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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의 전역
제2차 세계 대전(한국 한자: 第二次世界大戰, 영어: World War II, WWII, WW2)은 1939년 9월 1일부터 1945년 9월 2일까지 일어났던 세계 대전이다. 당시 강대국 전부와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전쟁에 개입해 연합국과 추축국이라는 적대적인 두 군사동맹이 생겨났다. 제2차 세계 대전은 30개국 이상에서 1억명이 넘는 군인이 직접 참전한 총력전이다. 세계 대전 참전국은 총체적인 경제적, 산업적, 과학적 역량을 전부 전쟁 수행에 쏟아 부어 민간 자원과 군사 자원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항공기도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항공기를 통해 인구 밀집지대의 전략폭격이 수행되었고 유일하게 실전 사용된 핵무기 2발도 배치하고 투하하는 데 항공기가 사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인류 역사상 사망자가 가장 많은 전쟁으로 총 사망자는 7,500만명 정도로 추정되며 이 중 대부분이 민간인이었다. 또한 수 천만 명이 홀로코스트를 포함한 대량학살, 기아, 학살, 질병 등으로 사망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추축국이 패배해 독일과 일본이 연합국에게 점령당했으며 전쟁범죄를 일으킨 독일과 일본의 주요 지도자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꼽히고 논쟁도 많지만, 대표적으로는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스페인 내전, 중일전쟁, 소련-일본 국경 분쟁과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의 파시즘 대두와 긴장 고조가 꼽힌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개전일은 통상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폴란드 침공을 개시한 1939년 9월 1일로 본다. 뒤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9월 3일 독일에게 선전포고했다. 1939년 8월 맺어졌던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에 따라 독일과 소련은 폴란드를 분할하고 핀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루마니아의 세력권을 분할하는데 합의했다. 1939년 말부터 1941년 초까지 독일은 여러 군사작전과 조약을 통해 유럽 대륙 대부분을 정복하거나 지배하고 파시스트 이탈리아, 일본 제국 등과 동맹을 맺고 추축국을 수립했다. 북아프리카와 동아프리카 전역이 시작되고 1940년 중순에는 프랑스가 항복하면서 전쟁은 유럽의 추축국과 대영제국 사이 발칸반도, 영국 본토의 대공습, 대서양 해전으로 이어졌다. 1941년 6월 22일에는 독일을 주축으로 한 유럽 추축국이 소련을 침공하기 시작해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구인 독소전쟁이 발발했다.
한편 아시아와 태평양을 전부 지배하려는 일본 제국은 1937년부터 중화민국과 전쟁을 치르기 시작했다. 1941년 12월에는 일본이 진주만의 미국 함대를 공격하고 동남아시아와 중앙태평양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로 미국과 영국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미국이 일본에 선전포고한다. 유럽의 추축국도 곧 연대하여 미국에게 선전포고한다. 일본은 곧 서태평양의 대부분을 장악했지만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패배하며 진격이 멈췄다. 뒤이어 독일과 이탈리아는 북아프리카와 소련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했다. 1943년에는 독일의 동부 전선 패배,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과 이탈리아 본토 침공, 연합군의 태평양 공세 등 추축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던 모든 전선에서 전략적 후퇴를 강요하며 연합국과 처지가 뒤바뀐다. 1944년에는 서방 연합국이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 본토에 상륙하고, 소련은 수 차례 공세를 통해 영토를 되찾고 독일과 추축국을 향해 진격했다. 1944년과 1945년에는 일본이 아시아 본토에서도 역전당해 밀리기 시작하고 연합군이 일본 제국 해군을 무력화하고 서태평양의 주요 섬을 탈환했다.
