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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얼굴도 같은 구석이 없고…….
미꾸리: 난 우리 어머니 닮았고 내 누이는 아버지 닮았거든 그렇지?
(하고 클레오파트라에게 다진다.)
클레오파트라: 어쨌튼 남매면 그만아냐? 쓸데없는 변명말고 빨랑 올라가 오빤.
미꾸리: 그래, 그래.
클레오파트라: (잠옷을 갈아 입으면서) 문틈으로 들여다 봐선 안되우. 오빠.
미꾸리: 원 오라비의 인격을 무시해두…….
미꾸리 이불과 베개를 안고 이층으로 올라간다. 철의 무릅 위에 걸터 앉으면서 클레오파트라 그 손에 술병을 잡혀준다.
클레오파트라: (술잔을 내밀면서) 자아. 한잔 따라. (철의 쳐주는 술을 마시고는) 내 술도 한잔……. (철의 입에 술을 부어 준다.)
철: (클레오파트라를 획 들어 침대 위에 놓으며) 누님 내려 앉아.
클레오파트라: 트릿하게 누님이 뭐야? 오늘 저녁에 삼삼하게 한번 놀 텐데. (철을 덮어 누르며) 자아 내 얼굴을 좀 봐. 나도 이래봬도 근사한 집안에서 귀여운 딸로 태어나서 호강도 할대로 해보고……. 그러나 여자란 결국 아무것도
아니더군. 하늘같이 믿었던 첫사랑을 배반당하고 나니까 이 세상이란……. 참 우스꽝스럽더군.
철: 아니 그게 무슨 서곡이야? 그만 둬! 따분 해. 사랑이란 있을 수 없어! 있는 건 허위야! 배신야! (부서지라고 테이블을 친다.)
클레오파트라: (의아하여) 아니. 어떻게 된거야. 이 젊은 사람이? 호호호……. 실연을 한 거로군. 나 모양으로?
철: (휙 일어나 앉으며) 술 어쨌어? (클레오파트라에게서 양줏잔을 빼앗아 보고) 이런게 아니고 큰 놈을! (하며 양줏잔을 벽에다 낭태를 친다.)
클레오파트라: (큰 유리 잔에 양주를 가득 쳐 준다.)
철: (한숨에 들이키며) 또 줘! (클레오파트라는 다시 잔을 채워준다.)
클레오파트라: 한잔만 더! (하고 또 쳐주려 한다.)
철: 썩은 물보다는 색다른 동물이 좋아! (상대방의 어깨를 주린듯이 빤다.)
클레오파트라: 호호호……. 아이 징그러워! (하며 철을 떠다민다.)
철: 싫어? 싫다믄 죽여 놓는다!
클레오파트라: 내 말 듣겠다고 약속한다문--
철: 뭐든지 이 세상을 부셔 버리자는 약속이문 더욱 좋고!
클레오파트라: (만족해서) 아이 착해……. (하면서 철을 안는다.)
두사람 한덩어리가 되었을 때에--(F.O)
장: 一 一(일일) (한길)
(F.I)
소란스러운 거리 풍경. 소장은 짓뫼진 야대를 고치고 있고 삼룡은 죽 솥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
남녀 노소의 전재민들은 일열로 늘어서서 죽 끓기를 기다리고 있다.
담배 목판을 내놓은 희숙은 제 생각에 잠긴듯 우두커니 앉았다.
양식 목조 건물 아랫층 창에서 간간이 새어나오는 클레오파트라와 미꾸리의 웃음소리
시장 쪽에선 장사치들의 외치는 소리. 매춘굴 쪽에서 정보원 나타난다.
부산손님과 그의 똘만이 따랐다.
정보원: (걸어 나오면서)……. 이만하면 간밤의 경과는 알겠습니다. 내가 보는 바엔 귀하에게도 실수가 없는바 아닙니다. 왜 그 귀중한 물건을 지니고 하필 저런델 출입하셨느냐 말이오.
부산손님: 좀처럼 구할수 없는 물건을 손에 넣어 주기에 그 인사차로…….
정보원: 그걸 소개해 준 사람은?
부산손님: 바로 전재민 구호소 소장이었지요.
똘만이: 마침 저기에--
정보원: 겅말!
소장: 애구! 누구시라구!
정보원: 문제의 그 다이야반지 어디서 구하셨지요?
소장: 이북서 넘어 온 피난민한테서요.
정보원: 그 사람을 내게 데리고 올 수 있겠오?
소장: 있구말구요. 곧 찾지요.
정보원: (똘만이의 이마를 가리키며) 이런 상처를 낸 자식하고 간밤에 소매치기의 혐의를 받은 여자하고는?
소장: 피차에 전연 모르는 사이 같앴어요. 다른 테이블들을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정보원: (클레오파트라의 처소를 가리키며) 저게 그 여자가 들어있는 데라구요?
소장: 불러 낼까요?
정보원: 둬 두시오. (갑책을 호주머니 속에 도로 넣으며 죽을 사먹고 있는 전재민들을 보고) 애구. 소장님. 큰 사업 하십니다그려. 헌데 죽값을 받나요?
소장: 천만에요. 물론 무료죠. 이런 사업은 무료로 해야 의의가 있다는 것 쯤은 난 잘 압니다. 나두 관물을 먹은 놈이니까요. 허지만 부리는 아이의 인건비 정도로 약간--얘, 삼룡아. 철철 넘게 가뜩 퍼 드려라. 이건 국가적인 사회사업이니까.
삼룡: (엄청나게 큰 소리로) 예! 자아. 철철 넘게 가뜩가뜩 담았어요.
(하면서 실상은 반그릇도 못되게 죽을 퍼서 두더지에게 준다.)
두더지: 이게 철철 넘는검매?
삼룡: 애구머니, 너무 놀려서 쑥 들어갔군 그래. 걱정 맙슈 이렇게 듬뿍 드립니다. (하면서 실상은 그와 반대다.)
두더지: (아무 말없이 삼룡의 빰따귀를 갈기더니 야대에 써 붙인 구호소 선전 광고지를 떼어 한길에 떼어 내던진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명실공히 철철 넘게 듬뿍 퍼 담는다.)
소장: 이 자식이 야마시를 부렸지! (하며 정보원더러 봐달라는 듯이 울고 있는 삼룡의 귀밑때기를 붙이고는 변명하듯) 큰일 났습니다. 요즘 새끼들은 시키잖은 짓을 저렇게-- 남을 속이는걸 장한 일로 아는 모양이죠?
삼룡: (어이없어 항번하려고 나서며) 소장님, 아니 소장님이…….
소장: (몽둥이를 번쩍 들며) 이놈아. 저 광고지 주워다 못 붙이겠나? 껑충대지 말고…….
삼룡 하는수 없이 다시 선전문을 다시 건다.
정보원: 감독을 철저히 하셔야겠군요.
소장: 에이 정말 골치예요! 도시 세상이 이래서야 살겠어요?
정보원: 자아 수고허슈.
소장: 안녕히 가세요. (정보원의 뒤를 따라 나가려는 부산 손님에게) 정말 미안해요. 이건 소개해 드리지 않은것만 같지 못하게 됐어요.
부산손님: 그러나 그 물건은 꼭 찾고야 맙니다. 그걸 잃고는 내 사업이 아주 거덜이 나니까요.
소장: 암 그래야지. 그 수사에는 나도 전적으로 성원하겠어요.
이때 양식 목조 건물에서 철이 나타나더니 희숙을 힐끗 쳐다.
보고는 허공에 대해 몇개의 펀치를 먹인다.
실연 당한게 분해 못견디는 모양이다.
똘만이: (철의 출현을 알리기 위해 부산 손님을 꾹 찌른다.)
부산손님: 역시! (철을 눈여겨 본다.)
철: 이 피래미 새끼들이 왜 날 째려! (하며 한대 먹이려 한다.)
소장: 무슨 짓이오. (하며 철의 앞을 막아선다.)
크레오파트라: (이 때에 현관 댓돌 위에 나타나 애교가 흐르게) 벽돌 날 두고 혼자서 어딜?
철 클레오파트라를 휙 들어 건공중에 치켜 올린다. 클레오파트라 어린애 같이 <애그그> 하며 호호거리고 웃는다.
철 희숙이 더러 봐 달라는듯이 클레오파트라의 입을 몇번이고 맞춰 준다. 희숙 얼굴을 돌리며 자기 방으로 피해 간다.
크레오파트라: (철의 손을 끌고) 이리와. 식사는 저기 저 집이 좋아.
미꾸리: (현관문을 바쁘게 잠그고) 같이 가! 같이!
(퇴장하는 철과 클레오파트라의 뒤를 쫓아 간다.)
부산손님: 저래도 저것들이 한패가 아니란 말요?
소장: 간 밤의 싸움 끝에 저렇게 됐지 결단코 전부터…….
부산손님: 쓸데없는 두둔 하다간 소장마저-- 알겠오? (획 나간다 똘만이 따라 나간다.)
소장: (불안을 느낀듯) 잘못 하다간 나까지 걸리겠는걸!
삼룡: (여태 부루퉁해 있다가 얻어 맞은 빰을 만지며) 소장님 예 있다간 제 귀밑때기가 돌덩어리래도 못 견디어 내겠어요.
소장: 그러니까 세사살이가 어렵다는것 아니냐? 그게 다 공부야!
삼룡: (대들며) 거짓말 하는게 공부예요?
소장: (화가 나서) 이자식아, 머리가 복잡해 죽겠는데 왜 헛소리를 시켜?
삼룡은 소장이 쏘아붙이는 바람에 질려서 물러난다.
소장은 점장이에게 돈을 던져 주고 야바위판을 돌린다. 물레끝에 매달린 바늘<대길>에서 멎는다. 흐뭇이 <흠 대길이다>
소장의 입에서 경쾌한 휘파람이 나온다. 그는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바쁜듯이 매상고를 계산한다. 로오즈 매리, 풀없이 등장. 타월과 대야를 들었다. 목욕하러 가는 길이다.
소장: 로오즈 매리 왜 그대로 지나가! 오늘은 맡길게 없나?
로오즈: ……. 없어요.
소장: 아니 그 따위 벌이로 언제 방을 한칸 장만 해? 부산에다가…….
