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4년 7월 3일 수요일 (홍) 성 토마스 사도 축일]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24-29
24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25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26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28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29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시 / 영광
625. 토마스와 함께 있는 사도들에게 나타나시다. 사제직에 관한 말씀
1944. 8. 9.
사도들은 최후의 만찬실에 모여 파스카 어린양의 고기를 먹은 식탁에 둘러 앉아 있다. 그러나 존경의 뜻으로 가운데 자리, 즉 예수의 자리는 비어 있다.
사도들은 그들을 무리지어 그분의 뜻대로, 또는 사랑의 선택에 따라 자리를 정해주셨던 분께서 더 이상 계시지 않는 지금 다르게 앉아 있다. 베드로는 여전히 자기 자리에 앉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요한의 자리에 유다 타대오가 있다. 그 다음에는 사도들 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바르톨로메오가 있고, 그 다음에는 요한의 형 야고보가 있는데,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내 편에서 볼 때 그의 자리는 거의 오른쪽 모서리이다.
야고보의 곁에는 요한이 앉아 있는데 그는 식탁의 좁은 쪽에 있다. 다른 쪽에는 베드로 다음에는 마태오가 있고, 그 다음에는 토마스, 그 다음에는 필립보, 그 다음에는 안드레아, 그 다음에는 유다 타대오의 형 야고보, 그리고 열성당원 시몬이 있다. 식탁의 긴 쪽, 베드로의 맞은편은 비어 있다. 사도들이 파스카 때보다 더 가까이 앉아 있기 때문이다.
창문들은 닫혀 있고, 문들도 잠겨 있다. 다만 두 개의 불꽃만이 불붙어 있는 등불은 식탁만 희미하게 비출 뿐, 넓은 방의 나머지 부분은 어슴푸레하다.
요한의 등 뒤에는 찬장이 있어 그는 자기의 동료들이 원하는 검소한 음식을 내주는 임무를 맡고 있다. 그 검소한 음식이란 식탁에 놓여 있는 생선, 빵, 꿀, 신선한 치즈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자기의 형이 달라고 하는 치즈를 주려고 식탁 쪽으로 다시 돌아서다가 주님을 뵙는다.
예수께서는 매우 이상한 방법으로 나타나신다. 식탁에 앉아 있는 사도들의 등 뒤의 벽은 한쪽 구석의 작은 문을 빼놓고는 일체로 이어져 있는데, 그 중심부가 바닥에서 약 1미터 되는 높이의 지점이 약한 인광으로 환해진다. 그 빛은 마치 밤에 어둠 속에서만 빛나는 어떤 작은 그림들처럼 빛이 비추어지는 것이다. 약 2미터 높이의 그 빛은 벽감처럼 타원형이다. 그 빛 가운데에서 마치 빛나는 안개의 베일들 뒤에서 나오시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점점 더 분명하게 나타나신다.
내가 이해될 수 있도록 설명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분의 몸은 열리지 않은 두꺼운 벽을 통하여 흐르는 것 같다. 벽은 단단한 채로 남아 있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통과한다. 빛은 그분의 몸의 첫 번째 발산인 것처럼 보이며 그분께서 다가오시는 것을 알린다. 그 몸은 처음에는 부드러운 빛의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마치 내가 하늘에서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을 보는 것처럼 비물질적이다. 그러다가 그것은 점점 더 물질화되면서 모든 면에 있어 진짜 육체의 모습, 그분의 영광스럽게 된 하느님이신 육체의 모습을 띤다.
내가 이것을 묘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것은 몇 초 동안에 일어났다.
예수께서는 그분께서 부활하실 때와 그분의 어머니께 나타나셨을 때처럼 흰 옷을 입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지극히 미남자이시고, 다정하시며, 미소 짓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양팔을 그분의 몸 옆으로 약간 간격을 두신 채 내려뜨리고 계시는데, 그분의 두 손은 방바닥을 향하고 그 손바닥들은 사도들을 향하고 있다. 그분의 두 손의 두 상처들은 두 개의 금강석 별들처럼 보이는데, 그것들로부터 대단히 강한 빛살들이 발해진다.
