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정(宮廷)문학 「인현왕비 만사(仁顯王妃挽詞)」 왕후의 죽음을 애도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조선시대 궁정문학(宮廷文學)의 백미 「인현왕비 만사(仁顯王妃挽詞)」는 조선후기 문신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이다. 이 만사(挽詞)는 1701년, 당시 김진규는 정3품 당상관 대사성(大司成)을 역임하고 있을 때 왕후의 국상(國喪)을 맞아,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인현왕후(仁顯王妃)를 애도하며 지은 오언율시(五言律詩) 4수다. 인현왕후의 폐위와 복위, 그리고 성덕(聖德)을 기리며 신하이자 친척으로서의 깊은 슬픔을 담고 있다. 저자 김진규는 1680년 향년 20세(만 19세)로 승하한 숙종 정비 인경왕후(仁敬王后)의 작은 오빠이자, 인현왕후와 친척이다.
*내용인즉, 제1수에선, 왕비를 '달(月)'에 비유하여 그녀의 죽음과 천지의 슬픈 이치를 노래했다. 제2수에선, 왕후의 고결한 성품과 폐위를 당한 고난을 견뎌낸 덕을 칭송했다. 제3수에선, 국장(國葬)의 풍경과 먼저 떠난 충신들을 언급하며 그들의 영혼을 애도했다. 제4수에선, 왕후가 묻힌 장지에서 통곡하며 개인적인 슬픔을 극대화하여 표현했다.
*김진규의 「인현왕비 만사(仁顯王妃挽詞)」는 한 문장 한 문장이 고사(시경, 춘추시대 고사 등)와 당대 정치적 실재(환국, 3충신의 죽음, 서오릉의 지형)를 촘촘하게 엮어낸 조선후기 궁정문학의 백미다. 억울한 삶을 살다 간 인현왕후를 '달'이라는 우주적 존재로 승화시킴으로써, 그녀의 명예를 역사에 영원히 각인시키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덧붙여 이 글은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죽천집(竹泉集) 권4(卷之四) 시(詩)편에 실려있으며, 그의 약력(프로필)은 앞서 소개한 바가 있어 생략한다.
● 「인현왕비 만사(仁顯王妃挽詞)」 4수(首)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다음 김진규의 「인현왕비 만사(仁顯王妃挽詞)」는 ‘庚’, ‘侵’, ‘陽’, ‘前’ 운목(韻目)의 오언율시(五言律詩) 측기식 4수(首)를 연이어서 완성한, 서사구조의 궁정문학(宮廷文學)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슬픔의 기록을 넘어, 숙종 대의 가장 격렬했던 정치적 격변(기사환국과 갑술환국)을 온몸으로 겪어낸 한 여성의 일생을 '천지의 이치'와 '왕실의 의리'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조명한 명작이다.
○ 먼저 ‘작품의 창작 배경과 인현왕후의 폐위와 복위, 그리고 이른 죽음에 이르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겠다. 인현왕후(1667~1701)는 숙종의 정비 인경왕후가 이른 나이에 사망하자, 1681년 그 뒤를 이어 계비로 책봉되었다. 이후 1689년 기사환국으로 폐위되어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었다가, 5년 후 1694년 갑술환국으로 극적으로 중전의 자리에 복위되었다. 그러나 복위된 지 불과 7년 만인 1701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시는 이때 그녀의 국장(國葬) 기간에 지어진 애도 시다.
그리고 작가 김진규(金鎮圭)는 서인의 영수였던 김만기(金萬基)의 아들이자, 숙종의 첫 번째 왕비(1674년 왕비가 됨) 인경왕후의 작은오빠이다. 인경왕후는 1680년 향년 20세로 승하했다. 김진규는 숙종의 처남이자 인현왕후(仁顯王妃)와는 친인척 관계(외가 쪽 혈연)였다. 인현왕후와는 정치적 동지이자 서인 가문의 일원으로서 인현왕후의 고난을 곁에서 지켜보았기에, 그의 만사에는 단순한 신하의 충성을 넘어선 피붙이로서의 비장함과 분노가 서려 있다.
