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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7장 1-8절. 예수님의 기도. 요약설교
1.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을 마감하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이 기도를 마치고, 빠른 속도로 죽음과 부활을 향해 나아가십니다.
2. 17장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1-5절.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십자가를 잘 감당케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6-19절.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제자들을 보호해달라는 기도입니다.
20-26절. 제자들을 통해서 믿게 될 신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신자들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3. 오늘은 <예수님의 기도>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5절은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입니다.
1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누가복음 18장 13절에서, 세리는 기도하면서, 감히 하나님을 향해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특별한 사랑의 관계 속에서 기도하시는 모습입니다.
2.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ἐλήλυθεν ἡ ὥρα: has come the hour)
‘때’란 단어(ὥρα)는 ‘때, 기간, 시간, 특정한 시간, 계절, 특별한 때’(a time or period, an hour, a definite space of time, a season, the particular time for anything)를 가리킵니다.
‘이르렀다’는 단어(ἐλήλυθεν)는 완료형으로서 ‘이미 이르렀다’(has come)는 뜻이고, ‘이르다’는 단어(ἔρχομαι)는 ‘이르다, 도달하다’(to come, go)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된, 예수님이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결정적 시기가 왔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이 기도가 끝나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군병들에게 체포되어 십자가 죽음의 길을 가시게 되었습니다.
3.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δόξασόν σου τὸν Υἱόν, ἵνα ὁ Υἱὸς δοξάσῃ σέ :glorify Your Son that the Son may glorify You)
‘영화롭게 하다’는 단어(δοξάζω)는 ‘영광을 돌리다, 영광스럽게 평가하다, 영화롭게 하다’ (to render or esteem glorious, glorify, honor, bestow glory on)는 뜻입니다.
(1) 예수님을 영화롭게 해달라는 것은, 인류구원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감당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인류구원 사역을 성공적으로 감당하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이 됩니다.
만일 예수님이 십자가를 거부하고, 인류 구원 사역을 실패하게 되면, 예수님도 수치고, 하나님도 수치가 됩니다.
(2) 이것은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역사회에 사랑으로 봉사하고, 전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면, 우리 예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역사회에서 욕이나 먹고, 해를 끼치게 되면, 예수님 이름에 욕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지역사회에서 사랑과 봉사를 잘 감당하고,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절.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1.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ἵνα πᾶν ὃ δέδωκας αὐτῷ δώσῃ αὐτοῖς ζωὴν αἰώνιον: so that all whom You have given Him He may give to them life eternal)
‘주신’이란 단어(δέδωκας)는 현재완료형(have given)으로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예수님에게 이미 주셔서 예수님이 현재 그 사람들을 가지고 계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영생’이란 말(ζωὴν αἰώνιον: life eternal)은 ‘영원한’(αἰώνιον)이란 단어와 ‘생명’(ζωὴν)이란 단어가 합쳐진 말로서, 여기서 ‘생명’이란 단어는 ‘현재의 육체적인 생명과 미래의 영적인 생명’을 모두 가리키는 말인데(life, both of physical present and of spiritual particularly future), ‘스스로 계신 하나님의 생명을 받고 살아가는 그 생명’을 가리킵니다.(life is derived and always only comes from and is sustained by God's self-existent life).
그러므로 이 생명은 장차 천국에서 완전히 누릴 것이지만, 이 세상에서도 성령님과 교통하면서 살아갈 때, 이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아서 영생을 누리는 신앙생활을 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436장에 <나 주를 모시고 영원히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영생을 누리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1) 아무나 영생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성도만이 영생을 얻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3장 48절에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습니다.
우리 장로교는 다른 교단과 달리, 예수 믿기로 작정된 성도만이 영생 얻는다는 진리를 고수하는 교단입니다.
예수 안 믿어서는 아무리 착해도 절대 영생 얻지 못한다는 진리를 고수합니다.
(2) 그러나 예수님께 오는 자는 한 사람도 잃지 않고 다 구원하십니다.
요한복음 6:37-40.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2.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καθὼς ἔδωκας αὐτῷ ἐξουσίαν πάσης σαρκός:
As You gave Him authority over all flesh)
‘만민’이란 말(πάσης σαρκός)은 문자 그대로는 ‘모든 육체’(all flesh)란 말로서, 성경에서 ‘육체(육신)’란 말은 항상 악하게 쓰인 것은 아니고, 예수님의 죄 없으신 육신이나 인간의 성생활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의미로 쓰였습니다. ( flesh is not always evil in Scripture. Indeed, it is used positively in relation to sexual intercourse in marriage. Eph 5:3) as well as for the sinless human body of Jesus).
