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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주요명소
송산리 고분군과 무령왕릉
대표적인 백제유적인 충남 공주시 송산리 고분(사적 제 13호) 가운데 1,400여년이나 된 무 령왕릉이 발굴 후 25년간의 공개에도 남조류 등 미생물이 서식하고 빗물이 스며드는 등 원 형 보존을 위협함에 따라 1997년 11월 무령왕릉 등 송산리 고분군의 원형을 후손들에게 길 이 물려주기 위해 보수공사 후 이 능을 포함, 인근 5·6호분가 영구히 폐쇄되었다. 현재는 모형 전시관을 고분군 경내 지하에 원형과 똑같이 만들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공주시 금성동 백제 웅진 도읍기의 왕과 왕족의 무덤이 군집된 곳으로, 무령왕릉을 비롯해 서 7기의 무덤이 있다. 이 중 무령왕릉은 전축분으로 1971년 배수로 공사중 발견되었고 국 보로 지정된 것만도 12건에 달하고 있다. 무령왕(462-523)은 재위기간 동안 민생을 안정시 키고 국력을 신장하여 국제적 지위를 강화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큰 업적을 이룩하여 그의 아들 성왕 대에 백제 중흥을 열게 하였다. 무령왕릉의 발견은 백제 문화의 높은 수준과 그 확실한 연대를 증명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 었으며, 동양 문화사에 찬연히 빛나는 백제문화의 위치를 드높혔다. * 송산리 1,2,3,4,5호분 무령왕릉 상하 주변에 집중되어 있고, 자연 활석을 이용한 석실분으로 1,2,3,4,5호분은 현실 바닥에 냇가 자갈을 깔고, 5호분만 벽돌로 관을 놓은 자리 두 곳을 구축하였다. 궁 륭상 천정을 갖춘 석실분에서 항아리가 출토되었다. * 송산리 6호분 벽화(내부) 송산리 6호분은 이 지구에서 발견된 유일한 벽화전축분인데 길이 4m에 폭이 2.5m의 남북 으로 긴 터널형이다. 남벽과 북벽은 수직이고 동서의 두 장벽은 상부가 둥글게 돔처럼 내경으로 접합되어 있으며, 동서 양벽에 각 3개, 북벽에 1개의 화염형 소룡이 있다. 무령왕릉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구축한 것이다. 벽에는 그릴 부분에만 진흙을 바르고 그 위에 호분으로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를 그렸다. 남벽 주작의 좌우에는 일월 을 그려 장식했음이 특이하다. * 무령왕릉 (사적 제 13호) 백제 25대 무령왕과 왕비를 합장한 무덤으로, 동으로는 수려한 공산성과 서로는 금강이 아늑하게 감싸돌며 남으로는 계룡산이 버티고 선 풍치가 빼어난 곳이다. 무령왕릉(재위 462~523)은 1971년 송산리 5호분과 6호분의 침수방지를 위한 공사 중 발견되었다. 평균 구조는 장방형의 이도(고분 입구에서 사체가 안치된 방까지의 통로)와 현실벽은 마치 수 를 놓은 듯 모두 연화문이 새겨진 전(벽돌)으로 정연히 쌓아졌고 왕과 왕비의 합장 관대 가 있으며, 3벽에는 주칠(주색의 칠)과 화염문을 그린 보주형 등이 5개가 장식되었고 그 아래에는 마치 창과 같은 모양의 구조로 되어 있다.
