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은 우리이게 너무나 익숙하다. 비타민 C, 비타민 D, 비타민 B12처럼 이름도 다양하고, 건강을 위해 비타민을 챙겨 먹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비타민(vitamin)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비타민은 건강을 유지하고 특정 결핍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음식으로 섭취해야 하는 물질이다. 우리 몸에서 충분히 합성할 수 없기 때문에 식사를 통해 공급해야 한다. 비타민의 역사는 뜻밖에도 흰쌀밥과 ‘각기병’에서 시작된다.
흰쌀밥이 만든 새로운 질병
19세기 후반 아시아에서 기계식 정미소가 등장하면서 쌀을 빠르게 도정할 수 있게 되었다. 도정 과정에서 쌀의 겉껍질과 쌀겨 등을 제거하면 윤기 있고 하얀 쌀이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당시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각기병(beriberi)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각기병은 근육이 점차 약해지고, 체중이 감소하며, 심장 기능에도 이상이 생기는 질환이다.
'beriberi'라는 말은 스리랑카의 토착어로 '약함'을 의미한다.
일본 해군에서 발견된 이상한 차이
1878~1883년 일본 해군의 의무장교였던 다카키 가네히로는 해군 병사들에게 각기병이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한 군함에서 주로 흰쌀밥을 먹던 276명 가운데 무려 169명이 각기병에 걸렸고 25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다른 군함에서는 각기병 환자가 14명에 불과했고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두 군함의 식단에는 차이가 있었다. 각기병이 적었던 군함의 병사들은 고기와 우유, 채소 등을 더 많이 먹었다.
다카키는 여기서 단백질이 각기병을 예방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결론은 잘못된 것이었다.
닭이 찾아낸 단서
약 15년 뒤, 네덜란드 의사 크리스티안 에이크만이 각기병 연구를 위해 당시 네덜란드령 동인도에 파견되었다. 그는 실험실에서 닭을 키우며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다.
닭에게 군인용 식량으로 쓰고 남은 쌀을 먹이자 사람의 각기병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어느 날 새로 온 요리사가 군인용 쌀을 민간용 닭에게 먹이지 않고, 다른 곳에서 쌀을 구해 먹이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닭의 증상이 사라졌다. 무엇이 달랐을까?
군인용 쌀은 도정된 흰쌀이었고, 새로 구입한 쌀은 겉껍질과 쌀겨가 남아 있는 쌀이었다.
에이크만은 도정 과정에서 쌀의 겉부분에 들어 있던 어떤 성분이 제거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것을 '항(抗)각기병 인자'라고 불렀다.
'비타민'이라는 개념의 탄생
미국인 생화학자 카지미르 풍크는 에이크만이 찾아낸 항각기병 인자가 쌀겨와 쌀의 겉부분에 존재한다고 생각했고, 쌀겨에서 물로 추출한 물질이 실제로 각기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훗날 이 활성 물질의 정체는 티아민(thiamine), 즉 비타민 B1으로 밝혀진다.
티아민은 곡물의 도정 과정에서 대부분 제거된다. 그래서 오늘날 일부 밀가루와 곡물 제품에는 티아민을 비롯한 비타민을 다시 첨가하는 강화(fortification)가 이루어진다.
풍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각기병뿐만 아니라 괴혈병, 펠라그라, 구루병과 같은 질병도 음식 속 특정 영양소가 부족해서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이러한 물질을 'vitamine'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vita'는 라틴어로 '생명'을 뜻하고, 'amine'은 화학물질 '아민'을 의미한다. 처음 발견한 물질이 실제로 아민이었기 때문에 'vitamine'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모든 필수 영양소가 아민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끝의 e가 빠져 'vitamin'이 되었다.
비타민 B1에서 시작된 비타민 이름
1913년에 미국의 엘머 맥컬럼과 마거리트 데이비스가 또 하나의 중요한 발견을 했다.
그들은 지방 공급원으로 라드(돼지기름)만 먹인 쥐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눈에도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버터 지방이나 달걀노른자의 특정 추출물을 먹이자 쥐의 성장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고 눈의 문제도 개선되었다. 맥컬럼은 이 물질을 지용성 인자 A라고 불렀다.
반면 풍크가 각기병 치료에 사용했던 물질은 수용성 인자 B라고 부르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후 수용성 B 인자가 사실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여러 화합물의 혼합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B1, B2, B3와 같이 번호를 붙이게 되었다. 그중 각기병을 예방하는 물질이 바로 비타민 B1, 티아민이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B군 비타민의 이름도 이러한 역사적 과정에서 생겨났다.
왜 비타민 C, D, E, K일까?
이후 새로운 비타민들이 발견되면서 C, D, E 등의 이름이 차례로 붙었다. 비타민 K는 조금 특별하다.
덴마크의 생화학자 헨리크 담은 이 물질이 혈액 응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Koagulations Vitamin', 즉 '응고 비타민'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그래서 영어 알파벳 순서가 아니라 독일어·덴마크어 계열의 'Koagulation'에서 따온 K가 붙었다.
새로운 비타민이 발견될 가능성은?
그렇다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비타민이 있을까?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 중요한 근거 가운데 하나가 총정맥영양(TPN, total parenteral nutrition)이다. 환자가 음식물을 입으로 먹을 수 없을 때 정맥을 통해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인데, 현재까지 알려진 필수 비타민을 함유한 영양액으로 장기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이는 인간에게 필요한 필수 비타민의 목록이 상당히 완성되어 있다는 중요한 간접 증거이다.
가짜 비타민
비타민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를 이용한 과장 광고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비타민 B17'이다. 살구씨 등에서 추출한 아미그달린(amygdalin)을 비타민 B17이라고 부르면서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제품들이 있었다. 하지만 비타민 B17이라는 비타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타민 O'라는 이름으로 판매된 제품도 있다. 이 제품은 '안정화된 산소'를 함유해 혈액의 산소 농도를 높여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의학적으로 인정된 비타민이 아니다.
비타민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비타민의 역사는 단순히 영양학의 역사가 아니다.
'음식에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생명 유지 물질이 들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어떻게 과학적 개념으로 발전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하얗고 깨끗해 보이는 흰쌀이 오히려 각기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닭에게 먹인 쌀의 차이에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한 일, 그리고 쌀겨에서 추출한 작은 물질이 결국 비타민 B1이라는 새로운 영양소의 발견으로 이어진 일.
이 모든 과정이 오늘날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비타민'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결론
비타민의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건강에 필요한 것을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에 필요한 것을 제대로 먹는 것'이다.
이름에 '비타민'이라는 말이 붙었다고 해서 모두 진짜 비타민인 것은 아니다. 과학에서 중요한 것은 이름이나 광고가 아니라 그 물질이 실제로 무엇이며, 어떤 효과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는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