나는 그분의 튜닉이나 그분의 가슴에 가려져 그분의 두 발을 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땅의 것이 아닌 그분의 옷의 섬유로부터 숭고한 상처들이 가려져 있는 곳들에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예수께서는 처음에는 달빛과도 같은 하얀색의 몸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시다가 빛의 후광 밖으로 나와 물질화되시며, 그분의 모발, 두 눈, 피부는 그 자연적인 색깔을 띠게 된다. 요컨대 그것은 예수, 예수-사람-하느님이시다. 그러나 그분께서 부활하신 지금 그분께서는 더 엄숙하게 보이신다.
요한은 그분께서 이미 이렇게 되셨을 때 그분을 뵙는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이 발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요한은 펄쩍 뛰며 동그란 작고 온전한 치즈들이 담긴 큰 접시를 식탁에 떨어뜨리고, 양손으로 식탁 가장자리를 집고 마치 자석에 끌려가기라도 하듯이 식탁 옆으로 약간 몸을 숙이며 작고 억제된 소리로 강렬한 감탄사를 발한다.
“오!”
다른 사람들은 작은 치즈가 담긴 큰 접시가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와 요한이 펄쩍 뛰는 소리에 자기들의 접시에서 고개를 들고 그의 황홀경에 빠진 자세를 놀라움으로 바라보다가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을 바라본다. 그들은 선생님에 대한 그들의 위치에 따라 머리를 돌리거나 몸을 돌려 예수를 본다. 그들 모두는 깊이 감동하고 기뻐하며 일어나 그분께로 달려간다. 그분께서는 더 환하게 웃으시며 그들을 향하여 나아오시는데, 지금은 모든 사람들처럼 바닥을 밟고 걷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처음에는 요한만을 응시하셨고, 그래서 나는 요한이 자기를 어루만지는 시선에 이끌려 돌아섰다고 생각한다. 지금 그분께서는 그들 모두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신다.
“너희에게 평화”
지금은 그들 모두가 그분을 에워싸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있는데, 이들 중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있다. 요한은 그분의 옷자락에 입 맞추기까지 하고, 마치 그가 그분의 옷자락으로 어루만짐을 받으려는 듯이 그것을 자기의 얼굴에 가져다댄다. 더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서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공손한 자세로 몸을 숙이고 있다.
베드로는 더 빨리 오려고 마태오가 먼저 나와서 자기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의 의자를 뛰어 넘는다. 침대의자들이 한꺼번에 두 사람에게 쓰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약간 쑥스러워하며 조금 떨어져 있는 사람은 오로지 토마스뿐이다. 그는 식탁 가까이에 무릎 꿇는다. 그러나 그는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하고, 식탁 모서리 뒤에 숨어 있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두 손에 입맞춤을 받도록 뻗고 계시며―사도들은 거룩하고 다정한 열렬함으로 그 손들을 잡으려고 한다―마치 그분께서 열한 번째 사도를 찾고 계시는 듯 숙인 머리들을 둘러보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사실 맨 처음부터 그를 보셨다. 그런데도 그분께서는 토마스에게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오도록 시간을 주시려고 이렇게 행동하고 계시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믿지 않은 사도가 자기의 믿음의 결여를 부끄러워하며 감히 앞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시고 그를 부르신다.
“토마스야, 이리 오너라.”
토마스는 당황하여 거의 울다시피 하며 고개를 든다. 그러나 그는 감히 나아오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떨어뜨린다.
예수께서는 그를 향하여 몇 걸음 가신 다음 다시 말씀하신다.
“토마스야, 이리 오너라.”
예수의 목소리는 첫 번째보다 더 권위적이다.
그는 마지못하여 겸연쩍어하며 일어나 예수께로 간다.
“자기가 보지 않고는 믿지 않는 사람이 여기 있구나.”
예수께서 외치신다. 그러나 그분의 목소리에는 용서의 미소가 들어 있다.