‘권세’란 단어(ἐξουσία)는 ‘능력, 권세, 도덕적인 권위와 영향력, 영적인 능력과 세상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power, authority, especially moral authority and influence, a spiritual power, and an earthly power).
(1) 예수님은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께 받았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8장 18절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마귀 권세를 완전히 이기시고, 절대주권을 가지시고, 성도들을 천국까지 인도하십니다.
즉, 절대주권을 가지신 예수님이 성도들을 보호하시므로, 마귀가 성도들을 절대 건드리지 못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5:18.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한복음 10:29-30.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마가복음 16:17 말씀대로, 오히려 예수 믿는 성도들은 마귀를 쫓아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 갈 때까지 예수님 모시고, 날마다 승리 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393장>
1. 우리들의 싸울 것은 혈기 아니요,
우리들의 싸울 것은 육체 아니요
마귀 권세 힘써 싸워 깨쳐버리고,
죽을 영혼 살릴 것일세
일심으로 힘써 싸우세, 일심으로 힘써 싸우세
마귀들의 군사들과 힘써 싸워서, 승전고를 울리기까지
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1. 영생은
‘영생’이란 우리말로 <영원히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원래 뜻은 하나님과 생명적 관계를 가지고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가서 하나님 없이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 모시고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합니다.
지옥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은 영원한 고통이요, 차라리 죽어 없어지는 것만도 못합니다.
그러나, 지옥에서는 죽을 수도 없고, 오직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지금 우리가 상상 못할 정도로 너무나도 좋고, 최고로 좋으신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생은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참 생명을 맛보며 사는 것을 가리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실 세상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최고로 좋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천국 소망 가지고, 오늘 현실을 기쁘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ἵνα γινώσκωσιν σὲ τὸν μόνον ἀληθινὸν Θεὸν καὶ ὃν ἀπέστειλας Ἰησοῦν Χριστόν
that they may know You and the only true God and whom You have sent Jesus Christ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란 말(τὸν μόνον ἀληθινὸν Θεὸν: the only true God)은 ‘오직 한 분이시고, 참되신 하나님’이란 뜻이고, ‘참’이란 단어는 문자 그대로는 ‘진리로 만들어진’(lit: made of truth)이란 뜻으로서 ‘참된, 진실한, 진짜인’(true, real, genuine)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직 한 분밖에 없고, 이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며, 진실하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시란 말씀입니다.
‘유일하신 하나님’이란 이방인들이 여러 신들을 섬기는데 반하여,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ㅣ.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란 말(ὃν ἀπέστει Ἰησοῦν Χριστόν: whom You have sent Jesus Christ )에서 ‘보낸다’는 단어(ἀποστέλλω)는 동사인데 이 말에서 ‘사도’란 말(ἀποστολος)란 단어가 나왔고, ‘그리스도’란 단어(Χριστός)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 그리스도’(the Anointed One, Messiah, Christ)란 뜻입니다.
‘아는’이란 말(γινώσκωσιν)에서 ‘안다’는 단어(γινώσκω)는 ‘알게 되다, 인정하다, 인식하다’(to come to know, recognize, perceive)란 뜻인데,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가리키며, 동정녀 마리아가 남자를 알지 못한다고 할 때 남자를 경험적으로 알지 못한 것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experientially ‘know’ is used for example in Lk 1:34, And Mary a virgin said to the angel, 'How will this be since I do not know a man?')
(1) 여기서 <안다>는 것은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누가복음 1장 34절에서,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한 말도, 마리아가 사내와 성관계 경험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안다는 것도,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2)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우리가 육신이 약해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제대로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보면 죽게 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부활의 몸, 신령한 몸을 갖기 때문에 우리 하나님과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현재는 우리가 이 눈으로 태양을 바라보아도 눈이 멀어버립니다.
그러나, 장차 우리가 부활의 몸을 갖게 되면, 태양을 바라보아도, 눈이 멀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도 좋으신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경험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3) 이처럼, 우리의 신앙생활도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아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점점 더 성장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장하지 않으면, 병든 것입니다.
성도가 성장해가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라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젖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젖을 먹고 자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신령한 젖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2)
(4)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체험적으로 믿음이 성장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 십일조 해보니, 과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복을 주시는구나, 체험적으로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아, 맥추감사 헌금을 해보니, 과연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구나, 체험적으로 깨달아가는 것입니다.
어제 어떤 성도님이 간증하는 것을 들어보았습니다.
자기 형편으로는 맥추헌금을 많이 할 수 없었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중에 자꾸 ‘20만 원을 더 하라’고 하는 마음이 들더래요.
그래서, 남편에게 가만히 물어보았더래요.
여보, 이번 맥추 헌금 어떻게 할까요?
그런데, 남편이 ‘이번에 생활이 어려우니까, 맥추 헌금 적게 하려나보다’ 생각하고, 아내에게 <알아서 하소> 그러더래요.
