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일) 고대구로병원 응급실에서 나온 뒤, 27일(월)은 어찌저찌 집에서 버텨보았는데, 28일(화)에는 아빠의 컨디션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27일부터 거의 아무것도 드시질 못한 상태에서 탈수라도 오면 큰일이 날 것 같아 119를 요청해 엠뷸런스를 타고 다시 고대구로병원 응급실행. 연휴시작이라 그런지 26일보다 응급실이 더 붐볐고, 응급실 당직 의사에게 아빠의 증상(다발성골수종환자. 물을 삼키기도 어려워하시고, 음식섭취를 못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입원을 요청하니, "피 토하는 수준이 아니면 입원장 않나옵니다. 환자분 상태는 응급이 아니라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고, 지금 혈액내과는 입원실도 없어요."라고 단칼에 거절. 다시 한번 데스크를 찾아가 요청을 했으나 rapid 혈액검사에서 전해질 수치도 정상으로 나왔다며 수액도 줄 수 없다고 바로 퇴원조치. 일요일 응급실 선생님은, "입원하고 싶으시면 입원하세요."라고 하셔서 상태가 더 않좋아지면 입원을 할 요량으로 집으로 왔었는데, 그 선택을 후회하며 아빠를 간신히 모시고 택시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아빠 컨디션은 계속 안좋아지고, 오빠와 새언니가 여기저기 수소문해보니 멀리 있는 종합병원에서 수액 같은 것을 놔줄 수 있다고 하여 다시 전화로 확인을 해보고(결국은 거절당함), 울타리 도반 매*님이 수소문한 집근처 대림성모병원 응급실로 좇아가 사정을 이야기하며 요청을하니, 아빠 상태가 위중해서 단순한 영양제 처방도 본원이 아니면 안된다고 난색을 표하시던 대림성모병원 응급실 선생님이 다행이 영양제를 놔주겠다고 하여 아빠를 모시고 와서 2시간 정도 영양제를 투여받았다. 영양제를 맞으시다가 아빠는 소변을 많이 보셨고, 집에 돌아와서 며칠만에 깊게 잠을 주무셨다.
응급실을 하루에 두 곳 들르고 나니, 새해 첫날이 밝았다.
오빠네 식구들이 와서 떡국을 먹고 예쁘게 한복을 차려 입은 오빠네 아이들(윤하, 소윤)이 눈도 못뜨고 누워 계신 할아버지 곁에서 '빨리 나으세요'하며 재롱을 떨어본다. 한복을 너무 예쁘게 입고 왔으니 가족사진을 한장 찍자고 내가 제안을 해서, 급히 가족사진을 찍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시던 아빠도, 온 힘을 다해 의자에 앉아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셨다. 오빠네 식구들이 아빠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 서둘러 집을 나서려는데, 아빠가 집밖으로 나서는 윤하와 소윤이를 부르시더니 현관에서 두 아이를 아주 꼬옥 끌어안아 주셨다. 마치, 이게 마지막 인사가 될 것처럼. 오빠와 새언니, 엄마와 나, 모두 소리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이들와 왔다 간 이후로, 아빠는 오랜만에 관장을 하셨는데(관장을 하고 나면 늘 컨디션이 잠시 좋아졌다가 다시 안좋아지곤 한다), 잠시 기운이 나실 때 다시 성경말씀을 필사하기 시작하셨다. 아빠가 책상에서 말씀을 쓰시고, 나와 엄마는 그 곁에 앉아 새해 햇살을 받으며 잠시 가만히 있었다. 언제 아빠가 아팠는가 싶은 순간이었다. 모든 것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완벽한 순간.
앞으로 아빠는 병으로 인해 힘들어 하실 것이고, 가족 모두가 아빠를 보며 슬퍼할 수밖에 없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온전한 평온을 잊지 않기로 한다. 아빠는 성경을 쓰고 계시고, 나도 엄마도, 그런 아빠 곁에서 참으로 행복하다는 이 찰나의 진실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 찰나의 반짝임이 영원토록 아빠를 그리고 우리 가족을 밝혀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