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家 방문기 1
헨리家는 미국중부지방 Iowa 주 시골에 자리하고 있었다
헨리부부는 독일계 이민 자로서 아주 검소하고 순박하신 분들이었다
그 마을 전체가 헨리가문의 그러니까 한국으로 치면 씨족 마을처럼 미국 이민와 정착한 그곳서
대대로 살고 계셨다 난 헨리집안 막내 며느리 친구자격으로 그 댁을 방문할 영광을 갖었는데
콜로라도 에서 출발하여 네브라스카 주 모텔에서 1박하고 하루종일 운전하여
우리일행이 도착한 시간은 늦은 밤이었다
처음으로 가보는 전형적인 미국집 방문이기에 내겐 뭐든지 신비스러웠다
미국 집은 현관이 있기는 하나(폼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그라지(차고)통해서 들어가거나
주로 부엌문으로 출입을 하는 게 보통이다 우리가 너무 늦은시간에 도착하여
대충 부엌문으로 들어갔나 했는데 어느 누가 오더라도 부엌문을 이용하지 현관으로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거실에서 지내는 시간보다는 주방 식탁에서 앉아 담소하고 소일하는 시간이 많은것도 의외었다
하긴 현대식 주택들도 리빙룸 페밀리룸 이렇게 거실이 두개씩 만들어진 걸 보면
미국인들 생활습성이 주방위주로 되어있는 걸 볼 수있다.
헨리부부는 자식들 모두 내 보내고 두분만 사시기에 평생을 모아온 선물 장신구 등을
온 집안에 널려놓 듯 장식해 두셨다 거실 바닥 주방 선반 곳곳은 골동품상 가게처럼 보였지만
그분들의 추억을 가득 담은 헨리 박물관이라 생각했다 도착시간이 늦었으니 만큼 각자 방을 배정 받아
이층으로 안내되었는데 내가 사용할 방은 중앙에 자리잡은 젤 넓은 방이었다
창문도 크고 전망도 가장 좋은 방이니 내가 얼마나 귀빈대접을 받았던지 황공할 뿐이었다
그 방에는 영화 속에서 보아온 옛날 골동품들로 장식돼있었는데
중세식 세숫대야 주둥이 휘어진 물병 화장대 위에 놓인 화병과 촛대 이름을 알 수 없는 귀한 장식품...
세월의 손때와 정돈된 단정함이 깃든 방에서 한가운데 버티고있는 널찍한 침대 드러누웠지만
난 황녀 가된 기분으로 좀처럼 깊은 잠을 들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식사시간 맞추어 부엌으로 내려가니 헨리부인께서 손수 커피를 만들어 놓으시고
입맛대로 알아서 먹으라고 온갖 종류의 빵과 도넛을 사다가 팩도 뜯지 않은채 진열해 두셨다
친구 얘기론 큰딸이 새벽마다 와서 어머니와 함께 기도를 드리고 커피를 마시고 간다 했다
어머니의 하루는 딸과의 기도로 시작하고 그 모녀의 기도는 일년 열두달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했다
헨리부인은 뛰어난 커피솜씨를 갖으셨기에 큰 자랑으로 여기셨다
커피포트는 스텐으로 된 구식이었으나 한사코 현대식 유리로 된 커피머신을 외면하시고
누구에게도 커피 만드는 일만은 양보하시지 않으신 분이라 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그날이 주일이기에 성당을 갔다 그 마을은 거의가 카톨릭 신자들이었다
신부님은 한국에 잠깐 머문 적이 있노라고 우리에게 안녕하세요 인사 하셨는데
동양인 흑인 한 사람 없는 그런 동네에서 한국말 하는 신부 님을 만난다는 게 너무도 신기했다.
성당서 오는길에 farm(농장)을 둘러보았다 가도 가도 끝없는 들녘! 자기 땅이 어디쯤인지 알 수나 있는지?
