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부터 24일지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중국에 특사로 파견한 김정은 제1비서의 속셈은 무엇일까?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은 25일 이번 방중으로 북핵문제가 대화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은 시기상조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번 특사 방중과 관련한 중국 및 북한 언론의 보도 차이, 북한 특사단에 대한 중국의 의전 과정, 양측의 발언내용 등을 꼼꼼히 비교해가며, 6자회담에 대한 양국의 온도차를 확인하고 북중관계가 어딘가 삐걱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에 북한이 복귀할 것을 강력하게 원하는 반면, 북한은 이번 방중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중국에 전달하는 한편 6월 초 미중 정상회담 등에 대한 중국 측의 속내를 탐색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또한 발언 내용으로 보아 북한은 대화 복귀를 원한다기보다는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협상 참여, 또는 핵개발 등 기존 노선 견지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 총장은 중국 측이 북한 측 특사를 홀대하는 방법으로 북한의 대외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우리 정부나 미국 정부가 바라는 대로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편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선 원부자재 반출로 회담 의제를 좁힐 것이 아니라 개성공단 정상화 등 '보다 폭넓은 대화 제의'를 할 것을 주문했다. 그래야 북한이 회담에 응할 수 있다는 점, 나아가 입주기업이 원하는 것은 사실상 공단 폐쇄로 이어질 수 있는 원부자재 반출이 아니라 공단의 정상화라는 점을 지적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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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
프레시안 : 김정은 제1비서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24일 시진핑
주석을 만나 "6자회담을 포함한 각종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얘기를 하고,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음 달에 있을 미중·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핵 문제와 관련된 뭔가 진전된 입장이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었는데요. 앞으로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올 수 있다는 신호로 봐도 될까요? 어떻게 보십니까?
정세현 : 이번에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김정은 비서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것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그 시점입니다. 6월 7~8일에 있을 미중 정상회담이 보름 정도 남은 시점에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북한에서는 최룡해 국장이 중국으로 떠나고 중국에 도착하는 과정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것은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서둘러 특사를 보냈다는 뜻입니다. 이 시기에 북한이 특사를 보냈다는 것은 중국이 미중정상회담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해주거나, 자신들이 미국에 기대하는 바를 중국이 끌어내주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이번 특사 방북에 대한 북한과 중국의 보도 흐름에서 양국의 온도차가 감지됐습니다. 북한이 방중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보도하면서 마치 큰 성과가 나올 것처럼 전망하다가 후반부에는 비교적 잠잠해졌어요. 특히 6자회담과 관련된 내용을 중국은 보도했는데 북한은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북한 입장에서 뭔가 큰 성과를 기대하고 갔는데 성과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이 방중에 대해 용두사미식 보도를 했다면 중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교적 쿨하고 일관되게 보도했습니다. 특히 북한은 베이징에서는 6자회담을 언급했는데, <조선
중앙통신> 보도에서는 그 얘기를 빼버렸습니다. 이런 걸 종합해볼 때 최근 북중관계가 상당히 냉각된 걸로 보입니다.
또 하나
유심히 봤던 건 의전 절차입니다.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중국에 가서 한마디로 박대를 받았어요. 특사로 갔는데도 불구하고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바로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진이 발생한 쓰촨(四川)성 루산(蘆山)
지역에 다녀오느라고 베이징을 비웠다고는 하지만, 만약 최근 북한의 행보가 중국의 바람과 일치했었다면 쓰촨성 방문 일정을 조절해서라도 일찍 만났겠죠. 중국 입장에서 북한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속내를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할 건 중국이 미국 정부나 우리 정부가 바라는 대로 북한을 내치기 위해 그런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부 우리 언론이 과장해서 보도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중국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지향하는 국가발전목표와 관련해서 북한이
도움이 안 되는 짓들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미국이나 우리 정부가 바라는 것처럼 북을 압박하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라고 봅니다.