로오즈: (주춤서서 뭘 생각하더니) 정말! (하고 섭섭한 웃음을 지으며 발을 옮긴다.)
소장: 딱해.
희숙: 백련아!
로오즈: (발길을 멈추고) 장사 잘 되냐?
희숙: (종이에 싼것을 손에 쥐어주며) 이것 받아라. 많진 못하다만 그것 보태서 철일 데리고…….
로오즈: 무슨 소리냐?
희숙: 큰일났다. 너 저집에 든 클레오파트라란 여자 알지? 철이가 그 흉악한 것한테 걸렸구나. 그 계집한테 그의 일생을 망치기에는 그의 전정이 너무 아깝잖어? 더구나 철이는 학생때에 너를 좋아했고 너도 철이를 침이 마르게 칭찬한 적이 있잖었니?
로오즈: 그러니까 이 돈 노자에 보태서 철이 데리고 부산가서 살란 말이로구나 날더러?
희숙: 음, 그래
로오즈: 호호호……. 메가 약혼을 안했더라면 내가 프로포오즈했을지도 몰랐어. 사실이야. 허지만 지금은.
희숙: 지금은 어때?
로오즈: 솔직히 말해서 철이와 같이 너무 이상에만 쏠리는 사람은…….
희숙: 난 너도 꽤 이상을 내세우니까 철이완 꼭 맞을줄 아는데…….
로오즈: 남편이란 좀 융통성이 있어야잖니? 막말로 거짓말도 약간 할줄 알고 급한땐 악한 일이라도 눈끝하나 까딱하지 않고 해낼만한 배짱도 있어야 한단 말이다. 헌데 철인 옳고 바른것만 찾으니 그게 一八(십팔)세기 낭만파가 아니고 뭐야. 너무도 구식야. 현실에 맞잖어. 지금 세상엔 약아 빠져야 살아. 따지고 따져서 제게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일은 거들떠 보지도 말아야 돼. 저 소장과 같이……. 그런 의미에서 내 결혼의 대상은 철이 같은 이상주의 타잎에서 소장같은 현실주의 타잎으로 옮겨졌어.
희숙: 넌 철저하구나.
로오즈: (멀리서 울리는 대포소리를 들으며) 저 대포소리가 날 그런 안전지대를 찾게 해줬지. 너도 나와 일반일걸. 그래서 억지로 철일 내게…….
희숙: 아냐. 난 그렇잖아
로오즈: 그렇잖다문 왜 남에게 제 약혼자를 떼어 맡기려 드냐? 그 돈으로 너하고 내 빼지. 더구나 이 돈이란 얼마나 고생해서 모은건데 이 어수선한데서 푼푼히…….
희숙: 그러면 백련아. 너 그를 꾀어 여기서 좀 떠나게 해 줄수 없겠니? 친구로서 그만한 수고는 해줄수 있잖니?
로오즈: 얘, 내 나이 지금 스물 셋이다. 내년이면 스물 넷. 오올드 미스야. 얼른 하나 골라 잡아야지 남의 심부름 하다간 괜한 오핼 사서 나까지 안 팔려.
희숙: (딱한듯이 머리를 썩썩 긁으며) 이거 어떡허나?
로오즈: 계집애 참 우습구나. 아무리 약혼했더래도 지가 싫으문 그만이지 왜 사서 걱정이야? 호호호……. (퇴장)
삼룡: (희숙에게 가까이 가며) 정말 그 자식을 뭣땜에 생각해? 누나 나도 좀 모아놓은게 있으니 같이 얼려서 걸어서라도 가 부산으로……. 예선 나같은건 정말 못 살겠어. 거짓말을 잘해야 하니……. 그 얼마나 어려운 일야.
희숙: (담배 목판을 걷으며) 방에서 좀 쉬어야겠어.
삼룡: 그 망나니 생각은 말라니까그래…….
희숙: 이따 봐. 골치 아파.
희숙, 물러나려 할때에 철과 클레오파트라. 매춘굴 쪽에서 등장. 미꾸리 뒤쫓아 온다. 무언지 싸 들고-- 희숙 발길을 도로 멈춘다.
미꾸리: 요리 한접시 해왔어. 셋이서 또 한잔 먹을려고…….
크레오파트라: 오빤 영리하셔
분노한 눈으로 희숙을 쏘아보다가 철은 분함을 참지 못하는듯 한길 한구석에 딩글어져 있는 <철해머>를 마구 돌린다.
그 <해머> 한길 사람들의 머리를 스쳐 휙휙 돌아간다. 모두들 비명을 올린다.
클레오파트라와 미꾸리는 쾌재를 부르며 깔깔거린다. 그러나 그 <해머> 공교롭게 두 사람의 머리를 스친다.
이들 또한 기겁을 한다.
미꾸리: (소리친다.) 얘 벽돌아! 그것 그만두지 못하겠냐?
미꾸리 덤벼들어 철을 안아 버린다. 철은 미꾸리와 같이 나둥그라진다. 해머 철의 손에서 남으집 안방으로 날아 들어간다.
<이놈의 새끼> 하며 미꾸리를 쫓는 철. 미꾸리 매춘굴 골목으로 내뺀다. 철 추격한다. 이로써 위기를 모면한 한길 사람들 모두 한숨을 놓고 제대로의 위치로 돌아간다.
정보원 등장. <여보십시오> 하고 양식 목조 건물의 유리창문을 두들긴다. 창문에서 클레오파트라 얼굴을 내민다. 그는 철의 탈선적인 위기를 피해 조금전에 자기 방으로 기어들어 지금 막 옷을 벗으려던 참이다.
정보원: 좀 나오시오
클레오파트라: 왜요?
정보원: 나오면 알 일이요.
크레오파트라: 싫어요. (창문을 닫아 버린다.)
정보원: (실내로 들어가) 이 값진 가구들은?
크레오파트라: 빈 집에서 훔쳐왔을까봐 그러슈? 남의 인격을 무시마슈 부산으로 피난간 내 친구가 맡겨놓고 간 거요.
정보원: 부인은 왜 피난 안 가셨지?
클레오파트라: 가건 말건 그건 내 자유가 아뉴? 국민의 자유는 대한민국의 헌법에서 보장됐을 줄 아는데요.
정보원: 같이 가요. 잠깐
크레오파트라: 간밤에 그 소매치기 사건 때문에? 난 싫어요. 그따위 더러운 혐의는 받고 싶잖으니까!
정보원: (위협적으로) 정말 안 갈테요? (달래듯이) 갑시다. 순순이 타이를때에…….
클레오파트라 할수 없이 정보원에게 연행되어 퇴장. 소장을 위시한 이웃 사람들 수상한 듯이 그 뒷모양을 바라본다. 때마침 미꾸리, 철에게 쫓겨서 나타나다가 이 광경을 보고 주춤 선다.
철: (바라보며) 웬 일이야?
미꾸리: ……. 글쎄(속이 집히는 바 있는듯 별안간 당황해지며 자기집으로 발끝을 돌리려 한다.)
철: 어딜 가요? 같이 따라가 보잖구…….
미꾸리: ……. 가 가만있어. (현관 안으로 초조히 미끄러져 들어간다.)
철: 왜 저렇게 꽁무니를 빼? (창문을 열고 안을 향해) 미꾸리형. 같이 가 봐요. (안에서 대답이 없다.) 미꾸리형!
미꾸리: (안에서) 가만 있으라니까!
철: 저런 겁쟁이! 나 혼자라도 가 봐야겠군. (클레오파트라가 끌려나간 쪽으로 나가려 한다.)
희숙: (철의 앞을 막아선다.)
철: 왜 이래?
희숙: 가지 마아. 클레오파트라란 가까이 했다간 큰일나. 난 여기 앉아 허구한 날 그의 행동을 보고 있으니까 잘 알아. 그는 아주 나쁜 여자야.
철: 나쁜게 어떻단 말야? 난 나쁠수록 좋아. 나쁘기 때문에 사귀는 거야. 클레오파트라 보다 더 나쁜년이 이 세상에 있다면 난 그년한테 빠질테야? 허지만 이 지구상엔 너같이 나쁜년은 없을걸 六.二五(육.이오)전에 넌 내게 뭐라구 맹세했지? 나는 당신의 아내가 되겠다구? 그 소린 아직 내 귀에 쟁쟁해. 그런데도 넌 날 배반했어. 다른 사낼 맨들었단 말야. 이런 나쁜년이 누구더러 나쁜년이래?
희숙: 철이 나같은 거야 어떻건 철이만은 맘을 바로잡아 바른 길을 걸어야 하고 하던 그림 공부도 계속해야잖아? 문화단체며 대학들이 모두들 피난지에서 활동을 개시했대. 제발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 (하며 돈뭉치를 철이 손에 잡혀 준다.)
철: 이건?
희숙: 몇 푼 안되지만 노자로 써 줘.
철: 아니 이게 날 놀리는게 아냐?
희숙: 제발 얕은 생각 먹지 말고 맘을 크게 잡아 인생의 최후 목적이 뭐라는걸 잊지 마아. 이 소린 六.二五(육.이오) 전에 철이가 내게 들려준 소리 아냐?
철: 그런 소릴 어찌 감히 네년의 그 향내 나는 입으로 (갑자기 절규하다시피) 에이 양의 껍질을 쓴 여우! 위선자! 갈보! (하며 뺨을 갈긴다.)
희숙 얼굴을 싸고 돌아서 느끼더니 젖가슴이 별안간 결리는듯 움켜잡고 꼼짝 못한다. 가까스로 기어서 이층 자기 처소로 올라간다.
삼룡: (분함을 참지 못해 철에게 대들며) 이자식아! 왜 약한 여자한테 손찌검을 하며 그 무슨 그런 더러운--
철: 아니 요놈이 바로 저년의 샛서방이 아냐?
삼룡: (억울해서 글썽거리며) 이런! 희숙인 내 의누님이야.
철: 의누이?
삼룡: (자신있게) 그래!
철: 하하하……. 제 동생의 남편을 데리고 사는 년을 나는 봤고 사촌끼리 연애를 속삭이는 것도 봤다. 이렇게 환장을 한 세상에 의동생놈 쯤야…….
삼룡: 이런 추잡스런! 희숙이가 얼마나 깨끗하다고 그따위! (머리로 철을 받으려 한다.)
