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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5주일 [성령을 근심케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너무나 큰 은혜를 받았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악을 행하지 않는 것은 그런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죄를 피하고, 악행을 피하는 것은 그 자체가 죄이기 때문에 피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죄에서 보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배반치 않으려는 것이다.
[성령은 무감각, 무감정?]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려 하지 않는 마음을 동기로 삼고, 성령으로 보전받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성령에 대한 태도가 옳지 않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는 일을 잘못 알고 있는지, 그분께 굉장히 무례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성령을 하나의 에너지, 혹은 에너지의 근원, 살아있는 것이 아닌 비인격적인 어떤 원칙, 자원으로 보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자기들이 원할 때, 성령을 호출하고, 원하는 것을 요구할 뿐이지, 자기들이 성령께 순종하려는 생각은 미뤄두고 있다.
성령께 순종하기 보다, 내가 원하는 것을 위해, 그를 부리듯 대한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 능력을 구하면, 하나님이 황송하게 생각하면서, 빨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능력을 구하는 것에 대해 너무 고맙게 생각해서, 아무 이유없이 능력을 내어주는 것처럼 생각한다.
구하는 사람이 악을 행하는 사람이든, 교회를 해하는 사람이든 상관없이 주신다고 생각한다.
성령을 사람이 신앙생활 할 때, 언제든 대기중이어서, 감정없이 동원할 수 있는 존재로 여긴다.
성령은 인격이시다.
그런데, 말은 성령이라고 하지만, 에너지처럼 여긴다.
무언가 잘못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 공부해온 자료들이 잘못 표현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전달되기도 했다.
성령은 이 땅의 성도들 안에 계셔서, 구원하시는 일을 하신다.
[성도의 구원을 지키시려고 오셨다]
구원을 지키기 위해서, 성령은 성도들 가운데서, 죄악을 명확히 조명해주신다.
성령은 세상의 죄악을 정죄하신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나가지 않으신다. 세상과는 무관하시다.
우리 가운데서, 세상에 속한 죄를 분명히 정죄하신다.
악행에 대해, 엄격한 판정을 하신다.
우리를 거룩하게 구별하기 위함이다.
그가 하시는 일은 예수님이 하신 것과 많이 다른 면이 있다.
예수님은 죄를 짊어지셨다. 예수는 사하시고, 성령은 정죄하신다.
성령은 우리 가운데 도움을 주기 위해 계시지만, 우리 마음대로 돕는 분은 아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지만, 세상을 책망하시는 분이다. 구원받은 자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시고, 기대하신다.
또, 순종하는 자를 더욱 도우신다.
그러나, 만약 신자가 그를 거절하거나, 순종하지 않거나, 겉으로는 순종하는 체하지만, 마음으로 거절한다면, 거리를 두실 수 밖에 없는 위치에 계신다.
우리 악행에 대해서, 그는 심판의 근거가 되어주신다.
그가 정죄하신 것은 마지막 날을 위해 쌓여있다.
특별히 성령은 사람이 속일 수 없다.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든 속이듯, 그분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니, 하나님도 못보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죄다.
성령은 마음의 동기를 보신다.
이전에는 그렇게 광범위하게 보면서, 역사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이 모든 죄의 시발점이기 때문에, 마음을 보고 계시다.
교회가 분열되고 나서, 나도 경찰, 검찰에 많이 끌려갔다.
그러니까, 전에 몰랐던 것을 많이 깨달았다.
그런 곳에 가면, 거짓말 하는 사람들은 잘 빠져나오게 되어있다.
말을 교묘하게 잘 속이는 자가 잘 빠져나온다. 거기는 사람의 말을 듣는 곳이다.
오히려 정직한 사람은 대단히 어색하고, 불리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성령은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으신다.
어찌하여, 네 마음에 사단의 생각이 들어있느냐. 하실 것이다.
그는 마음속을 아신다.
감히 속일 수 없기 때문에, 그에게 꾀를 부려서는 안될 것이다.
겉으로는 신실한 체 하지만, 그 속에는 궤술이 있다.
잘하는 사람들은 그것으로 한탕하려고 한다.
성령에게는 사람의 궤술이 통하지 않는다.
[성령을 악행을 시키시는 분으로 만드는 사람들]
성령은 아주 날카롭게 보고 계신다.
그럼에도, 말도 안되는 무례를 범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악행을 하고서도, 변명을 하기 위해, 자기는 할 생각이 없었지만, 성령이 시켜서 했다고 한다.
진짜, 최근 이런 말을 여러번 들었다.
