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서사
정주
출가해서 스님이 된지 횟수로 13년째다. 출가생활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좌절과 우울증의 시작”이라고 하겠다. 나는 태생적으로 잘 아프고 남 눈치를 많이 보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출가 전까진 나름대로(?) 괜찮았다고 생각하지만, 출가 후부터는 본격적인 어려움이 시작됐다. 스님들은 절집에서 정해놓은 규율, 규범 안에서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만 하는 無言의 강요를 받는다. 바른 몸가짐, 언행 그리고 강인한 정신까지. 매일이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게끔 만들어지는 분위기는 나를 자꾸 아프게 만들었다. 어느덧 나는 몸 아픈 스님으로 낙인이 찍혀있었다. ‘항상 아픈 스님’로 보인 뒤에는 소임배정에서 배제가 되기 일쑤였다. 가끔 도움이 안 된다는 뒷말도 돌았다. 상처가 됐다.
내가 속한 사찰은 이십대부터 칠십대 이상 연령으로 이뤄진 여초집단이다. 인원은 총57명이다. 공동거주지 특성상 사생활은 있을 수 없다. 질투는 다반사다. 태움이라는 문화도 있다. 절에서는 경책이란 표현을 쓴다. 컨트롤 프릭control freak(모든 상황을 자신이 만든 기준에 맞게 움직여야 하고 만약 그 기준을 벗어나게 될 경우 상대를 맹렬하게 비난하는 통제자)처럼 언어폭력이 이루어진 것을 경험했을 때는 절이 원래 이런가 하고 의구심을 가졌다. 자비의 종교 불교는 온데 간데 없었다. 밖에서 본 스님들이미지는 참선만 할것 같고 우아하게 장삼자락 휘날리며 사자좌에 올라 법문만을 說할 것같지만 실상 안은 그렇지 않다. 세속에 있을 때도 끊임없이 스펙을 쌓아야 했다면 절에서도 끊임없이 정진을 요구받는 교육과 노동이 있다. 이제는 스님도 ‘능력’뿐 아니라 ‘몸건강’도 잘해야 하는 자기관리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인천의 사표‘라는 스님 캐치프레이즈를 실현시키기 위해 매끼니 채식을 먹고 경전을 공부하며 단정한 옷차림을 위해 매번 다림질을 하는 것이다. 피곤한 삶을 산다. 꾸밈노동을 강요받는 셈이다.
정해진 스케쥴을 따르지 않는 사람, 1인분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없는 사람, 주변에 보탬이 되지 못한 사람, 아파서 속도가 더딘 사람은 곧잘 쓸모 없는(?) 퇴물 취급을 받는다. 쓸모에 대한 강박을 심어주는 사람들은 주로 가까운 도반이었다. 출가하고 5년쯤 됐을 때 갑상선 기능저하증 진단을 받았다. 살이 10kg 이상 급격히 찌고 자도자도 잠이 쏟아졌다. ‘나는 절에서 쓸모없는 사람이다’하며 스스로 내면화했다.
절집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사찰 주 수입원이 祭이다 보니 하루에도 2~3개는 일상이다. 안주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에서는 모두가 바쁘고 힘들지만 과중한 업무와 자기 관리를 해내는 상황에서, 이를 버거워하는 나는 끊임없이 의심의 대상이 된다. 나의 고통은 제대로 생활을 관리하지 못한 나의 탓이다. 이때 그나마 속 시원히 나의 고통을 인정해 주고 ’잠시 멈춤‘을 허용하는 것은 진단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과한 노동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회에서 이를 수행하지 못하는 환자로 본다는 뜻도 된다.
나는 뱁새가 황새를 쫓다 가지랭이 찢어진다란 말처럼 잘난 스님 어른 스님을 닮고자 과도한 욕심을 부렸다. 번아웃과 우울이 왔다. 매일의 삶이 피곤하니 나는 갈수록 히스테리적 짜증과 스트레스 그리고 주변스님들을 향한 부정적 감정을 드러냈다.
내가 서초** 정신과를 처음 내원한 것은 2021년 10월 쯤이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난다. 의사의 진단은 불안장애 및 현재 우울 상태라 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대답이 나오자 속으로 내가 괜히 그런게 아니었어 하며 위안을 삼았다. 치료는 격달에 한번씩 이뤄지는 상담과 약처방으로 진행됐다. 상태는 확실히 내원 전후 달랐다. 잠을 잘자니 기분도 나아졌다. 불안도 낮아졌다. 2024년 9월 23일자로 치료는 끝이 났다.
정신과를 방문하면서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아팠다. 나는 이글을 쓰는 행위가 나를 치료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내 질병을 씀으로 해서 각자의 삶에 유사한 경우가 있다면 치료가 쓰기가 도움이 되지 싶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정주, 잘 읽었어요. 보이는 것 이면에 보이지 않은 것을 보게 해주어서 좋았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합평에서! ㅎ 이따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