철: (붙들며) 잘 만났다. 너 바른대로 토해라! 흥분하지 말고 예 앉아서--
삼룡: 우리 누나는 네놈을 한번도 나쁘게 말한 적이 없다. 그런데 네놈은 우리 누나를……. 이런! (글썽거리며 철의 멱살을 틀어 잡는다.)
철: 네놈이 날 칠테냐?
삼룡: 네까짓게 사내꼬부랑이냐? (당수의 공격적 자세를 취한다.)
철: 도적놈이 날 쳐죽이려는 격이로구나! 이런 뻔뻔스런……. (삼룡을 밀어버린다.)
삼룡 야대를 안고 쓰러진다. 다시 대드는 삼룡을 철이 메다친다. 소장 나타나 깜짝 놀라서 철을 막아서며 <이놈아 삼룡아 내빼라! 얼른!> 삼룡을 골목길로 도망시킨다. 철은 삼룡을 추격한다.
장: 一二(일이). (벽돌 건물의 이층)
최정애와 희숙이, 희숙은 점가슴을 안고 엎디었다.
정애: 어떻게 해? 의사를 부를까?
희숙: (가슴을 움켜잡은 채) 안돼! 언니, 안돼!
정애: 그 가슴의 상처가 탄로날까 봐! 뵈면 어때? 의사한테야…….
희숙: 싫어! 싫어! (옷을 깊이 여민다.)
정애: 허긴 뵐 만한 의사도 없긴 하지만, 이 전투지구엔…….
방문이 열리어 삼룡이 들어선다. 숨이 턱에 닿았다. 철에게 쫓겨 오는 것이다.
삼룡: 누나. 그 개망나니 상관도 말라니까. 왜 괜히 말을 걸어 가지고 이 봉변이야? 하지만 걱정 마아. 이 원수는 내가 갚고야 말테야 시이! 그까짓 놈팽이! 내일부터 나도 당수 배울테니까! 석달만 지나면 그까짓것 두서넛쯤 단박야. 이래뵈두 내가 얼마나 놀았다구 六.二五(육.이오)전에 꽤 날쳤어 인천서--
정애: (이마의 상처를 들여다 보며) 뭐야? 흘러내리는게…….
삼룡: (슬쩍 씻는다. 손에 시뻘건 피가 묻는다 놀라서) 피다! 음. 그 덥치가 이랬군! 허지만 괜찮아 고약이나 붙이면 단박야.
정애: (이마에서 또 피가 흘러 내린다.) 가만 있어. 약이나 바르게 (약상자를 찾아낸다.)
삼룡: (정애의 손을 치우며) 피가 흘러서 죽으문 어때요?
정애: 가만 있으라니까!
삼룡: 난 알고 싶어. 희숙이 누나가 정말 그 놈팽일 사랑하는지?
희숙: 애구 그만 해! (하며 소리친다.)
삼룡: (시무룩해지며) 역시 좋아하는게군? 그 메주가 바로 이걸써 보낸 작자 아냐?
(책상머리에 있는 정철의 수상록을 들어 보인다.)
희숙: 앗어! (얼른 빼앗어 무릎 밑에 감춘다.)
삼룡: 뭐라더라! 우이동 멀다더니 당신과 걷는 길은 지척이구려? 에이 악질!
희숙: 관 둬!
삼룡: 난 다알어! 그런 연애편질 써서 누나를 꾀려다 안 되니까. 저 앞에 사는 예편네 소매치기 한테 붙었지? 에이 사깃군! (한길 쪽을 향해 퍼붙는다.)
희숙: (가슴을 움켜잡으며) 아야야……. (드러 눕는다.)
삼룡: 왜 가슴이? 아까 맞은 덴 뺨인데…….
정애: (희숙을 붙들어 주며) 희숙이 앞에선 그 자의 소린 하지마아.
삼룡: 왜?
정애: (가슴을 가리키며) 자꾸 결리지 않어.
삼룡: 그럼 누나는 역시 그 메주를…….
정애: 가서 쉬어.
삼룡: (정애가 싸매어 준 붕대를 심술스럽게 잡아 뜯으며) 가죠! 갈 테예요! (화가 나서 급히 퇴장)
정애: 참 죄없는 아이지?
희숙: 언니 나 좀 누울테야.
정애: (붙들어 주며) 작은 아씬 날 원망하지? 정말 미안 해! 작은 아씨한텐 허지만 아무리해도 난 철일 용서할 수 없어 오죽하면 어린 달이까지 그를 무서워하는 나머지 저렇게 병이 났겠어. 우리가 그를 미워하는건 이북으로 납치된 오빠에 대한 의린줄 난 아니까--
희숙: 언니 설혹 언니의 충고가 없었다손 치더라도 현재의 나로서는 누구하구건 결혼할 수 없어. 상처가 얼마나 지독하면 맘이 조금만 상해도 이렇게 가슴이 쑤시겠수? 난 폐물야. 완전한 폐물야 이런 꼴로 결혼한대야 남의 걱정거리 밖에 더 돼? 언니 조금도 불안하게 생각지 마아. 나는 언니와 같이 납치된 오빠가 살아 오기만 기다릴 테니까.
정애: (감격한듯 희숙의 손을 꽉 쥐어 준다.)
희숙: 허지만 언니 아무리 생각해도 철이 아까워. 제 갈 길을 제대로만 걸으면 정말 보람있는 일을 해 낼 인물인데 저렇게 악질한테 걸려서 타락해서야 되겠수? 어떻게 해서라도 저 여우의 아가리에서 빼어내야 겠는데 언니 누구건 사람을 넣어서 철이의 정신이 돌아오도록 충고해 줄 수 없을까? 제발 소원이야.
정애: 그런건 잊어 버려요. 생각하믄 가슴만 결려.
달이: 어머니 조울려. 자장가 불러 주어 (하며 정애의 무릎에 눕는다.)
희숙: 언니 재워 주구려.
정애 자장가를 조용히 불러 준다.
장: 一三(일삼). (한길)
저녁
삼룡, 한길 중앙에 폭격으로 허리가 부러진 전주에 몸을 기대고 섰다. 분해서 입술을 깨물고 있다.
멀리서 여전히 포소리. 간간히 콩볶듯하는 기관총 소리!
이층에서는 정애의 자장가 소리 새어 나온다.
삼룡. 아무리 생각해도 참을수 없다는 듯이 팔을 걷어 올리며 양식 목조 건물의 현관 문을 발길로 찬다.
삼룡: (소리친다.) 이 악질! 사깃군! 연애박사 홀리개! 이리 나와! 내가 네놈한테 질 줄 아냐? 어림없다. 인젠 죽자 사자다!
(웃통까지 벗는다. 당수 연습을 한다. 대판으로 싸울 판이다.)
정보원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도적질한 장물을 감추고 있던 미꾸리. 무슨 일인가 하고 한길로 나와 본다.
미꾸리: (삼룡임을 알고 안심하며) 이자식아 미쳤냐? 그 무슨 지랄 이냐?
삼룡: 그 자식 내 놔요. 그 새로 온 건달 말야.
미꾸리: 그러지 않아도 네 놈을 찾아 다닌다. 붙들려믄 너 없어져.
삼룡: 죽어도 좋아! 어딨는지 대 줘! 끝까지 해 볼테야.
미꾸리: (어이없이 웃으며) 너 그따위 똥배짱 부리지 말구…….
삼룡: 난 아저씨를 사람으로 안 봐.
미꾸리: 응?
삼룡: 제 마누라의 입을 맞춰도 못 본 체하는 그런--왜 그 나쁜 놈을 못 내쫓는 거요? 내 아버지도 계모가 놀아나는 걸 막지 못해 망했어. 그래 나까지 이 꼴이야.
미꾸리: 얘 헛소리 하지 말구 정보원 있는데나 좀 갔다 오너라. 자아 심부름 값이다. (돈을 내주며) 이집 아주머니 거기 있나 없나 창 틈으로 보고 오란 말야. (삼룡 돈 받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니까) 이거 안 뵈냐? 이자식아!
삼룡: 관 둬! 난 그자식 찾아서 혼을 내 줄테야! (막대기를 주어 들고 퇴장)
미꾸리: 하하하……. 자식도! 하하하
로오즈매리 등장. 전재민 구호소 소장에게 매달려 <재즈 송>을 흥흥거리면서 미꾸리 현관을 잠그어 놓고 퇴장.
로오즈: 서울 장안이 왜 이렇게 좁아? 저녁 먹고 내내 걸어도 개미 쳇바퀴 돌듯이 골목에서만 뱅뱅 도니…….
소장: 늦잖었어? 홀에 들어가 보지.
로오즈: 지긋지긋해. 지옥도 이렇게 싫진 않을거야.
소장: 큰일 났는걸. 직업이 그렇게 냄새가 나서…….
로오즈: 세상에선 우리 같은 계집을 <택시>라고들 부른다구요. 운임만 내면 아무나 태 준다는 뜻이래. 참 기맥힐 노릇이지.
소장: 틀렸어! 로오즈매린…….
로오즈: 왜?
소장: 그렇게 높이 올라 앉았으문 누가 요조숙녀로 본대?
로오즈: 내겐 꿈이 있으니까--
소장: <택시>가 아니고 남의 <자가용>이 되겠다는 꿈이겠군?
로오즈: 물론이지 내가 홀에 나가는것두 내 꿈을 위해서야 . 부산 가서 방 한간이라도 얻을 밑천을 벌려고 그래. 알뜰한 신랑하나 골라 잡아 그 방에서 행복스런 가정을 이루자는 거지.
소장: 야아! 그 꿈 원대한데!
로오즈: 소장, 예가 뭐가 좋아. 부산 가 같이--
소장: 싫어!
로오즈: 왜?
소장: 내게도 원대한 꿈이 있어!
로오즈: 그게 뭔데?
소장: 배를 한척 사는거야.
로오즈: 부산이 아니구 더 멀리 내빼자는 수작이군 그래?
소장: 천하에 예측 못할건 전쟁야. 더구나 현대엔 기상천외한 신무기들이 뒤이어 나오니까. 언제 전국이 어찌 뒤집힐지 알아?
로오즈: 그런 무서운 소린 그만 둬! 그래 어딜 가?