그는 그것을 느끼고 감히 예수를 쳐다보고는, 그분께서 참으로 미소 짓고 계시는 것을 본다. 그래서 그는 용기를 내 더 빨리 걷는다.
“이리 나에게 가까이 와서 보아라. 만일 네가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네 선생님의 상처들에 네 손가락을 넣어보아라.”
예수께서는 그분의 양손을 밖으로 뻗으신 다음에 그분의 옆구리의 깊은 상처를 드러내시려고 그분의 가슴 위의 튜닉을 벌리셨다. 지금은 상처들에서 빛이 발산되어 나오지 않는다. 그분께서 달빛의 후광에서 나오셔서 보통 사람처럼 걷기 시작하셨을 때부터 더 이상 빛이 나오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상처들은 그것들의 피어린 실제 그대로 나타난다. 그것들은 불규칙적인 두 개의 구멍들인데, 왼쪽구멍은 엄지까지 이르고, 손목과 손바닥을 그 기저에서 꿰뚫고 있으며, 그분의 옆구리 위쪽에는 삿갓처럼 약간 휘어진 길고 깊은 상처가 있다.
토마스는 떨며 그것을 들여다보지만, 만지지는 못한다. 그는 양 입술을 움직이지만 분명히 말할 수는 없다.
“토마스야, 네 손을 나에게 다오.”
예수께서는 아주 친절하게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한 손으로 그 사도의 오른손을 잡고 검지를 잡아 그분의 왼손의 구멍으로 가져다가 그분의 손바닥이 꿰뚫렸다는 것을 그에게 느끼게 하시려고 그것을 구멍 안으로 깊숙이 들여보내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그분의 손에서부터 그분의 옆구리로 그의 손을 가져가신다.
지금 그분께서는 토마스의 네 손가락을 그것들의 기저인 장골(掌骨)까지 함께 잡아 그 큰 네 손가락들을 그분의 옆구리의 깊은 상처에 가져다대시고, 그것들을 그 가장자리에만 대는 데 그치지 않고, 속으로 깊이 들여보내신다. 그분께서는 그의 손을 그대로 잡고 계시면서 토마스를 응시하신다.
그것은 엄하지만, 온화한 눈길이다. 그분께서는 계속 말씀하신다.
“…여기 네 손가락을 넣고, 만일 네가 원한다면, 내 옆구리에 네 손가락들을 넣고, 네 손도 넣어보아라. 그리고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내가 앞서 말한 것을 하시는 동안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토마스는―그가 거의 만지다시피하는 하느님의 심장과의 근접성이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은 것 같다―마침내 말할 수 있게 되어 무릎을 꿇으며 양팔을 들고 뉘우침의 눈물을 쏟아내며 말한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그는 다른 말을 할 줄 모른다.
예수께서는 그를 용서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시고 대답하신다.
“토마스야, 토마스야, 너는 네가 보았기 때문에 지금 믿는구나… 그러나 보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들은 복되다! 만일 내가 보는 것으로 도움 받은 믿음을 가진 너에게 상 주어야 한다면, 보지 않고 믿는 그 사람들에게 나는 무슨 상을 주어야겠느냐?…”
그 다음에 예수께서는 한 팔을 요한의 어깨에 얹으시고, 한 손으로 베드로를 잡으시고 식탁으로 다가가신다. 그분께서 그분의 자리에 앉으신다. 그들은 지금 파스카 저녁에 그들이 앉았던 것처럼 앉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토마스가 요한 다음 자리에 앉기를 원하신다.
“나의 벗들아, 먹어라.”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더 이상 배고프지 않다. 기쁨이 그들을 배부르게 한다. 관상의 기쁨이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식탁에 흩어져 있는 작은 치즈들을 모아 큰 접시에 놓으신 다음에 그것들을 잘라서 나누어주시는데, 그분께서는 첫 번째 조각을 빵 한 조각 위에 얹어 요한의 등 뒤로 토마스에게 주신다.
