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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나는 지난 주에 두 분의 카톨릭 신자로부터 두 종류의 서류 혹은 책자를 전해 받았다. 그 중 한 분인 마리아는 우리 장모님인데, 장모님은 천주교를 알리는 팜플렛과 더불어 ‘둔촌 이집(李集) 선생 정훈비(庭訓碑)’라는 제목의 글을 주셨다. 그 글은 A4용지 한 장에 적힌 것으로, 둔촌 선생이 후손들에게 내리는 훈시를 담고 있다. 그 일부를 옮겨 보겠다.
독서는 어버이의 마음을 기쁘게 하느니라.
시간을 아껴서 부지런히 공부하라.
늙어서 무능하면 공연히 후회만 하게 되느니.
머리맡의 세월은 멈추지 않고 쏜살같이 흐르도다.
이런 내용이 담긴 그 글을 여러 부 복사해서 나와 다른 사위들에게 나누어준 뒤, 장모님은 일장 연설을 하셨다. ㅡ 둔촌동 일자산 해맞이 광장에 갔다가 우연히 이 비석을 보셨다는 것이며, 이집 선생은 ‘우리 광주 이씨’ (장모님의 친정이 광주 이씨다)의 어른인데, 이 어른이 이렇게 대단한 분이라는 것을 알고 기뻐서 그 글을 베껴 오셨다는 것이고, 그러니 사위 제군들은 이제부터라도 ‘우리’가 뼈대있는 집안이라는 점을 명심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뼈대있는 집안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둔촌이라는 호를 가진 고려말의 대학자를 선조로 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비문을 베껴와 자식들에게 나누어주고 그것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분을 어머니로 두었기 때문이다. 이 장모님이 ‘노인의 친구’라는 글을 읽게 하셨던 그 장모님이다. (기억들 하려나? “노인에게 ‘아까도 그 말 하셨잖아요’라고 말하지 않는 그대는 노인의 친구. 노인의 친구에게 주님의 축복이 있을진저.”) 벌써 몇 해 전 일이지만, 마리아 장모님은 미사보 쓰는 일과 관련하여 커다란 논쟁의 회오리를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장모님이 펼쳐 놓은 성경책의 그 페이지에는 “여자들이 미사보를 쓰는 것은 우리의 관습이다”라고 적혀 있었다. 장모님은 이 구절을 “단순한 관습이니 안 쓰려면 안 써도 좋다”로 해석하셨고, 나는 “오래된 관습이니 계속 지켜야 한다”로 해석하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장모님이 학자와도 같은 지성을 뽐내는, 아주 보기 드문 노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저 아직도 서류나 책자를 멀리하지 않고, 글을 읽는 일 및 읽은 것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일을 남의 일로 여기지는 않는, 약간 보기 드문 노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최근에 마리아 장모님은 신약, 구약을 완전히 독파하셨다. 그 사실을 발표하시면서 장모님은, “돌아서면 까먹고, 또 보고 또 돌아서면 또 까먹어서” 당신에게 그 내용이 얼마나 남아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자신이 없다고 고백하셨다.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이였다. “콩나물에 물 주어 보았자, 그 물이 도로 다 빠져나오잖아? 그렇지? 그러나 그래도 콩나물은 자라나잖아? 그러니 물이 아주 다 빠져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거야.”
우리 장모님이 자식들에게 큰 소리 뻥뻥치는, 약간 권위적인 어머니인 듯하다는 느낌을 줬다면, 이 글이 잘못된 것이다. 그런 분은 아니다. 사위들에게 섭섭한 것이 많을 텐데, 우리 장모님은 내색을 할 줄 모른다. 몇 해 전에는 절두산 성당에 가셔서 납골함을 분양받으셨다.