소장: 바다는 넓겠다. 배만 있으면 어딘들 못 가 남양이구 하와이구…….
로오즈매리, 홀에 같이 갈 애들 없을까?
로오즈: 글쎄.
소장: 배 사는데 합자할 수 있는 애들 모아 봐.
로오즈: 날 공짜로 실어다 준다문 벗고 나서서 돈을 모아 보지.
소장: 그야 물론.
로오즈: 정말?
소장: (로오즈매리를 끌어 입을 맞춰 주고) 약속한 표시야 못 믿겠거들랑 또 한번! (또 키스해 준다.)
로오즈: (만족해서) 호호호……. 멋진데!
소장: 얼른 가서 활동 해. 소문나면 너도 나도 할테니까. 귀찮어. 그러니 은밀히 해요.
로오즈: 오오케!
로오즈매리 경쾌하게 뛰어간다. 소장도 성취될 앞날의 행복에 만족한듯 휘파람 삼룡이 막대기를 들고 철을 찾아 씩씩거리고 뛰어 들어 간다. 소장과 부딪힌다.
소장: 이자식아 벽장 속에나 숨어 있잖고 어딜 다녀? 그자 한테 붙들려서 뼉다구 부러질려고
삼룡: (퉁명스럽게) 맞아 죽는게 차라리…….
소장: 왜?
삼룡: 제 월급이나 심해 주쇼.
소장: 어쩌자구?
삼룡: 여긴 못 있겠어요.
소장: 이자식이 밑도 끝도 없이--
삼룡: 희숙이 누나는 날 조금도 생각해 주지 않는걸요. (글썽거린다.)
소장: (크게) 하하하……. 귀하신 도령놈께서 실연을 당하셨구만! 이자식아. 꼴보기 싫다! 들어가 자빠져 자기나 해라! (발길로 찬다. 구호소 안으로 쓰러진다. 삼룡 문을 차고 뛰쳐 나오려 하니까 밖에서 문을 걸어 버린다.)
안에서 발악하는 삼룡의 소리!
이 때에 클레오파트라 등장. 미꾸리와 같이 다음의 대화를 은밀히 속삭이며…….
미꾸리: 그 짜브가 그렇게도 우리를 의심해?
클레오파트라: 들통났어.
미꾸리: 맘 턱 놓고 이젠 딱 잡아떼 꼬리가 잡힐만한 건 내가 죄다 치워 버렸으니까. 클레오파트라 없는 새. (은근히) 그 다이야반지 셋은 부엌 찬장 밑에 밀어 넣어 놓았어.
(허리가 부러진 전주 뒤에 숨어 있던 소장. 이 대화를 엿듣자. 되었다가듯 감격하다가 전주와 함께 길바닥에 쓰러진다. 미꾸리와 클레오파트라 깜짝 놀란다.)
소장: (당황하여) 두 분의 오시는 소리가 나기에 무슨 소식이나 얻어 들을까 하고 집에서 나오다가 그만……. 헌데 이 전주가 이렇게 골병이 든 줄은 몰랐어.
삼룡: (갇힌채 문을 차고 소리 지른다.)
소장: 이놈의 새끼야. 가만 있어!
클레오파트라: 우리의 하는 소릴 엿들었겠구려?
소장: 천만에요. 도대체 뭐래요? 붙들어 가서--
철 매춘굴 골목에서 헐레벌떡 거리고 등장.
철: 그 어린 새끼 어딨어?
삼룡: (안에 갇힌채 문을 두들기며 소리친다.) 이 문 좀 열어요! 좀 열어요!
철: 그놈의 소리 아냐? (삼룡을 찾아 간다.)
클레오파트라: (붙들며) 이 봐! 제 예편네가 이렇게 망신을 당해도 모른체하고 돌아다니는게 어딨어?
미꾸리: 소매치기 혐의를 받았다누 원 기맥혀서--
철: 가만 둬! 이놈의 세상 것뫼 놓고야 말 테니까! 이 세상엔 아무것도 없어. 의리고 체모고 정조고 뭐고 다 썩었어. 제보다 나이 어린걸 의동생이니 같이 데리고 자니. 이게 썩어빠진 세상이 아니고 뭐람. 난 다 부시고 말테야! 산산이! 가루가 되게!
미꾸리: (클레오파트라를 꾹 찌르며) 됐어! 그 배짱. 그 기상이문 돼! 자아 속상하는데 우리 들어가서 한잔 먹세! 자아 소장도 오슈 (클레오파트라와 같이 철을 현관 안으로 밀고 들어간다.)
소장도 현관 안으로 따라 들어가자 삼룡이 문을 박차고 나와 철을 추격하여 목조 건물로 향한다.
이 때에 성경할아버지 이층 층계에서 내려 온다.
삼룡, 주춤 선다.
삼룡: (성경할아버지의 심각한 표정을 바라보고) 어때요? 누나 좀--
성경할아버지: 가슴이 여전히 아픈 모양이야.
삼룡: 시이! 철이란 자식을 아직두 생각하고 있는게군?
성경할아버지: 그런가봐
삼룡: 음. (하며 양식 목조 건물을 증오에 불타는 눈으로 쳐다 본다. 환히 비친 창문 안에서 값싼 축음기판 소리 여전히 들린다.)
성경할아버지: 왜 그래?
삼룡: (자기의 생각을 부정하려는 듯이) 아녜요. 아무것두. (멀찌감치 피해 앉는다. 갑싼 레코오드 음악소리 여전히 들린다.)
성경할아버지: 나도 희숙이에게 일렀다만 너도 일러라. 주님께 자꾸 자꾸 기도 올리라구. 그러면 웬만한 병은 물러 가느니라. 이 세상에서 무소불능 하신 인 주님뿐이니까. 六.二五(육.이오)때 우리 집안 식구가 폭격에 다 죽었지만 나만 살았어. 내가 내 손에서 성경책을 놓지 않은 까닭이야. 허지만 내가 죽고 젊은 것들이 살아야 할 것을……. 난 그들을 성당에 데리고 다니지 않은걸 후회한다. 에이, 지금에야 후회해서 뭘 해?……. 늦었다. 들어가 자거라 그만.
삼룡: 성경할아버지 잠깐만.
성경할아버지: (자기의 처소로 들어 가려다가 말고 발길을 멈춘다.)
삼룡: (야대에서 종이 조각에 뭔지 급히 써서) 성경할아버지 이걸 저 문틈으로 좀--
성경할아버지: 뭔데?
삼룡: 이따 말해 드릴께요.
삼룡 성경할아버지를 억지로 창으로 떠다민다. 할아버지, 그 쪽지를 양식 목조 건물의 문틈에 밀어 넣는다.
실내에서 들리던 미꾸리의 노랫소리와 축음기판 소리 그친다.
문이 휙 열리며 철이 바깥 한기를 내다 본다. 어둠을 살핀다. 아무것도 발견 못한다.
손에 든 쪽지를 읽어 본다.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한길로 나온다. 한길에는 역시 아무도 뵈지 않는다.
철: 이건 분명히 六.二五(육.이오)전에 내가 희숙이란 년한테 써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인데……. 그가 아니고는 이걸 알 사람이 없어 (희숙의 처소인 이층으로 올라가려다가 층계 중턱에서 발을 멈 올라가려다가 층계 중턱에서 발을 멈추고 다시 쪽지를 들여다 보며) 아니다. 이건 희숙이 글씨가 아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장난을 할 애도 아니구…….
한 구석에 숨어서서 철의 행동을 엿보고 있던 삼룡, 할아버지를 앞으로 밀어낸다.
성경할아버지: 에헴! (하며 밝은데로 나선다.)
철: (가까이 와서) 할아버지 아녜요?
성경할아버지: 왜?
철: 혹 보셨어요? 저 문틈으로 이 쪽지 넣는걸…….
성경할아버지: ……. 음
철: (다급히) 누구예요? 누가 넣었어요?
성경할아버지: 내가 넣었어.
철: (의아하여) 뭐요?
성경할아버지: 지금 바로 내가 넣었단 말야.
철: 할아버지가 이 사연을 알 리가 없어 말씀 해 주세요 예? 누가 넣었는지?
성경할아버지: 대면 단박에 또 손찌검 하려구?
철: 아녜요.
성경할아버지: 약속할 수 있을까?
철: 해요 하고 말구요.
성경할아버지: 삼룡아! (하고 부른다. 삼룡 나선다.)
철: (놀란 눈으로) 이놈이 썼나요? 바로 이놈이? (하고 때리려 한다.)
성경할아버지: (막으며) 이건 약속이 틀려.
철: 어떻게 아냐 네놈이?
삼룡: (대답 대신에 철의 글의 다른 구절을 외어 들린다.) 살자. 진실하게-- 허위와 기만으로 백년 영화를 누리기 보다 내일 죽은 한이 있더라도 우리는 살자. 진실하게--
철: (놀라며) 어렵쇼?
삼룡: 또 이런 것도 있잖어? (외운다.) 삭풍은 왜 살을 여위는가? 봄바람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여름비는 왜 세차게 내리는가? 은빛 구름을 가을 하늘에 날리기 위해서-- 님의 눈초리는 왜 맑은가? 죽은 낭구에 꽃을 피우기 위해서- 어찌된 일야? 그게 모두 내가 희숙이란 년한테 써 보낸 글들인데…….
삼룡: 희숙이 누나가 외우는걸 내가 어깨너머로…….
철: (의아해서) 네가 그것의 샛서방이었으니까?
삼룡: 뭣이?……. (하고 대들려 한다.)
성경할아버지: 만일 그렇다면 희숙이가 왜 애앞에서 그걸 외우겠나? 원 상식에 벗어난 소리두…….
철: 지금도 내가 써 보낸 그 글들을 가지고 있나요? 희숙이가?
삼룡: (나서며) 물론 어떻게 손에서 놓지를 않는지 이 할아버지의 성경책보다 그 뚜껑이 더 새까맣게 됐어. 그리고 그가 피난가지 않고 이 험악한 전투지구에 머물러 있는것두 약혼한 신랑을 기다려서라구 그랬어. 서울에 있어야지 다른데로 옮기면 연락이 끊어진다는 거야.
철: 정말?
삼룡: 공갈이문 내 모가지 줘.
