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미술관 나들이/정동윤
지독한 더위가 주춤하는 사이
나들이하기 좋은 날이 왔습니다.
독일의 시인
라이나 마리아 릴케의 시 중에서
'가을날' 이란 시의 첫 소절이
"주여,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라고 시작하죠.
정말 정말 지난 여름은 더웠습니다
어제는 친구와 더불어
과천 서울대공원 산림욕장길과
동물원길 오르내리며 산책하다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들렀죠
먼저 미술관 실내 카페에서
식사와 커피를 즐긴 후에
미술관 전시를 둘러보았는데
지금은 '전시 준비 중' 이란 안내에
미술품 전시 없는 미술관이라
투덜거리며 불만을 터뜨리면서
미디어 작품과 아담한 단독주택의
전시를 관람했습니다.
집이란 여행을 위한 베이스캠프라는
주제로 전시하는 곳에 이르니
그곳의 직원이 지금 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이번 주말까지 미술품 전시가 있다고
귀띔해 주었어요.
친구와 이곳에 오기 전에 투덜거린
내 말이 들킨 것 같아 뜨끔했지만
무척 고마웠습니다.
또 무료라는 팁까지 알려주었어요.
올가을 들기 전에
인문학 고전 읽기에 꽂혀서
독서 목록을 작성하고
한창 진도가 나가는 중인데,
지금은 르네상스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만나고 있고,
빈센트 반 고흐의 책도 대기 중이라
미술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일이
무척 재미있고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덕수궁으로 갔습니다
대한문은 주민등록증으로 통과하고
곧장 직진하여 석조전 서관의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으로 갔죠
1 층에서는 '지금, 잇다'라는 주제로
대한민국 예술원 70주년 기념으로
예술원 회원들의 작품이 전시되었고
2 층에서는 정부 및 공공기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거나
관리하는 미술품과 조각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어요
문학과 음악의 청각 예술보다
회화나 조각의 시각 예술이
더 강렬하고 빠른 설득력이 있어서
최근에 그림을 향한 궁금증이
심하였는데 오늘은 조금이나마
그 갈증을 달랠 수 있었어요
3 시간 남짓 전시물을 감상하고
햇살 좋은 고궁의 뜰에 나와 앉아
준비해온 샌드위치 두 조각과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한가하고 운치 넘치는 궁궐의
가을을 오롯이 만끽하고 있는데
덕수궁 석조전의 우람한 모습이
돌연 눈에 와 박혔습니다.
신고전주의 기법으로 건축된
비례와 반복, 좌우대칭이
특징이며 코린트식 기둥과
2층의 3면을 발코니로 둘러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한 건축물로
흙과 나무로 건축된 궁궐에서
유일한 석조로 지어진
저 건물 안으로 한 번도 들어가지 못하고
올 때마다 건너 뛰었어요
석조전은 인터넷 예약으로만
입장이 가능하기에 저곳을 목표로
인터넷을 켠 적도 없었습니다.
석조전 하얀 건물의 유혹에
가방을 정리하고 일단 석조전
계단을 타고 올라갔죠
살짝 문을 열어 보니 직원이
용건을 묻더군요
"인터넷 예약을 하지 못했는데
석조전을 관람할 방법이 없나요?"
"연세가 얼마나 되시죠?"
"70 이 넘었습니다"
"65 세 이상이면 현장 예약이
가능합니다. 신분증 보여주시면
지금 예약하시고 1 시 30 분에
입장하시면 됩니다"
주민등록증 제시한 후에
약 15 분 동안 오후의 고궁 뜨락을
산책한 후에 석조전에 입장하였죠
대한 제국의 상징이라 하지만
1897 년 대한제국 선포 후
1900 년에 착공하였고
정작 대한 제국이 사라진
1910년에야 준공되었습니다.
오랫동안 다른 용도로 활용하다가
2014 년에 당시의 대한 제국 황제의
거주 공간으로 복원하여 지금은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개관하였지요.
20세기 초기, 황제의 일상을 보여주는
접견실, 대기실, 황제와 황후의 침실,
서재와 휴식 공간,식당과 화장실과
목욕실, 다용도실
그리고 금색 오얏꽃 문양이 실내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2 층은 3면의 발코니가 특징인데
정면의 발코니로 나가서
덕수궁 일대를 둘러보고
서관과 함께 완성했다는 분수대를
왕의 눈으로, 아니 황제의 눈으로
내려다보고는 흐뭇하게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