자기는 그것이 죄인줄 알지만, 성령께서 하라고 하시니, 할 수 없이 범죄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을 범죄를 조장하시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성경에 나타난 성령에 대한 가장 악한 훼방죄다.
하나님께 굉장한 모욕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성령에 대해서, 무례하게 행동을 한다.
자기들 생각에는 그는 가만히 계시다고 보는가 보다.
그렇지 않고, 성령은 이 시대 마지막 때에 오셔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를 지키려고 하신다.
성령은 도우려고 오셨다.
우리는 순종으로 맞이해야 한다.
성령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고, 편협된 관점에서 보려고 하니까, 옳지 않은 행동도 하게 된다.
그렇게 하지 말고, 성령께 순종하는 자들 되자.
[본문]
지난 주에는 선한 말로 교회를 세우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드렸다.
악한 계획이 있는 말을 한다든지, 아첨하고, 이간하는 모든 것들은 교회에서 떠나야 한다.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모든 사람이 함께 은혜를 끼치는 말로 다 바꾸어야 한다.
오늘은 지난주 말씀을 포함하여, 불의한 앙심을 품는 것, 도적질,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의 결론이다.
헬라어로 그리고라는 말로 연결하고 있다.
[좌절을 가져오는 고통의 슬픔]
엡4: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해야 하는 명령을 이렇게 지시받고 있다.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라.
여기서 근심하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그냥 한숨 한번 푹 쉬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원래 단어의 뜻은 이것보다 훨씬 강력한 뜻이다.
번역과정에서 근심으로 한 것이지, 굉장한 고통의 뜻을 담고 있다.
고통, 비탄, 큰 슬픔에서 유래된 단어다.
그냥 섭섭한 정도가 아니라, 너무 비통해서 소리를 내며 흐느끼게 만드는 슬픔이다.
성도들의 죄악의 행동과 더러운 말은 성령을 몹시 괴롭게 하고, 충격을 드린다는 의미다.
물론 하나님은 모든 죄에 대해서, 불쾌하게 생각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행하는 죄는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이고,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맡으셨다.
그들의 나머지 인생을 양육하며, 인도하신다.
그런데, 그런 삶을 싫다고 하고, 옛삶으로 돌아가면, 그는 충격을 받으시면서, 비통해 하신다.
본문에서 특이한 상황은 죄 자체를 미워해야 한다는 강조점이 아니라, 성령을 슬픔에 빠지지 않게 하라는 것이다.
오히려 동기는 그것이 먼저다.
죄를 미워하는 것도 맞지만, 먼저는 성령을 비통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성령을 기쁘게 하고 싶다.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투자를 다 하시고, 풍성한 사랑과 결단으로 임하셨다.
어떻하든 구원하려고 하는 주님을 배반하는 문제를 마음에 두고 말하고 있다.
[성령은 인격이심]
성령은 인격이시다.
우리는 감정도 있고, 생각도 있고, 말도 한다. 하나의 인격이다. 그러나, 나무같은 것은 가만히 있고, 반응을 하지 않으니까, 인격이 아니다.
요14: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경은 성령에 대해서, 인격적 존재로 표현하고 있다.
성령을 절대 어떤 물질, 에너지, 이론, 원칙으로 볼 수 없는 것은 그가 예수님 대신 오신 분이기 떄문이다.
요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주님이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해서, 오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누구보다 완전하신 인격이시다.
그러나, 그를 대신하여 오셨는데, 기계가 올 수는 없는 것이다.
무감각하게 가만히 대기하는 분으로 오신 분이 아니라, 그가 이 땅에서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시다.
고전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전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요16: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은 우리에게 끌려다니거나, 우리를 위해 대기하시는 분이 아니다.
오늘 우리에게 명하시고, 이끄시고, 책임지시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감정이 있으신 성령]
성령은 인격적 존재가 갖고 있는 감정을 갖고 계시다.
그분은 지, 정, 의를 다 갖고 계시다. 하나님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시다.
고전2: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롬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어떤 상황이 올 때, 성령은 반응할 수 밖에 없다.
그는 마땅한 대응을 하실 것이다. 감정적으로 충격도 받으시고, 반응하신다.
행5: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행5: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성령은 시험도 받으시고, 속임도 당하시고, 저항도 당하신다. 또, 모욕도 당하신다.
행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히10: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마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또 성령은 훼방도 당하신다.
성령에게 가해진 공격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
사함이 없다.
[하나님을 근심케 한 옛 신자들]
하나님을 근심케 하는 일은 옛날부터 있었다.
다만, 구약에서는 성령에 대한 언급이 하나님 안에 다 들어있었다.
사63:10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성령을 구분해서 표현하지 않았다.
