는 4학년이다. 이 기숙사는 오센버거라는 졸업생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펜시를 졸업한 뒤로 장의사 일을 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사람이다. 어떻게 했는가 하면, 가족 중 한 사람이 죽을 때마다 5달러씩 받고 매장해주는 장의사를 전국에 열었던 것이다. 도대체 오센버거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시체를 자루에 싸서 강에다가 그냥 던져버렸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펜시에 거액의 돈을 기부했고, 학교에서는 기숙사에 그의 이름을 붙여 주었다.
오센버거는 죽여주는 캐딜락을 타고 학교로 왔다. 그래서 우리는 관람석에서 모두 일어나 열렬한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야만 했다. 그 다음날 아침, 예배당에서 그가 연설을 했다. ~~~그는 오십 가지도 넘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농담에서부터 시작하여, 자기가 얼마나 바람직한 사람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애를 썼다. 정말 가관이었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이 절대로 남부끄러운 짓을 한 적이 없으며, 어떤 일이 있거나,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다고 말했다. 오센버거는 우리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 언제나 기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친구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은 언제나 예수님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운전할 때조차 그렇다고 말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지금 내 앞에는 일단 기어를 넣으면서 예수님께 좀 더 많은 돈을 벌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엄청난 사기꾼이 서 있는 것이다. 그가 연설을 하고 있는 동안 괜찮았던 일이 딱 한 가지 있었다. 그가 우리에게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를 이야기하면서, 잘난 척을 실컷 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내 앞에 서 있던 에드가 마살라가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방귀를 뀌었던 것이다. 예배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인 소리였다.
오센버거는 애써 못 들은 척하고 있었지만, 연단에서 그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서머 교장은 그 소리를 들은 것이 분명했다. 교장은 굉장히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다음날 밤 교장은 우리를 모아 놓고 강제로 자습을 시키면서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았다. 교장은 예배당 안에서 그와 같이 불경스러운 짓을 한 학생은 펜시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우리 교장이 설교하는 동안 마살라에게 한 번 더 터트려보라고 부추겼지만, 그는 그렇게 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어쨌든 내가 펜시에서 살고 있었던 곳은 그런 장소였다.
(6)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 일들도 있기 마련이다. 스트라드레이터가 제인과의 데이트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라 그렇다.
그 녀석은 밖이 춥다고 투덜거리면서 들어왔다. ~~~그 녀석은 여전히 제인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참다못한 내가 물었다. 그 애가 9시 반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면서, 넌 굉장히 늦게 들어왔네. 그 애도 같이 늦은 건 아니야?
(8)
택시나 다른 차를 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너무 추웠고 , 눈 때문에 걷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여행 가방까지 다리에 거치적거리면서 걸음을 방해했다.
스트라드레이터 놈한테 두들겨 맞은 윗입술 안쪽이 아픈 정도였다. 그놈은 입술을 정통으로 한방 먹였고, 그 덕에 통증이 굉장히 심했다.
내가 역에 도착했을 때 운이 좋게도, 10분 뒤 출발하는 기차가 있었다. ~~~갑자기 한 여자가 트렌튼에서 기차에 탔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인지 기차 안은 텅 비어 있었는데도 그 여자는 굳이 내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는 큰 가방을 가지고 있었고, 난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가방을 통로 한복판에다 내려놓았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은 모두 그 가방을 뛰어넘어서 가야만 했다. 그녀는 파티 같은 곳을 다녀오기라도 한 듯 난초 한 송이를 달고 있었다. 나이는 마흔에서 마흔다섯 사이로 보였고, 상당한 미인이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말이에요, 이건 혹시 펜시 고등학교 스티커가 아닌가요? 선반 위에 올려놓은 내 가방을 보면서 그녀가 물었다.
펜시에 다니나 봐요? 그녀가 물었다. 아주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어쩌면 혹시 우리 아들 알아요? 이름이 어네스트 모로인데, 그 애도 펜시에 다니지. 예, 알고 있습니다. 우리 반이에요.
어머, 그래? 그 여자가 말했다. 하지만 지겹지는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사근사근했다. 어네스트에게 우리가 만났다고 꼭 이야기해야겠네. 이름이 뭐지? 그녀가 물었다. 루돌프 슈미트입니다. 난 그녀가 내 이야기를 알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루돌프 슈미트는 우리 기숙사의 수위 이름이었다.
(9)
펜 역에 내린 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중전화를 걸러 간 것이었다. ~~~ 결국 아무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나를 방으로 안내해 준 호텔 직원은 적어도 예순다섯은 돼 보이는 늙은이였다.
(10)
여전히 이른 시간이었다. ~~~라벤더홀에서 밴드가 연주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난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정말 바보였다. 하지만 춤은 기가 막히게 췄다.
(11)
제인은 이상한 아이였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아주 예쁘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나는 그 애에게 풀 빠지고 말았다.