농사지으러 일단 밭에(?)들어간 사람은 종일토록 모습을 볼 수가 없을 만큼 넓다
그곳은 일년을 농사하면 다음해는 쉬어야 한다 주마다 법은 다르지만 대부분의 미국 농사법이 그렇다
그래서 자기농토 반만 농사하고 다음해는 나머지 반을 하고 이런 식으로 하는데
농사하지 못하고 노는 땅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보상이 나온다 했다
이는 수요가 공급을 따르지 못하는 거대한 농작물 수확을 막으려는 미국 농사 정책이다
농사를 지으면 수확으로 돈을 벌고 농토를 놀리면 보상을 돈을 받고 꿩 먹고 알 먹고
얼마나 축복 받은 나라 법인지
그리고 돼지를 기우는 곳은 양돈장 식으로 말하지 않고 pig farm(피크 팜)이라 했다
헨리 노부부는 거대한 피그팜을 가지고 있었다 비가 온 후라 질척거려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만 보았는데 그 냄새는 미국 중부 곳곳을 뒤덮고 있다.
팜에서 돌아오니 온 집안이 잔치 분위기였다 아침에 일어나 부엌으로 내려 갔을 땐
멀리서 아들 손자며느리가 온 집치고 썰렁하다 생각했는데
그럼 그렇지 파티가 열리는구나 싶었다
헨리부부에겐 아들 셋 딸 둘 두셨는데 막내인 친구네 가족 말고는 모두 부모님 가까이서 살고 있었다
파티시간이 되니 아들 딸들에 손자들까지 모여드는데 모두들 음식을 한가지씩 만들어왔다
집주인 헨리여사는 터키구이(칠면조) 한가지만 하시면 언제든 알아서들 해온다 했다
펌킨파이(내가 젤 맛잇게 먹었음) 각종 과일셀러드 농장에서 직접 만들어 저장한 옥수수에 메슈포테이토
독일식 햄 베이컨 케이크 크림스프 쿠키 푸딩 젤로 .... 주방에 음식을 펼쳐놓고 일회용 접시 쌓아 놓으니 남자들은 지하실서 여러 개의 탁자와 접는 쇠의자를 내어다 집안 곳곳에 펴놓고...
그리고는 알아서 척척 음식 담아다 먹는 것이다 이런일들이 순간적으로 진행되어 난 어리둥절했었다.
우리한국 입맛에 독일음식이 맞다더니 미국음식 즐겨먹지 않는 나 였지만
역시 모든 음식이 다 입맛에 척척 달라붙을 정도였다
내가 차에서 먹으려고 단감 한 상자를 실고 갔었는데 파티 장에 내어놓으니
생전 처음 보신 다며 외삼촌뻘 되신 분이 두어 개 가져가고 싶어하셨다(미국사람들은 감을 먹을 줄 모름)
식사가 끝나니 그동안 가족들간에 일어났던 일들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얼마전 결혼한 손녀딸의 비디오테입이 나왔다며 그걸 틀어 놓고 결혼식 파티속으로 빠져들었고
(그 장면들을 얘기하자면 딴길로 샐까봐 생략) 손녀딸 한아이는 학교에서 치어리더로 뽑혔다 했고
할아버지 좋아하신다고 카드놀이 상대역을 얼마나 잘해주는지 孝의 차원이 아니고
진심으로 우러나서 하는 모습은 정말 오붓한 가족들의 모임임을 알수 있었다
(참고; 미국말엔 孝란 단어가 없대요??) 파티 뒷설겆이는 한국며느리 몫 이였다
윗며느리들은 완전히 손님이었고 헨리여사도 그걸 당연히 여기고
막내며느리 에게도 설겆이 못하게 한사코 말리지만 어디 한국여자가 행주든 시어머니를 보고만 있겠는가
다른집서 음식을 장만해 왔고 일회용 용기들을 사용했기에 별로 치울것도 없지만
한국며느리는 어쩔수 없이 행주라도 빨아대며 온 주방을 이리 저리 닦고만 다녔다.
짧게 쓸수가 없어 다음회로 넘겨야 겠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