유럽에서의 전쟁은 독일이 점령한 유럽이 해방되고 서쪽으로는 서구 연합군이, 동쪽으로는 소련군이 독일 본토를 침공해 소련군이 베를린을 함락시키고 아돌프 히틀러가 사망하며 독일이 무조건 항복한 1945년 5월 8일 끝났다. 뒤이어 1945년 7월 26일 포츠담 선언에도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8월 6일에 히로시마시에,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시에 처음으로 핵폭탄을 실전에 사용했다. 일본 본토 침공이 임박한 가운데 추가 원자폭탄 투하 가능성이 제기되고 동시에 만주 전략공세작전 전날 소련이 대일전에 참전할 것을 선포하자 일본은 8월 10일 항복 의사를 밝히고 1945년 9월 2일 항복문서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은 전 세계의 정치 조직과 사회 구조를 뒤바꿨다. 국제 협력을 촉진하고 미래에 일어날 분쟁을 막기 위해 유엔이 설립되었으며[1] 승전국인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5개 강대국이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상임이사국에 올랐다. 미국과 소련은 서로 경쟁하는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반세기동안 이어질 냉전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전쟁으로 유럽이 황폐화되자 강대국의 영향력이 약해졌고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탈식민지화가 촉발되었다. 전쟁으로 산업 피해를 입은 대부분의 국가는 종전 이후 경기 회복과 호황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미래의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시작된,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발생한 정치적, 경제적 통합은 전쟁 전의 적의를 줄이고 공통의 정체성을 만들어냈다.
개전일과 종전일[편집]
제2차 세계 대전 연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제2차 세계 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유럽 전구가 발발하였고[2][3] 이틀 뒤인 9월 3일에는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게 선전포고했다. 태평양 전구의 발발 시기는 1937년 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한 시기나[4][5] 1931년 9월 19일 일본의 만주 침공이 시작된 날짜로 계산한다.[6][7] 그 외의 관점으로는 영국의 역사학자 A. J. P. 테일러로 테일러는 중일전쟁과 유럽 및 그 식민지의 전쟁은 별도로 발발한 것이며 두 전쟁이 1941년에야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하나의 전쟁이 되었다고 주장한다.[8] 그 외에도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이 발발한 1935년 10월 3일의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9] 영국의 역사학자 앤서니 비버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을 일본 제국과 소련-몽골 동맹국 사이 일어난 전투인 1939년 5-9월의 할힌골 전투로 보기도 한다.[10] 스페인 내전을 제2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나 서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11][12]
정확한 종전 날짜도 명확하게 합의되진 않았다. 일본이 휴전을 받아들인 1945년 8월 15일[b]로 받아들여지지만, 실제로 일본이 공식적으로 항복한 날짜는 1945년 9월 2일로 이 때 공식적으로 아시아 지역의 전쟁이 종전되었다. 일본과 연합국 간의 평화 조약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1951년 체결되었다.[14] 독일관련 최종해결에 관한 조약은 1990년 체결되었으며 이 조약이 맺어지고 나서 동독과 서독이 재통일하고 2차 세계 대전 이후 발생한 대부분의 문제들이 해결되었다.[15] 일본과 소련 사이에는 공식적인 평화 조약이 체결되지 않았지만,[16] 1956년 일소공동선언으로 양 국간의 전쟁 상태가 종결되었고 양국 간 외교 관계도 완전히 회복되었다.[17]
배경[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제2차 세계 대전의 원인입니다.
유럽[편집]
제1차 세계 대전은 유럽의 지정학적 지도를 근본에서부터 뒤바꿔놓았다. 동맹국이 패배하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독일 제국, 오스만 제국이 사라지고 1917년 10월 혁명으로 볼셰비키가 러시아의 권력을 장악하면서 소련이 수립되었다. 한편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루마니아, 그리스와 같이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승전한 연합국은 영토를 늘렸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오스만 제국,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면서 새로운 국민 국가들이 등장했다.