우리 엄마는 제인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제인과 그녀의 엄마가 우리 엄마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시 하는 거라 생각하셨던 것이다. 엄마는 그 모녀와 자주 부딪혔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제인이 엄마와 함께 라살르 컨버터블을 몰고 시장에 다니곤 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제인이 전혀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셨다. 그렇지만 내게는 예뻐 보였다. 나는 그런 형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베란다에 앉아 있었고, 밖에는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엄마와 재혼한 술주정뱅이가 나타나 담배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난 그 작자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었지만, 말을 할 필요조차 없는 그런 인간으로 보였다. 인간성이 아주 최악인 놈이었다. 어쨌든 제인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담배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고 해도 대답하지 않을 참이었다. 그러자 그 인간은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결국 그 남자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서 난 제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게임에만 몰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뚝 체커판 위로 떨어졌다. ~~~그녀는 그저 손가락으로 눈물방울을 문질러버렸다. 왜 그러는지 알지 못했지만, 내 마음도 같이 아팠다.
(12)
시간이 꽤 늦었는데도 어니 클럽은 북적거리고 있었다. 대부분이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이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그날 낮에 본 프로 풋볼 경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경기 내용을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해 주고 있었다. 정말 그랬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지겨운 인간이었다. 같이 있던 여자는 풋볼 게임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게 분명했지만, 그 여자는 남자보다 더 웃기게 생겼기 때문에 듣고 잇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정말 못생긴 여자들은 세상 살기가 힘들다. 나는 때때로 그런 여자들이 너무 안됐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때는 도저히 얼굴을 쳐다 볼 수가 없다. 특히 그런 여자 앞에서 멍청한 녀석이 풋볼 시합 이야기나 하고 잇을 때는 말이다.
내 오른쪽 테이블에서 오가는 이야기는 더욱 신나했다. ~~~예일 대학생처럼 보이는 녀석은 대단한 미녀와 같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정말 예뻤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기는 정말 들어 볼만했다. 우선 둘 다 약간은 취해 있었다.
갑자기 한 여자가 다가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홀든 콜필드 아냐! 그녀의 이름은 릴리안 시먼스였다. 한때 형이랑 어울려 다녔던 여자다.
안녕하세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려고 했다. ~~~이런 데서 만나다니 정말 반갑다.
그러고는 같이 있던 해군 장교를 내게 소개해 주었다. 이름이 블롭 중령인가 하는 그 남자는 누군가와 악수하면서 손가락을 마흔 개가량은 부러뜨려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은 그런 사람이었다. 난 그런 인간들을 싫어했다.
(13)
호텔까지 돌아가는 길을 나는 걸어서 갔다. ~~~난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허름해 보이는 술집을 찾았다. 들어가려는 순간, 안에서 잔뜩 취한 남자가 두 면 나오더니 지하철을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 중 한 명은 쿠바인처럼 보였는데, 내가 길을 가리켜주는 동안 계속 지독한 악취를 내 얼굴에 뿜어대고 있었다. 그 술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결국 호텔로 돌아오고 말았다.
(14)
난 교회에 가지 않는다. 우선 부모님의 종교가 다르기 때문이었고, 우리 아이들은 모두 무신론자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목사들에 대해서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다. 내가 다녔던 학교마다 목사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틀에 박힌 거룩한 목소리를 만들어 설교를 하곤 하는 것이다. 난 그게 싫었다. 왜 좀 더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설교를 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목사들의 이야기가 순 거짓말처럼 들리는데도 말이다.
(15)
오래 잠은 잔 건 아닌 모양이다. 눈을 뜨니 시간은 겨우 열 시쯤 되어 있었다.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아침식사를 시킬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행여 모리스 녀석이 가지고 올까 봐 두려웠다. ~~~결국 샐리 헤이즈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호텔을 나와 택시를 탔지만, 마땅히 갈 곳을 찾기가 힘들었다. 갈 데가 없었다. 이제 겨우 일요일이었고, 난 수요일까지는 집에 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호텔에 가고 싶지도 않앗다.
배가 고팠다. 택시에 타고 있는 동안, 지감을 꺼내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 보았다. ~~~지난 2주 동안 왕의 몸값만큼 되는 돈을 써버린 것이다. ~~~아버지는 어떤 회사의 고문 변호사다. 변호사들이란 돈을 엄청나게 끌어 모으기 마련이다.
짐 가방을 역의 보관함에 맡겨 두고, 작은 샌드위치 바에 들어가서 아침을 먹었다. 오렌지 쥬스, 베이컨과 달걀, 토스토와 커피.... 나로서는 굉장히 아침을 많이 먹은 셈이다. 보통 때는 오렌지쥬스만 약간 마시고 마는데 말이다.
