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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영혼이 얼마나 귀중한가?
65년전, 미국의 장래가 촉망되던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젊은 아내와 어린 아이들을
남겨둔 채 에콰도르 깊은 정글 속 강변에서 순교의 피를 뿌리고 스러져 갔습니다.
미 시카고에는 복음주의 전통으로 이름난 명문 휘튼대학이 있습니다.
복음주의 목사인 빌리 그래함 목사를 배출한 대학으로도 유명한데 1949년 이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제임스(짐) 엘리엇이라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나 주변사람들은 영적 은사가 탁월한 엘리엇은 앞으로 미국 내 많은 개척교회
사역과 청년사역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엇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주변 사람의 기대보다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기대는 무엇인지 듣고 싶었습니다.
그는 오랜 기도 끝에 남아메리카로 향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왜 오지에 사는 어떤 사람은 평생 한 번도 복음을 듣지 못하는데
미국에 사는 어떤 사람은 두 번씩 들어야 합니까?"
엘리엇은 에콰도르에서 사역했던 선교사와 교제하며 아우카 부족에 대한 정보를
들었고 그 부족을 선교 대상지로 정하였습니다.
아우카족은 사납기로 유명하고 수 백 년간 외부에서 들어간 사람을 모두 죽이는
부족으로 소문이 나 있으며 아직 누구도 복음을 전하러 간 적이 없던 곳이었습니다.
짐과 그의 약혼자 엘리자베스는 에콰도르 선교사로 부름을 받고 1953.10.8 에콰도르
현지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후 엘리엇은 퀴추아 인디언 사역을 계속하면서 아우카족에게 들어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1955년 가을, 비행선교사인 네이트 세인트는 아우카 마을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다음 달부터 엘리엇과 4명의 선교팀 동료들은 매우 호전적인 아우카족의 환심을
사기 위해 비행기에서 선물을 끈에 매달아 떨어뜨렸습니다. 옷이나, 손전등, 작은
액세사리 상자 등이었습니다.
한번은 선물을 매달은 끈에 아우카 부족에서 답례를 매달아 보내왔습니다.
토속 머리장식품,, 앵무새, 훈제한 원숭이고기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이 답례로 보낸 선물은 그들을 매우 고무시켰습니다.
마침내 엘리엇과 4명의 젊은 선교사들은 간단한 짐만 챙긴 채 아우카 부족마을에
들어가려고 경비행기를 타고 정글 근처 강변에 착륙하였습니다.
강변에 텐트를 치고 부족마을 전도 준비를 한다는 연락을 선교본부에 보고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고 닷새 째가 되어도 연락이
없었습니다. 선교본부에서는 무슨 문제가 생긴 것으로 짐작하고 조사를 위해 팀을 꾸려
다른 비행기를 보냈습니다.
얼마 후 그들에게서 들려온 소식은 그 해변에서 1956.1.8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창과
도끼로 무참하게 살해되었다는 보고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들 중 3명이 주머니에 권총을 소지하고 있었음에도 그들 중
누구도 총을 사용하지 않은 점이었습니다.
총기를 사용하여 방어할 수 있었음에도 그들은 복음을 위하여 죽음을 택하였다는
결론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타임지와 라이프지에 이러한 사실이 발표되었고 전 국민은 분노하였습니다.
라이프지는 10페이지에 달하는 기사를 써서 이 내용을 자세히 다루면서
"그들은 부인과 함께 퀴추아 부족과 히바로 부족 사역을 하면서 아우카 부족이 얼마나
사납고 잔인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주변 부족들도 아우카 부족을 모두 두려워하였으나
선교사들은 아우카족에 들어가기로 결심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장래가 촉망되는 아까운 젊은이들이 이 얼마나 무모한 죽음이며 낭비인가? "
라고 비난하였습니다.
한 기자는 엘리엇의 아내 엘리자베스를 찾아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What a waste!"
