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에서 강진(强震)이 발생해 사망자만 3000명 이상이었습니다. 부상자도 5000명이 넘는다고 하니 대재앙입니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이런 소식에 안타까움과 슬픔 외에 또 다른 감정 하나가 더 있을 겁니다. 바로 이곳에서도 그 같은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캘리포니아에 규모 7.0이 넘는 빅원이 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오래 전부터 예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조용히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고 좋아하기 보다는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 속에 빅원이 올 확률은 더 높아진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의 강진 피해는 남의 일로만 보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지진참사 현장사진을 보면 한때 집과 장사하던 가게가 있던 자리는 부서진 진흙 벽돌 조각들만 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거리에서 자고 있지만 남아 있는 건물들이 또 언제 무너질 지 몰라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세웁니다. 가장 크게 타격을 입은 고대 도시 마라케시는 약 1000년 전에 세워졌는데요. 캘리포니아의 반대편에 위치한 이 도시가 보여주고 있는 폐허는 어떻게 보면 캘리포니아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지진활동을 견딜 수 없는 약한 벽돌 구조물에 대한 지진보강 공사가 절실하고 이를 서둘러야 한다는 점입니다. 1925년 샌타바버러와 1933년 롱비치에서 발생한 지진은 이미 강화되지 않은 석조 건물이 대규모 지진 발생 시 죽음의 덫이 될 수 있다는 조기 경보를 제공했습니다. 그런 건물을 신규 건축하는 것은 1930년대에 이미 금지됐고요, 그나마 남아 있던 건물도 1971년 실마 지진 당시 대부분 무너지면서 남아 있는 건물에 대해서는 철거하거나 더 안전한 건물로 만들려는 대대적인 노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주 내 대부분의 도시에서 그 같은 지진보강 공사를 중심으로 한 안전 대책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도시들도 있어 만약 미래에 대규모 강진이 발생한다면 엄청난 인명 및 재산 피해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건축 분야와 지진 전문가들은 모로코의 전통 진흙 벽돌 스타일로 지은 건축물과, 19세기와 20세기 초기에 캘리포니아에서 돌로 지은 석조 건물은 유사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지진으로 땅이 흔들리면 부서지기 쉽고 더미로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남가주 구조공학자협회 크레이그 챔벌레인 회장은 모로코의 파괴에 대해 “캘리포니아 내 벽돌건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고 말합니다. 지진으로 파괴된 모로코의 건물들은 대부분 지진보강 조치가 없는 석조 어도비 벽돌이나 일반 벽돌 건물이었습니다. 이 같은 건물은 땅이 흔들리면 아주 쉽게 무너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남가주 구조공학자 협회의 패티 하버그-페트리치 전 회장은 가주에 있는 일부 오래된 벽돌건물은 연성이 많지 않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연성은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으면서 모양을 변형시킬 수 있는 물질의 성질을 말하는 것인데요. 그는 “차량에는 범퍼가 장착되어 있어 만약 무언가와 부딪히면 범퍼가 에너지를 흡수해 운전자의 신체와 차 안에 있는 탑승자를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힘으로부터 보호한다”며 “현대에 건축되는 건물은 이와 비슷한 개념이 적용되어 디자인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현대 건물은 사람들이 지진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는 연성을 갖도록 설계돼 사람들이 건물을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도록 만든다”고 말합니다. 반면 오래된 벽돌건물에 대해 지진학자인 루시 존스는 지진이 발생하면 벽돌을 붙이고 있는 모르타르가 본질적으로 용해되어 벽이 무너지고 지붕이 무너지는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는데요. 그는 “돌덩이들이 무너지면서 사람을 죽일 수 있고 지붕이 무너지면 더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최근 발생한 지진에서도 벽돌 벽은 지속적으로 건물 내 입주자 위로 무너져 내리고 보도에 있는 사람이나 거리의 자동차 위로 쏟아져 내리는데 심한 경우에는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자동차 안에서 숨질 수도 있습니다. 2003년 캘리포니아 중부 해안에서 규모 6.5의 강진이 발생했었는데요. 