내가 달걀을 먹고 잇을 때 가게 안으로 가방을 든 수녀 두 명이 들어왔다. 다른 수녀원으로 옮겨가기 위해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바로 내 옆에 앉았다. 들고 온 가방을 어떡해야 좋을지 모르는 것 같기에 내가 도와주었다. 아주 싸구려처럼 보이는 가방으로, 진짜 가죽이 아니었다.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난 누구라도 싸구려 가방을 들고 잇는 것이 싫었다. 좀 잔인한 말이긴 하지만, 그런 싸구려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까지도 싫어지는 것이다.
수녀들이 내 옆에 앉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게 되었다. 바로 옆에 앉은 수녀는 수녀들이나 구세군들이 크리스마스 모금을 할 때 사용하는 짚으로 만든 바구니를 가지고 잇었다. 큰 백화점이나, 길모퉁이, 5번 가 같은 곳에서 그 사람들이 그런 바구니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잇을 것이다. 그 수녀가 그만 바닥에 바구니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내가 주워주었다. 그러면서 자선사업 같은 것을 위해 모금을 하러 다니고 잇는 거냐고 물어보았다. 수녀는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가방에 짐을 꾸리는 데 도저히 들어가지 않아서 그냥 들고 가는 거라고 했다. 그 수녀는 사람을 쳐다보면서 정말 상냥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코가 크고, 아무리 봐도 보기좋다고 할 수만은 없는 칠레 안경을 쓰고 잇었다. 그렇지만 정말 친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만약 모금을 하고 계신 거라면 저도 조금 기부하고 싶은데요, 가지고 계시다가 모금을 할 때 넣어주셔도 좋고요.
정말 고마워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같이 있던 다른 수녀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 수녀는 커피를 마시면서 작은 책을 읽고 잇었다. 성경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너무 얇았다. 그렇지만 성경 계열의 책인 건 확실했다. 두 사람은 아침식사로 토스토와 커피를 먹고 잇었다. 그걸 보자 나는 우울해졌다. 내가 베이컨이나 베이컨 같은 것을 먹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토스트와 커피밖에 먹지 않ㄴ느다는 사실이 싫었다.
수녀들은 내가 기부한 10달러를 받았다. 그러고는 내게 그만큼이나 내도 괜찮은지를 계속 물어보았다. 돈이 많이 있다고 대답해 주었지만, 그다지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결국은 그 돈을 받아들였다. 지나칠 정도로 고맙다는 인사를 많이 해서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난 화제를 일상적인 것으로 돌려, 수냐들에게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어보앗다. 두 사람은 학교 선생인데, 시카고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168번가인지, 186번가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주택가에 붙어 잇는 수녀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거라고 했다. 옆에 앉아 있던, 안경을 낀 수녀가 자기는 영어를 담당하고 있고, 다른 수녀는 역사와 정치를 가르친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수녀가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책을 읽을 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읽을 것인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렇지만 그 말을 입 박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저 영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라고만 말했을 뿐이다.
어느 학교에 다니고 있죠? 그녀가 물었다.~~~ 난 펜시에 다닌다고 대답했다. ~~~역사와 정치를 가르친다는 수녀가 그만 가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두 사람의 계산서를 집었지만, 그녀들은 내가 존을 내게 하지 않았다. 안경을 쓴 수녀가 내게서 계산서를 도로 받아갔다.
수녀들이 막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난 그만 너무나도 멍청하면서, 당혹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때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그녀들과 인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그만 실수로 두 사람의 얼굴에 연기를 내뿜고 말았던 것이다.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도 그만 그렇게 하고 말았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사과했다. 두 사람은 공손하면서도 상냥하게 대해주었지만, 난 몸 둘 바를 몰랐다. 두 사람이 떠나자, 난 겨우 10달러밖에 기부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16)
아침식사를 마쳤는데도 시간은 아직 12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샐리와는 2시에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나는 천천히 산책을 시작했다.
교회에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이는 가족이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였다. 그렇게 집안이 넉넉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이 좀 괜찮아 보이고 싶을 때 쓰는, 회색이 도는 진주 빛깔 모자를 쓰고 있었다. 부부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아이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그 아이가 정말 재미있었다. 인도가 아니라 차도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인도와 차도 사이에 놓인 연석 바로 옆을 걷고 있었다. 아이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그 꼬마도 똑바로만 걸어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걸어가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난 좀 더 가까이 다가가 꼬마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를 들어 보았다. <호밀밭에 들어오는 사람을 잡는다면>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배우들이 싫다. 배우들은 절대로 진짜 사람들처럼 연기하지 않는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어째서 대단하다는 건지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17)
마침내 샐 리가 계단을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녀를 맞이하러 내려갔다. 샐리는 정말 굉장히 예뻐 보였다.