특히 잘 구워진 벽돌로 조영된 왕릉은 그 치밀함이 백제의 수준높은 과학과 수리학의 수 준을 엿볼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아름다움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됐다. 비록 중국 남 조의 벽돌무덤 양식을 받아들였지만 사평일견법(四平一堅法)을 통한 치밀한 구조와 완벽 한 아치형 천장은 전인미답의 백제의 독자적인 면모라는 것이다. 이 왕릉에서 출토된 유 물은 108종 2,906점에 달해 국립 공주박물관에 진열, 전시하고 있으며 이중 12점이 국보 로 지정되었다. 특히 이 릉에서 지석이 발견됨으로써 피장자와 그 구조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가 되었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국보급 유물로는 왕과 왕 비의 금관, 왕비의 금제 경식, 왕의 금제 뒤꽂이, 왕비의 은제 팔찌, 청동신수경, 석수, 지석, 두침, 족좌 등이 있다
공주시 금성동 공주시 관광안내소 041-856-7700/2548
신원사(新元寺)는 동학사 갑사와 함께 계룡산 3대 사찰로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에 소재한다. 이 절은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화상이란 고승이 창건하고 그 뒤에 여러번의 중창을 거쳐 1876년 보련화상이 고쳐 짓고 1946년 만허화상이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의 신원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현재의 위치로 옮긴 것으로 전해지며 원래의 건물 지는 신원사와 중악단 남쪽에 전개된 넓은 밭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은 금당지를 중심으 로 신원사의 원건물지가 있을 것으로 믿어지나 조사의 결여로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이 금당지로 믿어지는 지역을 중심으로 오층의 석탑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본래의 사역이었음을 쉽게 알게 한다. 이와 같은 원금당지를 중심으로 석탑이 있는 이외의 현재의 신원사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대웅전의 우측에 독성각이 좌측에는 영원전이 있는데, 이들은 최근에 신축 혹은 개수가 이 루어져 있다. 한편 대웅전에는 전내에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하여 우측에 대세지보살을 좌 측에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공주시 계룡면 양화리 8번지 신원사 041-852-4230
황새바위 천주교도 순교지
이곳은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18세기 100여년 동안(1797~1879)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공개 처형된 사형터이다. 즉,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했던 조선조 시대에 충청도의 감영이 있던 공주로 압송된 천주교 신도 수백명의(기록된 이름 248명) 순교를 당한 곳이다. 죄인들의 공개 처형지였던 이곳 황새바위는 황새도 서식했던 곳이기에 황새바위라고도 하고, 이곳에 있던 바위가 죄수들의 목에 씌우는 칼인 황새 모양으로 생겼고, 목에 큰 칼을 쓴 죄인들이 이 언덕 바위 앞으로 끌려나와 죽어 갔으므로 황새바위라고도 한다.
공주시 금성동 황새바위성지 관리사무소 041-856-3923
곰나루 국민관광지
곰나루는 '웅진(熊津)'이란 한자가 의미하듯 공주와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그 위치는 공주시 웅진동의 무령왕릉 서쪽에 전개된 낮은 구릉산의 지대와 금강변 일대를 말한다.
공주시 웅진동 440번지 일대 공주시 공공시설관리사무소 041-840-2464
성곡사
성곡사는 1983년부터 불사를 시작하여 1995년 회향식을 가진 사찰로 뒤로는 고불산(갈마봉) 이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고 좌우로는 천마산과 문필봉으로 에워싸인 빼어난 풍광을 자 랑하는 곳이다. 이곳 성곡사 천불전에 모셔진 청동좌불은 국내에서 가장 큰 좌불로 높이만 해도 12.5m이며, 대리석으로 만든 좌대를 포함할 경우 18m에 이르러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환희심이 나오게 한다. 또 석가모니 부처님을 둘러싸고 반원형으로는 부처님의 상수 10대 제자상이 모셔져 있으며, 그 뒤로는 동판에 새긴 금강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길이 210m 에 이르는 말굽형, 10개의 계단에는 1천의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데 그 높이 또한 사람의 키보다도 큰 1.9m로 웅장함을 더해준다. 그 뒤로는 개인의 서원을 담은 원불로 야광 여래 333,333불을 모셔 참회기도 도량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광경은 바로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중생을 직접 교화하실 때 영취산에서 1천2백50여 의 대 비구승을 모아 놓고 대승의 참진리의 법화경을 설법 하시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 이다. 그 밖에는 대웅전, 팔부신장, 명부전, 영산전, 삼성각, 아미타불, 지장보살, 종각, 탑, 포 화대상, 무심돌, 십일면관음 등이 있다.
공주시 우성면 방문리 성곡사 041-853-3355
공산성
공주 시내 산성동에 있는 공산성은 백제 문주왕 1년(475)에 한산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였다가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천도할때까지 5대 64년간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축조한 성이다. 사적 제12호인 공산성은 총 연장 2,660m의 고대 성곽으로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 자연의 요지이다.
공주시 산성동 , 금성동, 옥룡동 일대
계룡산자연사박물관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은 국내 최대의 자연사 박물관이다. 직접투자, 발굴에 참여한 계롱이라 불리는 천우호연사우르스청운엔시스 공룡의 실물 화석과 계룡산 특산식물 동물, 곤충, 자연사 관련자료 등을 수집, 보존 및 전시 연구를 하고 있다.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511-1 042-824-4055
지당세계만물박물관
지당세계만물박물관은 전 세계의 희귀하고 다양한 동물, 곤충(나비), 광물, 화석 등을 수집하여 전시하는 자연사 박물관이다. 수십년동안 전 세계를 돌며 수집한 약 25만점의 수집품들을 볼 수 있다.