당시 파소 로블레스에 있는 한 여성복 매장에서 일하던 2명의 여성이 건물 속에 파묻혀 숨졌습니다. 무너진 건물은 1890년대에 지어진 역사적인 건축물이었는데 시 당국은 이미 지진 발생시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었습니다. 1989년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발생한 로마 프리에타 지진 때는 샌프란시스코의 4층 벽돌 건물 벽이 주차장으로 무너져 내리면서 그곳에 주차된 차들을 박살내고 5명이 숨졌습니다. 2014년 나파에서 발생한 규모 6.0 지진에서도 다운타운에 있는 벽돌 건물에서 부서진 벽돌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었는데요. 만약 사람들이 많이 일하는 낮 시간에 지진이 발생했다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했을 것입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11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서도 강진이 발생해 엄청난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냈었는데요. 오래된 벽돌 건물의 붕괴로 인해 수십 명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벽돌 건물 안에서도 4명이 사망했고 3명은 건물 밖으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또 무너진 벽돌 건물 옆을 지나던 보행자와 그 인근 도로를 운전하던 차량 위에 벽돌 잔해가 무너져 내린 결과로 인해 26명이 희생됐습니다. 한 거리에서는 무너진 벽돌 건물의 대형 잔해가 버스 위로 떨어지면서 운전 기사와 1명을 제외한 승객 전원 등 모두 8명이 숨지기도 했습니다. 인근을 걷던 보행자 4명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상당수 도시가 오래된 벽돌 건물에 대해 오래 전부터 꾸준히 조치를 취해오고 있는데요. LA만 해도 1981년부터 건물에 대한 지진보강공사를 하거나 건물을 철거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눈에 띄는 도시도 적지 않습니다. LA 타임스가 2018년에 작성된 건물 안전 기록을 분석한 결과 리버사이드와 샌버나디노를 포함한 인랜드 엠파이어 지역 10여개 도시의 경우 최대 640개 건물이 위험한 상태로 분류됐습니다. 이 건물들은 수십년 동안에 걸친 경고에도 지진보강공사를 하지 않은 채 남아 있는데요. 이 지역은 특히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는 점에서 우려가 큽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가장 위험한 3개의 지진 단층대인 샌안드레아스, 샌하신토, 쿠카몽가가 LA 동쪽에 위치한 이 지역에서 교차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 로컬 정부는 위험에 노출된 이런 건물에 대해 지진보강공사나 철거를 요구할 수 없었는데요. LA 인근에는 이 지역 외에도 지진에 취약한 건물이 있는 곳이 더 있습니다. 벤투라도 그 중 한 곳인데 지금보다 더 강력한 지진보강공사 시행령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연방지질연구소(USGS)는 오래된 벽돌 건물을 ‘인명 안전에 가장 크게 위험을 초래하는’ 2가지 건물 유형 가운데 하나로 분류하고 있는데요. 다른 하나는 비연성 콘크리트 건물로 이 같은 건물은 콘크리트 프레임 안에 적절한 철근 구성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지진이 발생하면 콘크리트가 기둥 밖으로 폭발할 수 있고 재난적인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비연성 콘크리트 건물은 벽돌 건물보다 훨씬 규모가 큰 경우가 많은데 올해 초 터키 남부와 북부 시리아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5만명 이상의 대형 인명피해가 난 한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취약하고 오래된 벽돌 건물 소유자가 예상되는 지진 피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심각한 소송을 당할 위험이 있다고 말하는데요. 이는 지방 정부가 아직 지진강화조치 완료를 명령하지 않아도, 또 언제까지 마무리해야 된다는 마감기한을 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2003년 파소 로블레스 여성복 매장에서 사망한 두 여성의 유족은 배심원 평결을 통해 거의 200만 달러에 달하는 보상금을 받았는데요. 배심원단은 건물주가 보다 안전한 상태를 만들 수 있었음에도 제대로 신경 쓰지 않고 태만했던 것으로 해석해 피해 여성 가족에게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한 것입니다. 미리 지진에 대비하는 조치를 한다면 소송이나 거액의 배상을 피할 수 있고 무엇보다 귀한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유비무환이라는 고사성어가 딱 들어맞는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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