1막이 끝나고, 우리도 다른 멍청이들처럼 담배를 피우기 위해 복도로 나왔다. 정말 장관이긴 하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바보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 걸 보기는 힘든 일일 것이다. ~~~저 남자 아는 사람이야. 그녀는 계속 그 말만 했다. 샐리는 어디를 가더라도 꼭 아는 사람이 있거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마침내 그놈이 샐리를 알아보고는 우리 쪽으로 와서 인사를 했다. 정말 그런 인사는 본 적도 없을 것이다. 마치 20년 만에 만나기라도 하는 것처럼 굴었다.
난 샐리에게 감정이 과히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대로 집에 데려다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한테 정말 근사한 생각이 있어! ~~~저녁 먹기 전에 집에 들어가야 하니? 몇 시쯤 가야 되는데? ~~~라디오시티로 스케이트 타러가자! 그래서 우리는 그곳에 갔다.
농담하는 거 아니야. 한 180달러쯤 저축해 놓은 돈이 있어. 그러니까 내일 아침에 은행 문 여는대로 돈을 찾아다가, 그 친구한테 차를 빌리는 거야. 농담이 아니고 정말이야. 오두막 같은 데서 돈이 떨어질 때까지 지내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내가 일자리를 구하는 거지. 그러고는 냇물 같은 게 흐르는 곳에서 사는 거야. 그러다 보면 나중에 결혼 같은 것도 할 수 있을 테지. 겨울이면 내가 장작을 베어오고, 둘이서 그렇게 사는 거야. 정말 끝내 주는 생활이 될 거야. 어떻게 생각해? 같이 가자. 네 생각을 말해 봐! 같이 가는 거지?
자기는 그런 일 못해. 샐 리가 대답했다. 목소리가 화난 것 같았다. ~~~왜 할 수 없다는 거지? 어쨌다는 거야? 자기는 할 수 없으니까. 그게 다야. 무엇보다 우리는 아직 어린애나 마찬가지잖아? 돈이 떨어지고, 일자리도 구하지 목하면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 봤어? 둘 다 굶어 죽을 거야. 자기가 하는 얘기는 너무 꿈같아. 사실.....
그런 일을 할 시간은 앞으로 있을 거야. 자기가 대학에 가고 나서도 얼마든지 말이야. 그런 다음에 우리도 결혼할 수도 있고. 좋은 곳에 얼마든지 갈 수 있어. 자긴 그저.... ~~~결국 나는 어쩔 수 없이 혼자 나오고 말았다. ~~~~틀림없이 난 미친 게 분명했다.
(18)
스케이트장에서 나오자 배가 고팠다. 그래서 드러그스토어에 들어가 스위스 치즈샌드위치와 우유를 먹었다. 그러고는 전화 부스로 갔다. 제인에게 전화해서, 그녀가 집에 돌아왔는지를 알고 싶었다.
결국 칼 루스에게 전화했다. 그는 내가 후튼에서 퇴학당한 이후, 그 학교를 무사히 졸업한 친구였다. 나보다 나이가 세 살이 많았고, 그렇게 좋아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아주 똑똑했다. 아마 후튼에서 IQ가 가장 높았을 것이다.
그는 내 전화를 받고는 저녁식사를 같이 할 수는 없지만, 10시쯤 54번가에 있는 위키 바에서 만나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다. ~~~10시가 되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라디오시티에 가서 영화나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 무대 위에서는 엉터리 같은 쇼를 하고 잇었다. ~~~공연이 끝나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내용이 그쯤 되자 나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더 이상 말했다가는 토해버릴 것만 같아서 도저히 못하겠다. 내가 특별히 이 영화를 엉망으로 망치고 있는 건 아니다. 더 이상 망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영화였기 때문이다. ~~~더 기가 막혔던 부분은 내 옆자리에서 영화를 보던 여자가 상영 시간 내내 울고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나는 칼 루스와 만나기로 한 위키 바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19)
위커 바는 시튼 호텔 안에 잇는 술집이다.~~~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시간이 일렀다. 칼 루스가 오기 전에 나는 스카치 소다를 몇 잔 마셨다. ~~~마침내 루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20)
난 곤드레만드레 취한 채 새벽 1시까지 그곳에 눌러앉아 있었다. ~~~정말 취했는지, 바보처럼 내 배에 총알이 박혔다는 생각이 다시 들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총알을 맞은 사람은 나뿐이었다. 재킷 밑으로 손을 집어넣고, 피를 여기저기 흘리지 않기 위해 배를 꾹 움켜잡았다. 내가 부상을 입었다는 걸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나는 계산을 하고 바에서 나와 전화 부스로 걸어갔다. 가는 동안 피가 흐르지 않도록 재킷 밑에 손을 넣고 힘을 주고 있었다.