미래에 있을 또 다른 세계 대전을 막기 위해 1919년 파리 강화회담 기간에 국제 연맹이 수립되었다. 국제 연맹의 목표는 집단안전보장, 육해군 군축, 평화적인 협상과 중재를 통한 국제 분쟁 해결로 무력 분쟁을 막는 일이었다.[18]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강력한 평화주의적 정서가 퍼졌음에도 불구하고[19] 동시기 유럽 여러 국가에서 민족통일주의 및 보복주의적 내셔널리즘이 대두되었다. 이런 정서는 베르사유 조약으로 독일에게 부과된 상당한 영토, 식민지, 재정적 손실이 다가오며 독일에 두드러지게 발생했다.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은 자국 본토 영토의 13%와 모든 식민지를 상실했으며 독일과 타국과의 합병도 금지되었으며 배상금이 부과되었고 독일군의 규모와 전쟁능력도 상당한 제한을 받았다.[20]
1918년에서 1919년 사이 독일 11월 혁명으로 독일 제국이 해체하고 민주정부인 바이마르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전간기 기간 새 공화국의 지지층과 이를 반대하는 우익 및 좌익 강경 반대파가 지속적으로 충돌했다. 한편 이탈리아는 협상국의 일원으로 전후 영토가 늘어났다. 하지만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은 영국과 프랑스가 이탈리아가 참전하는 대신 보장했던 여러 약속이 평화 협상에서 전혀 이행되지 않은 것에 분노했다. 1922년부터 1925년까지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 파시즘 운동은 내셔널리즘, 전체주의, 계급협조론적 의제를 가지고 대의민주정을 폐지하고 공산주의, 좌파, 자유주의 세력 등을 탄압하며 이탈리아를 세계 강대국으로 만들고 "신로마 제국"을 세우겠다는 공격적인 확장주의적 외교정책을 추구하며 이탈리아의 정권을 장악했다.[21]
아돌프 히틀러는 1923년 독일 정부 전복 시도는 실패하였으나 결국 1933년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라이히스탁(의회)가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면서 독일 권력을 장악했다. 히틀러는 급진적이고 인종주의적 배경을 가진 세계 질서의 전환을 부르짖으면서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대규모 재무장에 들어갔다.[22] 한편 프랑스는 동맹국을 잡아두기 위해 에티오피아를 이탈리아가 전적으로 다룰 수 있다는 협정을 맺었고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식민지로 두길 원했다. 1935년 초에는 자르 분지 지역이 합법적으로 독일과 병합되고 히틀러가 베르사유 조약의 폐기를 선언하며 재무장 계획을 가속화하고 징병제를 도입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23]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는 1935년 4월 군사 세계화의 중요한 단계를 밟고 있는 독일을 막기 위해 스트레사 전선을 결성했다. 하지만 같은 해 6월 영국이 독일과 독자적인 해군 협정을 맺어 독일의 제한을 완화시켜 버렸다. 동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을 장악하러는 독일을 우려한 소련은 프랑스에게 접근해 상호 원조 조약의 초안을 작성했다. 하지만 조약 발효 직전 프랑스-소련 상호 원조 조약을 국제 연맹의 관료제 체계를 거치도록 요구하면서 본질적인 조약 약속 자체가 무력화되었다.[24] 유럽과 아시아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우려한 미국은 같은 해 8월 중립법을 제정했다.[25]
1936년 3월 히틀러는 라인란트에 독일군을 진주시켜 베르사유 조약과 로카르노 조약을 무력화시켰다.[26] 1936년 10월에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로마-베를린 추축국을 결성했다. 한달 후 독일과 일본이 방공 협정에 서명했고 다음 해에는 이탈리아도 방공 협정에 서명했다.[27]
아시아[편집]
중국국민당은 1920년대 중순 다른 군벌들을 상대로 북벌 운동을 전개해 명목상으로는 중국을 통일했으나 뒤이어 중국공산당 계열 동맹과 새로운 지역 군벌을 상대로 또 다른 내전이 벌어졌다.[28] 1931년에는 점점 군국주의적으로 변하는 일본 제국이 아시아 전 지역을 통치할 권리를 가지기 위한 첫발판으로 오랫 동안 영향력을 행사하던 중국[29]을 향해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 침공을 벌이고서 괴뢰국인 만주국을 수립했다.[30]
중국은 국제 연맹에다가 일본의 만주 침공을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일본은 만주 침공으로 국제적인 비난을 받자 국제 연맹을 탈퇴했다. 이후 중일 양국은 상하이, 러허 지방, 허베이에서 여러 차례 전투를 벌이다 1933년 탕구 협정으로 휴전을 맺었다. 이후에도 중국 의용군이 만주와 차하르, 쑤이위안에서 일본 제국의 침공에 저항했다.[31] 1936년에는 시안 사건이 일어나자 국민당과 공산당이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연합 전선인 국공 합작 설립에 합의하면서 휴전 협정이 맺어졌다.[32]
전쟁 전 사건[편집]
유럽에서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 사건, 아시아에서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전 사건 및 아비시니아 위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