또 하나, 최룡해 국장이 도착하기 전날 시진핑 주석이 쓰촨성으로 떠났다가 23일 저녁에 돌아왔다고 하는데, 24일 오후까지도 접견예정
통보를 해주지 않았다는 거예요. 북한 측 일행은 조어대에서 마냥 기다린 거죠. 오후 5시쯤
비행기를 띄우려고 했다가 갑자기 연락이 와서 부랴부랴 준비해 만나고 8시 반에 고려
항공 전세기를 통해 평양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시 주석이 하루 전인 23일 베이징으로 복귀했음에도 24일 오후 늦게야 최룡해 국장을 만나준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만나서 당연히 이어져야 할 만찬이 없었습니다. 방중 일행이 대규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진을 보니 북쪽과 중국 측에서 배석한 사람들을 합하면 최소 15~16명은 될 텐데… 그렇게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그래도 북한 최고지도자의 특사인데 밥은 먹여서 보내야 하지 않았을까요? 물론 조어대로 돌아와서 조촐하게
식사를 하긴 했겠죠.
중국에 특사가 갔는데, 시진핑 주석이 자리를 비웠고, 베이징에 돌아온 뒤에도 먼저 중앙군사위 부주석을 만나게 한 뒤 오후 느지막이 만난 거죠. 어떻게 보면 북한은 중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인데, 그런 나라 최고당국자의 특사를 만찬도 같이 안 해주고 그냥 가도록 했다는 건 방중 과정에서 나타난 북한의 발언이라든가 요구 등이 중국 맘에 안 들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런 박대가 미국이나 한국 정부가 바라는 대북압박 차원에서 일어난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건 의장국으로서 6자회담 재개를 통해, 동북아 문제에 대한 미국과의 힘겨루기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것입니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압박이라고 볼 수 있죠.
프레시안 : 북한 특사를 맞는 중국의
태도나 북중 언론의 보도 태도로 보아 북핵문제에 대한 양국의 입장이 일치한다거나, 이번 특사 방중으로 북핵문제가 대화국면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말씀이군요?
정세현 : 그렇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면 주목할 만한 차이가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6자회담이란 말을 마지막 날 내놨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중국의 건의를 받아들여 관련국들과 대화에 나서기를 희망한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관련국들이라 하면 기본적으로 핵이나 미사일 등과 관련된 나라, 바로 미국을 지칭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최근 상황으로 봐서 한국은 아닌 것 같고, 얼마 전
일본 총리 특사가 들어간 것으로 보아 일본도 포함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진핑 주석을 만났을 때, 최룡해 국장은 "조선은 유관 각국과 공동 노력해 6자회담 등 각종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기를 희망한다"란 표현을 썼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짚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시진핑 주석이 비핵화 실현을 위한 6자회담 재개를 언급했는데, 북한은 비핵화라고 명확하게 말하는 대신 '관련 문제'라고 희석시켰습니다. 유관국은 미국인 것 같습니다. 관련 문제라는 건 "
경제 발전, 민생 개선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으며 이를 위해 평화로운 외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과 연관시켜 보아 평화협정을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미북평화협정, 더 나아가서는 한반도평화협정이겠죠. "적절하게 해결하길 바란다"라는 건 앞으로 핵?미사일 정책에 있어 공개와 비공개 방법 모두 사용하겠다는 것이고, 중국이 모든 상황을 주도하지 않도록 자기들도 직접 나서서 하겠다는 뜻일 거라고 봅니다.
중국과 북한의 차이를
정리해보면 북한이 '6자회담 등 다양한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 유관 각국과 '관련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겠다고 한 반면, 중국은 '6자회담'을 적시하고, 6자회담의 목적이 '비핵화'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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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4일 북한 최룡해(왼쪽)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이 회담을 가졌다. ⓒAP=연합뉴스 |
언론에 보도된 걸로만 판단해야 해서 한계가 있긴 하지만, 북한 발언 중에 우려스러운 지점은 "경제 발전, 민생 개선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으며 이를 위해 평화로운 외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조선 측은 적극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고 밝힌 점입니다. 이건 아주 위험한 표현입니다. '수호'라는 말 속에
방어의 개념이 들어가 있고, 소위 자위수단으로 핵을 개발해야 한다는 북의 기존 논리가 녹아들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자신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된다면 6자회담에 나가겠지만, 6자회담만 믿고, 이미 공표한 핵무력
건설과 경제발전 병진노선을 미리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뜻입니다. "수호하겠다" "적극적인 행동을 할 것이다"라는 건 외교행동을 그렇게 하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핵개발 행보를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결국 북한이 6자회담 등 대화 복귀를 원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말씀이군요.