철: (삼룡의 손을 꽉 쥐며) 용서해 내가 너무 경솔했어.
삼룡: 이런 개망나니. 그렇게 자기만 생각해 주는 아가씨의 뺨을 치다니……. 정말은 네가 미워 죽겠어! 뜯어먹구 싶어! 허지만 난 참어. 그리고 일러 준거야. 누나의 괴로와하는게 보기에 딱해서…….
미꾸리: (문에서 얼굴을 내놓고 한길을 살핀다. 철을 발견하고) 혼자서 뭘해 어서 들어와 벽돌 (문안으로 다시 사라진다.)
철: 희숙이 뭘하고 있지?
성경할아버지: 가슴이 아프대 가슴이 아픈건 사랑의 탓이라고 옛날 노래에도 있잖어?
철: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하고 초조히 이층을 쳐다본다.)
성경할아버지: 밝은날 만나지. 희숙인 몸도 불편한데--
철: 아녜요.
(휙 몸을 돌려 이층 계단으로 급히 올라간다.)
장: 一四(일사). (벽돌 건물의 이층방)
문 두드리는 소리!
철: (밖에서 애원하듯 소리만) 희숙이 문 좀 열어. 늦어서 미안 하지만 좀 열어 줘! 얼른 희숙이! 희숙이!
희숙: (문을 못 열게 꽉 붙들고) 언니 언니도 좀 붙들어요. 들어오면 어떻게 허우?
철: (강압적으로) 안 열어 주면 부수고라도 들어 갈테야! 얼른 열어!
정애: 작은 아씨 만나 보지. 내가 피할 테니……. (달이를 안는다.)
희숙: 안돼요 언니--
밖에서 문을 잡아 챈다. 걸린 빚장이 부서지면서 철이 방안으로 들어 선다.
희숙 깜짝 놀라 비명을 올린다. 정애는 달이를 안은 채 어느새 밖으로 사라졌다.
방안을 두리번 거리던 철은 얼른 수상록을 주워 든다.
희숙: (빼앗으려 덤비며) 안 돼 그건!
철: (한 손으로 막으면서 수상록을 들춰 보고) 틀림없다. 四二七九(사이칠구)년 三(삼)월 해방 그 이듬해 부터 六.二五(육.이오) 동란 직전까지의 사년 동안 내가 틈틈히 써서 보낸 글들이다. 한장 없애지 않고 정성스럽게 차곡 차곡……. 표제를 붙여서 가로되 <정철 지음 수상록> 하하하……. 희숙이 이렇게 극진히도 날 생각하면서 어째서 날 가까이 못오게 하는거야? (씰룩거리는 입술을 깨물며 슬쩍 눈물을 씻고는)……. 옳아! 내가 개망나니가 돼 버려서-- 더구나 삼롱인가 하는 어린애한테 더러운 누명까지 씌워서 희숙인 정이 떨어진게지?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천격스런 놈이 됐는지, 내 스스로를 채찍질 한 때가 한 두번이 아냐. 난 지금 도마위에 얹힌 물고기야 위선 살고 보자. 하고 몸부림치는 동안에 뜻하지 아니한 짓을 저지르고 있어 희숙이 날 구해줘. 날 다시 한번 푸른 바다 넓은 물 속에서 거침없이 헤어다니게 해 줘. 난 물이 그리워 이 메마른 세상에서 내게 숨을 쉬게 해 줄수 있는 사람은 오직 희숙이 뿐야.
희숙: 내겐 그런 능력이 없어. 나 역시 이 동란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걸.
철: 왜 없어 있어! 있구 말구! 제발 날 날 사랑한다구 한마디만 해 줘. 그 한마디 소린 뒤집혀진 내 머리와 갈피를 못 잡는 내 넋을 바른 길로 인도해 줄 거야. 희숙이 한마디만! 자아! 얼른!
희숙: 몇천번 말해도 소용없어!
철: (수상록을 다시 보며) 내글과 내 필적을 이렇게 위하는 것 만으로도 우리의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희숙이의 결심이 충분이상으로 증명 됐는데 왜 이렇게 날 괴롭혀? (수상록을 들추며) 희숙이 우리의 지난날을 회상해봐. 우린 피차에 얼마나 사랑했던지-- 이건 우리가 인천에 같이 해수욕 같다와서 써 보낸 거군. (읽는다.) 아아 시원스런 푸른 파도 위에 두둥실 떠다니던 그 순간! 흰 모래 위에서 빨가숭이가 되었을때 우리는 확실히 원시로 돌아 갔었오. 그대와 나는 틀림없는 에덴동산의 아담과 이브였었오.
희숙: 그만 둬 줘요!
철: (또 읽는다.) 생명은 영원한 것일까요? 나는 모릅니다. 생명은 수유의 것일까요? 나는 모릅니다. 내 생명은 내것일까요? 나는 모릅니다. 내 생명은 신의 것일까요? 나는 모릅니다. 내 생명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나 그대와 마주 앉았을 때 비로소 내 생명의 파동을 내 가슴에 느낍니다.
희숙: 이것이 문제라면 자아 그 눈으로 똑똑히 봐요. (하며 철의 손에서 수상록을 빼앗아 찢는다.)
철: (놀라) 희숙이! (하고 대든다. 그러나 희숙은 어느새 발기 발기 찢어버리고 말았다.) 희숙이 이게 무슨 짓이야? 왜 이 귀중한걸…….
희숙: 인제 알았을거야. 내 본 본심을
철: 그런 연극을 해도 난 안 믿어 끝끝내 희숙인 제 본심을 속이고 있어. 그건 외부의 압력, 사모님 때문에 희숙인 날 경원하려는 거야. 그래서 이런 강경한 태도를 보인거야. 희숙일 만나기 전에 사모님을 먼저 봬야 하는걸 이 멍텅구리가 괜히 희숙일 괴롭혔어. 희숙이 사모님 어디계셔? (희숙 대꾸를 하지 않으니까) 사모님! 사모님! (하고 나가며 부른다.)
장: 一五(일오). (한길)
철은 사모님을 찾으며 이층 계단에서 딩굴듯 내려온다.
달이를 업은 정애는 철을 맞이하려는듯 도전적으로 앞으로 나선다.
철: 사모님 근본 열쇠는 사모님이 가지고 계신걸 괜히 희숙이만 괴롭게 했습니다.
희숙인 저를 진심으로사랑하고 있습니다. 희숙이 사랑은 六.二五(육.이오) 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뒷걸음치질 않았습니다. 전 그걸 느끼고 있습니다.
사모님께서 용서해 주신다면 저희들은 사랑의 꽃방석을 다시 펴고 중단됐던 결혼식을 올리고 중단했던 그림공부도 다시 계속 하겠습니다.
정애: 학생! 뻔뻔스럽게 그따위 소리가 어딨어? 달이 아버지가 제자로서 학생을 얼마나 사랑하고 애꼈오? 학생의 장래를 위하는 일이라면 솔선 앞서셨고 정철이가 아니면 그림공부 하는 학생이 없는 줄로 알고 계시지 않았소? 오죽하면 하나뿐인 여동생인 희숙이와의 결혼을 쾌히 승낙하셨겠소? 헌데 학생은 그 은혜를 짓밟고 자기의 은사를 괴로한테 강제로 자수시켜 지금 그 생사조차 모르게 하지 않았소? 그래 나와 달이를 이런 꼴로 만들었죠. 이래도 학생은 사람이오? 사람이걸랑 양심을 가져요!
(하며 자기의 울분을 못이겨 흑흑 느낀다.)
철: (같이 느끼면서) 그 때 제가 뜻하지 아니한 과오를 범한 것은 오로지 제 부친 때문이었습니다. 사모님도 아시다시피 제부친은 남대문 시장의 일개 상인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헌데 놈들은 무슨 대죄나 지은 것같이 잡아 갔습니다. 난 어떻게 해서라도 내 부친을 구해 낼려고 했습니다. 그래 놈들과 접촉했죠. 그러나 전 제 부친을 구하기 전에 놈들에게 발목을 잽혔습니다. 전 휘둘릴대로 휘둘려 마침내 선생님이 숨어 계신데까지 누설하게 된 거예요. (솟구치는 울음을 간신히 수습하여) 그리고도 전선에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놈들은 조국 전쟁을 완수시킨다는 미명아래에 이루 말 할 수 없는 만행을 감행하다가 마침내 전선이 불리해지니까 저와 제전우 몇사람을 어떤 고지의 소나무에다 철사로 휘휘칭칭 얽매어 놓고 손에 다간 기관총 한자루씩 쥐어 줬습니다. 그 고지를 사수하라는 거죠. 그러나 국군은 촌분의 유예를 주지 않고 포격을 해 왔습니다. 마침내 전 묶여있던 소나무와 같이 하늘을 날았습니다. 정신이 되살아 나자 전 대포밥으로 내세운 분대장놈을 찾아 갔습니다. 묻지 않고 죽여 버렸죠. 그리고 산맥을 타고 북으로 북으로 달렸습니다. 납치된 우리의 지도자들이 평안도 어느 산중에서 중노동을 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선생님을 뵈려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三八(삼팔)선을 넘으려니까 희숙이가 보고싶어 견딜 수 있어야죠. 그래서 되돌아 서울에 들린 거예요. 제가 범한 죄를 생각하면 전 도저히 이 하늘 아래 다시 살아 있을수 없으며 더구나 사모님을 면댈할 수 없는 놈입니다. 전 그걸 잘 압니다. 그러나 희숙일 보고 싶은 일념이 뻔뻔스럽게도 제 발길을 예까지…….
정애: (강경히) 듣기 싫소. 그만해요.
철: 사모님 그러면 애끓이 사랑하고 있는 두 영혼을 어떻게 해 주시렵니까?
사모님께서 끝끝내 저희들의 결혼을 막으시면 사모님은 제 장래는 물론 희숙이의 앞길마저 망치고 맙니다.
정애: 내가 왜 남의 앞길을 망쳐! 난 몰라. 몰라요. 결혼이란 본인의 의사 여하에 달린게 아냐?
철: 그러면 저희들에게 맡겨 주시겠단 말씀이세요?
정애: 내겐 이 결혼을 막고 어쩌고 할 권한이 없는 사람요.
