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궁궐길 걷기
오늘 걷기는 조선시대 5대 궁궐을 잇는 코스로 창경궁에서 시작하여 창덕궁, 북촌 한옥마을 재동, 계동, 가회동, 삼청동을 지나는 골목길, 경복궁과 경희궁, 정동거리,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덕수궁 앞까지다.
◈ 총소요시간 : 2시간
◈ 총거리 : 6.6km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로 나와서 직진으로 300m 걷다가 성대입구 사거리에서 큰 길
횡단보도를 건너 왼쪽 길로 500m 쯤 올라가면 창경궁 문이 보인다.
월근문
월근문은 창경궁의 동북 궁문으로 정조가 부친인 사도세자의 사당으로 초하룻 날마다 참배하러 가기 위해
1779년에 세운 문이다.
홍화문
창경궁이 정문으로 현존하는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축으로 조선중기의 건축적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창경궁 홍화문으로 지나 오른쪽으로 걷다가 사거리가 나오면 돌담길 따라 우회전 했더니,
헉! 공사중이다.
어쩔수 없이 길을 건너서 창경궁 돌담을 건너에 두고 계속 걸어간다.
돈화문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과 함께 조선 중기에 세워진 창덕궁의 정문이다.
창덕궁 돌담길로 우회전한다.
북촌 한옥마을로 접어들었다.
원서동 고희동 가옥의 화실
고희동의 사랑방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 작품 자화상이다.
북촌 한옥마을을 걷다보면 이렇게 예쁜 벽화들을 많이 만난다.
중앙고등학교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된 구한말에 신학문을 통한 교육구국(敎育救國)·교육입국(敎育立國)의 취지에서 우국지사들에 의하여 설립된 사립고등학교다.
석정보름우물
북촌 주민들이 중요한 음수원이던 석정보름우물은 15일 동안은 맑고, 15일 동안은 흐려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물 맛이 좋기로 소문난데다 이 우물 물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궁궐 궁인들이 몰래 떠다 마시며 아이 낳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특히. 1794년 중국에서 압록강을 건너 온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주문모신부가 1801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전까지 계동 최인길(마티아)집에 숨어지내면서 조선 땅에서 첫 미사를 봉헌할 때 이 우물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청동길로 접어들면 보이는 고가구가 예쁜 집이다.
정독도서관
정독도서관은 북촌에 위치한 옛 경기고등학교 자리에 1977년 1월에 개관한 서울시립공공도서관이다.
49만 여권의 장서와 16,300여 점의 비도서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부설 서울교육사료관에는 12,000여점의 교육사료를 소장하고 있다.
현대미술관
정독 도서관을 지나 북촌로 5길을 따라 걷다보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보인다.
말뚝박기
현대미술관 앞쪽으로는 경복궁을 이웃하여 민속박물관, 어린이 박물관이 있다.
흥례문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의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으로, 1426년(세종 8년)에 집현전에서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弘禮門)으로 이름을 지어올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목조 건물이다.
경복궁에서 세종로 사거리 방향으로 걷다보면, 책을 읽고 있는 멋진 이 분을 만나게 된다.
장예원터
세종로 사거리에서 우회전해서 경희궁을 향해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장예원터는 조선시대에 노비장부를
관리하고 노비관련 소송을 담당하던 관청이다.
원래 경희궁의 정문은 역사박물관 앞쪽인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역사박물관 안으로 들어가서 정원으로 나오면 경희궁 마당으로 들어서게 된다.
경희궁 숭정문
인조반정(1623)으로 등극한 인조는 이곳에서 정사를 보았으며, 그뒤 효종부터 철종에 이르는 10여 명의 임금이 살았다. 현종과 숙종은 이곳에서 평생을 보냈기 때문에 이 기간 동안에 화재와 수리가 특히 많았다. 숙종은 이 궁의 정전인 회상전에서 태어나 융복전(隆福殿)에서 죽었다. 경종은 숭정문(崇政門)에서 즉위함으로써 경덕궁에서 최초로 즉위식을 올렸다
숭정전
숭정전은 원래 경희궁(慶熙宮)의 정전(正殿)이었다. 경희궁은 원래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元宗)의 사저(私邸)가 있던 곳이다.
내부 천장은 우물반자를 꾸며 화려한 용(龍)무늬 단청을 그렸다.
흥화문
흥화문(興化門)은 조선시대 광해군 10년(1618년)에 세운 경덕궁(현재 경희궁)의 정문이다.
경희궁을 둘러 보고 정문인 흥화문으로 나와서 길을 건너면 정동으로 들어서는 길목으로 들어서게 된다.
중명전
중명전은 1901년 지어진 황실도서관으로 처음 이름은 수옥헌(漱玉軒)이었다. 1904년 덕수궁이 불타자 고종의 집무실인 편전이면서 외국사절 알현실로 사용되었다. 1906년에 황태자(순종)와 윤비(尹妃)와의 가례(嘉禮)가 여기에서 거행되었으며,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었던 비운(悲運)의 장소이기도 하다.
정동교회
정동제일교회는 대한민국에 최초로 세워진 감리교 교회 중에 하나이다.
대한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조가 의주까지 피난갔다가 돌아왔을 당시, 궁궐이 모두 불타버려서 거처할 왕궁이 없어서 왕족의 집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완전했던 월산대군가를 행궁으로 삼았던 덕수궁의 정문이다.
오늘의 일정은 덕수궁 대한문에서 수문장 교대식을 보면서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