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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60,1-6; 에페 3,2.3ㄴ.5-6; 마태 2,1-12
+ 찬미 예수님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공현’이란 말은 ‘드러남’이라는 뜻인데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는 것이 세상에 드러났다는 의미입니다. 동방에서 온 세 사람의 현자는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는데, 이로써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는 1독서의 예언이 이루어집니다. 이 예언은 “다른 민족들도…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2독서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사실 동방박사 세 사람은 유대민족이 아닌, 우리 모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혹시 “넷째 왕의 전설”이라고 들어보셨나요? 들어보셨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오늘 그 얘기를 준비했기 때문인데요,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동방박사 세 사람 외에도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리러 떠났던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제가 드리려는 말씀은 ‘에자르트 샤퍼’라는 사람이 쓴 ‘넷째 왕의 전설’이라는 책을 요약한 것입니다.
세 명의 동방박사가 별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 나섰을 때, 이 넷째 왕도 별빛을 보고 구세주께 경배를 드리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이 사람은 러시아의 아주 작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었는데, 아기 예수님께 드리기 위해 아마포와 모피, 그리고 자기 나라 강가에서 채취한 사금들을 주머니에 넣었고,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나라 제일의 특산물인 보리수꽃 꿀을 한 단지 챙겼습니다. 이 모든 선물을 사랑하는 말 와니카의 등에 싣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는 길을 잘 몰랐지만, 밤마다 떠오른 밝은 별빛이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 밤에는 별빛을 따라 길을 걷고 낮에는 동네 헛간을 빌려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잠을 자려고 헛간에 들어갔는데, 웬 갓난아기가 울고 있었고 그 옆에는 여인이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방금 아이를 낳았지만, 돌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넷째 왕은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마포로 아이를 덮어 주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사라며 여인에게 사금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여인은 감동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나라는 당신 같은 분을 임금으로 받들어야 할 거예요. 하지만 저에겐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만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당신을 제 마음의 임금으로 섬기겠습니다. 지금부터 분명 그렇게 할 거예요.”
넷째 왕은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구세주 아기에게 드릴 아마포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조금 섭섭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다른 선물들을 위안으로 삼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길에서 만난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훨씬 많았던 것입니다. 돈을 조금씩 나누어 주다 보니, 가진 것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농장을 지나다가 학대받고 있는 노예들을 보았습니다. 채찍으로 얻어맞는 노예들의 입에서 짐승과 다름없는 신음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귀를 막으면서 지나가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냥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사금을 주고 노예들을 사서 자유의 몸으로 풀어주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모피와 보리수꽃 꿀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추운 밤에 아무것도 걸치지 못한 채 얼어 죽기 직전에 있는 병자를 보게 되었습니다. 넷째 왕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모피를 그 병자에게 주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마음이 약한 자기가 미워지기라도 한 듯 황급히 그곳을 떠났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꿀단지와 사랑하는 말 와니카 뿐이었습니다. ‘그래 이 꿀이라도 드리자. 내 마음을 알아주시겠지.’ 그리고는 고향의 내음이기라도 한 양 꿀단지를 열어서 마음껏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래, 얼른 그분을 만나서 이 꿀을 드리고 나의 사랑하는 나라로 돌아가야지.’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수많은 벌 떼들이 몰려오더니 넷째 왕의 꿀단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왕은 소리를 지르며 벌들을 내쫓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자신의 말 와니카도 벌에 너무나 쏘였기 때문에, 넷째 왕은 퉁퉁 부어서 겨우 뜬 눈 사이로 자신의 사랑하는 말이 죽어가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얼마 뒤 그는 자신의 생애 중 가장 긴 밤을 체험했습니다. 자신을 인도하던 그 별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꼬박 밤을 새워 기다렸고 낮에는 온종일 계속해서 길을 걸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별을 보았다고 생각되는 곳을 향하여 미친 듯이 달렸습니다. 자신이 한심스럽고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넷째 왕은 해변에 도착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해변에 나와 있었고, 커다란 갈레선이 한 척 있었습니다. 갈레선은 영화 ‘벤허’에 나오는 배인데요, 노예들이 노를 저어서 움직이는 배입니다. 배 밑바닥에는 햇빛도 보지 못한 채 발목에 쇠사슬을 차고 평생을 노를 저으며 살아가야 하는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갈레선 주인과 한 여인이 실랑이하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남편이 빚을 갚지 못한 채 죽었는데, 갈레선 주인은 대신 여인의 하나뿐인 아들을 데려가서 노를 젓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울면서 아이만은 안된다고 사정하고 있었습니다.