정세현 : 북한이 대화로 돌아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달라고 특사를 보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만약 대화제의를 하려고 했으면 처음부터 그 얘기를 전해 시진핑 주석이 편하게 만날 수 있도록 했어야죠. 특사가 가면 해당 나라와 무슨 얘기를 할지 사전에 논의한 후 토킹
프로세스를 정리합니다. 만약 대화제의가 근본목적이었다면 처음부터 그런 분위기를 풍겼어야죠. 나중에 최룡해가 류윈산(劉雲山) 정치국 상무위원을 만난 뒤에 '대화'라는 단어를 쓸 때도 "중국의 건의를 받아들여 관련국들과 대화에 나서기를 희망한다"라고 했습니다. '중국이 대화를 원한다면 우리도 생각해보겠다' 정도의 얘기라고 볼 수 있어요.
따라서 이번 방중의 목적은 대화제의라기보다는 미중 정상회담에 중국이 어떻게 나가려고 하는지 탐색하고 그에 따라 미중 정상회담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봅니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재개 쪽으로 합의가 돼서 미국도 "한번 나가보겠다" 하는 식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오바마 정부 입장을 보면 북한이 6자회담에 나오겠다고 해서 "좋다, 바로
만나자"는 식으로 나오지는 않으려 할 겁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북한이 먼저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라고 요구해왔습니다. 미중정상회담에서 만약 6자회담 재개에 대해 합의를 한다면 그건 중국의 강권에 의한 억지춘향식 표현일 것입니다. 미국은, 당연히 여기에 선뜻 나서지 않을 겁니다. 그때 시진핑 주석이 미국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동안 미국이 북한의 선(先)행동을 요구했지만, 북한이 이 정도 나온 상황에서, 미국도 대북 요구를 한 단계 낮춰서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복귀 의사가 있다든지 비핵화에 대한 의지가 있다는 (행동으로 하면 더 좋겠지만) 의사표시 정도만 해도 대화 제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중국이 설득한다면 협상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만약 미국이 그렇게 수용하게 되면 북한이 다른 욕심을 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이미 6자회담과 9.19공동성명이 사멸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은 더 이상 필요 없고, 앞으로 회담을 한다면 핵 군축회담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형식은 6자로 갈수 있다. 하지만 먼저 비핵화를 할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 우리가 뭘 믿고 비핵화를 한단 말이냐" 하고 나올 수 있어요. 북한이 비핵화를 할 수 있는 조건은 미국이 군사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올해
정전 60주년이 되었는데, 계속 이렇게 갈 것인가. 이제 정전협정은
환갑을 맞이하면서 사멸했다. 이걸 대체하는 평화협정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첫해에 새로운 협정으로 대체하자." 하면서 미북 평화협정 체결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자고 나올 가능성이 있어요.
그리고 평화협정의 토대가 되는 것이 군축입니다. 6자회담 참가국들 중 핵무기 가진 네 나라(미, 러, 중, 북)만 만나자 하고 나올 가능성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되겠죠. 미국이 절대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협상을 하다 하다 안 돼서 결과적으로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일은 있을 수 있겠지만, 처음부터 핵보유국임을 인정하고 북한과 핵군축 협상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럼 북한은 그걸 구실로 평화협정 협상을 압박할 수 있습니다. 6자회담 참가국 모두가 핵군축 협상에 반대할 것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런 요구를 하는 것은 핵군축을 가지고 미북평화협정을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평화협정, 핵군축 등등이 그 '관련 문제'에 포함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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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현 원광대 총장 ⓒ프레시안(최형락) |
이번 최룡해 특사의 방중은 작년 12월 12일 장거리로켓 발사, 2월 12일 3차 핵실험, 3월부터 4월 말까지 독수리 훈련, 끝나고 5월 15일까지 항모 니미츠호가 부산항에 입항하기까지 다섯 달 동안 계속 한반도가
긴장 고조 쪽으로 내달려오다가 소강 국면으로 들어선 직후에 이뤄진 것입니다. 시기적으로 니미츠호 훈련 끝나고 일주일 후에 간 것인데, 어떻게 보면 그렇게 3월부터 5월 15일까지 계속된 군사훈련이 북한의 대외 행보 자체를 묶어놓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행히 상황이 전환되는 듯 하지만 미국도 미중정상회담에서 6자회담을 빨리 재개하자는 얘기는 안 할 겁니다. 계속 중국 역할론을 얘기할 가능성이 커요. 그들은 지금 시리아나 이란 문제 해결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우리에게도 거기에 협조하라고 했으니…북핵은 중국에서 관리해달라는 식으로. 미국도 이번에 이런 최룡해 특사에 대한 중국의
