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식탁에 128가지 음식(당시 중국인 1천명 분량. 한화 약 8천만 원)을 올리게 하고 절대 같은 음식을 3번 이상 먹지 않으며, 3천 벌의 옷을 쌓아두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 입는 여자, 피부 미용을 위해 매일 신선한 모유를 받아먹되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킨답시고 산모로 하여금 무릎을 꿇은 채 젖을 물리게 한 여자, 바로 청나라의 서태후입니다.
말단 관리였던 아버지가 일찍 사망하는 바람에 허드렛일로 생계를 꾸려 나가야 했던 자희(훗날 서태후)는 뛰어난 미모를 무기 삼아 중국 청나라의 9대 황제 함풍제의 후궁으로 입궐했다가 원자 아들을 출산함으로써 황후 자리를 꿰차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함풍제에 전심전력하기 위해 아들의 양육마저 포기해가며 권력에 대한 욕망을 불태우는데요. 이 때문에 훗날 아들인 10대 황제 동치제는 어머니인 서태후와 대립하게 됩니다.
‘서태후’라는 명칭은 정식 태후였던 정황후가 자금성의 동쪽에 거주한 반면, 공동 태후였던 ‘자희’가 서쪽에 거주한 때문에 붙은 건데요. 서태후는 남편인 (9대 황제) 함풍제가 사망하고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가진 8명의 고명대신들을 일거에 쳐냄으로써 명실상부한 정권을 탈취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때부터 서태후는 아들인 (10대 황제) 동치제의 결혼에 개입하고 후궁들을 직접 선택하는데요. 서태후와 갈등해오던 동치제는 어느날 갑자기 천연두(매독, 혹은 서태후의 독살일 가능성)로 사망하고, 황후였던 며느리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자(역시 서태후 살해설이 있음) 완전히 권력을 장악합니다.
서태후는 자신의 조카를 제 11대 황제(광서제) 자리에 올린 다음 사사건건 간섭하기 시작하는데요. 이 무렵 동태후가 또 급사(서태후 독살설)하게 됨으로써 정치는 완전히 서태후의 독무대가 됩니다. 서태후는 (제 11대 황제) 광서제마저 유폐하고 섭정으로 나서는데요.
‘악녀’ 서태후는 음란성과 더불어 잔인성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데요. 죄인의 몸을 그물로 조여 불거지는 살을 단도(短刀)로 1천번 도려내어 죽이고, 음란한 밤을 함께 보낸 남자를 땅에 묻은 후 그 머리 부분에 펄펄 끓는 수은을 부어 ‘가죽을 땅에다 남겨놓고 근육 덩어리만 뛰쳐나오게’ 하여 죽게 하였답니다. 그야말로 몸서리쳐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