여인의 슬픈 표정이 고향에서 넷째 왕을 그리고 있을 어머니와 닮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넷째 왕은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갈레선 주인 앞에 섰습니다. ‘내가 이 아이 대신 배를 타겠소.’ 해변에 있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고, 아이 어머니는 눈물 어린 눈으로 넷째 왕을 쳐다보았습니다.
배 주인도 놀랐지만, 아이보다 이 자가 훨씬 노를 잘 저으리라는 계산에 주저 없이 그를 배로 끌고 갔습니다. 발목에 쇠사슬이 묶였고, 그는 노를 젓기 시작했습니다.
넷째 왕은 너무나 순진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자기에게 떠맡긴 빚의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 노역으로 빚을 다 갚기 위해서 얼마 동안이나 노를 저어야 하는지 전혀 묻지 않고 배를 탔던 것입니다. 그 후 쇠사슬이 그의 복사뼈에 죄어들 때마다 ‘언제까지 노를 저어야 하느냐’고 물을라치면 으레 ‘아직 멀었다’는 대답만 들을 뿐이었습니다.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가도 매양 한가지로 그의 고생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었고, 세상의 온갖 불운한 자들과 나란히 앉아서 쉴 새 없이 노를 저어야 했습니다.
그는 두 번이나 도망치는데 성공했지만, 다시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오랜 세월 쇠사슬에 매여 있던 발이 굳어져 그렇게 빨리 달아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탈주를 시도했던 죗값으로 죽은 자의 빚을 노역으로 갚아야 할 기간은 더 연장되었습니다. 사실 이 ‘빚’이란 단지 구실에 지나지 않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아직도 그 별빛이 찬란히 빛나고 있을까.’ 그는 노예선 밖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등대 불빛이 별빛인 줄로 착각하기도 여러 번 했습니다.
그의 관자놀이 언저리가 희끗희끗해지더니, 이윽고 머리 전체가 백발이 되었습니다.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무시무시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갈레선의 노 젓는 자리에는 쓸모없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풀려나서 30년 전 그가 잡혀갔던 해안가로 옮겨졌습니다.
그늘에 누워서 바람을 쐬자,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부유한 상인 하나가 그에게 오더니 하인들을 시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넷째 왕은 감사를 표했습니다. “뉘신지 모르오만 정말 고맙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받아보는 대접이로군요.”
그런데 그 부유한 상인은 거만한 말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뭐 나에게 감사할 필요는 없소. 당신이 감사를 드릴 분은 이미 돌아가셨소. 그분은 내 어머니요. 어머니는 내가 죽을 때까지, 갈레선에서 쫓겨 나오는 사람들을 모두 집에 데려다가 기운을 차릴 때까지 돌보아 주라는 유언을 남기셨소. 솔직히 마음에 내키는 일은 아니오. 왜냐하면 갈레선에서 쫓겨 나오는 자들은 대부분 사회의 쓰레기 같은 자들이기 때문이오. 하지만 어머니는 언젠가 아주 착한 사람이 갈레선을 탔다고 하시면서, 그 사람이 어머니와 나의 은인이라고 말씀하셨소. 뭐 믿기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유언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거요.”