공주시 탄천면 광명리 104 041-857-0001
석장리 구석기유적지
공주 석장리 구석기 유적은 공주시로부터 직선거리 약 6㎞, 장기면 석장리의 금강 북안 하안단구에 위치한 우리나라 구석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지이다. 현재 사적 제334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이 유적에 대한 조사는 1964년부터 1974년까지 10차에 걸쳐 연세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하였다. 그 결과 지층은 27개의 층위로 형성되어 있고 유물을 포함하고 있는 문화층도 11개 층위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 1990년과 1993년에 다시 구체적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보다 다양한 문화유적이 확인됨에 따라 이 유적의 분명한 성격이 확인되었다.
공주시 장기면 석장리 98 공주시 문화재관리소 041-856-0331
우금치전적지(동학혁명군전적지)
우금치 전적지는 공주시 금학동, 공주에서 부여로 넘어가는 길목인 견준산 기슭 우금치 일대로 제2차 동학농민전쟁의 최후 격전지이다. 이곳에는 1973년 동학혁명군 위령탑 건립위원회에서 동학혁명군 전적비를 세워 당시를 기리고 있다.
약 3만을 헤아린 농민군은 일본군 200명을 포함한 약 2,500명의 관군과 1894년 10월 23일부터 이인, 효포, 웅치에서의 싸움에 이어 11월 8일 드디어 우금치에서 결전을 벌이게 되었다. 그러나 수적으로 우세한 농민군은 고개 위로 진격하다가 연합군의 일제 사격에 겹겹이 쓰러져, 고개로의 진격 후퇴를 무려 40~50차례를 거듭한 끝에 거의 전멸하였다.
이 날 우금치 전투에 대해서 전봉준도 "2차 접전 후 1만여 명의 군병을 점고하니 남은 자는 3천 여명을 넘지 않았으며, 그 후 다시 2차로 접전한 후 점고하니 5백여명을 넘지 아니하였다." 하여 장렬한 싸움이었음을 회상하였다. 이 싸움 후, 재기를 노린 전봉준은 체포되어 이듬해 3월 처형됨으로써 1년 동안 전개된 동학농민운동은 실패로 끝났다.
공주시 금학동 327-2 공주시청 문화재관리소 041-840-2547
공산성 금서루 (공산성 서문지)
서문은 본래 유지만 남아 있었으나, 최근 문루와 함께 새로운 형태로 문루의 복원이 이루어져 있다. 복원된 문루는 공산성 서쪽 성곽선에 연결되게 성선을 연결하면서 성의 입구를 개구식으로 내면서 그 위에 문루를 올린 상태이다. 더불어 본래의 문지는 성내의 출입시설로 사용되고 있으며 복원된 문루는 외형만 겸비하고 출입시설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본래 공산성 서문 문지의 복원은 이미 1975년에 성곽에 대한 보수공사를 겸하여 실시한바 있다. 그러나 1975년의 보수에서는 양단의 기단만 축석하였을 뿐 누적은 복원되지 않은 채 남겨 놓았었다.
공주시 금성동 문화재관리소 041-856-0331
공산성 공북루
공북루는 공산성에 설치된 문루 중 북문으로 성문을 나서면 나루를 통하여 금강을 건너게 되어 있다. 선조 36년인 1603년에 옛 망북루의 터에 신축한 것으로 시축 후 수 차례에 걸쳐 개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되나 현존의 것은 본래의 형상을 간직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문루 건축의 대표적 예로 꼽는다. 건축의 내용은 <<여지도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동성의 충청도 편에 보면 1603년인 계묘년에 쌍수 산성의 수리가 이루어졌다. 더불어 공북, 진남 양문을 건립한 내용을 적고 있어 현존의 공북루 건물의 축조에 대한 기사를 남기고 있다.
공주시 금성동 165 공주시 문화재관리소 041-856-0331
웅비탑
충남의 역사, 문화를 바탕으로 <충남, 새로운 출발>을 조형적으로 표현한 이 탑은 충청남 도 개도100 주년을 기념하고, 밝고 희망찬 21세기를 향하여 웅비하려는 도민의 염원을 담 도록 상징화하여 건립하였다. 조형물의 구성은 탑신부,기단부, 조각상으로 분할 합성하였다. 공주시 웅진동 문화관광과 041-840-2225
동혈사
동혈사는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 274번지에 해발 392m 높이의 천태산에 중턱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천태산 동혈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동서남북의 혈(穴)에 위치하여 서혈사, 남혈사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 풍수사상이 널리 유행하면서 세워졌을 법한 그런 사찰이다. 지금 그러한 흔적은 현재의 사찰 아래쪽 동혈사터(銅穴寺址)에 남아 있다.
공주시 의당면 월곡리 274번지 041-854-2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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