<안드레아>
안드레아는 진섭이 아버님이시다. 내가 전해 받은 책자 표지에는 ‘안드레아의 가족사랑’이라는 제목이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찍혀있고, 손자를 안고 있는 아버님의 사진이 실려 있다. 여든이 훨씬 넘으셨는데도 단정한 용모이고 여전히 인사하신 모습이다. 내가 가까이에서 아버님을 뵈었던 것은 옛날 옛적 청량리 명다방에서였다. 그 때 아버님은 아들 친구(물론 나)의 보증을 서주시느라고 일부러 외출하시여 은행까지 동행하여 주셨다. (진섭이 어머니는 내 결혼식에까지 (흰 망사 장갑을 끼시고) 와 주셨고.)
<안드레아의 가족사랑>은 안드레아의 가족사랑에 관하여 누군가가 쓴 책이 아니다. 그 책의 저자는 안드레아 당신이시다. 안드레아가 운영하시는 가족 까페가 (‘다음’에) 있다고 한다. 거기에 실린 글 중 안드레아의 글만 뽑아내어 진섭이를 비롯한 형제들이 책자를 만들어 낸 것이다. 뼈대있는 집안이로고. 진섭이를 봐서는 믿어지지 않겠지만 말이야. 편집도 상당히 잘 되어 있어. 중간 중간에 마치 삽화처럼 사진을 배치하기도 하고 말이야. 이크, 정가도 메겨져 있구나. 5000원.
5년 동안 쓰신 글이니, 별별 이야기가 다 들어있다. 카톨릭 신자로서 평소의 종교적 단상을 적어 놓은 글이나 카톨릭 축일에 즈음하여 떠오른 생각을 쓰신 글이 많고, 몸이 불편하신 ‘안방 마님’ (진섭이 어머니)을 걱정하는 글을 비롯하여 자식, 손자들을 걱정하고 그들에게 감사하는 글도 많다. 조깅이나 자전거타기 등 하시는 운동에 관한 글도 있고, 해주 정(鄭)씨 가문에 대한 글도 있고, 도배라거나 벌초, 시제, 온천욕 등 일상의 소소한 일에 관한 글도 있고, 진섭이 등 자식들의 질문에 대하여 답을 하는 글도 있으며, 사형제도 폐지, 호주제도 폐지 등 사회 문제에 관한 견해를 적으신 것도 있다. 그리고 젊은 날을 회고하는 글도 있고, 인생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그리움이나 치매, 백내장 등을 비롯한 병마에 대한 걱정과 불면, 노년의 삶의 불편함과 어려움, 외로움 등을 진지하고 솔직하게 털어 놓는 글까지 있다. 정말 없는 게 없다. 이 책자는 아버님의 일기이며 자서전이고, 칼럼이며 편지이다. ‘젊은 시절 꿈’(2007. 05. 28)이라는 제목의 글 중 일부를 옮겨 보겠다. 1940년의 일을 회고하는 글이다.
그럴 즈음이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저 멀리 인천 앞바다에서 처량하게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 붕~ 붕~ 처량하게 들려오는 소리 심금을 울린다. 첫아들을 낳은 안 사람, 부모형제 만감이 어린다. 만약에 시상이 있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줄 떠오를 것도 같다.
그 때에 주제넘게 시 쓰는 것이 내 소망이었으니 그것을 실천해 보겠다고 우선적으로 책을 읽기로 했다. 쉬는 날 인천시내로 들어가 책방을 뒤져 책 몇 권을 골랐다. 돈 되는 대로 산 것이 5 권인가 샀다. 그게 (일본어 책) 거창하게도 세계 문학전집 ㅡ 부활, 전쟁과 평화, 암굴왕, 춘희, 나나 등 5권으로 생각난다.
그것을 열심히 읽은 기억이 이제 생각하니 이루지도 못할 망상이었다. 이제사 나이 먹어 내 인생의 고비에 서니 그 허무한 망상이 그리웁구나. 아~ 아 내 인생이여......