그래서, 눈 딱 감고 성령님의 감동대로 20만 원을 더 했더래요.
그랬더니, 아들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왔더래요.
<엄마, 나 이번에 돈이 생겨서 빚 다 갚아버렸어요. 그래서, 엄마 아빠 종신보험 들어드릴께요.>
아들이 매달 50만 원씩 종신보험을 들어준다고 하더래요. 할렐루야!
이처럼,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믿고 순종하는 체험이예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보면, 더욱더 풍성한 복을 체험하면서,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순종하지 마시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5)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생각은 않고, 그저 복만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이기주의 신앙에 빠지고 맙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이기주의적으로 기도만 하는 사람은 신비주의 이단에 빠집니다.
하나님 말씀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신비주의는 이기주의적 기도만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나가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신비주의자는 언제까지나 자기만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웃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은혜만 달라고 하면서, 나가서 이웃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기도할 때도 다른 사람에게 방해되는 것을 생각지 않고, 혼자서 손뼉 치고, 혼자 소리소리 지르면서, 다른 사람은 은혜받지 못하더라도 자기만 은혜받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안수받고 복 받는 데는 수백만 원이 아깝지 않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서 헌금하자고 하면, 아까워서 벌벌 떱니다.
이처럼, 신비주의는 불신자보다도 더 이기주의입니다.
(6) 그러면, 이러한 신비주의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아 가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신비주의는 영적 교만에서 나온 것이므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나가야 치료를 받습니다.
이러한, 신비주의자는 자기감정에 따라 살아가므로, 자기가 순종하고 싶으면 순종하고, 싫으면 안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신비주의에서 벗어나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려면, 싫어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가야 합니다.
(7) 성경은 말씀합니다.
신명기 28:1-5.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명기 30: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로마서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요한복음 6:63.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15:26.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요.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좋으신 하나님을 알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시고, 이웃들에게 존경받고, 하나님께 축복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506장>
1. 예수 더 알기 원함은 크고도 넓은 은혜와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내 평생에 소원, 내 평생에 소원
대속해 주신 사랑을 간절히 알기 원하네
4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1.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τὸ ἔργον τελειώσας ὃ δέδωκάς μοι ἵνα ποιήσω
the work having completed that You have given Me that I should do
‘내가 이루어’란 말(τελειώσας)은 부정과거형 분사(Aorist Participle)로서 ‘단호하게 완전히 이룬 것’을 가리키며, ‘이룬다’는 단어(τελειόω)는 ‘목적지에 도달하다, 완성하다, 완주하다, 예언이 성취되다’( to bring to an end, to complete, as a course, a race, or the like: complete, finish: as of time or prediction: accomplish, make perfect)는 뜻입니다.
1.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신 구원사역, 치유사역, 복지 사역을 하셔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상에서 대속의 죽음을 이루시면서는 ‘다 이루었다’고 구원 사역의 완성을 선포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2.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과 세리와 창기와 가난한 자 병든 자 귀신 들린 자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9:12-13.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즉, 예수님께서는 부자나 권력자나 착한 사람만 대접하신 것이 아니고, 가난한 사람, 비천한 사람, 죄지은 사람, 가련한 사람을 잘 돌봐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이런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3. 착한 일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1) 분명히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라.
(2)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는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
디도서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 우리의 행위로 구원받았다면, 천국이 자랑투성이요, 시기 질투가 심한 불행한 곳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인인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천국에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할 뿐이요, 자기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4) 예수 믿는 성도들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고,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불신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함께 예수님을 믿습니다.
(5) 그러므로, 우리 교회도 예수님처럼, 치유 사역, 복지 사업, 구원사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애를 씁니다.
어린이집을 통해서, 가정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노인복지 센타를 통해서,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가정상담소를 통해서, 가정들에게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외국인 도우미 센타를 통해서, 언어교육과 생활 도우미를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6) 이처럼, 도움을 주면서 전도하는 것은 가장 쉬운 전도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서, 착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을 함께 믿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찬송가 259장>
(1)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물든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2) 선한 역사 위하여 힘을 내라, 주 함께 하시겠네
주의 넓은 사랑을 전파하며, 복음의 빛 비춰라
2.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ἐγώ σε ἐδόξασα ἐπὶ τῆς γῆς
I You I glorified on the earth
‘세상에서’란 말(ἐπὶ τῆς γῆς)은 문자 그대로는 ‘땅에서’(on the earth)란 말로서, ‘땅’이란 단어(γῆ)는 ‘땅, 흙, 육지, 나라, 지역 주민’( the earth, land, soil, country, inhabitants of a region)을 가리킵니다.
