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 김시헌
지금은 겨울이다. 대부분의 나무가 잠속에 들어갔다. 분주하게 일하던 봄여름을 보내고, 낙엽의 가을을 맞이하더니 어느덧 하늘을 쳐다보면서 표정없이 서 있다. 키가 큰 미류나무 아래를 거닐어본다. 싸움의 흔적 같은 어수선한 낙엽의 조각이 흩어져 있는데도 모목(母木)은 아랑곳없다는 듯이 바람부는 겨울속에 알몸을 내놓고 당당한 자세로 잠들어 있다.
발에 밟히는 낙엽을 하나 주워 본다. 나비 날개 같은 연약한 잎이다. 높은 공중에 매어달려서 여름의 비바람과 싸우다가 때가 되니 쉽게 떨어져나온 낙엽이다. 누가 거두어주기도 않고 발에 밟히고, 차바퀴에 눌리고, 바람에 날리우는데도 불평할 방법이 없다. 그보다도 불평을 해보아야 소용이 없다는 체념을 한 모양이다. 사람은 때로 죽음에 대해서 저항을 해보고,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도 쳐보지만 낙엽에게는 그것이 없다.
나무는 언제 보아도 멋이 있다. 가지를 옆으로 길게 뻗은 나무는 더욱 멋이 있다. 가지 끝에 수많은 잎을 달고 여학생이 고운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무용을 하듯이 얇고 동그란 잎을 바람에 날리고 있다. 하늘 높게 우뚝 솟은 고목을 바라보고 있으면 학문을 깊게 닦은 노학자의 멋이 보인다. 수백 년의 긴 세월을 두고 주위에 있는 온갖 것을 보고 듣고 버리고 받아서 그것을 모두 소화한 고목의 표정은 도인과도 같다.
생명이 얼마나 더 남았느냐에 대한 질문이 없고, 내일 누가 고목의 밑둥치를 끊어버린다 해도 그 때문에 미리부터 걱정하는 마음이 없다. 뿌리를 깊게 땅속에 박고 하늘을 보고 있는 고목에는 땅의 기운이 그대로 나무의 기운으로 옮겨간 듯한 자연을 느낀다. 바위에 이끼가 기었듯이 두꺼운 나무껍질이 둥치를 감고서 <여기 나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느니라>하는 말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다.
작은 나무는 작은대로 귀여워서 멋이 있고, 젊은 나무는 젊은대로 철철 넘치는 낭만이 있어 멋이 있다.
나무는 어느 곳에 어떤 모습으로 있어도 자연스럽다. 절벽 끝에 불안하게 붙어 있는 나무에는 강인과 인고가 보이는 자연스러움을 가졌고, 경사진 언덕 위에 서 있는 나무는 경사를 나무로써 조화시킨 자연스러움이 있다. 강물이 흐르고 있는 높은 둑 위에 서 있는 나무는 강물과 더불어 펼쳐보이는 여유가 있어 자연스럽다.
사람도 나무처럼 어느 곳에 어떤 방식으로 살아간다 해도 자연스러움을 잃지 말아야 한다. 자연스러움은 마음의 여유이고 몸의 멋이며 몸과 마음의 균형이고 우주와의 조화이다. 그 균형과 조화와 여유를 잃지 않을 때 인생은 더욱 평화로울 수 있다.
나는 나무를 사랑한다. 봄이 되면 껍질을 뚫고 힘차게 솟아나오는 새싹에서 생명의 신선을 느끼고 그것들이 5월의 첫여름이 되면 십오륙 세의 소년처럼 생기에 넘쳐서 시들어가는 나의 마음을 긴장시켜준다. 세상에 나무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랴? 고기가 바다 속에서 헤엄을 치고, 허공에서 새가 날아다니듯이 지상에는 나무가 무성해서 자연을 더욱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거목이 즐비하게 서 있는 숲속을 거닐고 있으면 나도 나무가 되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갈등도 고민도 불안도 없는 초연한 자세가 나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나무가 옆과 뒤 앞에 빽빽하게 서 있는데도 그들은 싸움을 일으키지 않는다. 너는 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산다는 존중의 뜻이 보이고 그것들이 하나의 큰 숲을 이루어 그 숲이라는 지방 아래에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사람은 남의 손이 잘뭇 닿기만 해도 싸움을 벌이는데 그들은 남의 새순이 몸에 닿아도 자신을 오히려 오므려들인다. 그러다가 가지와 가지가 서로 엉킨다 해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리라는 이해가 있을 뿐이다.
민족과 민족끼리 싸움을 벌이고 나라와 나라끼리 충돌을 해야 하는 사람의 사회에는 언제나 전쟁의 불이 꺼지지 않는다. 개인은 개인대로 작은 이해 앞에서 큰 싸움을 벌이는 사람과 비교하면 나무는 자연으로 닦여진 신사이다. 소박하고 순진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천연의 신사이다.
나이가 40세 때에 나는 대구의 어느 여학교에 근무한 일이 있다. 5월의 아침에 교정에 나타나면 운동장 가에 느티나무가 많았다. 새잎이 한 장 뻗어 가는 느티나무 잎이 아침의 새공기에 서 있는 광경을 보고 나는 때로 저 나무를 두고 죽을 수 없다는 충격을 받았다. 다른 것 다 버리고 죽을 수 있는데도 5월의 나무를 두고는 죽을 수 없다는 감정은 무엇을 의미했던가. 그토록 5월의 나무는 나의 전부를 사로잡았다. 세상에서 예술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5월의 나무를 당할 수 있을까에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나무는 한갓 생물이다. 움직이는 동물에게는 그 자유가 미치지 못하고 사람에게는 그 지혜가 미치지 못한다 하면서 산과 들과 강변 어디에도 우뚝이 서서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