연못은 반은 얼어 있었고, 반은 얼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오리는 없었다. ~~~결국 나는 그나마 덜 어두워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아직도 바보처럼 몸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
결국 난 죽을 경우에- 대비해 몰래 집에 돌아가 피비를 만나고 오는 편이 좋겠다고 결심했다. 집 열쇠가 있으니까 아무도 몰래 아파트에 들어가서 피비와 얘기를 나눌 수 잇을 것이었다. ~~~이제 공원에서 벗어나 우리 집을 향해 가기 시작했다. 계속 걸었다. 거리도 가깝고, 피곤하지도 않았으며, 술도 다 깬 상태였다. 다만 얼어죽을 듯이 추웠고, 사방에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21)
난 우리 집이 있는 층에서 내렸다. ~~~ 난 열쇠를 꺼내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다시 살짝 들어가서는 가만히 문을 닫았다.
우리 집 현관에 들어서면 다른 곳에서는 맡을 수 없는 향기가 난다. 무슨 향인지는 알 수 없다. 콜리플라워 냄새도 아니고, 향수 냄새도 아니다. 정말 무슨 향기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 냄새를 맡으면 집에 돌아왔다는 걸 느끼게 되곤 하는 것이다.
피비는 방에 없었다. 그 애가 다른 방에서 잔다는 걸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D.B 가 할리우드나 다른 곳에 가 있을 때면 피비는 그 방에서 잤다.
난 살며시 D.B 방으로 들어가 책상 위에 놓인 스탠드의 불을 켰다. 피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난 잠시 그 애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피비는 얼굴을 베게에 살짝 파묻은 채 자고 있었다.
오빠! 피비가 나를 부르면서 두 팔로 내 목을 꼭 감싸 안았다. 정이 많은 아이였다.
지금 몇 신데? 엄마가 늦게 돌아올 거리고 했거든. 아빠 하고 같이 코네티컷에 있는 노워크에서 열리는 파티에 가셨어. 피비가 말했다.
그런데 오빠, 왜 수요일에 안 온 거야? 뭐라고? ~~~수요일에 오지 않고 왜 오늘 온 거야? 혹시 또 퇴학 같은 걸 당한 건 아니겠지? 피비가 물었다. 아까 말했잖아. 방학이 일찍 시작했다고 말이야. 학교에 퇴학ㄷ아한 거지! 그런 거야! 피비가 주먹을 쥐고는 내 다리를 쥐어박았다.
당분간은 농장 같은 데서 일을 하려고 해. 친구 중에 할아버지가 콜로라도에서 농장을 하신다니까, 거기 가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거야. 그곳에 가더라도 너한텐 계속 연락할게.
(22)
내가 돌아왔을 때는 피비도 얼굴을 베개에서 내놓은 상태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 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있었다.
아빠가 오빠를 죽일거야. 피비는 한번 무슨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좀처럼 그 생각을 지워버리지 못하는 아이였다. 아니야, 그렇게 하지 않으실 거야. 기껏해야 몇 마디 정도 야단을 치실 거고, 사관학교 같은 데 보내시겠지.
오빠는 왜 그렇게 된 거야? 왜 또다시 퇴학을 당했냐는 소리였다. 피비의 망을 듣자 좀 슬퍼지는 것 같았다. 피비 제발, 그런 건 묻지 마. 정말 모두들 나를 보기만 하면 그것부터 물어보니 말이야. 이유는 많지. 이번에 다녔던 학교는 정말 최악이었어. 바보 천치들만 우글거리는 곳이었지.
오빠는 모든 일을 다 싫어하는 거지? 그 애가 이런 말을 하니 나는 우울해졌다. 아냐 그렇지 않아. 그런 말 하지마, 왜 그렇게 말하는 거니?
너 ‘호밀밭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다면’이라는 노래 알지? 내가 되고 싶은 건.... 그 노래는 ‘호밀밭을 지나가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야. 피비가 말했다. 그건 시야 로버트 번스가 쓴 거잖아. 로버트 번스의 시라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어. 그렇지만 피비가 옳았다.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Comin Thro' The Rye)소개 이 맞다. 사실 난 그 시를 잘 모르고 있다.
[Comin' Thro' the Rye] -Robert Burns (1782)-
O, Jenny's a' weet,[A] poor body,
오 가엾은 제니, 흠뻑 젖었구나
Jenny's seldom dry:
그치만 잘 마르지 않네요
She draigl't[B] a' her petticoatie,
패티코트를 질질끌며 터벅터벅 걸어가지요
Comin thro' the rye!
호밀밭을 걸어오네
Chorus:
Comin thro' the rye, poor body,
가엽어라, 호밀밭을 걸어오네
Comin thro' the rye,
호밀밭을 걸어오네
She draigl't a' her petticoatie,
페티코트를 질질끌며 터벅터벅 걸어오는구나
Comin thro' the rye!
호밀밭을 걸어오네
Gin[C] a body meet a body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Comin thro' the rye,
호밀밭을 걸어오네
Gin a body kiss a body,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키스하면
Need a body cry?[D]
그 사람을 울려야 하나요?
