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요일 오후, 인천에서 초등학교 동창 모임이 있었다. 약속 장소로 가기 위해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도중 나는 승차장으로 걸어가는 어느 부녀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부녀라고 보기엔 부자연스러웠고, 더구나 아버지의 옷차림이 작업복인 점이 이상했다.
아버지는 딸을 버스 승차장 앞까지만 바래다주고 돌아서서 대합실 쪽으로 가 버렸다. '딸을 배웅한다면 잠시 서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니면 버스가 출발할 때 손이라도 흔들어 줄 텐데….'
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딸을 조금 더 지켜보는데 몸의 움직임이 거의 없고 시선도 한곳으로 고정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그 아가씨는 앞을 보지 못했다.
아까 아버지라고 생각한 분은 터미널에서 일하시는 분으로, 그 아가씨를 승차장까지 데려다 주신 것이었다. 그때였다. 버스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던 아주머니께서 다정하게 그 아가씨의 팔짱을 끼는 게 아닌가. 마치 어머니와 딸 사이인 것처럼.
아주머니는 아가씨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이윽고 차가 도착하자 아주머니는 마치 사랑스러운 딸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모습으로 팔짱을 꼭 끼고 차에 함께 오르셨다.
그날 나는 세상에는 눈에 잘 띄지 않은 아름다움이 참 많은 것을 깨달았다. 살기가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는 요즘 감동을 주는 한 편의 드라마를 본 느낌이었다.
그 아름다운 장면 덕분에 저녁에 만난 초등학교 친구들의 모습이 한층 더 정겹게 보였다.
안종선 / 충북 충주시 연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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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주의 평화가 넘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