철: (자기 무릎을 치며) 정말이지요? (되었다는 듯이 희숙이의 방으로 뛰어 올라간다.)
정애: 그러나 내가 학생이 저지른 죄를 용서했다고 생각해선 안 되요. 난 남을 해치는 잔인한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을뿐요. 그러면 나마저 학생과 똑같은 인간이 되고 말 테니까.
철: 고마워요 사모님. (F.O)
장: 一六(일육) (양식 목조건물의 실내)
(F.I)
다음날 낮.
바깥 한길에서 삼룡의 <꿀꿀이 죽 사려>하고 외는 소리 들린다.
방에서 클레오파트라 혼자 권총을 만지고 있다.
사람 오는 기척--
클레오파트라, 얼른 권총을 숨기고 문틈으로 바깥을 내다 본다.
안심하고 현관의 빗장를 벗겨 준다.
미꾸리 등장.
미꾸리: (들어오면서 호들갑스럽게) 그 상점에-- 아따 우리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그 점방 말야-- 거기 또 들어왔어. 씽(돈)이. 아마도 부산서 온 장사친가봐. 셈바이(천원)할아버지(지폐)로 이렇게 두둑히! 그것만 긁어도 정말! (하고 입맛을 쩍쩍 다신다.)
클레오파트라: 벽돌이 없어졌어.
미꾸리: (놀라며) 뭐?
클레오파트라: 그자가 이상해.
미꾸리: 달라졌단 말야?
클레오파트라: 간밤엔 껴안아 주지도 않았어. 날.
미꾸리: (크게 웃으며) 하하하……. 그 자식 봐!
클레오파트라: 뭐가 통쾌해?
미꾸리: 이리 와. 클레오파트라 나하고 입한번 맞춰. 그 메주가 날 위해서 네게 손을 안댄 거야. 아무리 소갈찌 없는 놈이라도 염치가 있을 거거든. 자아 이리 와. (하며 웃저리를 벗고 침대에 드러눕는다.)
클레오파트라: 이런 무쪽! 사람이 나일 먹었거든 철이 나. 난 이불 싸 들고 이층으로 올라간 놈야. 그래도 철이 안나? 그러지 말고
클레오파트라. 독수공방한 놈의 신세도 약간 생각해 줘야지.
클레오파트라: 징그러워!
미꾸리: 언젠 미꾸리 밖에 없다더니…….
클레오파트라: 어리광 부리지 말고 빨랑 벽돌이나 찾아 와! (하며 손을 잡아 당긴다.)
미꾸리: (몸을 휙 일으키는 순간 클레오파트라의 목에 매달려 그의 입술을 빤다.)
클레오파트라: (사정없이 뺨을 갈긴다.)
미꾸리: 아니 이게 정작 제 짝을 못 알아 보는게 아냐? (얻어 맞은 뺨을 만진다.)
클레오파트라: 지금이 어느 때라고 달려 붙는거야 철없이? (권총을 내 들며) 이것까지 구해 왔는데도 진짜 나서야 할 선수가 없어 졌으니 이건 마치 배는 마련해 놓고 뱃사공이 없는 심 아냐? 저 옆집 이층에 가 봐. 벽돌 녀석 그 피조리하고 무릎을 맞대고 앉았을 거야.
미꾸리: 올 때에 들렸었어.
클레오파트라: 그래 있지?
미꾸리: 없었어.
클레오파트라: 이상하다. 아침도 안쳐 먹구. 이렇게 오래 돌아다닐 린 없는데……. (울화를 가라 앉히려는 듯이 술을 따라서 마신다.)
미꾸리: 야. 클레오파트라 너 그 덥치를 언제 이렇게 못 잊게 됐나?
클레오파트라: 이런 트릿한! 내가 일을 위해서 그자식을 기다리는 거지. 그 밖에 무슨--
미꾸리: 헤헤헤……. 그래 눈 빛이 이렇게 달라졌군 그래?
클레오파트라: (벽력같은 소리로) 개수작 마아!
미꾸리: (아주 단순하게) 그래 그만둬. (술을 또 한번 따라 마신다.)
장: 一七(일칠) (벽돌 건물의 이층)
저녁 나절
희숙은 장사하는 담배를 챙기고 있다.
철이 나타난다. 얼굴은 매우 명랑. 손에는 무언지 종이에 싼것을 들었다. 그는 노동복을 입었다. 일하고 오는 것이 분명하다.
철: (조심스럽게) 사모님은? (희숙은 불안하여 어쩔줄 모른다.) 어디 갔지?
희숙: ……. 일
철: 무슨 벌인데?
희숙: ……. 벽돌
철: 오오. 폭격당한 집처에서 성한 벽돌을 고르는거? 그러면 장사치가 와서 사 간다구? (종이에 싼것을 풀며 오늘 나도 일했어. 며칠만에, 그래 이거 샀지. (내놓으며) 바나나 희숙인 바나나 좋아 했겠다? 六.二五(육.이오)전에……. 먹어. 이 전투지구에서 바나나란 참 귀한거야.이건 또 뭔데? 알아 맞혀봐. (하며 종이에 싼것을 또 하나 들어 보인다. 희숙은 대답을 하려 들지 않는다.) 희숙이가 보면 깜짝 놀랠 물건인데-- 그래도 몰라? (희숙의 대답을 기다린다. 여전히 아무 말이 없다.) 그러면 봬 주지. 놀래지 마아. 자아 이거! (하며 꺼내 보인다. 몇자루의 화필과 캔바스, 색채, 목탄, 종이 등 화구 일체이다.)
희숙: (깜짝 놀란다. 내색은 그러나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철: 고물상에 이게 마침 있겠지.
희숙이 소원이자 내 숙원인 그림을 나는 그릴거야. 그래 희숙이가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할 테야. (하며 목탄으로 희숙의 앉아 있는 포오즈를 스케치 한다.)
희숙이! 희숙인 이전과 같이 나체 모델이 또 돼 주겠지?
희숙: (찔린듯이) 나체 모델? (하며 무의식중 자기 왼쪽편 젖가슴에 손을 얹는다.)
철: 희숙의 모델이면 갈데 없어. 또 특선이다! 틀림없어! 자아 스케치한 내 솜씨 봐. (하며 그린 그림을 보인다.)
희숙: (솟구쳐 나오는 울음을 참으려고 입술을 깨문다.)
철: 희숙이 어디가 언짢은게 아냐? (희숙의 가슴을 움켜 잡고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픈게군? 어떻게 아파? (하며 옷 위로 만져주려 한다.)
희숙: 아니야. (하고 기급을 하여 피한다.)
철: 그러면 왜 그러는거야. 내가 다시 붓을 들게 된 걸 좋아해 주지도 않고…….
희숙: ……. 오늘은 열이 좀 있구. 기분이 좋지 못해……. 그래서 그래.
철: 六.二五(육.이오)전에는 희숙인 참 건강했었는데. 얼굴 빛이 정말 좋지 못해. 어디 병이 있어?
희숙: 정말 소원이야 가줘.
철: 혼자서 불편 하잖어? 물심부름이라도 해 줄 사람이 있어야지 더구나 내가 못나서 의용군으로 끌려 나가서 이렇게 약해진 건데…….
희숙: 괜찮어.
철: 조금도 불안하게 생각지 마아. 六.二五(육.이오)전엔 내가 밤을 새가며 희숙의 병간호 한적도 있잖았어? 인제 사모님도 양해 하셨으니까 마음을 놔. 참 너그러우신 분야. 내가 저지른 죄가 그렇게도 엄청나지만 우리의 전정을 위해서 당신의 감정을 희생하셨어. 정말 인격자셔. 난 무슨 일을 해서라도 그 속죄를 할 결심야. 내가 그렇게 하기 위해선 우선 내 생활을 바로 잡아야 하고 그러자면 희숙이가 날 뒷받침해 줘야 돼. 그래야 되잖어? 희숙이. (불타는 눈으로 입술을 접근시킨다.)
희숙: 아이 왜이래. (하면서 피한다.)
철: 뭐가 부끄러워서? 우린 약한 후엔 키스만은 하기로 했잖았어? 실상 그후 얼마나 많이 했는데-- 만날때마다 남의 눈을 피해서. 옳아 너무 오랫동안 뜸해서 열적어진 거로군. 사실은 나도 좀 서먹서먹해 지긴 했어. 자아 희숙이. 줄 사람이 그렇게 빼면 청한 사람이 더 무안 하잖어? 이리와 (손을 잡아끈다.)
희숙: 놔요! (하며 뿌리친다.)
철: 정말 이러기야? 그럼 강제로라도-- (대든다.)
희숙: 안돼! 안돼! (하고 자기의 불구된 육체에 이성의 손이 닿을까봐 기를 써 몸을 뺄려고 한다. 그러나 철에게 꼭 껴안겨 희숙은 강제적으로 키스를 당하고 만다. 희숙은 쓰러져 운다.)
철: (씨근거리며) 아니 뭣이 분해서 우는거야? 입술을 대서 안 될 사람하고 입을 맞췄단 말야? 왜 이러는 거야? 말을 해! 말을!
희숙: 가요! 가! (하고 소리 지른다.)
철: 옳아 내가 다른 여자하고 놀아서? 그래서 나를? 희숙이 그게 날 안 붙이는 이유야?
희숙: 그래! 그래서 그래! 가요! 가요 제발!
철: 희숙이, 그건 정말 내 큰실수야. 용서해요. 희숙이 인제 다시 안그러께. 안그래.
희숙: (사람 오는 기척. 문쪽에서 나니까 뛰어 가며) 애구 언니!
최정애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나타난다. 철 처벌을 기다리는 중죄인 같이 꾹 섰다.
정애: (철에게) 미안하지만 자리를 비켜 주우. 우리 달이가 올라 오니까 그 애가 학생을 보면 또 기겁을 할거야 그러면 또 며칠을 드러 눕게 돼 달이의 <아가야 자장 자장>의 창가 소리 들린다. 철이 벽에 피해 선다. 달이 인형을 안고 창가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선다.
철 실망한듯 고개를 떨어뜨리고 나간다. 포소리 울린다.
달이: 고모, 엄마가 이거 사 주었어. (안고 온 인형을 준다. 희숙이 받다 본다.)
