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꽃에 청호반새가 날아 앉다
권영옥
언덕에 굽은 찔레가 뽑혀 있어 등이 아프다
죽은 자가 첫새벽을 맞이하는
안개 낀 청평호
새로 쓴 묘 옆 널브러진 찔레나무를 그대로 두고 가기엔
뭔가 개운하지 않아서
나무를 끌고 가는데 손에 물기가 번진다
언제였을까,
전생에 한 번은 인연이 닿았을 듯한, 이 나무
꽃송이를 코에 댄다. 찔레꽃의 심장이 뛰어
힘줄이 팽팽해진다
물관 바깥에서는 벌떼가 날아들고
찔레의 영성인 나비 신에게도 이 모습이 전해졌을까
돌아가서 나무를 다시 심고 지지대를 세운다
죽어가던 가지가 햇발처럼 곧추선다
깊은 봄날 나비 신에게 소원을 빌며
청호반새 소리를 들려달라고 해봐, 그러면 날아온 새는
안갯속에서 한 기억을 떠올리겠지
십 세기 전 청운문 안에서의 의업(醫業)은 성했다
잘못된 임상은 등허리를 푸드득 푸드득,
그 일은 찔레나무 터에서 일어났던 의원과 의녀의
난제였으니,
아우성, 탕약 냄새, 처녀가 들 것에 실려 와
등에 천종혈 유침을 놓지만 환자 속 시간의 유예는
한 처녀의 몸을 구부리게 했다
자책하던 손이 부여잡던 그곳에서
죽은 처녀의 등허리를 죽어라고 주무르던 두 사람,
피눈물이 떨어져 돌확이 되고
청호반새가 그 돌확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다
권영옥
경북 안동 출생, 아주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문학박사). 2006년 시집 <계란에 그린 삽화>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청빛 환상>, 시론서 <한국 현대시와 타자윤리 탐구> 등. 2017년 두레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