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지식의 원전 10. 산소를 발견한 생쥐 두 마리 조지프 프리스틀리
(참고 사항) 파란 글씨는 편저자가 쓴 글이고, 아래 검정 글씨는 원저자의 글이다.
조지프 프리스틀리(1733~1804)는 유니테리안 종파의 목사이자 교사였다. 미국의 독립운동과 프랑스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거의 모든 문제에서 이단적인 입장에 서려는 경향’이 있음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그가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런던에서 있었던 벤저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과의 만남이었다. 그 만남이 있은 후, 그는 자기 집이 있는 리즈에서 술을 발효시켜 나오는 에어air(‘가스’의 의미)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에어’는 이산화탄소였는데, 프리스틀리는 이 ‘에어’를 물에 녹여 탄산수를 발명하였고, 이 업적으로 1773년 왕립학회에서 메달을 받았다.
이후, 그는 다양한 물질을 태울 때 나오는 ‘에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를 연구하기 위해 수은을 채운 통 위에 유리 용기를 뒤집어 놓아 가스를 포집할 수 있는 기구를 고안하기도 하였다. 태울 물질은 수은 위의 다른 용기에 넣은 뒤 12인치 렌즈로 태양 빛을 모아 가열했다. 이 기구의 상세한 설명은 1775년에 출판된 그의 책 『여러 종류의 에어에 관한 실험과 관찰Experiments and Observations On Different Kinds of Air』에 수록되어 있다.
프리스틀리는 포집한 가스를 실험하기 위해 생쥐를 잡아서 그 가스 용기에 넣곤 했다. 유해한 가스일 가능성에 대비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권고하고 있다.
‘만약 생쥐를 다른 실험에도 계속 이용할 생각이라면, 쥐의 꼬리를 잡고 있는 게 좋다. 생쥐가 그 가스 용기 속에서 괴로워하면 바로 빼낼 수 있도록…….’
다음의 발췌문에서 그는 붉은 산화수은(프리스틀리는 이것을 메르쿠리우스 칼키나투스 페르 세mercurius calcinatus per se라고 쓰고 있다)을 가열하여 얻은 무색의 가스 속에서는 촛불이 매우 밝은 불꽃을 내면서 탄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부분의 18세기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프리스틀리도 모든 타는 물질은 플로지스톤phlogiston이라고 부르는 원소를 가지고 있다고 믿었으며, 이 원소는 물질이 탈 때 공기 중으로 방출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어떤 물질이 타고 난 후 공기 속에는 플로지스톤이 가득 차 있어 더 이상 다른 물질이 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프리스틀리는 이 가스를 ‘디플로지스티케이티드 에어dephlogisticated air’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산소였다.
이 섹션의 내용은 매우 충격적인 사실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이 내용을 발표한 바 있지만, 아직도 상당한 학문적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내용은 우리가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 좀 더 학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의 관찰에 관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섹션에서 설명하려는 실험을 시작할 때, 새로운 발견을 추구할 만한 어떤 가설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 실험 결과들이 믿어지지 않았지만, 매우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나의 관찰 결과들을 확인하면서 마침내 중요한 사실들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프리스틀리는 가스를 포집하기 위한 예의 수은 통 기구를 설명한다.
이 기구를 가지고 여러 실험을 한 뒤, 1774년 8월 1일 붉은 산화수은으로부터 ‘에어’를 추출하기 위한 실험을 했다. 렌즈를 이용하여 산화수은을 가열하자 ‘에어’가 쉽게 방출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사용한 산화수은은 부피의 3,4배 정도 되는 ‘에어’를 모은 뒤, 그 용기 속에 물을 넣어 녹여 보았지만, 이 ‘에어’는 물에 잘 녹지 않았다. 그러나 엄청 놀라웠던 사실은 용기 속에 촛불을 넣으면 격렬한 불꽃을 내며 탄다는 것이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 내가 무슨 의도로 그 속에 촛불을 넣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대단한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종류의 실험에서 어느 정도의 여건만 마련되어 있으면 나는 특별한 동기 없이도 이런 시도를 하곤 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일을 위해 준비한 촛불이 그 자리에 없었더라면 나는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따라서 이 ‘에어’를 가지고 더 이상의 실험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략) 이 경우도 마찬가지로 별생각 없이 시도한 것이었지만, 이 ‘에어’ 속에서 촛불의 불꽃은 크고 밝은 불빛과 열을 내면서 격렬하게 타고, (중략) 적열(赤熱)하는 나무 조각은 질산에 담근 종이처럼 격렬히 반응하면서 빠른 속도로 타들어 가는 것이었다.