대접이나, 멘트에 의미를 두고 자기들이 주문한 대로 움직인다고 착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절대 그건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방중은 북한이 적극적으로 대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려고 한 건 아니고, 중국의 의도를 파악하는 한편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중이 대화의 실마리를 만들어주면 자기들도 나설 수 있겠지만, 기존 자기들의 핵무기 개발?경제발전 병진 입장은 계속하겠다는 것이죠. 시진핑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안정 유지는 많은 사람의 바람이자 대세"라고 얘기하며 세 차례에 걸쳐 비핵화를 강조한 것은 그전에 류윈산 상무위원, 판창룽 부주석과의 면담에서도 북한 측이 비핵화 의지를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대화도 시원하게 수락하지 않고 시진핑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도 "6자회담 등 각종 형식의 대화와 협상"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그렇다고 중?북 사이 신뢰가 완전히 깨진 것이라고 볼 수는 없고, 다만 앞으로 북한은 중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준비해갈 것으로 보입니다. 형식으로는 홀대를 받았지만 내용상으로는 미중회담을 앞두고 중국 측에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물론 환대를 받고 돌아왔으면 대내적으로도 체면이 섰겠지만, 일단은 중국이 어떻게 하는지 보자, 그렇게도 안 되면 중국과도 선을 그을 수 있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이 상황에서 약간의 희망을 주는 게 일본의 움직임이 아닌가 봐요.
프레시안 : 얼마 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북한에 특사를 파견했는데, 그 의도는 뭐라고 보십니까?
정세현 : 일본의 움직임은 기본적으로 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의 국내정치용 작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일본에서는 납북자 문제가 국내정치에서 차지하는 위상이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선거 때마다 그걸 써먹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그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납북자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그 이유는, 일본은 약간의
인도적
지원 정도는 해줄 수 있다는 계산이겠지만, 북한은
보상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 과거사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두 가지예요. 하나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이후 35년 일제강점기에 대한 보상을 하라는 것입니다. 강제 징용 등 식민지 약탈 통치에 대한 보상인 것이죠. 그리고 또 하나는 아마 협상용 같은데… 2차대전 종전 후 일본이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했던 적대행위, 미일동맹의 연장
선상, 한일협조의 틀에서 대북제재에 동참한 것과 같은 적대행위를 말합니다. 각각 100억씩 해서 총 200억 달러까지 요구했던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의 요구가 너무 커서 일본이 받아들일 수 없었죠.
어쩌면 이번에 정권의 정치적 필요 때문에 아베 총리도 고이즈미(小泉純一?) 전 총리처럼 난데없이 평양에 갈 가능성도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북핵 문제의 돌파구를 만들어보겠다는 식으로 명분을 갖고 가면 미국이 말리기도 곤란할 것입니다. 2002년 가을 네오콘들의 견제 속에서도 한국 정부가 그대로 가는 걸 보고 일본도 남북관계 개선흐름을 타서 고이즈미 전 총리가 평양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그걸 보고 미국이 더 놀라 2002년 10월 초
켈리 동아태 차관보를 보내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동북아 국제정치
이슈로 키워버린 일이 있었죠. 고이즈미가 그랬듯이 이번에 아베도 위안부문제 등으로 미국에서 경고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일북관계를 하나의 매개로 삼아 국내정치 입지를 강화하면서 미국에 대해서도 위안부 같은 걸로
압력 넣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선거 끝나면 시들해질 가능성이 커요. '태산
명동 서일필'로 끝나리라 봅니다. 일본은 보상 문제 때문에 전후 납북 일본인 송환 문제에 대해서만 약간의 보상과 인도적 지원만으로 처리하고 끝내고 싶겠지만, 북한은 그게 아닐 겁니다. 결국 대가 문제로 옥신각신하다가 끝낼 가능성이 많아요. 참의원 선거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 길어야 한 달 반이죠. 선거 이후에는 잠잠해질 겁니다.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아베가 간다고 할 때, 제3자들이 이건 납북자 문제만이 아니라 그동안의 3차 핵실험 유엔대북제재가 여기서 구멍이 뚫린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으니, 북한은 나쁠 게 없는 거죠. 그런데 미국이 못 하게 할 수도 없을 거예요. 만약 미국이 말리면 일본은 "미국도 자국민 구하기 위해 전 대통령이 직접 북한에 갔는데 우린 왜 못하게 하냐. 우리도 우리 국민 데려와야 한다" 하는 식으로 항변할 겁니다. 그런 면에서 조금
마찰이 있겠지만 북한은 이런 국면을 그들의 대외관계에 활용하려 할 겁니다.