그분께서는 주전자에서 포도주를 잔에 따라 그분의 친구들에게 주시는데, 이번에는 베드로에게 가장 먼저 주신다. 그 다음에 그분께서는 봉방들을 달라고 하신 다음에 그것들을 잘라 첫 번째 조각을 뚝뚝 떨어지는 황금빛 꿀보다 더 달콤한 미소를 지으시며 요한에게 주신다. 그리고 사도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그분께서도 그 꿀을 약간 드신다. 그분께서는 꿀만을 맛보신다.
요한은 늘 하던 몸짓으로 자기의 머리를 예수의 어깨에 기대고, 그분께서는 그를 끌어당겨 가슴에 안으신다. 그분께서는 요한을 안으신 채 말씀하신다.
“내 벗들아,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나타날 때 너희의 마음이 어지러워지면 안 된다. 나는 항상 너희와 음식과 잠을 나누었고,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너희를 선택한 너희의 선생이다. 지금도 나는 너희를 사랑한다.”
예수께서는 이 마지막 말씀을 크게 힘주어 하신다.
그분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신다.
“너희는 시련들 가운데에서 나와 함께 해왔다… 그래서 너희는 영광 중에서도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고개를 숙이지 마라. 일요일 저녁에 내 부활 후 처음으로 내가 너희에게 왔을 때 나는 너희에게 성령을 불어넣어주었다… 여기 있지 않았던 너에게도 성령께서 오시기를…
성령을 불어넣는 것이 불의 세례와 같다는 것을 너희는 모르느냐?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사랑이시고, 사랑은 죄를 없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죽어가고 있을 때 나를 저버린 너희의 죄는 용서받는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도망치지 않았던 요한의 머리에 입 맞추시자 요한이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나는 죄들을 사하는 권세를 너희에게 주었다. 아무도 자기가 가지지 않은 것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권세를 완전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너희를 위하여 쓰는데, 죄로 더럽혀져서 너희에게 오는 사람들을 깨끗하게 하려면 너희는 최상의 정도로 깨끗해야 한다.
누군가가 단죄 받아 마땅하고, 그 자신이 더럽다면, 그가 어떻게 판단하고 깨끗하게 할 수 있겠느냐? 만일 누군가가 자기의 눈에 들보를 가지고 있고, 자기의 마음에 지옥의 무거운 짐들을 가지고 있다면, 그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겠느냐?
만일 그가 그 자신의 죄들로 인하여 하느님을 모시고 있지 못하다면, 그가 어떻게 ‘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너를 용서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내 벗들아, 사제로서의 너희의 품위에 대하여 숙고해라.
전에는 내가 사람들 가운데에서 판단하고, 용서했다. 지금 나는 아버지께로 갈 것이다. 나는 내 나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판결하는 권세는 나에게서 없어지지 않았다. 반대로 그것은 전적으로 내 손 안에 있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그것을 나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서운 심판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땅 위에서의 속죄의 세월들을 통하여 용서받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것이 행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물질적인 죽음을 통하여 자기의 육체를 쓸모없는 죽을 잔해처럼 남겨둔 채 자기의 영과 함께 나에게로 올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를 첫 번째로 심판할 것이다. 그 다음에 온 인류가 하느님의 명령에 의하여 다시 그 육체로 옷 입고 와서 두 편으로 갈라질 것이다. 어린양들은 목자(the Shepherd)와 함께, 야생 염소들은 그들을 괴롭히는 자와 함께. 그러나 사람들이 세례의 목욕 후에 내 이름으로 용서해줄 사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들의 목자와 함께 있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
그렇기 때문에 나는 사제들을 만든다. 내 피로 구원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내 피는 구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속 죽음 속으로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을 일흔 번, 일곱 번의 일흔 번을 계속하여 내 피로 씻어 그들이 죽음의 먹이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너희와 너희 후계자들은 그 일을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너희의 모든 죄를 사해준다. 왜냐하면 너희는 볼 필요가 있는데, 죄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죄는 영에게서 하느님이신 빛(the Light which is God)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너희는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죄는 사람을 우둔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죄는 영혼에게서 하느님이신 지성(the Intelligence which is God)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깨끗하게 하는 것이 너희의 임무인데, 죄는 더럽힌다. 죄는 영혼에게서 하느님이신 깨끗함(the Purity which is God)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내 이름으로 판단하고 사해주는 너희의 성직은 위대하다!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빵과 포도주(the Bread and Wine)를 축성하고 그것들을 내 몸과 내 피가 되게 할 때 너희는 위대한 일을, 초자연적으로 위대하고 숭고한 일을 할 것이다. 그것을 합당하게 완수하려면, 너희는 깨끗해야 한다. 왜냐하면 너희는 깨끗한 그를 만질 것이고, 하느님의 몸으로 영양을 섭취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마음(heart)과 정신(mind)과 육체와 혀가 깨끗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너희의 마음으로 성체를 사랑해야 할 것이고, 이 천상의 사랑에 불경한 사랑이 섞이지 말아야 할 터인데, 그것은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다.