그런데, 진섭아, 자전거를 가지고 아버님을 괴롭히는 녀석은 아직도 못 잡았냐? 아버님은 한강 둔치에서 자전거 타기를 매우 즐기시는 것 같은데, 즐기시는 그 만큼 고통도 크게 받으시는 것 같다. 한번은 그토록 아끼시는 자전거를 도둑맞으셨다고 한다. “거기에 7~8대가 함께 있었는데 유독 내 차만은 새 차였으니까” 훔쳐간 것 같다면서 아버님은 “내 눈에만 띄어보아라. 아~ 하늘이여 땅이여. 요절을 내시요”(‘내 보물 1호 도난’, 2006. 03. 11)하고 속상해하셨다. (킥킥거리지 말 것!) 그 뒤에 자식들이 또 하나 장만해 드린 모양인데, 이게 계속 말썽이다. 어떤 놈이 돌아다니면서 자전거 타이어의 바람을 죄다 빼 놓는 모양이다. “며칠 전에 자전거 바퀴 무시고무(바퀴 바람 넣는 것) 빼버려서 애를 먹었는데 이번에도 또 그 짓을 해 놓았다. 무슨 심보일까? 사실 옆집 그 무뢰한이 아파트 전체를 돌아다니며 그 짓을 다 해 놓았으니 아파트의 무법자다.”(‘달콤한 꿈’, 2007. 03. 02)
<글 읽고 글 쓰는 습관들이기>
두 분 다 카톨릭신자라고 말하였지만, 나는 지금, 종교를 가지는 것이 노후 대책이라고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두 분 다 자식들과 원만하고 자애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계신다고 말하였지만, 나는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며, 두 분 다 자식들에게 별로 의존하지 않고 상당히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계신다는 점을 암시하였지만, 역시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나는 글 읽고 글 쓰는 일에 관하여 이야기하려고 한다. 나는 그 일에 습관을 들이는 것이 노후 대책이라고 주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노년의 삶으로는, 글 읽고 글 쓰면서 사는 것 이상이 없다. 그런데 노년에 들어 그러한 삶을 살려면 노년에 들어서기 전에 그러한 삶에 습관을 들여 놓아야 한다.
물론 보다 중요한 문제는, 글 읽고 글 쓰는 것이 과연 노년의 이상인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나는 확실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남들을 설득할 자신은 없다. 그러나 노년에 그 일 이외에 할 만한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당동 지하철역에 가면 ‘봉사’라는 글씨가 쓰인 노란 조끼를 입고 자원 봉사로 일하는 노인들을 볼 수가 있다. 그 노인들은 보수를 받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닌 만큼 얼굴에는 자부심과 긍지가 쓰여 있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 노인들이 그저 딱하게 보일 뿐이다. 차라리 생활비나 용돈이 궁해 일당을 바라고 도로 보수나 풀베기 작업에 나선 삼례의 노인들이 내 눈에는 훨씬 건전하게 보인다. 자원 봉사로 나선 노인들은, 봉사 활동에 나서는 것 이외에는,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 시간을 봉사 활동에 사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말인가? ㅡ 이렇게 질문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히 노년에는 말이다. 이제는 남을 위해 사는 것 ㅡ 보수를 바라고 하건, 무료 봉사로 하건 ㅡ 은 좀 그만 두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즉 자기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노년은 그 일에 아주 합당한 기간이 아닌가? 세상은 노인들에게 봉사 활동을 요청하지 않지 않는가? 그런데도 바깥 세상을 기웃거리면서 봉사 좀 받아달라고 하소연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에 대한 봉사의 의무에서 면제된 노인들은 그 의무에서 유예된 학생들처럼 공부만 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나로서는 그 공부, 즉 글 쓰고 글 읽는 것이 영혼을 돌보는 일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증명해 내어야 하겠지만, 역시 자신이 없어서 나중으로 미루어 두겠다.