올해 7월 27일이 정전협정 6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때까지는 북한은 간헐적으로 군사적인 행동을 하리라고 봅니다. 그들은 이날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이라고 합니다. 그럼 그때까지는 정전협정이 그동안 북한을 어렵게 했었다는 얘기를 북한주민들에게 교육시키면서 이제 환갑이 된 정전협정은 끝내야 한다는 얘기를 할 겁니다. 그러면서 7월까지는 일북관계 등을 활용하면서 미중회담 이후의 상황과 한중회담도 지켜보겠죠. 아마 한중회담이 끝날 때까지 북한은 말로만 대화 얘기를 하지 6자회담 등 적절한 형식의 대화에는 잘 나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관련국들이 대화와 협상에 나서도록 흥정 붙일 나라는 중국밖에 없다는 말씀이네요.
정세현 : 지금은 그렇죠. 현재로서는 중국밖에 없어요. 과거 남북관계가 긴밀했을 때는 한국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몇 차례 말씀드렸지만 9.19공동성명은 한국 정부가 주도해서 미북간에 흥정을 붙여서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죠.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나라가 중국밖에 없습니다. 미국도 현재 적극적인 것은 아니죠. 1기 오바마 정부 때 힐러리 클린턴 장관이 적극적으로 나가다 '전략적 인내' 방침을 정한 이후 북핵 문제는 미국의 대외관계에서 우선순위가 한 참 밑으로 밀려버렸습니다.
프레시안 : 5.24조치가 이제 만 3년을 지났습니다만 남북관계는 더욱 경색되고 있습니다. 개성공단 문제나 남북관계가 개선될 가능성은 있다고 보십니까?
정세현 : 박근혜 당선인 인수위 시절 몇 사람들이 5.24조치에 대해서 새로운 접근을 예고했었습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5.24에 대해 유연하게 가지 않겠는가. 예를 들어 소규모 인도적 지원은 승인해주는 쪽으로 가지 않겠나 싶었는데, 말로는 해야 된다고 하면서 지금은 이뤄지는 게 거의 없어요. 물론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쪽에서도 원인 제공한 측면도 있지만, 북이 남에 대해 위협적인 행동을 하고, 개성공단 통행을 제한하고 근로자를 철수시키는 등 박근혜 정부가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매우 좁혀버린 측면도 있습니다. 5.24조치는 당분간 좀 더 계속될 것으로 봐야 하고, 개성공단도 불가피하게 좀 더 고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중정상회담이 끝나고 7월 27일 북한의 이른바 조국해방전행승리기념일이 지나고 난 뒤에 무언가 문제가 풀리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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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일, 개성공단에 남아있던 남한 측 인원이었던 이른바 '최후의 7인'이 귀환했다. 홍양호(왼쪽에서 두 번째) 개성공단관리위원장을 비롯한 남한의 개성공단 체류 인원이 이날 오후 7시경 귀환해 경기도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그런데 언제가 됐건 대화제의를 하려면 개성공단 관련 대화를 물자반출을 위한 실무회담으로만 좁혀서는 안 됩니다. 원부자재를 꺼내겠다는 건 이제 다시는 개성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얘기이고, 그렇게 되면 북한은 회담에 안 나옵니다. 북한도 현재 어느 정도 후회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개성공단 정상화라는 방향에서 접근한다면 북한이 호응하고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처음에는 개성공단 정상화 쪽으로 얘기하다가 막판에 와서는 원부자재 반출 실무회담이라 하니까 안 나오죠. '개성공단 정상화 등'을 위한 회담이라고 하면 여지가 있죠. '등' 한 글자가 엄청난 차이입니다.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가 '등'자에 녹아 들어가 있는 셈이죠. "개성공단 정상화 등 남북 현안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 회담하자"고 하면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식으로 접근한다면 북핵 6자회담 등 북한이 생각하는 다양한 회담 이전에 남북대화가 열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브랜드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는 남북대화라는 문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시작도 못 하는 겁니다. 