넷째 왕은 자기 눈앞에 있는 부유한 상인이 30년 전 자기가 대신해서 배를 탔던 그 아이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명복을 빕니다'란 말 한마디만 남긴 채 뒤돌아서고 말았습니다.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가 30년 전 해변으로 오기 전에 걸었던 큰길 쪽으로 향했습니다. 길은 많이 변하고 수많은 집과 건물이 들어서 있었는데, 큰길에 수많은 사람이 몰려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지만, 거지꼴을 한 그에게 대답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거지 노파가 그에게 말을 건네왔습니다.
“나자렛 예수라는 분의 처형식이 있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지요. 그는 가난한 사람과 병든 사람, 불쌍한 사람을 사랑한 예언자이셨는데, 사람들은 그를 시기하고 모함해서 죽이려고 합니다.”
넷째 왕은 코웃음을 치며 요즘 세상에도 그런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노파는 정색하며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있다마다요. 저에게는 그분만큼이나 훌륭한 분이 한 분 또 계신답니다. 거의 삼십 년 전의 일이지요. 그때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준 어느 분께 나는 내 마음을 드렸답니다. 나는 그분에게 내가 한 말을 꼭 지키겠다고 했지만, 그분이 정말 믿었는지 어떤지는 모르지요. 그 후로… 난 대단히 행복했어요.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친절하고 인자한 사람이 한 분 이 세상 어디엔가 있다는 걸 생각하면 늘 흐뭇했지요.”
이 말을 듣고 있는 넷째 왕의 뺨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노파는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넷째 왕이 물었습니다. “그나저나 그 예수라는 분은 왜 죽임을 당하는 거요?”
노파가 혀를 차며 얘기했습니다. “대체 당신은 어디서 왔길래 아무것도 모르고 있소? 이들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성경에도 적혀 있고 예언자들도 말해온 임금님을 죽이고 있다오. 스스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다 하여 죽임을 당하고 있는 거요.”
왕은 깜짝 놀라며 예수라는 분의 나이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의 나이요? 아마 서른살 가량이라고 하지.”
“뭐? 서른 살이라고? 분명 서른 살이라고 했소?”
넷째 왕은 군중을 따라 황급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저 멀리에 세 개의 십자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가운데에 있는 십자가 위로 자기가 30년 전에 그토록 찾아 헤매던 별이, 대낮인데도 환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주님, 당신이셨군요. 제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분이… 바로 당신이셨군요. 그러나 너무 늦어버렸습니다. 당신께 드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 모든 것을 헛된 일에 써버렸습니다.”
넷째 왕의 눈앞이 차차 어두워 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불현듯 거지 노파가 떠 올랐습니다. “주님, 저의 마음을, 저의 마음을… 그리고 저에게 바쳐진 그 여인의 마음을… 함께 받아주시렵니까?"
그의 귓가에 꿈인지 생시인지 어떤 음성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대가 준 황금과 아마포와 모피와 꿀, 그리고 30년간 나를 위해 애쓴 봉사를 다 받았노라.”
“주님, 저는 당신을 뵌 일이 없는데요?”
“그대가 내 형제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그는 그 말씀을 들으며 행복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눈을 감았습니다.
https://youtu.be/r6tVReXsioM?si=rs6TzZ9VRLmTrzVL
떼제 성가 "Jesus, remember me" (예수님,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첫댓글 아멘 🙏 감사합니다 ^^
'알타반' 네 번째 동방박사 이름입니다.
이 이야기는 정경이 아닌 러시아 지역에 내려오던 전승을 모티브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부님 강론 중에도 훌쩍였지만,
저 역시 이 책을 단숨에 읽어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네 번째 동방박사 알타반이 주님을 찾아 헤맸던 30여 년의 길이 바로 주님께서 가신 길 이었지 않을까요?
하마터면 울뻔 했습니다 ^^
하마터면 울지 그러셨어요 ^^
@김유정 가오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