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인연..........시조 버전
정호순
바람이 불어오네 누구의 손길인가
뜨겁던 그대 이마 아직 다 읽기 전에
긴꼬리 풀벌레 소리 만추의 밤 시드네
가랑잎 떨어지네 누구의 전언인가
가슴에 붉은 엽서 마저 다 쓰기 전에
뿔뿔이 제 갈 길 가네 속절없이 떠나네
호수에 파문지네 누구의 방문인가
못다 한 이야기는 가지에 남겨 두고
긴 여행
종착지에서
달빛 안부 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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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 시절인연
이 시는 모든 인연에는 저마다의 때가 있다는 인연설에 바탕을 두고 썼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아무리 뜨겁게 사랑했던 사이라도 인연의 시간이 다하면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과 저무는 풀벌레 소리, 호수에 번지는 파문을 통해 인연이 다가오고 머물다 떠나가는 과정을 그려 보았다.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만나는 사람은 언젠가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언젠가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거자필반의 기대를 거두고 회자정리의 이치를 받아들이고자 했다. 떠난 사람이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희망보다는, 인연이 다하면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삶의 이치에 무게를 두었다. 그렇다고 인연의 끝이 마음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처 전하지 못한 말과 다 쓰지 못한 사랑의 문장은 가지에 남고, 떠난 이를 향한 그리움은 달빛이 되어 안부를 전한다. 붙잡는다고 머물 수 없고 잊으려 한다고 잊히는 것도 아닌 것이 인연이기 때문이다.
떠나는 인연을 원망하거나 슬퍼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함께했던 시간의 의미를 받아들이며 보내는 마음을 담고자 했다. 인연은 때가 되어 만나고 때가 되면 헤어지지만 함께했던 마음의 흔적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시절인연이다. _정호순
첫댓글 때를 알고 인연을 받아들이는 쓸쓸한 가을입니다
네 회장님
삶은 가을처럼 쓸쓸함과 함께 오는 끝없는 슬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