그 문은 개성을 향해 열려 있어요. 개성공단 정상화 등 남북 현안 문제를 논의하자고 해서 기업들 고통도 해소해주며 정상화시켜야죠. 입주기업들은 지금 개성공단의 정상화를 바라지, 물건 빼오는 걸 바라는 게 아닙니다. 북한의 압박이 남한에 안 통한다는 것은 이미 학습효과가 났다고 봐야 합니다. 공단을 닫는 게 목적이 아니고. 그런 모델을 잘 발전시켜서 외국 투자도 유치하려고 한다면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는 학습효과를 박근혜 정부가 충분히 주었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가 먼저 제의하되 대화 의제를 좁혀서 하지는 말고, 폭넓게 여지를 남기고 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최근 6.15공동선언실천 북측 위원회가 8년만에 6.15 공동선언 행사를 남북이 함께 개최하자고 남측 위원회에 제안해왔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정세현 : 6.15공동선언 합의에 따라 개성공단이 만들어진 것인데, 개성공단과 관련한 남측 정부의 대화 제의에는 응하지 않고, 민간행사인 6.15행사 공동 개최를 제안하는 건 북한이 남측의 민관 갈등을 조장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6.15행사가 10주년이나 15주년처럼 북한 표현대로 꺾어지는 해도 아니고, 더군다나 지금처럼 양측의 교류가 꽁꽁 막혀 있어 정부가 쉽게 허용하지 않을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이런 제의를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나름의 명분을 쌓기 위해서 혹은 앞으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인 것 같은데… 이런 방식이라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최홍재 - “납북자 송환이 남북 정상회담보다 더 중요 통영의 딸 구출 결의안 국회 상임위 상정도 못 돼”[주간조선] 구출! 통영의딸 / 홍재의 단상
2012/01/29 20:33
http://blog.naver.com/nokdoo2003/50132665436
최홍재 - “납북자 송환이 남북 정상회담보다 더 중요 통영의 딸 구출 결의안 국회 상임위 상정도 못 돼” - 납북자 관심 제기한 ‘물망초’ 박선영 의원
지난 10월 18일 세계인은 이스라엘에 감동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5년간 포로로 억류된 샬리트 병사를 구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포로 1027명을 석방했다. 1 대 1027의 포로 교환. 세계 포로교환사(史)에 영원히 남을 결단에 이스라엘 국민은 열광했고, 그것을 지켜보는 세계인은 뭉클했다.
지난 10월 24~25일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을 가진 물망초 배지가 화제가 됐다. 북한에 납치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끝까지 노력하자는 의미를 물망초 꽃말에 담았던 것이다.
6·25납북인사가족협의회는 10월 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10월 30일까지 ‘물망초 배지 달기 범국민 캠페인’을 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10월 24일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국회에서 국무총리와 장관들에게 하늘색의 물망초 배지를 달아주는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물망초 배지는, 주간조선이 2178호(10월 24~30일)를 통해 ‘평양 210만명 신상자료’를 통해 ‘납북자 21명 평양에 살고 있다’는 특종 보도와 맞물려 관심을 증폭시켰다. 박 의원은 앞서 10월 21일 여야 의원 35명이 참여한 ‘신숙자씨 모녀와 메구미상 송환을 위한 한·일의원 모임’을 결성한 바 있다.
지난 10월 26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박 의원을 만났다. 그의 재킷 칼라에는 하늘색 물망초가 반짝이고 있었다. 물망초 배지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 주요 신문이 납북자를 잊지 말자는 ‘물망초 배지 달기 운동’을 크게 보도했다. “물망초 배지를 달라고 하는 사람이 급증해 1000개가 금방 다 나갔다. 각국 대사관에서도 전화를 걸어와 대사가 달고 싶어한다고 했다. 언론의 힘을 실감했다.”
- 주간조선 특종보도 ‘납북자 21명 평양에 살고 있다’ 기사를 보았을 텐데. “참 놀라웠다. 주간조선이 입수한 신상명세 자료에 놀랐고, 또 210만명 평양 시민 중에서 납북자 21명을 확인한 게 놀라웠다.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
그의 책상 한쪽에 주간조선이 쌓여 있는 게 보였다.