○ 다음은 각 수(首)별로 내용을 분석해 보겠다. 먼저 제1수에선, 천체(天體)의 운행으로 본 복위의 정당성을 언급하며 시작했다. "우주의 순리를 통해 왕후의 무고함과 비극을 증명하다" 특히 동양에서 해(日)는 왕을, 달(月)은 왕비를 상징함을 내세웠다. '여수(은하수)'를 오르는 달의 수레는 인현왕후가 중전의 자리에 올라, 온 궁궐을 현숙하게 다스렸던 전성기를 의미한다. '부운(뜬구름)'은 간신배나 은혜를 가리는 세력, 즉 장희빈과 남인 세력을 뜻하고 구름이 일시적으로 달을 가릴 순 있어도 태양(숙종)이 다시 밝아오면서 달도 본연의 빛을 되찾았다면서, 갑술환국을 통한 중전의 복위를 문학적으로 은유했다. 이어 왕후가 폐위되었던 것은 그녀의 덕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하늘의 운수가 차고 기우는 과정에서 겪은 시련일 뿐이라며 왕후의 무죄함을 강력하게 옹호했다. 제2수에선, "고난 속에서 증명된 옥(玉) 같은 절개"라며 인내의 시간과 성덕(聖德)의 찬양을 했다. '규목(樛木)'은 《시경(詩經)》 주남(周南) 편에 나오는 말로, 덩굴이 감겨 올라가는 큰 나무를 뜻하며 질투하지 않고 후궁들을 포용하는 왕비의 덕성을 상징한다. 그런 태평성대를 이끌던 아름다운 꽃(인현왕후)이 이제 다시 세상에 올 수 없음을 탄식했다. 5년간의 폐위 생활이라는 '어렵고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왕후의 군자 같은 성품이 더욱 빛났고, 그녀가 복위된 것은 결국 정의를 편드는 '하늘의 마음(天心)'이 드러난 결과라고 평했다. 그리곤 인현왕후는 평소 매우 검소하고 자애롭기로 유명하다면서, 작가는 그 자잘한 미담들을 일일이 읊는 것조차 왕후의 거대한 성덕에 비하면 너무 사소하여 다 말할 수 없다고 극찬했다. 제3수에선, "죽어서도 왕후를 지키는 충신들을 향한 헌사" 한다며 장례의 비장함과 충신들의 영혼을 위로했다. 수의로 쓰인 '옥의'는 살아생전의 화려한 예복(상복)이 아니며, 한때 사랑받던 공간(금옥)을 떠나 차가운 지하 무덤으로 들어가는 하관의 쓸쓸함을 시각적으로 대비했다. 이어 이 시의 역사적 핵심어인 '삼충(三忠)'이 등장한다. 이는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국문을 당해 죽거나 유배지에서 숨진 서인의 세 충신, 즉 박태보(朴泰輔), 오도일(吳道一), 이세화(李世華) 등을 지칭한다. 이에 춘추시대 진(秦)나라 무공이 죽을 때 자차(子車) 씨의 세 현인이 억지로 '순장' 당했던 비극과 달리, 조선의 삼충은 왕후의 의로움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쳐 영혼이 되어서도 왕후의 상여 뒤를 지키고 있다며 그들의 고결함을 찬양했다. 제4수에선, "땅이 갈라지는 슬픔, 외척으로서 바치는 눈물"이라며 능침(陵寢) 앞에서의 통곡과 개인적 슬픔을 드러낸다. 고양시 '앵봉산(鸎峯)'은 서오릉이 위치한 작은 산이다. 인현왕후가 묻힌 명릉(明陵)의 가파른 기슭에 무덤을 지키는 돌사람과 돌짐승(석물)이 배치된 국장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왕후의 죽음은 대지가 쪼개지는 듯한 충격이며, 작가는 하늘을 원망하듯 "왜 이토록 어진 이를 일찍 데려가느냐"고 부르짖는다. 이어 '폐부(肺腑)'는 왕실과 긴밀한 친인척 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작가 김진규는 자신이 비록 보잘것없으나 왕후와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다. 그리곤 앞서 누이(인경왕후)를 잃었던 그가 이제 또다시 인현왕후의 상여 앞에서 통곡하는 개인의 비극적 심경으로 시를 마무리했다.