성령을 구분해서 말한 것은 오순절 강림 이후다.
과거에는 하나님께서 백성의 적절치 않은 태도 때문에, 많이 분노하시고, 불쾌해 하시는 장면이 많았다.
하나님께서 백성 앞에 직접 나타났기 보다는 하나님의 종을 대하는 태도로 그렇게 받으셨다.
시95:9 그 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도다
주의 종을 대적했는데, 좌절감은 하나님이 느끼신다.
시78:40 저희가 광야에서 그를 반항하며 사막에서 그를 슬프시게 함이 몇 번인고
그들은 하나님께 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한 것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에게 한 것으로 보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듭 배반한 것에 대해서, 하나님은 굉장히 슬퍼하셨다.
민14: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아픔을 느끼신 것이다.
하나님의 엄청난 실망감과 속상함이 위의 구절에 들어있다.
성령을 속상하게 하면, 사함이 없다.
[그를 근심케 한 자를 대적하심 : 하나님의 진노]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대적하면, 진노가 따랐다.
하나님에 대한 배반, 범죄는 진노가 따른다.
시78:17,21 저희는 계속하여 하나님께 범죄하여 황야에서 지존자를 배반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듣고 노하심이여 야곱을 향하여 노가 맹렬하며 이스라엘을 향하여 노가 올랐으니
오늘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용서하신다고 하는 관념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형벌하신다는 것을 잘 잊는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 너무 확대되어 있다.
하나님꼐 범죄한 죄는 없어지지 않는다.
누가 죄가 없어진다고 하는가.
악을 행한 것은 반드시 보응을 받는다.
그것이 원칙이다.
겔20:8 그들이 내게 패역하여 내 말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그 눈을 드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지 아니하며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내가 말하기를 내가 애굽 땅에서 나의 분을 그들의 위에 쏟으며 노를 그들에게 이루리라 하였었노라
하나님을 속상하게 한 것은 진노를 예약하게 된다.
시95:9-11 그 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도다 내가 사십 년을 그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노하여 맹세하기를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그들은 약속하신 땅에 못들어갔다. 오늘날 개념은 약속한 천국에 못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죄도 없어지지 않는다.
[구속의 날]
하나님의 형벌은 당시에 그 사람에게 이루어지기도 하고, 나머지는 진노의 날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진노의 날은 정말 하나님께 범죄한 자들에게 가장 무서운 날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에게는 기쁜 날이기도 하다.
진노의 날은 구속의 날이다.
우리는 이미 구속받았다. 법적으로는 충분히 구속되었고, 죄가 그리스도에게 옮겨갔다.
또, 믿은 이후 회개한 죄도 그리스도에게 넘어갔다.
그러나, 육신은 아직 죄를 범할 수 있다.
우리 육신의 죄의 가능성도 없어지는 날, 그날이 구속의 날이다.
롬2:5, 16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롬13: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살전5:2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고후1:14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 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
그날은 주를 사랑하느라, 희생한 자에게는 상 받는 날이다.
회개치 않고, 계속 범죄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날이다.
그 날은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악한 동기를 통해 이루어진 범죄를 다 심판하신다.
그러나, 순종하는 신자들에게는 기다려지는 날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그 날이 옛날 예수 믿던 때보다 더 가까워졌다.
그 날을 향해 가고 있다.
그날은 주의 날, 그리스도의 날이다.
나같은 사람에게 그 날을 어떨까.
옛날 사도들이 그랬듯, 나에게는 엄청 기대되는 날이다.
그동안 우리 성도들이 열심히 순종하여, 신앙생활 한 것이 드러나는 날이다.
나에게는 기대가 큰 날이다.
성도들이 주께 보여지고, 주님이 성도들을 기뻐받으시길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힘들어도, 오늘은 수고하며, 불만없이 가고 있다.
빌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그날을 위해 미움을 당하고, 반대를 당해도, 경고한다.
고전5:5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
무조건 용서는 없다.
어떤 자는 사단에게 내어준다고 했다.
육신은 멸하고, 영은 살아난다는 말이 아니다. 번역된 한글식으로 이해하면 안된다.
사단에게 내어준다는 말은 법적 선고다. 신자를 출교시키는 것이다.
그를 내보냄으로써, 더 이상 교회를 괴롭히지 않게 하는 것이다.
사단의 영역인 세상의 체제속으로 밀어냄으로써, 최소한 교회는 괴롭힘 당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육신은 멸한다. 그 사람의 죄에 대한 징벌이다.
