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성훈 옮김. 엘리출판사
/ 나는 사람의 정신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일 년에 52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1권밖에 읽을 시간이 없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읽기 바란다/
주노 디아노(폴리처상 수상 작가. mit 문창과 교수)
주노 디아노라는 작가는 이렇게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런 평가에 아주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말자. 중앙도서관에서 14일을 대출하고, 전화로 다시 7일 연장을 하고, 반납과 동시에 다시 14일 대출을 하였다. 내일이라도 도서관에서 반납 알림 문자가 도착 할 것이다. 이 책은 35일 동안 대출 상태였다. 두세 번 읽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35일 내내 매일 읽지는 않았다. 읽지 않는 날도 많았고, 읽은 날도 하루에 한두 페이지를 읽기도 했고. 한 편을 읽기도 하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책을 동시에 읽지는 않았다. 직장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불교 소개서나 니체 철학서를 뒤적거리기는 했지만, 35일 동안 소설집을 끼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경우가 아닌가 싶다. 무슨 이유인지 읽는 일에 흥미를 많이 잃어버렸다. 그래도 이 책만큼은 참고 읽고 싶었다. 과학소설(sf소설)은 낯설고 자주 대하지 않은 장르라 어려움이 있었다. 일상에서 쉽게 대할 수 없는 개념과 용어들이 많고, 어느 정도 과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문외한인 나에게는 장애가 아니었나 싶다.
이 소설들이 과학적 상상의 산물인지 엄밀한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였는지에 대한 평가를 할 정도로 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다. 소설이니 상상과 사실과 과학적 사고에 기반을 하였으리라 생각한다. 옮긴이의 해설을 보니 테드 창은 16편 정도의 단편만을 발표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휴고상, 네블러상, 스터전상 등을 휩쓸고 세계적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도 두 작품이 실렸다고 한다. 나야 이런 상들의 가치를 모르지만, 작품의 수에 비해 받은 상은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이다. 단편 하나에 한 개의 상을 받지 않았을까도 싶다. SF소설은 단순히 공상과학 소설 정도로 알았다. 그러나 정확한 용어는 SCIENCE FICTION 과학 소설이다. 누가 공상과학소설이라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이름이 아닌가 싶다. 심리 소설, 역사 소설, 사소설 등으로 장르를 나누기도 한다. 과학소설에만 굳이 ‘공상’ 따위의 단어를 붙일 이유는 없어 보인다. 예를 들면 공상심리소설, 공상역사소설 둥의 표현을 하지는 않는다. 내 나름대로 추측해 보면 황당하거나, 실생활에서 있을 수 없거나, 일상적 사고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을 다루기에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나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역사도, 심리도, 마음도 아니다. 사실은 과학이다. 내가 매일 스마트폰을 하고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는 것은 과학의 힘이고, 지혜이고 발견 덕분이다. 단지 그런 원리들이 일상적 관점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뿐이다. 내 생활을 지배하는 원리는 과학에서 나왔다고 한들 억지가 아니다. 상황이 이런데 과학을 소홀히 한 이유는 이해하기가 어렵고 난해하기에 그럴 것이다. 중국이나 멕시코에서 일어난 사건을 실시간으로 안방 침대에서 볼 수 있는 이유는 과학의 힘이다. 나는 ‘신비’나 혹은 ‘신성’ 또는 ‘초월’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신비가 아닐까 생각해 보왔다.
작가의 창작노트에서 몇 가지를 인용해 보자. /바빌론의 탑/은 신을 향한 기도보다는 공학에 의존한다. /이해/에서는 예전보다 좋아진 기억력, 빨라진 패턴 인식 따위-이 질적인 차이로, 일반인의 인식 양식과는 근본적으로 상이한 형태로 변화하는 시점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영의로 나누면/에서는 수학은 모순된 체계이며 그것이 내포하는 놀라운 아름다움 모두가 실은 환영에 불과하다는 증거와 직면한다는 것은, 내게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는 어떤 사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처하는 이야기에 물리학의 변분 원리를 대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랐다./일흔두 글자/에서는 언어가 가진 창조의 힘이라는 테마, 생물의 자기 증식 원리를. /인류 과학의 진화/에서는 초인간적인 지성이 출현한 후에 그런 학술지는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옥은 시의 부재/에서는 천사들을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는 현상으로 간주하고, 그 강림에 의해 자연 재해를 방불케 하는 피해가 야기된다는 설정.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다큐멘터리/에서는 사람들은 왜 다른 종류의 부담, 이를테면 부의 부담 같은 개념에 비해, 미의 부담이라는 개념 쪽에 더 호의적인 것일까? 위 모든 언급은 작가노트에서 발췌하였다. 이 소설집은 이런 주제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소설집의 제목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이다. 과학의 발달, 사고, 개념, 지혜, 발견 등은 바로 우리 인생의 이야기라고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과학’에 의해 배양되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기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어떤 특별한 활동이거나, 의지적인 행동이 아닐까 싶다. 매일 새벽에 산사에서 정해진 의식을 치루는 스님들처럼,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서두르는 직장인 같은 태도를 독자는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기 싫어도 하고 가고 싶지 않아도 목탁을 치고 출근을 서둘러야 한다. 불교 교리나 출근 후 업무는 나중 일이고, 우선은 절간에 무릎 끓어 앉아야 하고, 회사 출입문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주위에 얼마나 많은 유혹과 매력과 재미가 있고, 내가 오랫동안 끙끙거리며 머리를 싸매는 문제를 순식간에 토해내는 지식 창고가 있고, 분노하고 화내고 싸워야 할 일이 지천이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행복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애 대한 정보와 지식이 매일 장맛비가 되어 쏟아지는 세상이다. 책 한 권을 들고 책상에 두 세시간 앉아 있는 일이 점점 힘에 버겁다.
첫댓글 '책 한 권을 들고 책상에 두 세시간 앉아 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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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하는 일이 아닐걸요. 👍
/외모지상주의......부의 부담 같은 개념에 비해, 미의 부담은 허용/
그러고 보니 이쁘고 날씬한 사람은 맘껏 발산하고들 있군요.
돈많으며 아름다워지는 시대같기도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