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모는 1955년 4월26일 '죽는 날'을 받았다. 임의로 정한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받았다고 여겼다. 그 날은 딱 한 해 뒤(1956년 4월26일)였다. 1945년 4월25일 김교신이 죽었고, 그 10년이 지난 첫날이 되는 날 죽음을 예고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죽기로 한 날은, 오산학교를 연 이승훈이 살았던 일생의 날들인 24151일과 같은 날이었다. 이 날짜와는, 김교신과 좀 더 사연이 있다. 1939년 6월25일 김교신은 류영모 탄생 1만8천일을 맞아 구기동에 찾아와 '조선어사전'을 선물했다. 류영모는 이 일을 귀하게 여겼다. 이날로부터 6천일이 되는 해(1956년) 김교신이 죽은 날짜 하루 뒤(4월26일)에 그를 따라가기로 하였다.
어떻게 보면 작위적인 느낌도 들지만, 류영모는 진지했다. 김교신은 그와 다른 믿음의 길을 갔지만 서로 존경의 마음을 지녔던 곧은 제자였고, 이승훈은 그와 다른 실천의 길을 걸었지만 사모의 마음을 지녔던 곧은 스승이었다. 류영모가 김교신이 죽은지 10년 뒤에 죽음을 결심하고, 그리고 이승훈이 살았던 삶의 날들만큼만 살기로 한 것은, 그 사람들과의 각별한 인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와 함께 했던 '곧은 사람들'이, '삶'을 받아 누렸던 그 기간을 기념하고 그만큼만 살고 생을 돌려드리는 것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김교신에게는 '연결'의 의미를 담았고, 이승훈에게는 '끊음'의 의미를 담았다. 수명의 알맞음에 대한 자기 결정이었다.
류영모는 죽음을 어떻게 생각했는가. 죽음을 선언한 날 일기에 그 생각을 적어놓았다. 놀라운 말이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이 일 때문에 이 때에 왔다.
요한복음 12장27절에 나오는 이 말은 통째로 예수의 말이다. 그러나 류영모는 그 말을 둘로 갈라놓았다. '괴로움을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때문에 죽는 게 아니다. '내가 바로 이 일 때문에 이 때에 왔'기 때문에 죽는다. 예수는 '이 때'를 면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했지만, 류영모는 괴로움을 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스스로가 온 사명이 '죽음을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에 1956년 4월26일의 한국땅에 왔다는 믿음을 보였다. 예수와 같은 사명을 띠고 왔으며, 그것은 많은 이들 앞에서 스스로 죽어 보이는 것이었다.
왜 죽어보이는가. 인간이 그토록 중요시하고 의미있게 여기는 육신의 죽음이란, 신의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님을 보이고 본질적으로 중요한 성령만으로 영생하는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하늘이 인간에게 베푼 무한한 사랑은 오직 이것이었고, 예수를 통해 그것을 알렸지만 인간은 여전히 육신만이 삶의 전부이며 육신의 죽음은 생의 끝이라고 믿고 있었다. 류영모는 스스로의 몸의 죽임으로 다시 십자가를 지고가는 선택을 하려 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몸이라는 옷을 벗는 것일 뿐임을 알리려 했다. 죽음으로서 비로소 생생해지는 '얼'의 삶을 뚜렷이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 이 중요한 일 때문에, 바로 이때에 이 땅에 와 있다고 그는 천명하고 있다.
류영모가 죽는 날을 천명하자, 사람들은 수근거렸다. "그 사람은 죽을 날을 받아놓았다지?" 류영모는 이에 대해 대답을 일기에 써놓았다. "누구는 그 날을 안 받아 두었나?" 죽을 날을 받아두었기에 기이하다고 여길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스스로가 모르고 있을 뿐, 누구든 죽는 날이 다가오고 있으며 류영모가 받아놓은 날보다도 더 짧게 살다가 막상 내일모레라도 죽을 수 있는 게 삶의 정체가 아닌가.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죽을 날 동안 어떻게 얼을 돋우고 생의 밑천을 갖춰나가느냐의 문제다.
