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와의 불화는 공주가 16살이 될 때까지도 계속 되었다. 원래 부녀지간이라 함은 전생에 부부지간이라 하여 그 각별함이 유별난 것인데, 이상하게도 짐과 공주는 마치 견원지간처럼 서로를 헐뜯고 희롱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물론 짐과 공주가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항상 공주를 놀려먹는 재미로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긴 하였으나, 순한 심성을 타고난 공주는 내 말에 그다지 노여워하지 않고 짐을 누구보다도 잘 따라주었다. 희한하게도 유독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낸다”라는 말에는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려대며 강한 거부를 표하곤 했지만, 아무튼 짐과 공주가 그 누구도 부러워할 만한 절친한 부녀지간이었음을 고구려 사람 중 열에 아홉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공주의 어미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부터 였다.(이 부분은 역사적 검증이 없이 필자가 상상한 것임) 짐은 그 후에도 계속해서 후궁을 받아들였는데, 그것이 아마 공주에게 어떤 상처가 되었던 것 같다. 짐이 후궁의 숫자를 하나 둘씩 늘려감에 따라 짐을 대하는 공주의 태도는 점점 싸늘하게 변해갔다. 짐의 사랑 어린 농담에도 지지 않고 대꾸를 했는데, 심지어는 심하게 빈정거리는 말투로 짐의 노여움을 부채질하기도 했다.
-아바마마, 소녀에게는 본의 아니게도 딸린 동생들이 지나치게 많아 시녀들의 얼굴을 보기가 부끄럽사옵니다. 이를 어찌 하면 좋겠나이까?
사태가 이 지경이 되다보니 짐은 도저히 공주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뺨이라도 확 후려치고 싶었지만, 공주의 얼굴에 비치는 죽은 지 어미의 모습에 짐은 고만 온 몸에 힘이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하릴없이 생각해낸 방도가 공주를 시집보내는 것이었다. 아랫것들을 시켜 알아보니 상부(上部) 고씨(高氏)가 이름 있는 집안이라 하였기에 그리로 공주를 시집보내기로 하였다. 하지만 공주는 절대로 그리 하지 않겠노라고 짐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시집을 가지 않는 변명이란 것이 도무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아바마마, 필부도 식언(食言)을 하지 않으려 하거늘 하물며 지존하신 분께서 어찌 그리 말씀하시나이까. 아바마마께서는 어릴 적부터 분명 소녀를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고 하셨으니, 소녀는 그리 알고 바보 온달에게 시집갈 준비를 하겠사옵니다.
물론 공주의 이런 말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짐은 잘 알고 있었다. 상부 고씨라면 둘 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외모가 출중하다 하니, 직접 그를 만나보게 하고 서로 사랑을 나누게 하면 문제가 해결될 터였다. 짐은 서둘러 혼사를 진행시킬 수 있도록 만발의 준비를 가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터져 버렸으니, 바로 공주가 궁에서 몰래 나가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공주의 생일마다 짐이 선물한 보물 팔찌 수십 개도 함께 들고 나간 것으로 드러났다. 공주의 방에서 발견한 쪽지에는 이렇게 씌어져 있었다.
-소녀가 그토록 말씀 드렸건만 그리도 소녀의 뜻을 무시하시니, 소녀 제 발로 바보 온달에게 시집가 제 뜻을 분명히 아바마마께 밝히겠나이다. 행여나 소녀를 강제로 궁에 들이도록 명하신다면, 소녀 준비하고 있는 비상을 먹고 이 세상을 하직하겠나이다.
짐은 깜짝 놀라 바보 온달의 집에 남몰래 사람을 붙여 알아보게 하였다. 과연 공주는 온달의 부인이 되어 눈먼 온달 어미의 며느리 행세를 하고 있었다. 공주는 보물 팔찌를 팔아서 온달의 집을 새로 근사하게 지었고, 농토와 소작농을 사들여 온달을 하루아침에 그 동네 제일가는 부자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절대로 온달이와 동침은 하지 않고 각방을 쓰고 있다고 했다.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짐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공주가 제 입으로 이런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 다는 것이었다.