‘영화롭게 하였다’는 단어(ἐδόξασα: glorified)의 원형(δοξάζω)은 ‘영화롭게 평가하다, 영화롭게 하다, 존경하다, 영광을 돌리다,’( to render or esteem glorious, glorify, honor, bestow glory on)는 뜻으로서 참된 존재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존경을 돌리는 것을 가리킵니다(glorify, properly to ascribe weight by recognizing real substance and value).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순종하여 이루어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특별히 이웃을 사랑하며 교회에서 맡겨주신 주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일들을 순종하여 이웃을 사랑하며 교회에서 맡은 직분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고 기쁘게 해드려서, 가정과 자녀와 생업에 큰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5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1.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Πάτερ, τῇ δόξῃ ᾗ εἶχον πρὸ τοῦ τὸν κόσμον εἶναι παρὰ σοί
Father, with the glory that I was having before the world to exist with You)
‘창세 전에’란 말( πρὸ τοῦ τὸν κόσμον εἶναι)은 ‘이 세상이 존재하기 전에’(before the world existed)를 말합니다.
‘영화’란 단어(δόξῃ)는 ‘좋은 견해, 칭찬, 존귀, 영광, 광채’(good opinion, praise, honor, glory, splendor)를 뜻합니다.
(1) 예수님은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즉,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셨지만, 원래 창세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요한복음 1:1-3. 태초에 말씀(예수님)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점에서, 유대교인이나 이단들은 잘못되었습니다.
2.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νῦν δόξασόν με σύ: now glorify Me You)
‘영화롭게 하다’란 단어(δοξάζω)은 ‘영화롭게 평가하다, 영광을 돌리다, 존경하다’( to render or esteem glorious, glorify, honor, bestow glory on)는 뜻으로서 참된 존재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존경을 돌리는 것을 가리킵니다(glorify, properly to ascribe weight by recognizing real substance and value).
‘아버지와 함께’란 단어(σύ)은 원문에 그냥 ‘당신’(You)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각 역본이 다르게 번역되었는데, 우리 한글개역성경에는 ‘아버지와 함께’로 번역했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에는 ‘아버지와 함께’(with Yourself)로 번역했으며, English Standard Version와 New International Version와 새번역과 현대인의 성경에는 모두 ‘아버지 앞에서’(in your own presence, in your presence)로 번역했습니다.
(1) 이 말씀은 십자가 고난을 영광스럽게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도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고난을 잘 감당케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족과 이웃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수고와 몸으로 열심히 섬기고 봉사하는 수고와, 물질로 도와주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가족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성도는 이런 수고와 희생과 고난을 단 마음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사랑의 수고 없이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가족을 구원하고, 이웃을 전도하는데, 사랑의 수고와 희생과 고난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운다>고 했습니다(골로새서 1:23).
이처럼, 성도님들의 사랑의 수고와 희생과 고난을 통해서, 가족이 구원받고, 이웃이 예수 믿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지언정, 결단코 하나님의 영광 가리는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 감당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가족과 이웃을 구원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6절부터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6절.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1.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자기 이름과 명예를 나타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셨습니다.
즉 예수님이 신적 권위로 말씀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고, 여러 가지 표적을 행하신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신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 불신자들은 심지어 예수님의 가족조차도 처음에는 예수님을 배척했으나, 예수님은 열 한명의 제자들을 길러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사라들로 기르셨습니다.
2.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아버지의 것’이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란 표현을 의미합니다.
즉 지금 열 한 제자들은 원래 유대인으로서 유대교인들이었는데,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어서 율법의 제자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7절. 지금 그들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로부터 온 것인줄 알았나이다.
1. 예수님의 신적인 말씀과 병자들을 고치신 일들과 여러 가지 표적들이 모두 다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 줄 제자들이 알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16장 30절에서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불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단순한 인간으로 보고,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서 보고, 그 동생들과 누이들의 형제로만 보았습니다. (막 6:3)
2. 예수님은 이 열 한 명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대한 참된 믿음을 가진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 열 한 제자들을 통해서 지상 구원 사역을 계속해나가실 것을 바라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3. 그러므로 오늘날도 참된 믿음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 기초가 되어서 큰 교회를 설립할 수 있습니다.
8절.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1. 여기에는 신앙의 순서가 나열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둘째는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셋째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아는 것입니다.
넷째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입니다.
2. 이처럼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3. 열 한 제자들은 원래 유대교인들이었으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열 한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신 것을 알고 믿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면서, 이 열 한 명의 제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가실 것입니다.
물론 이 열 한 명의 제자들을 오순절에 성령을 받아서 주의 일을 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들도 성령의 불을 받아서 복음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열 한 제자들과 같은 신실한 사람들을 통해서 교회를 설립해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큰 교회로 성장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