**「인현왕비 만사(仁顯王妃挽詞)」** 4수(首)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제1수 달의 몰락과 복위, 그리고 서거
月御升驪水 달의 수레가 은하수(驪水)로 오르니
揚輝滿紫淸 그 날린 빛이 대궐(紫淸)에 가득했네.
浮雲寧蔽影 뜬구름(간신배)이 어찌 그 그림자를 가리겠는가
白日與生明 태양과 함께 다시 밝아졌거늘.(복위를 의미)
陰道非虧蝕 여자의 도리(왕후의 덕)에 이지러짐이 있었던 게 아니라
天時有缺盈 천시(하늘의 운수)에 차고 기묾이 있었을 뿐이네.
千秋佇幷曜 천 년 동안 해와 달이 함께 빛나길 기다렸는데
半夜遽淪精 한밤중에 갑자기 그 정기(王后)가 가라앉고 말았구나.
*제2수(又) 고결한 덕성과 시련 극복
樛木猶平世 아랫사람을 보듬어(樛木) 평화로운 세상이었는데
瑤華未重臨 아름다운 꽃(왕후)이 다시 오지 못하게 되었네.
艱危彰玉度 어렵고 위태로운 가운데서 옥 같은 절개가 드러났고
光復驗天心 다시 왕후의 자리를 되찾은 것에서 하늘의 뜻을 징험했네.
淸廟初鳴佩 종묘에서 막 패옥 소리를 울리셨고
中闈更友琴 중궁전에서 다시 (왕과) 거문고를 타듯 화목하셨는데.
尋常慈儉事 평소의 자애롭고 검소하셨던 일들은 (덕이 너무 커서)
何足詠于今 지금 새삼스레 시로 읊기조차 부족하구나.
*제3수(又) 상여의 출발과 애도
蜃衛鷄鳴發 상여의 호위대가 닭 울 때 출발하니
朝班儼旣昌 조정 신하들의 반열이 엄숙하고도 번창하네.
玉衣非象服 (돌아가시어 입은) 옥의는 생전의 화려한 예복이 아니요
金屋落玄堂 황금 같은 방을 떠나 깊은 무덤(현당)으로 내려가시네.
同穴期千歲 훗날 왕과 한 무덤에 묻히기를 천 년 동안 기약하니
銘幽爛十行 무덤 속에 묻는 묘지명 열 줄이 선명하게 빛나네.
三忠魂影從 (왕후를 지키려다 죽은)세 충신의 혼령이 그림자처럼 따르니
不比子車良 (억지로 순장된) 옛 진나라 자차(子車) 씨의 세 현인과는 비교할 수 없이 의롭구나.
*제4수(又) 앵봉산 묘역에서의 통곡
嵽嵲鸎峯麓 높고 가파른 앵봉산(鸎峯山) 기슭에
東西象設聯 동쪽과 서쪽으로 석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네.
頻驚坼厚地 두터운 땅이 갈라지는 듯한 슬픔에 자주 놀라며
直欲問高天 곧장 높은 하늘을 향해 (왜 이리 빨리 데려갔는지)묻고만 싶구나.
薄海嗟何恃 온 세상이 이제 누구를 의지할지 탄식하는데
徽音只並傳 왕후의 아름다운 명성(徽音)만 역사에 나란히 전해지네.
微踪同肺腑 보잘것없는 이 몸도 외가 친척(폐부)이기에
又哭翟車前 또다시 왕후의 상여(翟車) 앞에서 통곡하노라.
[주1] 규목(樛木) : 가지가 아래로 늘어진 나무. 아래로 휘어 자란 큰 나무처럼
[주2] 자차(子車) : 중국 춘추시대 진(秦)나라의 유력한 씨족(가문) 이름이다. 진 목공(秦穆公)이 기원전 621년에 사망했을 때, 177명에 달하는 사람이 순장될 때, 자차씨 가문의 뛰어난 삼형제인 자차엄식(子車奄息), 자차중행(子車仲行), 자차침호(子車鍼虎)가 함께 순장당했다.
[주3] 앵봉산(鸎峯山) : 인현왕후의 묘지가 있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334-32. 높이 235m 산. 조선 숙종의 묘도 있음.
[주4] 적차(翟車) : 황후(皇后)가 타는 수레. 여기서는 상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