정애: (창 밖을 내다보며) 오늘 밤에 또 한바탕 싸울 모양이군. 벌써부터 포소리가 요란하고 거린엔 인적이 끊어진 걸 보니…….
달이: 춥다 여기 누워라.
(인형을 이불 밑에 묻으며 <아가야 자장 자장> 을 가만히 계속 한다.)
희숙: 언니 철이한테 단호히 한마디 해 줘요. 언니로서는 절대로 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고 언니가 흐리멍텅한 소릴 해 놓으니까 철이는 결혼 할 것으루 아주 작정하고 있다우. 나는 괴로워 못 견디겠어.
정애: 작은아씨, 눈 딱 감고 그만 해 버려요 결혼.
희숙: (눈이 동그래지며) 미쳤구려. 언니.
정애: 철이의 정열은 막을 수 없어. 사뭇 제방에서 터져 나오는 강물이야. 그런 정열적인 사람 첨 봤어.
희숙: 그러니까 더더군다나 추한 내 몸을 뵐 순 없잖아요?
정애: 인생은 도박이란 말이 있잖어? 결혼 역시 그래. 그러니까 그만 도박장에 나가는 심 치고.
희숙: 어머나 언니 그 무슨 소리요?
정애: 어차피 작은 아씨가 혼자 살 결심인 바에야 철이와의 결혼이 실패로 돌아가면 어때? 결국 혼자 살긴 매일반 일텐테…….
희숙: 그 말은 너무 무자비해요
정애: 인생을 어렵게만 생각지 마아. 제발
희숙: 지금 옷 한겹으로 내 육체를 가려 있기 망정이지 이것만 벗으면 얼마나 무참한 비극이 숨어 있는가 언니는 빤히 알고 있잖어요? 그러면서 어떻게 그런 소리를? 그게 언니의 진심이라면 언닌 여자가 아냐 정말야. (훌쩍거린다.)
정애: 작은아씨는 상대편을 너무나 사랑하고 애끼는 마음에서 그에게 환멸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 결혼을 안하려 하지만 그건 상대방을 위하는게 아냐. 만일 작은아씨가 이대로 뻗쳐 결혼을 아주 거부한다손 쳐봐. 그때 그사람은 어떻게 돼? 다시 구할수 없는 타락의 길로 반드시 빠지고 말아요. 이번엔 보니까 그의 성격은 몰라 볼만큼 거칠어지고 광폭해졌어. 六.二五(육.이오)전관 딴판야. 그건 그에게서만 보는 현상이 아니고 우리 젊은이가 거의 다 그렇게 됐지만 이건 이번 동란에 그들이 너무도 참혹한 꼴을 많이 당했기 때문일거야. 이런 경우에 또다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봐. 클레오파트란지 하는 저 앞집 계집하고 밀려다니걸 걱정했지? 이번엔 그런 유가 아닐거야.
희숙: (부르짖다시피) 아아. 어쩌다가 내가 그 파편을 맞았담! 파편을 맞았으면 그 자리에서 즉사나 했더면 아무 일 없을걸 뭣 땜에 이렇게 살아놨담! (몸부림치며 운다.)
정애: 이번 난리에 몸을 다친 사람이 어디 작은아씨뿐요? 눈을 뜨고는 바로 볼수 없을만한 사람들도 있잖우? 그래도 살고 있어. 그러니 자기의 불행에 너무 사로잡히지 말고 태연하게 살아요. 마치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같이--
희숙: 듣기 싫어! (참을수 없다는 듯이 내쏜다.)
달이: 어머니! (놀라 정애에게 꽉 매달린다.)
정애: 어딜 가?
희숙, 대답도 없이 층계로 올라간다
달이: (방문턱 까지 나가서 희숙의 뒷모양을 바라보며) 고모 옥상으로 올라 가 .
정애: 둬두어. 찬바람이나 좀 쏘이게-- (포소리 은은히 들린다.)
一六(일육). (한길과 벽돌건물의 옥상)
클레오파트라는 자기의 처소에서 창문을 열어 놓고 화툿장을 떼고 있다. 간간히 담배를 쭉 빨아 그 연기를 날린다.
미꾸리, 시장 쪽에서 촐랑거리고 들어온다.
클레오파트라: 벽돌 왜 안데리고 와
미꾸리: 틀렸어
클레오파트라: 어디 있기에?
미꾸리: 역시 그 창고야 애초에 잤다던.
클레오파트라: 내가 아주 싫어진 게군! (화툿장을 모아 놓고는 옥상에 나와선 희숙을 턱으로 가리키며) 없애 버려!
미꾸리: 누굴?
클레오파트라: 옥상에 나와 있는 저 똥갈보가 안봬? (하고 내쏜다.)
미꾸리: 저까짓걸 없애 뭘 해?
클레오파트라: 저게 없어져야 그녀석이 쓸모가 생겨. 미친개가 돼서 우리 밑으로 기어든단 말야. 발악은 절망에서 생기는 거니까.
빨랑 옥상에 올라가서 같이 포소리 나는 미아리 쪽을 바라보는체 하고 휙 밀어버려 그러면 아래로 거꾸로 백힐게 아냐? 갈데 있나 뒈지는수 밖에 더구나 포소리는 땅을 빼고 행길엔 개미새끼 한마리 없겠다. 이런 좋은 기회가 어딨어? (미꾸리 아무 대꾸없이 담배만 빨고 있다.) 아니 내 소리가 안 들려?
클레오파트라 소리를 빽 지른다. 미꾸리 피운던 담배를 문지방에다 빡빡 문지러 버리고는 결심한 듯이 층계로 올라 간다.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도모하려던 희숙이, 사람 오는 기척에 주춤한다.
미꾸리: (옥상에 나타나 희숙에게) 저녁 먹었나? 왜 요즘은 열심히 담배 안 파누?
(희숙은 자기 생각에 잠긴듯 말대꾸를 하려들지 않는다.) 포소리가 어디서 나지? (목을 쭉 빼서 바라보며) 역시 미아리 쪽이군! 오늘 날씨가 흐리니까 괴뢰군 녀석들 발악을 하려 드는 모양이군. 비행기가 무서워 꼼짝 못하다가……. 헹 아무리 발악을 해도 이번엔 쉽사리 서울을 빼앗을 수는 없을걸. (이때에 프로펠러 소리 난다. 비행기다. 하늘을 우러러 본다. 조명탄 하나, 건공중에 매달렸다. 낮보다 더 밝게 주위를 비춘다.) 저거 조명탄이로구나 (부셔서 눈을 가리다 휙 나는 포탄하나, 여음을 길게 빼며 옥상 위를 스쳐 간다.) 엎드려라!
(옥상 콘크리트 바닥에 딱 엎딘다. 희숙 화석같이 섰다.) 저게 죽을려구 그래?
치열한 포소리 쏟아져 나온다. 땅이 울리며 집이 흔들린다.
가까이 날아온 포탄 하나 터진다.
벼락같은 소리와 함께 유령처럼 서 있던 굴뚝 허물어진다.
미꾸리 으아 비명을 지른다. 희숙은 그 틈에 투신하려고 지붕끝으로 나온다.
미꾸리 희숙에게로 달려간다.
클레오파트라: ( 한길에서 미꾸리의 일동일정에 전 신경을 집중하여 손에 땀을 쥐고 있다가 이번에야 말로 희숙일 떠밀어 버리는 줄 알고) 옳다! 됐다!
그러나 미꾸리는 희숙을 떠다밀기는 커녕 희숙을 투신 못하게 붙들어 준다. 조명탄 꺼지며 하늘 다시 어두워지고 사자후하던 포소리 다시금 저조가 된다.
희숙은 자기의 방으로 내려간다.
미꾸리도 옥상에서 물러난다.
클레오파트라는 무위하게 되돌아 오는 미꾸리를 잔뜩 노려보고 섰다. 약이 그의 머리끝까지 오른 것이다.
미꾸리 현관으로 들어가자 그 뒤를 따르는 클레오파트라. 문을 부서지라고 닫는다.
장: 一九(일구) (양식 목조건물의 실내)
클레오파트라 들어선다. 미꾸리 힘없이 섰다.
클레오파트라: (화가 치밀어 바들바들 떨며) 에이 멍텅구리! 머저리! 쫌보! 못난이! 반편! 사내가 배때기에다 철판을 깔고도 못사는 세상에 고까짓 피조리 한마리를 못 잡아? 그래 이 다시없는 챤스를 놓쳐?
미꾸리: (가만히) 클레오파트라 내가 임자 밑에서 놀긴 하지만 임자가 말하는 것과 같은 멍텅구리가 아냐. 난 수지가 맞지 않은 일은 애당초부터 하잖기로 하고 있으니까 만일 내가 그 피조리를 없애 봐 어떻게 돼? 난 구린밥 먹고 임자는 그 놈팽이하고 재미보고……. 이런 손해를 어느 개작식이 봐 그리고 난 또 널 남의 손에 넘겨 주고 싶잖어. 돈에 욕기가 나서 그 덥치한테 방을 비워 주구 이불 싸들고 이층으로 올라가서 내가 얼마나 후회했다구. 임자가 일을 위해서 그 젊은것 하고 상종하다가 빠져버린 것처럼 나 역시 그새 네게 정이 든 모양이야. 처자가 있는 놈이 이 무슨 망동이냐고 내가 내 손으로 내 대갈통을 치기도 했어. 그러나 틀렸어. 역시 내 맘은 널 꽉 붙들고 있는걸. 이 생활이 길게 가다간 그 젊은놈의 가슴에 칼을 꽂게 될는지 몰라. 그러니 쓸데 없는 생각 말고 다른 빈 집 찾아서 둘이서 오붓하게 살아. 적게 먹구 가는똥 싼단 말 있잖어?
클레오파트라: 아따 휭휭 날으는 저 포탄이 가는 똥인들 사라고 가만두나?
미꾸리: 클레오파트라. 아무리 자네가 침을 흘려도 그 놈팽인 깍쟁이패에 끼일 작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 둬. 우리의 정체를 알면 자식의 성미에 단박에 우리마저 죽이러 들른지 몰라.
클레오파트라: 남의 걱정말고 소원대로 만년 소매치기 쓰리군 날치기 좀도적으로 살아! 그게 싫거든 본업으로 돌아가서 길거리에 나앉아 도장이나 파먹든지. 난 인제 지긋지긋 해. 나으리에게두 끌려다니구 싶지두 않구 나가. 이 원수! 냉큼 나가!