너희의 정신이 깨끗해야 하는 이유는 너희가 이 사랑의 신비를 믿고 이해해야 할 터인데, 더러운 생각이 믿음과 지성을 죽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지식은 남지만, 하느님의 지혜는 너희 안에서 죽는다.
너희는 육체가 깨끗해야 하는데, 말씀이 사랑의 행위로 마리아의 태중에 내려오신 것처럼 너희의 가슴 속으로 내려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육화한 말씀(the Word Incarnate)을 받아들이는 가슴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살아 있는 모범을 가지고 있다. 그 모범은 나를 잉태하신, 원죄도 없고, 개인적인 죄도 없는 여인이시다.
아직 겨울눈의 베일로 덮여 있는 헤르몬 산의 정상이 얼마나 깨끗한지 보아라. 올리브 산에서 보면, 그것은 수많은 백합 꽃잎들이나, 4월의 바람에 불려 창공을 떠다니는 구름들의 다른 흰 빛을 배경으로 제물처럼 올라오는 바다거품과도 같아 보인다. 지금 향기로운 미소를 머금은 꽃부리를 여는 백합꽃을 보아라.
그러나 이 두 가지 깨끗함도 나를 잉태한 태보다는 덜 밝다. 바람들에 불려온 먼지가 산의 눈과 비단결 같은 꽃에 떨어져 있다. 그 먼지는 가벼워서 사람의 눈은 그것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기 있어 흰 빛을 더럽힌다.
훨씬 더 나아가 왕의 홀을 장식하기 위하여 가장 깨끗한 진주가 생겨난 바다의 조개에서 뜯어낸 그 진주를 살펴보아라. 그것은 깊은 바다의 사파이어 빛 물속에서 고립되어 있는 굴의 진주 빛 공동에서 형성되었으므로 모든 육체의 더럽히는 접촉을 모르는 치밀한 무지갯빛 광채를 내며 완전하다.
그런데도 그것은 나를 잉태했던 태보다는 덜 깨끗하다. 그것의 한가운데에는 한 알의 모래가 있다. 그것은 아주 미세한 미립자이지만, 그래도 역시 땅의 것이다.
그러나 바다의 진주이신 그분께는 죄의 알갱이가 없고, 죄에 대한 추동도 없다. 그분께서는 제2위를 땅에 가져오기 위하여 삼위일체의 대양에서 태어난 진주로서, 땅의 욕정의 씨가 아니라 영원한 사랑의 불티인 그분의 지레받침 주위에서 치밀하게 형성되셨다.
그분 안에서 짝을 발견한 불똥은 하느님의 유성을 낳았고, 그것은 지금 하느님의 자녀들을 자신에게로, 즉 샛별인 나 그리스도에게로 부르고, 끌어당긴다. 나는 이 불가침의 순결을 너희에게 본보기로 준다.