안드레아 아버님으로부터 좋은 선물을 받아 그 답례로 글을 쓰다가 엉겁결에 노후대책 이야기까지 하게 된 것인가? 아니다. 노년의 이상적 삶과 그 준비에 관한 위의 이야기는 평소의 내 지론인데, 안드레아 아버님이 그러한 삶을 실천하고 계신 것을 알게 되어 그것을 계기로 평소 지론을 털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안드레아 아버님의 글쓰기에는 미흡한 것이 있다. (나 역시 까페에 글 쓰는 사람으로서, 아버님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지게 된 것 같다.) 그 미흡함은, 아버님의 까페에는 동년배의 글쓰기 동료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아버님이 가족을 상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나 같은 시대를 살아온 노인들을 상대로 말한다면, 글의 내용이 훨씬 더 진지해졌을 것이며 훨씬 더 재미있어졌을 것이다. 가족에게 할 말 따로 있고, 친구들에게 할 말 따로 있는 법이잖아? 하긴, 그 연세에 인터넷 까페를 드나들면서 글 쓰고 글 읽는 분이 또 있겠는가? 이래 저래 진섭이 아버님, 정말 대단한 분이시다. (나 같은 것은 상대도 안 되지? 라이벌은 무슨......)
첫댓글 병원에 입원한지 어언 4주가 되어가는데...병원에 있는 덕에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조금 썼지... 평소에는 바쁜핑계로 마음만 잇었는데...속이 다 후련하다..시간을 쪼개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 시간을 즐기는 노후대책!!!! 두분다 대단하시다...
밤늦게 변론 준비하다가 잠깐 들렀더니, 조학장의 필력이 또 휘날리는구나. 나의 아버지 안드레아님께 소중한 비평이라 이 글을 아버지 카페(cafe.daum.net/andreajik 카페명 : 안드레아 소식)로 퍼가야 겠구나. 글모음집 만들어 드리고 난 후 가장 멋진 화답이라 크게 기쁘구나.......... 덕영이는 병원에 입원해 있나보구나 문병도 못해서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전화위복으로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 Good Luck
조학장 장모님이 참 훌륭한 분이시구나 영복씨(50넘은 나이에 실명을 거론해도 결례가 아닌지 모르겠지만...) 모습을 보아도 그리 짐작이 된다. 둔촌 이집(李集) 선생 정훈비(庭訓碑)와 같은 내용은 광주이씨 가문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지혜라고 할 수 있겠구나 좋은 가훈이나 좌우명을 가지고, 이를 지켜가며 사는 인생은 저절로 행복하고 소중해 지리라
장모님의 콩나물 키우기 비유 정말 멋지시다~안드레아 진섭 아버님도 정말 존경할만한 분이시고 정말 대단들 하시다
진섭의 부친 안드레아님과 영태의 장모 마리아님을 전해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배움과 느낌이 있었다.
영태 장모님과 진섭 아버님, 두 분 다 대단하시다...그런데 말야~ 영태의 글을 읽다보면 내 쓸까 했었던 그런 비슷한 류의 내용들이 들어있어. 뭔 말인고 하니...그럼 간단한 설명을 준비 해야겠군!
그런데, 그런 장모님이 기억력이 너무 나빠지셔서, 걱정이 되어,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셔야 한다는구만. 진섭이 아버님은 그런 걱정은 전혀 없으신 것 같다.
영태와 거의 40년을 만나면서도 영태 장모님 이야기는 별로 못들었다. 은행에 계셨던 장인 밀씀만 자주 들었었는데,장모님이 대단하시구나. 특히 내 마음에 와닿는 말씀은 '콩나물 이야기'야. 정말 어떨땐 아무리 노력해도 소득이 없을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콩나물 이야기를 기억하고 위안을 받아야겠구먼.-- “콩나물에 물 주어 보았자, 그 물이 도로 다 빠져나오잖아? 그렇지? 그러나 그래도 콩나물은 자라나잖아? 그러니 물이 아주 다 빠져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거야.”. 공부하는 것도 이 콩나물에 물주는 것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 특히 영어 단어를 외우고, 중국어 단어를 외운 뒤 잘 생각이 안나면 내 자신에 화가 나지.
어허... 이글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우네~~ 달리 학장님이 아니구먼~~
영태 장모님 진섭이 아버님 정말 존경 스럽고 멋진 분들 이시네...
이 글을 읽다보니 명진이 아버님도 생각이 나고 우리에게 귀감이 되시는 훌륭한 어르신들을 한번 뵙고싶구나...
조교수와 친구들의 댓글을 읽고 내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