해방이 되던 해인 1945년 2월16일엔 시인 윤동주가 죽었다. 일본 도시샤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다니던 이 시인은, 시위 혐의로 붙잡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일본의 '생체실험'에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의 시는, 류영모가 말하는 죽음을 새롭게 떠올리게 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주어진 길을/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의 '서시'(1941)
이 시만큼, 류영모의 사상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시가 있을까 싶을 만큼, 이 시는 '죽는 날'과 '주어진 길'에 대해 간절하게 천명하고 있다. 윤동주는 물론 죽는 날을 특정(特定)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죽는 날을 뚜렷이 생각하고 기억했다. 메멘토 모리다. 그 죽는 날을 마음에 새겨놓고,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정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은, 통째로 하나의 기도문이다. '한 점 부끄럼'은 세상이 정해놓은 부끄럼이 아니라, 하늘에 비춘 부끄럼이다. 류영모의 언어로 하자면, 육체가 만들어내는 누추한 말과 짓과 꿈이 모두 부끄럼이다. 신은 오로지 인간에게 '육체를 너에게 줄테니 그것을 입고 한번 살아보고 오너라'라고 보냈을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그것이 자기의 전부인 줄 알고, 거기에 매진하고 몸의 삶에 미쳐서 스스로가 지닌 '얼'마저 흩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윤동주의 시는, 몸삶에 취해 얼을 잊은 누추함을 닦아내는 기도이다. 그리고, 세상에 깃든 신의 뜻을 예민하고 정결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은, 단지 억압받는 우리 민족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태어난 것들 전체를 의미한다. 태어난 것은 죽기 때문이다. 그 죽음을 지닌 존재가 이 생에서 신이 허용한 온전한 생을 누리지 못함을 슬퍼하고 긍휼히 여기는 시선으로 돕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스스로는 '주어진 길'을 걸어가겠다고 했다. 윤동주에게 주어진 길은 무엇이었을까. 1941년에 쓴 또다른 시 '십자가'에서 그 길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괴로웠던 사나이,/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꽃처럼 피어나는 피를/어두워가는 하늘 밑에/조용히 흘리겠습니다"
스물 네살의 시인이 가만히 남긴 이 말에는, '예수 의식'이 투철하게 기입되어 있다. '괴로웠던 사나이'는 요한복음에 나오는 그 구절을 떠올리는 말이다. 그리고 윤동주는 그 괴로움을 '행복함'으로 다시 번역한다. 예수에게는 십자가가 허락되었기 때문이다. 십자가가 허락되는 일은, 바로 예수의 미션인 '죽어서 죽지 않음을 알리는 일'이 허락되는 것이다. 몸이 죽어서 얼로 거듭나는 그 일이다. 그것을 위해선, 모가지를 드리우고 피를 흘리는 고통을 피하지 않겠다고 윤동주는 말하고 있다.
류영모의 '죽는 날'은, 동시대를 살아간 한 시인이 시로 남겨놓은 절절한 맹세를, 스스로 온몸으로 깨닫고 실천으로 옮기고자 했던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죽기로 한 날에 이렇게 써놓았다.
"오늘이 온 오늘이고 올 오늘이라고 하늘의 사람 예수는 말하오...
시원함! 참 시원하겠나이다."
그러나 그는 4월26일 그 흐렸다가 맑아진 날, '죽음'을 맞지 못했다. 죽음을 기다리다가 금식(禁食)만을 했다. "얼 기운의 환한 빛으로 이 씨알 속에 펼쳐 참으로 계시옵소서." 그의 기도만 고요히 메아리쳤을 뿐이다. 그는 이날을 기념하면서 이런 시를 남겼다. 언어유희의 수수께끼 같지만 류영모다운 사색이 농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잘있다
잘다있
있잘다
있다잘
다잘있
다있잘
'잘'과 '있'과 '다'를 돌려서 쓴 말(회문,回文)들이다.
'잘있다'는,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안부를 담은 말이지만, '잘 잇다'로 읽어 '제대로 목숨을 잇고 있다'로 풀었다. '잘다있'은, '잇는 목숨줄을 가늘게 하여 살아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있잘다'는, '잊잘다'로 풀어 '잊기를 바란다'로 읽었다. '있다잘'은 '세상에 와서 있다가 잘 가는 것'이란 의미다. '다잘있'은, '저마다 씨앗으로 잘게 잇는다'로 해석한다.
'다있잘'은, '저마다 있다 가지만 내가 잘 가는 것이 중요하다'로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