- 납북자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인가. “대학교 때부터다.”
예상 밖이었다. 기자는 ‘국회의원이 되고서부터’라는 답변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MBC 기자 시절엔 몰랐나’라는 후속 질문을 준비했었다.
- 뜻밖이다. “집안에 납북자가 있다든지 국군포로가 있다든지 하는 개인적인 연관성은 없다. 내가 열 살 때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나는 딸만 셋인 집안의 맏딸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우리 집안의 호주는 큰아버지가 됐다. 그때 어린 나이지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꼈다.”
- 그래서 어떻게 됐나. “어머니가 당시 학교 선생님이어서 돈을 벌고 있었는데 호주는 큰아버지였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큰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번에는 큰아버지의 외동아들이 우리집 호주가 되었다. 그 당시는 학기 때마다 가족 관계에 대해 학교에 제출하는 서류가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호주란에 어머니를 쓰지 못했다. 남들은 상상도 못할 나이에 법적 모순에, 인권문제에 눈을 떴다.”
박선영 의원은 강원도 춘천 출신이다. 춘천에서 초·중·고를 나왔다. 중학교 시절 그는 또 한 번 납북자 문제를 목도하게 된다.
“중학교 때 친구 오빠가 사법시험 3차에서 계속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그런가 궁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구의 큰아버지가 6·25전쟁 때 납북되었는데 월북자로 몰렸다고 했다. 결국 친구 오빠는 연좌제에 걸려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친구 큰아버지가 진짜 월북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해 그 말을 했다가 친구와 대판 싸웠던 기억이 있다.”
춘천은 다른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군인 비율이 높다. 고교 시절 그는 상이군경들의 모습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춘천에는 상이군경이 많이 살았다. 6·25전쟁 때 다친 상이군경들이 행패를 부리는 모습이 뇌리 속에 스타카토처럼 남아있다. 처음에는 그들을 나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자꾸 그들의 행동을 접하게 되면서 어느 순간 나라를 위해 싸우다 저렇게 된 것인데 그렇다면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법대를 선택한 것은 이렇게 어린 시절 법과 제도의 문제에 대해 일찍 깨달았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 10월 유신을 겪으면서 국가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납북자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알려진 것처럼 박 의원은 이화여대 법대를 나와 1977년 MBC 기자가 되었다. 1989년까지 13년간 기자생활을 했다. 이후 서울대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를 받고 대학교수를 했다.
2008년 4월 그는 자유선진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오게 된다. 당시 ‘비례대표 박선영’을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 ‘6·25전쟁 납북인사 가족협의회’ 측과 처음 접촉하게 된 것은 언제인가. “2008년 국회에 들어온 직후였다. 그분들이 먼저 날 찾아왔다. 이미일 회장, 최강석씨 등 4~5명이었다. 17대 국회 때부터 납북자 관련 법안을 김무성 의원의 이름으로 발의했지만 잘 되지 않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박 의원은 발의안 법률을 다시 읽어보았고 몇 가지를 덧붙여서 다시 만들었다. 여기에는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그 법률안이 ‘한국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피해자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이 법안에는 박선영·권선택·김낙성·김용구·김충환·류근찬·박상돈·변웅전·심대평·이명수·임영호·정영희·황진하 의원 13인이 발의자로 서명했다.
-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들을 상대로 설득할 때 반응이 어떻던가. “민주당 의원들은 ‘납북’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싫어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거기에 월북자도 있는데 왜 그런 법을 만드냐고 거부 반응을 보였다. 나는 10만명 납북자 중에 1만명이 월북자라고 하더라도 나머지인 9만명 납북자를 위해 법안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동료 의원을 설득하는 데 1년 반이 걸렸다. 동료의원을 설득하면서 30년 전 내가 가졌던 편견과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다.”
- 한나라당 의원과 민주당 의원을 비교하면 어땠나. “사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민주당보다 설득이 더 힘들었다. 민주당 의원들은 그래도 알아듣고 이해는 하려고 했다.”
박선영 의원 등 13인의 노력으로 지난 1월 ‘한국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피해자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안’이 발효됐다. 이어 정부는 4월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명예회복위원회’를 구성했다.