그러나 포도생산자들이 양조 통들에게 하는 것처럼 너희는 내 피의 바다에 너희의 손을 넣어, 죄지은 불쌍한 사람들의 더럽혀진 영대(領帶, stole)들을 깨끗하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을 길어, 불경스럽게 하느님의 피를 흘리거나, 그것을 만지거나, 사랑과 정의를 거스르거나, 그 피를 주기를 거절하거나, 악인들을 그의 성심으로 이끌기 위하여 그들에게 착했고, 그들을 그의 성심으로 이끌기 위하여 그들에게 친절하게 대했고, 약한 사람들을 격려하여 믿도록 하기 위하여 세 배나 친절했었던 그리스도의 엄격함이 아닌 엄격함으로 그것을 주는 더 큰 죄로, 더 나아가 여러 죄들로 너희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도록 깨끗하게 될 뿐 아니라 완전하게 되어라.
그런 엄격함은 세 배로 합당치 않게 사용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뜻, 내 가르침, 내 정의를 거스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우상 목자라면, 그가 어떻게 어린양들에게 엄격할 수 있겠느냐?
내가 시작했고, 시간의 끝까지 추구될 일을 계속하도록 세상의 길들을 따라 내가 보내고 있는 오, 지극히 사랑하는 내 벗들아, 나의 이 말들을 기억해라. 나는 내가 너희를 축성했던 성직으로 너희가 축성할 사람들에게 그것들을 되풀이하게 하기 위하여 말하고 있다.
나는 본다… 나는 미래 시대들을 본다… 존재하게 될 시간과 무수한 사람들의 무리 모두가 내 앞에 있다…
나는 학살들과 전쟁들, 거짓 평화조약들과 소름끼치는 살육들, 증오와 강탈, 관능성과 교만을 본다…
간혹 초록빛 오아시스가 보인다. 십자가로 돌아오는 시기이다. 악의 독이 사람들을 광포하게 만든 다음에 사막의 메마른 모래 가운데 있는 맑은 물을 가리키는 오벨리스크와 같이 사랑으로 내 십자가가 세워질 것이고, 그 주위에는 건강에 좋은 물들의 가장자리들에 심겨진 세상의 평화와 복지의 기간의 종려나무들이 번창할 것이다.
영혼들은 마치 사슴들과 영양들처럼, 제비들과 비둘기들처럼 그들의 고통들을 치유 받고, 다시 한 번 바라기 위하여 유쾌하고, 시원하고, 자양분을 공급해주는 그 피난처로 달려올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폭풍우들과 삼복더위에서 보호해주기 위하여 그 가지들을 돔처럼 오므릴 것이고, 악을 도망치게 만드는 표징으로 뱀들과 짐승들을 얼씬도 못하게 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을 본다… 나는 남자들과… 여자들, 노인들, 어린이들, 전사들, 학자들, 박사들, 농부들을 본다… 그들 모두가 그들의 희망들과 고통들의 짐들을 지고 지나간다.
그리고 나는 많은 사람들이 비틀거리는 것을 본다. 왜냐하면 그들의 고통이 너무 크고 짐이 너무 무겁기에 그들의 희망은 그 짐에서 가장 먼저 흘러내려 땅에 부딪쳐 바스러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많은 사람들이 길가들에 넘어지는 것을 본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힘센 사람들에게 떠밀리기 때문이다. 더 힘이 세거나, 그들의 짐들이 더 가볍기 때문에 더 운이 좋은 사람들이 말이다. 그리고 나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심지어 짓밟히기까지 하고, 그래서 자기들이 죽어간다고 느끼며, 미워하고 저주하기에 이르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불쌍한 자녀들! 삶에 얻어맞으며 지나가거나 넘어지는 이 모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내 사랑은 의도적으로 동정하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착한 의사들을 밤중에 밝혀주는 빛과 침묵 속의 목소리들로 퍼뜨려, 넘어지는 약한 사람들이 도움을 발견하고, 다시 한 번 그들이 빛(Light)을 보고, ‘바라라. 너는 혼자가 아니다. 네 위에는 하느님께서 계신다. 예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한다. 나는 의도적으로 이 능동적인 사랑들을 배치했다. 그리하여 내 불쌍한 자녀들이 그들의 아버지의 집을 잃고, 그들의 영혼들 안에서 죽지 않도록, 그들이 내 사목자들 안에서 내 반영을 봄으로써 사랑인 나를 계속 믿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골고타 위에서 내 심장이 열렸을 때와 같이 내 심장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내리게 하는 오, 고통이여! 그런데 하느님인 내 눈들은 무엇을 보느냐? 혹시 지나가는 무수한 군중들 가운데 사제들이 없느냐? 그래서 내 심장이 피 흘리고 있느냐? 신학교들이 비어 있느냐? 그래서 하느님인 나의 초대가 더 이상 마음들 안에서 울리지 않는단 말이냐? 사람의 마음이 더 이상 그것을 들을 수 없느냐?
