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박쥐와 비상금 제비
오종락
비자금과 비상금은 일란성 쌍둥이로 세상에 태어났다. 그럼에도 둘은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외형과 성격은 서로 판이하게 달라졌다. 서로 걸어온 길이 너무나 달라서 운명에도 큰 대조를 보였다. 그 원인은 아마 사람과의 만남에 의해 비롯된 결과가 아닌가 한다.
평범한 좋은 주인을 만난 비상금과는 달리 비자금은 나쁜 업주를 만나 앞길이 순탄하지 못했다. 험한 바깥일만 도맡아 하다가 비 오는 날 흙탕물에 몸이 자주 젖기도 했다. 그러다 이런 일이 숙달이 되자 업주는 더 험한 탄광 막장의 주요 임무를 부여했다. 힘겹게 탄을 캐내다 연탄가루를 뒤집어써서 온몸이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오랜 시간 이런 환경에서 생활한 탓에 성격도 몹시 사악하게 변했다.
비상금은 이렇게 심하게 변해버린 비자금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이제 형제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자금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비상금을 야속하게 생각했다. 형제에게 까지 외면당한 처지로 인해 우울증 증세를 보였다. 사실 자신의 몰골로 인해 스스로 떳떳하지 못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 세상에 나오는 것조차 두려웠다. 결국 햇볕을 싫어하는 성격으로 변해 어두운 곳을 찾아 다녔다.
그럼에도 검게 변해버린 자신의 외형은 한번이라도 고쳐보고 싶었다. 지금 비상금의 색상처럼 원래와 같은 색으로 돌아오기를 원했다. 얼굴을 바꾸기 위해 1차적으로 세탁소를 선택했다. 전국의 유명한 세탁소를 찾아 자신의 몸을 여러 번 세탁과정을 거쳤다. 그래도 자신이 없었던지, 늘 은밀한 곳에 숨어 지내기를 좋아했다. 비자금은 결국 박쥐와 같은 새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동굴처럼 어두운 곳에 숨어 있기를 좋아했고 야간에만 은밀히 활동하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애썼다.
이를 눈치 챈 비상금은 자신이 형제라는 이유로 비자금과 함께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것을 경계했다. 자신은 박쥐처럼 변해버린 비자금과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고 홍보에 나셨다. 무엇보다 자신은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제비와 같은 새라고 소개했다. 제비가 흥부에게 행운을 준 박의 씨앗을 물어다 주었듯이, 자신도 때가 되면 그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비자금의 나쁜 소행으로 인해 세상에 착한 이들이 많은 피해를 입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검소하게 살아가는 남편이나 아내가 비상시에 대비하여 푼푼히 모아놓은 비상금마저 비자금 소리를 듣는 것에 억울해 했다. 자신은 꼭 필요할 때 좋은 일에 사용되기 위해 고이 잠자다가 누명을 쓰게 되었다고 했다. 이 모든 게 못된 행동을 일삼은 비자금 때문이라며 나쁜 형제를 원망했다.
나도 소싯적에 몇 푼의 비상금을 허리 벨트 주머니에 늘 보관한 적이 있었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나를 든든하게 지켜 주는 것 같았다. 그 용도는 실수로 지갑을 분실하거나 밤늦게 귀가 시 택시비가 부족할 경우 등에 대비한 그야말로 비상금이었다. 과연 이런 경우까지 비자금이라고 부를 것인가.
비상금은 제비가 짹짹거리듯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던졌다. 제비가 가을철이면 강남으로 떠나듯, 자신도 제비처럼 나갈 때를 알고 있다고 했다. 즉 주인이 꼭 필요로 할 때 깊숙한 지갑 속에서 세상밖으로 나와 주변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존재라고 말이다.
일 년 내내 음침한 곳에 숨어 살아가는 박쥐같은 비자금의 행실을 한번 살펴보라고 했다. 세상에 온갖 혼탁한 짓만 해됐지, 대체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을 주었느냐고 묻는다. (19.11.14)
첫댓글 비자금과 비상금을 이상적으로 풍자 묘사한 해학적 이고 철학적인 글 잘 읽었습니다. 사실 비자금이나 비상금은 언제 어디에 어떻게 쓰이나가 다를뿐 어쩌면 사촌간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비상금 이든 비자금이든 좋은 용도로 쓰여 그 오명이 벗어지길 기대하면서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비자금과 비상금의 미묘한 차이를 동물을 빗대어 표현한 점이 기발합니다. 재미난 글 잘 읽었습니다. 비자금이나 비상금을 옳은 용도로 쓰면 좋겠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 비상금으로 가사를 책임지는 주부의 요긴한 수단입니다.
반면 비자금은 비교적 규모가 큰 자금으로 목적을 이루기 위햐 수단으로 쓰인다고 볼 때 경계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의미를 정립한 글 잘 읽었습니다.
박쥐와 제비의 비유가 재미있고, 깊은 뜻이 스며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게 우리 삶의 일부인것 같기도 하고요.... 음미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박쥐같은 비자금과 제비같은 비상금
아주 재미있게 표현하셨네요..
좋은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비자금은 음지에서 모여 음지에서 사용되는 돈, 비상금은 음지에서 모였지만 양지에서 사용되는 돈. 그런 느낌이 듭니다. 비자금은 바람직하지 못한 저축, 비상금은 바람직한 저축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이유를 박쥐와 제비의 적절한 비유를 통해서 알 것 같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비자금을 박쥐로, 비상금은 제비로 비유한게 재미있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같은 돈인데 비상금이 되고 비자금으로 변하는 세태를 박쥐와 제비에 비유해서 재미있게 풀어주셨습니다. 카드 등 다양한 지불 수단이 있지만 저는 현금없이 길을 나서면 불안해진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