- 일본은 납북자 문제와 관련, 오래전부터 여야가 따로 없이 힘을 합쳐 왔다. 우리나라 국회는 어떻다고 보나. “(한숨을 몰아쉬며) 서럽게 3년 반을 보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납북자·국군포로·사할린동포 문제 등을 듣기 싫어한다. 내가 발언을 하면 ‘쟤, 또 저런 얘기하네’ 하는 반응이었다. 국방위에서는 국군포로 얘기가 나오지도 않았다. 입에 올리는 것도 귀에 들리는 것도 불편해 하고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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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선영 의원이 지난 10월 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물망초 배지 달기 범국민대회’에 참석, 납북자 가족과 포옹하고 있다. photo 연합뉴스
박 의원은 이렇게 말하곤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난 3년 반의 서러웠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가 말을 다시 이었다.
“일본은 납북된 17명을 데려오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움직이는데 우리나라는 납북자가 10만명에 이르는 데도 이를 전담하는 아무런 부처가 없고 각료가 없다. 이건 국가이기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 정부의 납북자·국군포로 대책과 관련해 우리나라는 국가가 아니라 협회 수준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협회도 못 된다. 납북자가족협의회 최성용 대표, 납북된 황원 MBC PD의 아들 황인철씨가 어떻게 피눈물 흘리며 여기까지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황인철씨는 관련 부처 과장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 아닌가. 지금은 국제 연대도 할 수 있지만. 협회 수준만으로 해도 잘하고 있는 것이다.”
-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 구출 서명운동이 10만명을 넘어섰다. 국회 차원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안 하고 있다.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 생사확인 및 송환촉구 결의안’을 이회창·이상득·고흥길 의원 등 34인과 함께 지난 9월 1일 발의했다. 그런데 아직 상임위에 상정도 못하고 있다.”
- 북한이 6·25전쟁 납북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보나. “다 국제법 위반이니까 그렇다. 전쟁포로에 관한 제네바협약 위반이고 전시 민간인 납치 등에 관한 제네바협약 위반이니까.”
- 일본은 정상회담 때마다 납북자 문제를 거론했지만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은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번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왜 그렇다고 보나. “내가 볼 때는 두 사람은 정치인이긴 했지만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무엇을 해야 하는 자리인지를 몰랐던 사람이었다. 정치적 제스처만 했지 납북자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때 비전향장기수 63명을 북에 보냈는데 그때 납북자를 그 수의 10%라도 돌려받았어야 했다. 아니 상징적으로 단 한 명이라도 돌려받아야 했다.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노벨상 수상을 위한 스텝을 밟는 수순에 불과했다.”
- 전쟁포로로 50년간 북한에 체류한 유영복씨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한국 대통령이 국군포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고 실망해 탈북했다고 하더라. “유영복 선생님 이야기는 나도 안다. 그런 사람이 여러 명 있다.”
- 이명박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정상회담이 중요한가, 납북자 송환이 중요한가. “당연히 납북자 송환이 더 중요하다.”
- 왜 그런가. “지금 정상회담으로 우리 정부가 얻을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북한은 원래 이명박 정부와는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러다 입장을 바꿨다. 북한은 2012년을 강성대국 건설의 원년으로 삼았다. 그런데 돈이 없다. 돈이든 쌀이든 필요하다. 김일성이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삼을 때 (북한의) 권력 최고위층에 벤츠를 200대 선물했다. 그 벤츠가 30년이 됐다. 이제 벤츠 200대를 바꿔줘야 할 때가 됐다. 이번에는 200대+α가 되어야 한다. 북한이 6자회담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배경이다.”
- 남북 정상회담 시기는 언제로 보나. “이르면 연내다. 내년으로 넘어간다면 내년 초 설 전 혹은 3월 말에 있을 핵안보정상회담 직전이다.”
지난 10월 6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무상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이들은 푸른 리본을 달고 있었다. 메구미를 비롯한 일본인 납북자 17명을 잊지 말자는 의원들의 결의다.
- 민주당 의원들은 누구 누구가 물망초 배지를 달고 있나. “김영진·이낙연·노영민·신낙균·김춘진·조정식 의원 6명이다. 우리 방에서 배지를 많이 가져갔으니 배지를 다는 사람이 더 늘어날 것이다.”
- 민노당 의원들도 물망초 배지를 달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할 생각이다. 달아달라고 말은 하겠지만 달아줄는지는 모르겠다.”
2013. 5. 27.
김 흥 수 목사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