병이 든다든지, 죽음을 당하므로, 교회를 괴롭히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육신은 멸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영은 구원은 받게 한다는 것은 영이 구원받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회개하지 않은 자는 진노의 날에 무서운 형벌을 예약하고 있다.
이 형벌은 살아있고, 땅에 있는 동안 출교를 당해, 더 이상 교회에 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그나마 낫다.
그러니까, 진노의 날에 구원받을 가능성이 미세하게 더 낫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냉소적으로 말한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더 이상 교회에 악을 끼치고 싶어도, 더 이상 악을 못하게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영혼이 받아야 할 형벌이 조금 줄 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다.
교회에 악을 끼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성령의 인치심 : 구원 완성에 대한 약속]
성령은 인치려고 오셨다.
엡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령은 우리를 보전하기 위해 오셨는데, 오셔서 인치신다.
인치심은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이다.
공적 약속이다.
우리가 구속받았지만, 아직 우리 육신은 죄를 범할 가능성이 너무 많다.
육신을 떠날 때까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그가 인치신다.
그가 인치신 자들은 절대적으로 보전된다.
[인침은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
옛날 편지를 쓰고, 봉인을 하고, 도장을 찍는다. 그 도장의 주인의 권위가 거기 담겨있다.
성령이 인치시는 것은 그분의 소유라고 공적으로 선언하시는 것이다.
이것은 안전을 보장한다.
[안전을 보장하심]
구원받았을까, 아닐까, 이런 것을 떠난 것이다. 그 영혼을 망치려고 해도, 망칠 수 없다.
이 사람은 왕의 인침을 받았다.
누구도 그 권위를 부정할 수 없다.
하나님께 속한 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완전히 그의 소유로 하늘에 올리실 때까지 보호할 것이다.
인침은 구원의 확신과 똑같다.
[보증으로서의 성령 : 구원의 확신]
인치시는 것은 그가 반드시 오리라는 것으로서, 오늘날 계약금과 같은 것이다.
계약금을 냈다면, 살까 말까 망설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겠다는 의지다.
성령이 인치신 것은 그가 저당을 놓으신 것이다.
전체 지불금을 갚겠다는 것이다.
교회는 나의 신부다.
버리지 않고, 분명히 데리러 올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 구원을 마지막 날까지 지키려고 오신다.
[죄를 이기도록 삶을 이끌어 주시는 분]
그는 구속된 사실을 하늘에 오를 때까지 지키신다.
보장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서 바울은 묻는다.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큰 사랑으로 인치신 분을 상처를 줄 수 있는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신 분을 비통하게 할 수 있느냐?]
그는 보혜사시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끝까지 지켜주는 분이시다.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구원의 보증이시다.
어떻게 그런 분을 비통하게 할 수 있느냐.
우리는 그에 대해서 감사해야 한다.
우리 삶은 매일 감사해야 한다.
그를 근심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죄를 경계하는 것은 무엇보다 그분 자체를 슬프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죄 자체를 싫어하신다는 것보다, 그분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그를 슬프게 하지 않는 것이 내게는 중요한 것이다.
성령은 교회의 사랑과 연합을 해치는 것에 대해서, 흐느껴 우실 수 있다.
[교회의 사랑과 연합을 해치는 악행은 성령의 소멸을 가져온다]
교회에 앙심을 품고, 복수하려고 하고, 더러운 말로 교회의 아름다운 세워짐을 무너뜨리려는 자를 볼 때, 상처받으셔서 우실 수 있다는 것이다.
신자라고 하면서, 육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악행을 하고, 교회의 행복을 빼앗는 것에 대해서, 아파하신다.
찬양 중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는 것, 주님을 기뻐하는 것." 가사가 있다.
그것은 보통 찬양이 아니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행복을 빼앗는 것,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나는 싫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쁨이 무산되고, 망가지는 것이 너무 슬프다.
성령을 비통하게 하면, 그분의 소멸을 가져올 수 있다.
살전5: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다섯처녀가 기름이 다 떨어지듯이, 성령이 소멸되는 것이다.
성령이 소멸되면, 그분이 우리에게 지원하신 능력이 상실되고, 우리에게 열려있는 축복의 문이 닫힌다.
어떤 사람은 성령에 대해서 범죄하고, 이상하게도 교회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됨을 발견하게 된다.
이상헤게 교회를 섬기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성령이 소멸되어 그렇다.
교회 연합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교회를 세우는 임무, 이것을 지도하시는 성령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안된다.
성령은 열심히 교회를 세우려고 하신다.
엡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4:3-4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구속의 날까지 어떻하든 우리를 인치고, 지켜서, 완전한 구원으로 이끄시는 성령을 근심케 하지 말고, 기쁘시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