그달(1775년 3월) 여드레, 나는 생쥐를 잡아 붉은 산화수은으로부터 얻은 2온스 정도의 ‘에어’ 용기에 넣어보았다. 이 ‘에어’가 보통의 공기라면 다 자란 이 생쥐는 약 15분쯤 살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생쥐는 거의 30분 동안이나 살아 있었고 꺼낼 때는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얼어 있었을 뿐이다. 불을 쬐어주니 생쥐는 다시 살아났고, 이 실험으로 인해 어떤 해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 실험의 결과, 나는 붉은 산화수은으로부터 얻은 ‘에어’는 적어도 보통의 공기만큼 유익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보통의 공기보다 더 좋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어떤 생쥐가 이만한 양의 공기 속에서 15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해서 또 다른 생쥐가 그 속에서 30분 이상을 사는 일이 전혀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방법으로 ‘에어’가 유익한 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를 조사하는 것은 별로 정밀한 것이 아니다.
또 다른 생쥐를 잡아 2온스보다 약간 적은 ‘에어’ 용기 속에 넣었더니 이번에는 45분이나 살아 있었다. 용기를 따뜻하게 유지하는 데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 생쥐는 얼어 죽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위의 결론을 내리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생쥐가 동일한 양의 보통 공기에서보다 최대 3배나 오래 살아 있었고, 이 방법으로는 더 이상의 정밀한 실험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이 살고 있으면서도 환기를 잘할 수 없는 방의 나쁜 공기를 순수한 이 ‘에어’를 이용하여 개선한다면, 불편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이 매우 쾌적하고 위생적인 환경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에어’를 통에 담아 그 방에 공급할 수도 있고, 아예 ‘에어’를 생산할 수 있는 방을 만들어 직접 불어넣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에어’는 아주 싼값에 만들 수 있으므로 조금만 머리를 쓰면 여러 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이 ‘에어’ 속에서 촛불이 격렬하게 타는 것으로 볼 때 이런 생각도 해볼 수 있다. 보통의 공기로는 허파 속에서 플로지스틱한 유해 성분을 충분히 빠른 속도로 제거할 수 없는 질병에 이 ‘에어’가 매우 좋은 치료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수한 ‘디플로지스티케이티드 에어’가 치료용 약으로는 유용할지 몰라도 건강한 상태의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보통의 공기보다 이 ‘에어’ 속에서 촛불이 빨리 타는 걸 보면, 이 ‘에어’ 속의 사람이나 동물도 훨씬 빨리 힘이 쇠잔해지고 노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쥐를 이용한 실험이나 다른 실험을 통해 ‘디플로지스티케이티드 에어’가 유익한 ‘에어’라는 확신이 섰으므로 이번에는 직접 맛을 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숨을 쉬거나 유리 사이펀을 통해 빨아들이는 등의 여러 방법으로 커다란 항아리의 ‘에어’를 모두 들이마셨다. 허파가 느끼는 감각은 보통의 공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내 가슴이 아주 가벼워지면서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은 어느 누구도 이 ‘에어’가 귀족들의 기호 상품이 될 거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까지는 나와 두 마리의 생쥐만이 이 ‘에어’를 맛보는 특권을 누렸다.
그해 10월 훌륭한 화학자들이 많이 있는 파리에서 라부아지에 씨와 르 로이 씨, 그리고 그 밖의 학자들과 이 ‘에어’에 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감히 말하건대 그들 모두 큰 관심을 보여주었고, 이 실험의 내용도 잘 이해하였다.
위대한 프랑스 화학자인 앙투안 로랑 라부아지에Antoin-Laurent Lavoisier(1743~1794)는 프리스틀리의 ‘에어’가 가지고 있는 이론적 의미를 간파하고 있었다. 라부아지에는 1772년 자기가 ‘화학과 물리학의 혁명을 일으키고 있다’고 선언한 화학자이다. 이전의 과학자들과는 달리 그는 보통의 공기가 원소가 아니라 몇 가지 가스의 혼합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프리스틀리가 발견한 것은 그가 찾고 있었던 공기 중의 활동성 가스라고 생각했다. 그는 모든 산에 이 가스가 들어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이 가스를oxygen(그리스어로 ‘산(酸)을 만드는 물질’이라는 뜻)이라고 불렀다. 1783년 그는 새로운 화학 이론을 발표하였으며, 그의 부인은 이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기념하는 뜻에서 플로지스톤 이론의 화학 서적들을 불사르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정 시대의 세금 관리였던 라부아지에는 프랑스 혁명 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