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君主]란 사전에 ‘세습에 의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 정의되어 있다. 비슷한 단어로는 주군과 군왕이 있다. 그러나 사회의 발달과 함께 이런 군주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민주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면 민주[民主]란 무엇인가? 사전에는 ‘국민이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형태’, 또는 그러한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민주주의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은 1863년 링컨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문에서 찾을 수 있다. “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가 그 연설의 하이라이트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더 진화하고 성장해 제도적인 민주화를 넘어 개인이 군주를 대하듯 민주를 대해야하는 시대가 되었다. 즉 군주시대에 백성이 군주 대하듯, 군주가 백성을 대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리더십에도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즉 ‘섬기는 리더십’을 많은 지도자들이 부르짖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정지표까지 ‘섬기는 정부’라고 표방할 정도다. 결국 국민과 국민이, 정부가 국민을 서로 ‘섬기듯 해야’ 잘 살아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높았던 관공서의 문턱이 낮아지고, 학교 문턱이 낮아지고, 민원인과 학부모 요구가 강력해지고 이에 따라 섬기듯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요즘은 인구가 감소해 지금 태어나는 아기는 ‘황제’라고 칭할 정도다. 아기를 둘러싼 직계 상위 가족만 봐도 부모님, 조부모님, 외조부모님 등 적어도 6명이다. 삼촌과 숙모까지 합치면 어른이 8명-10명 쯤 된다. 이러니 어찌 황제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 황제는 매우 까다롭고 참을성이 부족하다. 게다가 스스로 황제임을 알고 있다. 이러다 보니 아기는 연약함 하나로 어른 6명이상을 지배한다.
하교에서도 이 황제에게 ‘군주 대하듯’ 하지 않으면 갈등상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 음으로 양으로 교육받아온 내용이 군주이니 학교에서 군주끼리 한 교실에 모였을 때 충돌은 자연스런 현상일 수밖에 없다. 그로인해 학교에서 발생하는 갈등상황은 학생들 간에 벌어지는 언어폭력과 신체폭력행위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결정에 불복하면 재심을 청구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교육공동체는 만신창이가 된다. 감정까지 격하게 되면 공중 분해되는 과정까지 거친다. 어느 한편의 양보를 받아내기기 참 어렵다. 지금의 시대적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현재 학생들에게 시의적절한 교육은 친구들 간에 ‘군주 대하듯 행동하는 마음가짐’을 교육해야 한다. 학생의 의식이 변화되지 않으면 지금의 갈등상황은 끊임이 없을 것이다. 지금처럼 발달된 사회에선 더욱 어렵다. 향후 선진국처럼 더 발달되면 양보를 미덕으로 하겠지만. 그러면 ‘학생들 간 군주 대하듯’ 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학교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군주’란 선생님이라고 치자. 선생님께 대하듯 친구에게 대하면 언어폭력·신체폭력이 일어날 수 없다. 친구를 군주처럼 존중하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개개인을 존중하도록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가르쳐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가르치는 방법은 솔선수범밖에 없으니 우리 어른들이 서로를 존중하는 것을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한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바벰바족의 재판을 소개하면서 끝을 맺고자 한다. ‘남아프리카의 바벰바족 사회에서는 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바벰바족 마을에서 누군가 범죄를 저지르면 마을 사람들은 그를 광장 한복판에 세운다. 그리고 모두가 그를 둘러싸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에 대한 비난을 하지 않는다. 또한 돌을 던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가 과거에 했던 미담, 감사, 선행을 한 마디씩 쏟아낸다. “넌 원래 착한 사람이었어.” “작년에 비가 많이 왔을 때 우리 집 지붕을 고쳐줬잖아, 고마워.” 그렇게 칭찬의 말을 쏟아내다 보면 죄를 지은 사람은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한 명씩 다가와 안아주며 진심으로 위로하고 용서해준다‘ 지금처럼 발달된 사회에선 군주 대하듯 민주를 대해야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갑 질’한다고 생각되면 절대로 그냥 있지 않는 게 요즘의 세태다. ‘나도 나름 갑인데 어떻게 감히’란 분위기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비난보다 상대에 대한 존중에 무게를 두는 것이다.
기사입력: 2016/08/16 [14:21] 최종편집: ⓒ 광역매일 http://www.kyilbo.com/sub_read.html?uid=182853§ion=sc30§ion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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