(chorus)
Gin a body meet a body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려고
•Comin thro' the glen
(glen골짜기)을 걸어오네
Gin a body kiss a body,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키스하면
Need the warl'[E] ken?[F]
그 사람을 울려야 하나요?
(chorus)
Gin a body meet a body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키스하면
•Comin thro' the grain;
(grain밀밭)을 걸어오네
Gin a body kiss a body,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키스하면
The thing's a body's ain.[G]
그건 그녀의 마음대로지
(chorus)
※
A weet – wet
B draigl't – draggled
C gin – given, in the sense of "if"
D cry – call out [for help]
E warl – world
F ken – know
G ain – own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잇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 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p288
피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뭔가 말을 하는가 싶더니 또 “아빠가 오빠를 죽일거야”라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날 죽여도 괜찮아. 그러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문득 엘크론 힐즈에서 영어를 가르쳐주던 앤톨리니 선생한테 전화를 걸고 싶어서였다. 그때 그는 뉴욕에 살고 있었는데, 엘크론 힐즈를 그만 둔 뒤, 뉴욕 대학에서 영어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23)
통화를 짧게 끝냈다. 전화를 하는 동안 엄마나 아버지가 돌아오시는 건 아닐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부모님이 들어오시지는 않았다. 앤톨리니 선생은 굉장히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주었다. 오고 싶을 때 언제든지 와도 좋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아마 선생 부부는 자고 잇다가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신호음이 여러 번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 선생은 제일 먼저 무슨 일이 생겼냐고 물으셨다. 난 별일은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펜시에서 퇴학당했다는 말은 했다. 어쩐지 선생에게는 말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잘했구나. 유머 감각이 굉장히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러고는 오고 싶으면 지금 당장 와도 좋다고 했다.
난 앤톨리니 선생을 이제까지 만났던 선생들 중에 가장 좋은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현관. 피비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엄마 아빠야. 난 재빨리 일어나 책상 위에 놓인 스탠드를 껐다. 담배를 신발로 비벼 끄고는 꽁초를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구두를 손에 들고 옷장 속으로 숨었다. 미칠 것처럼 심장이 뛰고 잇었다. 엄마가 그 방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피비? 엄마가 동생을 불렀다. 시치미 떼지마. 불 켜놓은 거 다 봤으니까. 요 꼬마 아가씨야.
피비 너 담배 피웠니? 솔직하게 말해 보렴. 예? 담배 피웠냐고 물었다. 조금이요. 그냥 한 모금 피워보고 창밖으로 던졌어요.
엄마가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난 잠시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젠 그만 갈게.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침대를 찾아 앉아서는 구두를 신기 시작했다. 난 몹시 초조했다. 그건 인정한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으로 내려갔다.
(24)
앤톨리니 부부는 서튼 플레이스의 고급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난 피비가 준 크리스마스 용돈을 쓰고 싶지 않아서 가능하면 선생 집까지 걸어가고 싶었다. ~~~결국 택시를 탔다.
내가 초인종을 누루자 선생님이 문을 열어 주셨다.
이건 시인이 쓴 게 아니라 , 빌헬름 스테켈이라는 정신분석 학자가 쓴 글이다.여기에서 그는 .... 내 말 듣고 있니? 네 똑똑히 듣고 있습니다. 이렇게 쓰고 있어.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선생은 몸을 앞으로 내밀고는 내게 종이를 건네 주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선생은 부엌으로 갔고, 난 욕실로 가서 옷을 벗었다. ~~~~난 그대로 잠이 들었다.
갑자기 난 눈을 떴다. 몇 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잠에서 깨버리고 말았다. 뭔가 머리에 닿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 손 같기도 했다. 그 순간 난 정말 기절할 듯이 놀랐다. 그런데 내 머리를 만지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앤톨리니 선생의 손이었다. 선생은 어둠 속에서 긴 의자 옆에서 바닥에 앉은 채로 내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잇었던 것이다. 난 정말 천 피트 펄쩍 뛰어 오를 뻔 했다. 뭐하고 계세요? 별일 아니야. 그냥 여기 앉아서, 감탄하고 있었지...
정말 뭐하고 계신 거냐니까요?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이런 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당황했으니까 말이다. 목소리를 낮추는 게 어떻겠어? 난 그냥 여기 앉아서....
어쨌든 그만 봐야겠어요. 난 긴장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바지를 찾아 입는데, 얼마나 긴장했던지, 제대로 입을 수가 없었다. 학교 같은 데서 난 그놈의 변태놈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놈들은 나와 있을 때면, 언제나 변태 같은 짓거리들을 하려 했다.
어디로 가겠다는 거야? 선생이 말했다. ~~~ 진짜예요. 정말 가봐야 해요. 그래야겠어요.
넌 정말 이상한 아이야. 저도 알고 있어요. ~~~안녕히 계세요. 선생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진심으로 말입니다.