아니다. 시대들이 흐르는 동안에 신학교들이 있을 것이고, 그 안에 레위인들이 있을 것이다. 사제들(priests)은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내 초대는 청소년기에 많은 마음들 안에서 천상의 목소리로 울려 퍼질 것이고, 그들은 그것을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다른, 다른 목소리들이 나중에, 그들의 청년기와 장년기에 들려올 것이고, 내 목소리는 그들의 마음들 안에서 압도될 것이다. 시대들이 흐르는 동안에 그 사목자들에게, 그들이 항상 지금 너희와 같은 사람들로, 즉 그리스도의 학교의 사도들로 있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말하는 내 목소리가 말이다.
시제복은 남아 있지만, 사제는 죽었다. 이것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날 것이다. 쓸모없는 어두운 그림자들처럼 그들은 들어 올리는 지렛대, 끌어당기는 밧줄,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샘, 그들의 허기를 만족시켜주는 낟알, 베개가 되어주는 가슴, 어둠 속의 빛, 선생님(the Master)이 그에게 말하는 것을 되풀이하는 목소리가 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불쌍한 인류에게 추문의 짐이 되고, 죽음의 무거운 짐이 되고, 기생충, 부패가 될 것이다… 소름끼치는 일이다! 다시 한 번, 항상 나는 내 사제들 안에서 가장 큰 유다들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내 벗들아, 나는 내 영광 안에 있다. 그런데도 나는 울고 있다. 나는 이 무수한 무리들을, 목자들이 없거나 너무 적은 목자들을 가진 양떼들을 불쌍히 여긴다. 나는 무한히 동정한다! 좋다, 내가 내 천주성을 두고 맹세하는데, 나는 이 일을 위하여 선택된 사람들이 주기를 원치 않는 빵, 물, 빛, 목소리를 그들에게 줄 것이다.
나는 미래의 시대들에도 빵조각들과 물고기의 기적을 되풀이하겠다. 나는 보잘것없는 작은 물고기 몇 마리와 빵 몇 조각들로, 즉 보잘것없는 평신도의 영혼들로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줄 것이고, 그래서 그들은 배불리 먹을 것이며, 미래의 사람들에게도 음식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이 죽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기에 합당한 사람들은 복되다. 그들이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랑과 희생으로 그 자격을 얻을 것이기 때문에 복되다. 그리고 사도들로 남아 있을 사제들은 지극히 복되다. 내 불쌍한 자녀들에게 빵, 물, 빛, 목소리, 휴식, 약이 될 사제들은 말이다. 그들은 하늘나라에서 특별한 빛으로 빛날 것이다. 진리인 내가 너희에게 맹세한다.
내 벗들아, 일어나자. 내가 다시 너희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터이니 나와 함께 가자. 기도는 사도의 기운을 길러주는 양식은 기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를 하느님과 혼합해주기(blend)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여기서 일어나 작은 계단으로 가신다.
그러나 그분께서 바닥에 이르시자 그분께서는 돌아서서 저를 바라보십니다. 오! 신부님! 그분께서 저를 바라보십니다! 그분께서는 저를 생각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작은 ‘목소리’를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분의 벗들과 함께 계시는 기쁨 가운데서도 저를 잊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는 사도들의 머리 위로 저를 바라보시며 저에게 미소 지으십니다. 그분께서는 한 손을 들어 저를 축복하시며 말씀하십니다.
“평화가 너와 함께 있기를.”
이렇게 환상이 끝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