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열 시까지 갈게"
엄마는 야근
아빠는 회식
학원에 갔다 와서
라면 하나 먹고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열한 시까지 갈게"
컴퓨터를 켰다가
동화책을 폈다가
또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열두 시까지 갈게"
텔레비전을 틀었다가
핸드폰을 열었다가
깜박 텔레비전 앞에
잠이 들었다
이윽고 귓전에
엄마 목소리
"얘는 날마다
텔레비전만 보나 봐"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하면서
성적이 뭐 중요해 말하면서 선생님은
공부 잘 하는 애들만 귀여워하고
우리 애는 실컷 놀게 내버려 둬요 말하면서 엄마는
아무도 없을 땐 공부 안 한다고 야단치고
하루에 한 시간만 게임 할게 약속하고도 나는
혼자 있을 땐 종일이라도 게임만 하고
거짓말은 나쁜 거야 알지만
선생님도 엄마도 그리고 나도
겨울밤
밖에는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리고
-옛날 옛적에 왕자님이 살았는데
창문이 덜컹덜컹
바람이 불고
-못된 귀신 요술로 개구리가 되었는데
빵빵 머얼리서
차 소리가 들리고
-아름다운 공주님 손길만이 약인데
할머니는 꾸벅꾸벅
-개구리는 끝내 왕자가 못 되고
추운 별
엄마
별이 추운가 봐
창문으로 들여다보며
자꾸만
들여보내 달라는 걸 보면
아가야
눈을 꼭 감으렴
별들이 네 눈속으로 들어와
따듯하게 따듯하게
잠들게 하렴
토요일
미라야 놀자 그러면 미라는
나 스케이트장 가야 돼
철수야 놀자 그러면 철수는
나 영어 학원 가야 돼
할 수 없다 나 혼자
꽃밭에서 놀아야지
지렁이도 파내고
방아깨비도 잡으면서
엄마도 아빠도 바빠서 집에 없고
나 혼자만 집을 보는 토요일
카페 게시글
♤ 추천하고싶은 동시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 신경림 / 실천문학사
박태현
추천 0
조회 41
24.08.19 13:2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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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 감상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박태현 선생님!
약오르게 재미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