- 평강왕의 아들딸들은 아비는 같으나 어미가 달라 그 근본부터가 바로 잡혀있지 않다. 특히 그 중에서 평강공주는 평민인 바보 온달과 남몰래 사랑을 나누다가 그만 애를 베어버려서 궁에서 쫓겨날 만큼 그 행실이 음탕하기 이를 데가 없다.
이는 분명 공주 자신뿐만이 아니라 짐의 핏줄 자체를 싸잡아서 욕하는 꼴이 아닌가? 한편으로 분통이 터질 만큼 괴씸하였으나, 또 한편으로는 모든 게 짐의 탓이구나 싶은 생각에 짐은 하릴없이 공주와 온달의 혼인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자니 바보 온달의 지위를 높여주어야 했다. 원체 머리에 든 것이 없는 바보이다 보니 문관은 턱도 없었고, 그나마 가능한 무관 자리에 집어넣어 철저히 훈련을 시켜 바보 소리만은 면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보 온달이 평강공주의 내조 덕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제법 높은 벼슬을 하게 되었다는 소문을 퍼트리게 했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고구려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새사람이 된 바보 온달을 보기 위해 왕도로 찾아왔다. 그러나 원래 바보였던 온달이 그 바보티를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온달은 여전히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만한 멍청한 짓거리를 하고 다녔고, 사람들은 그런 온달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하는 수 없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온달을 변방의 전쟁터로 보내게 했다. 그리고 온달이 전쟁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러자 온달은 순식간에 나라의 영웅으로 백성들 사이에서 대접받게 되었다. 다행히도 공주가 퍼트리고 다녔던 좋지 못한 소문들은 온달에 관한 소문에 가려져 들리지 않게 되었다. 공주는 무언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무턱대고 시녀들과 그 밖의 주변 사람들에게 역정을 내고 다녔다. 전장에서 고생하고 있을 지아비인 온달에 대한 걱정은 눈꼽만큼도 하고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다 전쟁터에서 온달이가 전사했다는 전갈이 궁으로 날아들었다. 아, 이것이 하늘의 뜻이구나. 짐은 내심 전쟁터에서 온달이가 전사하기를 바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짐은 온달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노라고 백성들에게 알린 다음, 서둘러서 장례를 치르게 하였다. 공주는 온달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 단 한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다만 뭔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공주에게로 다가가 지아비가 죽었는데 슬프지 않느뇨? 하고 물어보았다.
-소녀, 지금껏 온달을 진심으로 지아비로 여긴 적이 없나이다. 다만 소녀는 아바마마를 욕보이게 하고 싶었을 뿐이옵니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사옵니다. 소녀는 아바마마를 용서할 수 없사옵니다.
짐이 무얼 그리 잘못하였기에 공주의 원한이 이토록 깊단 말인가. 공주는 아직도 자신의 방에 처박혀 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끔씩 공주를 마주칠 적에 공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차디찬 원한의 눈빛은 짐을 무섭도록 괴롭힌다. 어찌하면 공주의 한을 풀어줄 수 있단 말인가. 정말로 애통하기 그지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끝>
첫댓글 바보온달과 평강의 애절한 스토리는 오간데없고,너무나 살벌한 부녀지간만 존재하네...너무 슬프잖아 온달이가..바보도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풋...이런 생각을. 달파야...심심하지?^^
이거 공포소설인가여?
무언가 울엄마가 " 살쪄 먹지마!" 라고 한말에 열받아 단식투쟁을 하는 것과 비슷해보이는 부녀사이.그렇게하라고 그렇게해버리면 그것은 진정한 반항이 아닌것을!! 남는것은 원망과 미움뿐. 부모탓을 해서 무얼하리 . 부질없다.
엘렉트라컴플렉스인게야?당신도 나 닮아 가네..ㅎㅎㅎ
엘렉트라 컴플렉스? 그게 뭔데.
헐...........
유쾌하네요... 커피를 마시며 혼자서 실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