(25)
밖으로 나오자 막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그랜드센트럴 역으로 갔다. 짐이 들어 있는 가방을 전부 그곳에 맡겨놓았을 뿐만 아니라, 대합실 벤취에서 자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선생은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내 머리를 만졌을지도 몰랐다. 그 생각을 하니 기분이 더욱 우울해지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전날 아침식사를 하면서 만났던 수녀 두 명이 어디 없을까 하고 둘러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나는 넥타이도 매지 않은 채로 5번 가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귀신이 곡할 일이 일어났다. 길모퉁이에 이르러 차도로 건너려고 발을 내딛을 때마다 도저히 건너편까지 건너갈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꺼져 내려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엉뚱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길모퉁이에 다다를 때마다 동생 앨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고 믿기 시작한 것이다. 앨리, 날 사라지게 하지 말아줘. 앨리, 날 사라지게 만들지 마. 앨리 제발 부탁이야. 사라지고 싶지 않아.
차를 얻어 타고, 서부로 떠나리라. 먼저 홀랜드 터널까지 가서 거기서 무임승차했다가, 다음 역에서 다른 차로 갈아타면, 며칠 안에 서부에 도착하게 될 것이었다. ~~~주유소 같은 데서 남의 차에 기름을 넣어주는 일자리 같은 건 구할 수 잇을 것이었다. 무슨 일이든 상관하지 않을 테고, 그저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다른 사람들을 모르는 곳에 가는 걸로 족했다.
차에 기름 넣는 일을 하면, 그만큼의 보수를 받을 수 잇을 것이다. 그 돈을 모아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사는 것이다. ~~~음식도 손수 요리해서 먹을 것이고, 결혼하고 싶어지면, 나와 똑같이 귀머거리에 벙어리인 귀여운 여자를 만날 것이다.
문구점에 들어가 편지지와 연필을 샀다. 내 생각은 피비에게 잘 잇으라는 인사를 하고, 크리스마스 용돈을 돌려주기 위해서는 만날 장소와 시간을 알리는 편지를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 편지를 피비의 학교로 가지고 가 교장실에 있는 누군가를 통해 그 애에게 전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피비.
도저히 수요일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오늘 오후에 무임승차로 서부로 떠날 예정이야. 그러니까 12시 15분까지 미술 박물관 입구로 나와. 거기서 만나자. 네 크리스마스 용돈도 돌려줄게. 그렇게 많이 쓰지는 않았거든. -홀든
미라실을 나온 후에 난 화장실에 가야만 했다. 설사를 했기 때문이다. 그건 심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화장실을 나오다가 문 앞에서 쓰러지고 만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난 운이 좋은 편이었다. 바닥에 쓰러질 때 옆으로 쓰러졌기 때문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으니까.
시간은 12시 10분쯤이었다. 그래서 난 박물관 입구로 나가 피비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박물관 관리실에 있는 시계는 이미 1시 2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늙은 여자가 다른 여자한테 내 편지를 피비에게 전해주지 말라고 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 애의 모습이 보였다. 박물관의 유리를 통해 볼 수 있었다. ~~~ 난 피비를 맞이하기 위해 박물관을 나와 입구에 있는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애는 여행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런 걸 왜 가지고 온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오빠 피비가 가까이 오더니 날 불렀다. 이런 쓸모없는 가방을 가지고 오느라고 힘들었는지,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피비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 옷. 나도 오빠하고 같이 갈 거야. 괜찮지?
뭐라고? 그 애의 말을 듣고 난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안 돼. 입 다물지 못해! ~~~오빠, 부탁이야. 나도 갈래. 정말 가고 싶어. 오빠한테 조금도....
피비가 울기 시작했다. ~~~그만 가자. 학교에 데려다 줄게. 내가 다시 말했다. 학교에 안 갈거야.
내가 말했다. 난 아무 데도 안 갈 거라니까? 좀 전에 말했잖아. 집으로 갈게. 네가 학교에 가면, 나는 짐으로 갈게. 먼저 역에 가서 가방을 찾은 다음에...
피비도 길 건너편에서 내가 가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를 똑자로 쳐다보지는 않고 있었지만, 살며시, 내가 어떻게 하는지 살피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날씨가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동물원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겨울이라 회전목마를 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피비가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었다. ~~~회전목마 타고 싶어? 그 애가 지금 타고 싶어 하고 있다는 걸 난 알고 있었다. ~~~저걸 타기에는 난 너무 커. 피비가 대답했다. ~~~~목마가 돌기 시작했고, 나는 회전목마를 타고 있는 피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목마의 회전이 끝나자 피비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오빠도 같이 타자.
아까 말한 거 정말이야? 아무 데도 안 간다는 거 말이야. 나중에 정말 집으로 올 거야? 피비가 물었다. 그래. 정말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난 피비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집으로 돌아갔으니까. 어서 가라니까.