미꾸리: 너 이렇게 야박하게 굴테냐?
클레오파트라: 안 나가면 알지?
(하면서 침대의 시트를 들고 권총을 꺼낸다.)
미꾸리: 젊은놈의 맛을 보더니 이게 아주 환장을 했군?
클레오파트라: 뵈기 싫다는데 왜 안나가고 이래? 나가! (하며 쏠듯이 권총을 내댄다.)
미꾸리: 나갈 테니까 참아! 또 쏘지 마아!
클레오파트라: 빨랑! 빨랑! (기를 쓰고 소리친다.)
미꾸리: 에이 성미두! (하며 미끄러지듯 현관 밖으로 내뺀다.)
장: 二(이)0. (한길)
같은날 저녁
한길에는 아무도 없고 혹은 멀리서 혹은 가까이 포소리와 기관총 소리 요란히 들린다.
로오즈매리와 삼룡이 전재민 구호소에서 나온다.
로오즈: (문 앞에 나서며) 그러니까 이 소장이란 자가 언제 도망을 한거지?
삼룡: 내가 희숙이 누나 집에서 잠깐 놀다 오니까 이 지경야. 오늘 저녁엔 유난히 대포 소리가 요란해서 행길에 나다니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 틈에 토꼈어.
로오즈: 아이 기맥혀
삼룡: (야대있던 자리를 가리키며) 저걸 봐! 꿀꿀이 죽파는 것 마져 없어지지 않았어?
로오즈: 글쎄 그 야대가 시장 저쪽에 놔 있기에 이게 웬일인가 하고 지금 막 뛰어왔지.
삼룡: 난 이런 협잡인줄 알았어 정말 공갈박사 였거든.
로오즈: 고향은 어디고 뭘해 먹던 작자라지?
삼룡: 세무서에 있었다든가? 난 로오즈가 잘 아는줄 알았는데…….
로오즈: 몰라! 통 몰라!
삼룡: 그리고도 그렇게 믿었어?
로오즈: 그러니까 내가 바보였지. 삼룡아 이일을 어떻게 해! 내 돈 멕힌건 둘째로 하고 같이 있는 계집애들의 것마저 싹싹 쓸어 줬으니 (글썽 거린다.)
이때에 땐서들 서슬이 시퍼렇게 등장. 얼굴들이 질렸다.
땐서들: (단박에 로즈매리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이년 돈 내놔라! 그놈팽이 하고 짜가지고 배 산다고 우릴 꾑지. 요 똥갈보년아. (하고 막 발길질 한다.)
로오즈: 아야야
땐서들: 아아. 이런 복통을 할데가! (하며 자기들의 가슴을 치고 울다가 우르르 달려들어 전재민 구호소란 간판을 떼며) 이런 공갈! 협잡! 이걸 걸어놓고 신산체 하고는 이 사지에서 목숨을 걸고 버언 돈을 모조리……. (간판을 길바닥에 메다치고는 발을 동동 구른다.)
정보원 등장
정보원: 왜이래? 왜 이 요란이야?
땐서들: (눈물을 씻어며) 오오 나으리 이 예편네 협잡군을 잡아가 줍쇼.
정보원: 돈 때문이지?
땐서들: (일제히) 예?
정보원: 그 협잡군 잽혀서 광나루에서--
땐서들: (의아해서) 예?
정보원: 색시들의 돈도 모조리 압수해 놨으니까 사무소에 가서 찾아들가우.
땐서들: (아직도 못 믿어져서) 정말이에요?
정보원: 물샐틈 없는 우리의 정보망을 그렇게 못 믿어? 하하하…….
땐서들: 고맙습니다. 나으리…….
땐서들 좋아서 춤을 추다시피 뛰어 나간다.
부산 손님과 그의 똘만이 나선다. 조금전에 등장한 것이다.
부산손님: 저도 소식을 듣고 뛰어 왔습니다. 찾으셨다구요? 그 다이야반지도--
정보원: (반지 셋을 내보이며) 틀림없죠?
부산손님: 바로!
정보원: 그 소장놈의 호주머니 속에서-
부산손님: 예? (놀라 똘만이를 쳐다 본다.)
정보원: 클레오파트라란 년이 제집 부엌 차장 아래에 숨겨 놓은걸 그자가--
부산손님: 오오. 그래요. 역시 그 계집이. 고맙습니다. 인제 전 살았읍니다. (하며 손을 벌린다.)
정보원: 클레오파트라란 년한테 이 범죄를 확인 시킨 다음에--
부산손님: 예예예. 응당 그래야겠읍죠.
정보원: 가만요! (양식 목조건물의 굳게 닫힌 문을 흔들어 보고) 아직도 안 들어왔군. 이 계집이 잘 다니는데가 어디더라?
부산손님: 이로 오십쇼!
부산손님. 정보원을 데리고 바쁘게 나간다.
똘만이 따른다.
철 등장. 벽돌 건물 앞에서 이층 희숙의 방을 우러러 본다.
층계로 발을 옮긴다. 주춤 발을 멈춘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사로 잡힌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도로 퇴장하려 한다.
클레오파트라 행장을 챙겨 가지고 자기의 집에서 나온다.
크레오파트라: 벽돌! (하고 부른다.)
철: (주춤 선다.)
크레오파트라: 왜 이렇게 사람을 무시하는 거야? 정말 이가 갈려, 날 모욕한걸 생각하믄 그러나 그것 다 물로 씻어 버릴테니 같이 가 나하고-- 자네가 담배장수 기집애의 뒤를 쫓지만 그 앤 자네 한텐 짝이 기울어 불면 넘어질듯한 그 피조리가 어찌 이 육체를 당해? 정말 균형이 잘 잽혔지. (탐스럽게 철의 살을 만진다.)
철: (증오에 불타는 눈으로 상대방을 노려만 본다.)
크레오파트라: 애구 저 도끼눈! 그 눈으루 날 잡아 먹을 참야? 그러지 말고 나하고 같이 꺼져. 아무데나 일평생 아무걱정 없이 지낼만한 돈이 내게 있겠다. 벽돌은 나하고 같이 재미나 보문 돼 난 지난 날 세파에 너무 시달려 이렇지 알고 보문 그다지 나쁜 계집은 아냐. 나도 노력하문 착한 아내가 될 수 있어. 난 여길 떠나야겠끔 됐어. 한시라도 바삐! 같이 가. (끈다.)
철: (벌에 쏘인듯 큰 소리로) 놔! 놔!
크레오파트라: 이렇게 내가 싫으문 그 날 저녁엔 어떻게 내 방에 들어?
철: 그게 내 죄야?
크레오파트라: 이런 비겁한. 날 진탕 버려 주고……. (철의 빰을 갈긴다.)
철: (자기의 뺨을 내주며) 좋다! 더 쳐라. 너같이 더러운 년의 방에 든 놈이다! 이 더러운 놈을 죽도록 갈겨라1 실컷 갈겨! 왜 못 갈기냐? 갈겨라 갈겨! (악을 쓰면서 미친듯이 덤벼들어 클레오파트라의 뺨을 마구친다.)
크레오파트라: 아야야…….
철: (더욱 심하게 갈기며) 너같은 년이나 나같은 놈은 이 세상에서 그 씨가 없어져야 한다. 죽어라! 뒈져라! 뒈져!
크레오파트라: (철의 매에 못이겨 단말마적인 비명을 올리더니) 두고 봐라! 내가 네놈을 이대로 둘줄 아냐? (이를 바드득 갈고 퇴장)
성경할아버지: (조금 전에 등장. 철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사람 예서 이럴게 아니라 그만 한강을 건너 버리게 희숙이 허구…….
철: (알아 들을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들며) 예?
성경할아버지: 유엔군 통역장교로 있다는 자네 사촌 동생이 아까 자넬 찾아 예 왔었다네. 오늘 저녁에 찝차로 부산으로 내려간다구 일선에서 왔다기에 이왕이면 같이 실어다 달랬지 자네들 둘을…….
철: (의아해서) 희숙이가 나하고 같이 가려구 하나요?
성경할아버지: (이층에서 내려오는 정애를 힐끗 쳐다보며) 자네 사모님이 잘 타일렀어.
철: (반가와서) 사모님. 그 정말예요? 희숙이가 이렇게 지저분한 개망나니를 용서 했어요?
정애: 허물이란 피차에 용서해야 하잖우? 더구나 부부가 된다면야……. 학생은 만일 희숙이에게 무슨 허물이 있다면 어떻게 할테요?
철: 무슨 허물요?
정애: 뭐건!
철: 용서하죠 뭐건! 암 용서하고 말구요!
정애: 정말?
철: 물론입죠. 희숙이한테 이미 난 다 말했어요.
정애: 됐어. 나도 예서 학생에게 대한 지난날의 그 원한을 다 씻어 버리겠오.
철: 예?
정애: 학생, 가서 행장을 챙겨 가지고 오오. 난 희숙이 더러 짐을 챙기게 할테니…….
철: (고마와서) 사모님.
정애: 얼른!
철 시장 쪽으로 급히 퇴장. 두더지 어린것을 안고 등장하며 정애의 앞을 막아선다.
두더지: 부산 가는 그 찝차에 우리도 좀 싣고 가게 해 줍세. 거기 가문 이것의 에미르 찾을 수 있겠음메.
정애: 내 차가 아닌걸.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해요. 이따 그 군인 오걸랑 부탁은 해 보오.
정애 이층으로 급히 올라간다. 두더쥐의 입가가 의곡된다. 웃음이 감도는 것이다. 그는 그의 어린것을 꼭 껴안으며 입을 맞춰준다.
장: 二一(이일). (벽돌 건물의 이층방)
최정애는 제경 앞에서 희숙에게 한복을 입히고 있다.
희숙은 올케가 하는대로 묵묵히 섰다. 그러나 쾌치 못한 표정이다.
정애: 작은아씨. 부산 내려가거든 둘이서 어디고 성당엘 찾아 가슈. 신부님이 안 계셔도 좋아.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경건한 마음으로 맹세만 해요. 그러면 그게 바로 훌륭한 결혼식이 될테니까--
희숙: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