그러자 당시 20대 초반이던 엘리자베스는 기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대답하였습니다.
"낭비라니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의 남편은 어릴 때부터 이 순간을 위하여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남편은 이제야 그 꿈을 이룬 것뿐입니다. 이후로 다시는 내 남편의
죽음을 낭비라고 얘기하지 마십시요."
그 후 아내 엘리자베스는 엘리엇이 대학생 때 일기와 글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학 2학년때 쓴 엘리엇의 글에는 엘리자베스가 인터뷰한 대로
짐 엘리엇이 자기의 죽음을 예고한 것 같은 글을 이미 여러 번 썼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이 부족한 나무토막 같은 나의 인생에 불을 붙여 주소서. 제가 주님을 위하여
태워질 수 있도록 나의 삶을 소멸시키소서. 나의 몸은 주의 것입니다. 나는 오래 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완전하고 풍성한 삶을 원합니다. 바로 주님처럼..."
그리고 또 다른 글에는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엘리엇은 이 땅에서 오래 살기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의 삶이 전능자의 그늘 아래서 그분과 함께 풍성하기를 구하였습니다.
그 삶의 길이가 길든지 짧든지...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엘리엇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10개월된 딸을
안고 남편이 순교한 그 나라에 남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남편이 못다한 일을 내가 마저 해야 한다."
당시 페루에서 성경번역사역을 하던 네이트 세인트 비행선교사 누나는 동생의 사고
소식을 접하고 에콰도르에 들어와 엘리엇의 아내와 아우카족에 들어가기로 합니다.
잔인하기 그지없는 그 아우카족에게 복음을 들고 다시 찾아 나선 것입니다.
일반인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짐의 아내 엘리엇은 1년간 간호사 훈련을 받고 다시 들어갔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찾아갔는데 뜻밖에 그 전사 부족의 규율에는
'연약한 여자들을 해치는 일은 비겁한 일이므로 절대 헤치지 않는다' 라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엘리엇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아우카족의 치료와 병간호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우카족의 추장이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이며 우리를 위해 이렇게 헌신적으로 애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엘리자베스는 담담히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5년전에 당신들이 죽인 그 남자의 아내입니다."
부인의 말을 들은 추장과 그 아우카 부족 사람들은 경악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과 복음에 감동을 받고 하나 둘,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몇 년 후 아우카족 추장이 빌리 그레함의 집회에 초대를 받아 간증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에게서 복음을 받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젊은이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옛날처럼 그렇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그 분들의 죽음으로
우리는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오래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처럼,
그 분들처럼 살기를 원합니다."
다섯 명의 선교사가 순교한지 36년이 되던 해, 1992.6.11 와오라니 (아우카족) 외딴 마을
티네노에서는 감격적인 신약성경 번역 봉헌식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75명의 와오라니 인디언 기독교인과 몇 명의 성경 번역에 참여한 선교사들과
봉헌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온 외부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와오라니 기독교 지도자가
그 부족 언어의 성경을 천천히 읽어 내려 갔습니다.
이 예배에 참석한 기독교인 중 3명은 36년전에 선교사를 살해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와오라니 부족 교회의 담임목사와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살해되던 현장에 가담했던 키모(민카이)라는 사람은 복음이 전해진 후,
아우카족 최초의 목사가 되었고 당시 살해되었던 네이트세인트항공 선교사 자녀 2명은
그 아버지가 순교했던 현장, 밤비치 강가에서 민카이 목사에게 세례를 받게 됩니다.
이제는 그 곳과 주변에 수백 개의 교회가 세워졌으며 비행선교사의 아들은 그 마을
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스티브세인트 선교사)
짐 엘리엇의 아우카족에 대한 선교의 얘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져 (창 끝; End of the spear)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신앙의 점검과 선교의 열정을 불어넣어주고 있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He is no fool who gives what he cannot keep to gain what he cannot lose.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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