(26)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이게 전부다. 그 이후로 내가 집에 돌아가서 무엇을 햇으며, 어떻게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병원을 나오면 다음 학기부터는 어느 학교로 가기로 되어 있는지 까지 다 말할 수 있지만, 지금은 별로 내키지가 않는다. 많은 사람들, 특히 이 병원에 있는 정신과 전문의가, 이번 9월부터 학교에 가게 되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인지를 연신 물어대고 있다.
[Review]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거지. 온 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본문)
학교를 세 번째로 퇴학당하고, 그 사실을 차마 부모에게 알리지 못한 주인공 열여섯 살 ‘홀든 콜필드’는 2박 3일 동안 거리와 친구 사이를 헤매다가 집으로 몰래 들어왔다. 마침 부모님은 외출 중이었고, 여동생 ‘피비’는 오빠를 걱정하고 책망하지만, 콜필드는 모든 탓을 주위 사람들과 환경으로 돌리며 끊임없이 불평하고 비난한다.
두 사람은 장래 일을 이야기하다가 자기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것은 절벽에 접한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뛰어놀고 그곳에서 아이들이 절벽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일(호밀밭의 파수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생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아빠가 오빠를 죽일 거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일인칭 화자 소설로, 주인공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만나는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리고 넋두리처럼 이어간다. 그의 눈에 보이는 기성세대는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하다. 또래의 아이들은 정신적으로 부패했고, 타락했다. 노인들은 추해 보이고 초라하다. 심지어 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난 교회에 가지 않는다. 우선 부모님의 종교가 다르기 때문이었고, 우리 아이들은 모두 무신론자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난 목사들에 대해서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다. 내가 다녔던 학교마다 목사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틀에 박힌 거룩한 목소리를 만들어 설교를 하곤 하는 것이다. 난 그게 싫었다. 왜 좀 더 자연스러운 목소리로 설교를 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목사들의 이야기가 순 거짓말처럼 들리는데도 말이다.” (본문)
미국 작가 ‘J.D. 샐린저’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이 책은 출판 당시 대중적 호응을 얻어서 출판된 지 두 달 만에 여덟 번이나 재발행 되었으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30주간 선정되었다. 1919년생으로 이 책이 쓰여 질 무렵인 1951년에 미국 사회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족관계의 취약함이 두드러지고 산업화로 인해 가족의 정서적 기능과 경제적 기능이 약화하면서 청소년 비행 등 가족 문제가 사회적으로 크게 대두되었던 시기이다.
그러나 이 책은 과도한 욕설과 거친 언어적 표현으로 검열의 대상이 되었고, 논란의 여지도 많았다. 특히 청소년들의 현실 도피 의욕을 자극하고, 교사들을 비하하는 내용과 비행 청소년들에 대한 거친 묘사는 당시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1970년대에 이르러 이 책을 배정한 몇몇 미국 고등학교 교사들이 해고되거나 강제 사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여전히 인기를 얻어서 2004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천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스펜서 선생은 아주 가련하게 보였고, 초라한 목욕 가운을 입고 있어서 한층 더 그렇게 보였다. 나이 든 사람들이 잠옷이나 목욕가운 같은 것을 입고 있는 모습은 정말 끔찍하다. 앙상하게 마른 가슴이 드러나 보일뿐더러 뼈만 남은 다리까지 보이기 때문이다. 해변가에서 보면 노인들의 다리는 새하얗고, 털이 하나도 없었다.”(본문)
글쓰기에 심혈을 기울이는 작가로 알려진 저자는 집에서 40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콘크리트 벙커를 지어놓고 안 번 들어갈 때마다 몇 시간씩 틀어박혀 나오지 않고 글을 썼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일인칭 소설을 쓰는 작가로 잘 알려진 저자는 한 인물의 성격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며 모든 취약함을 다 드러내게 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이 인물에 대해 거부감보다 호기심을 유발하도록 한다. 이 책에서도 주인공 콜필드에 대한 상반된 캐릭터가 두드러진다.
이 책 속에서 주인공 콜필드는 부모와 학교 선생님들의 모든 기대를 차버린 비행 소년이다. 그러나 자신에 대해 애정을 보여준 친구와 선생님에 대한 호의, 그리고 길에서 만난 진실한 사람, 수녀님에 대한 생각은 그의 겉으로 드러난 행동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는 수녀들에게 10달러나 되는 거금을 선 듯 내어 주며 불우한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부탁하고, 다른 거리를 지날 때 혹시 수녀님들을 다시 만날까 하는 기대도 한다. 독자는 그가 꿈꾸는 소박한 세상, 마음에 둔 여자 친구 ‘샐리’에게 함께 뉴잉글랜드로 도망가서 “실개천이 흐르는 어딘가에” 오두막을 짓고 겨울엔 장작을 패면서 둘이서 조용히 살자고 애원하는 모습에서 연민의 정을 느끼고 철부지인 주인공의 모든 잘못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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