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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영상/예술 스크랩 용그림
심메마니 추천 0 조회 236 09.10.06 13: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용과 관련된 단어로 입신출세한다는 말에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말을,

풍농·풍어를 비는 제례에는 "용왕제(龍王祭)"란 말을 사용하였다.

또한 용두사미(龍頭蛇尾), 화룡점정(畵龍點睛)등 수 많은 고사성어가 생겨난 우리 겨레와 가장 친숙한 상상의 동물이 바로 용이다.

 

용의 종류는 외형이나 성격에 따라 그 이름을 달리하는데,

용경(龍經)에 의하면 "규룡은 용의 무리중 우두머리요, 능히 무리를 나오고 물러나게 한다.

구름을 타고 비를 내려 창생을 다스린다"하였으며 사룡(四龍)중에 우두머리인 황룡은 사방중에서 가운데를 관장하는 용이라 하였다.

 

이 용의 모습 대한 설명을 보면 몸통은 뱀과 같고 비늘이 있고 네개의 발이 있어 날카로운 발톱을 가졌으며,

머리에는 사슴과 같은 뿔이 있다. 등에는 81개의 비늘이있어 사람이 이에 닿으면 죽게되고

토끼같은 눈, 소의 귀, 뱀의 목, 범의 발바닥, 매의 발톱, 큰 조개같은 모습의 배를 가졌다고 한다.

 

용의 모습은 표현이 매우 다양하다.

중국의 고문헌 삼정구사설(三停九似說)에 나타난 용의 모습은

"낙타의 머리에 사슴의 뿔, 토끼의 눈, 암소의 귀, 뱀의 목, 개구리의 배, 잉어의 비늘, 매의 발톱, 범 발바닥"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용은 모습을 마음대로 바꿀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자유자재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숨기기도 한다.

또 교룡(蛟龍), 사룡(蛇龍), 청룡(靑龍), 적룡(赤龍), 백룡(白龍), 현룡(玄龍) 등 종류가 많다.

용의 종류가 복잡하고 많은 까닭은 초자연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로 부각시키려고 한데에 기인한 결과로 보인다.

용의 모습은 삼국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방면에 걸쳐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궁궐 유물, 사찰 문화재에 특히 많이 보인다.

 

이와 같이 용은 전통적으로 고귀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비유되어

왕의 얼굴을 용안(龍顔), 덕을 용덕(龍德), 지위를 용위(龍位), 앉는 걸상을 용상(龍床), 의복을 용포(龍袍)라고했다.

왕을 용에 비유하게 된 것은 용에게는 인간과 국가를 보호하고 물을 다스리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기때문이다.

 

우리의 민화에서는 청룡, 황룡, 흑룡, 어룡등을 볼수 있다.

청룡은 벽사를 뜻하고, 황룡·백룡은 임금, 즉 황제를 뜻하며, 흑룡·어룡은 가뭄이 들때 기우제를 올려 비를 구하는 대상이된다.

 

용을 그리는 것에도 격식이 있는데 왕실이나 불교적인 내용의 용은 발톱을 다섯으로 그린 오조룡(五爪龍)이 통용되었고

민간에서는 사조(四爪)이하로 그리게 하였다.

그러나 민간에서도 기우제때 사용되었던 용그림에는 칠조의 용을 진채로 그리기도 했는데

이는 오조룡을 사용하였던 계층에 대한 반발이나 항거라기 보다는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우리나라의 불교가 삼국통일이래 독자적인 호국신앙으로 발전함에 따라,

용은 불교의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 수용되었다.

즉 호법불교(護法佛敎)와 어울려 불법을 보호하고 국가를 수호하는 신장(神將)으로 부각되어, 호법룡으로 믿어졌다.

황룡사 9층탑 건립과 문무왕을 장사한 대왕암(大王巖)은 대표적인 예이다.

 

또 용은 어변성룡(魚變成龍)의 고사에서도 알수 있듯이 관계(官界)진출이나 과거급제의 상징이기도 하다.

용은 만물 조화의 능력을 갖춘 영험과 신비의 상징 혹은 권위의 상징으로 간주되어온 한편 길상과 벽사,

또는 수호의 능력을 동시에 갖춘 동물로써 애호되었다.



 


- 양남자 "비상"

 


 


- 우용태 "민화비룡"


원성스님 작품


원성스님 작품

 원성스님 작품

 원성스님 작품

 












Graeme Base作









 







 운룡도(雲龍圖)


 
 

 

 

 

 

 

 

 
 
 

청계사 대웅전의 용상

 


창덕궁 존덕정 천장의 황룡과 청룡

 

백련사 대웅전 현판 아래에 있는 황룡입니다. 일반적으로 대웅전 처마 밑에 있는 용두는 반야용선의 뱃머리에 해당합니다.

백련사 대웅전 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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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 용궁사의 용

 

▲ 용두와 음관(탑산사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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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용(龍)은 상상의 동물로만 여겨져 왔다. 그러나 용은 실제로 존재한 동물이었음이 최근에 밝혀졌다.
 작년에 다큐 전문채널인 ‘디스커버리’에서 특집으로 용의 실체를 추적하여 방영했다.


동유럽 루마니아의 산 정상 부근에 위치한 얼음동굴에서 냉동상태로 완벽하게 보존된 용의 사체가 발견된 것이었다. 이 용의 사체는 1450년대 무렵 루마니아에 마지막으로 생존했던 용이다. 하늘을 날 수 있는 커다란 날개가 있었으며, 무서운 발톱과 입으로 불을 뿜어낼 수 있는 생리적 구조를 지니고 있었음이 연구진에 의하여 밝혀졌다.   이 용은 산 아래의 마을에 내려와 가축들을 물어가는 피해를 주었던 모양이다.



마침내 중세의 용감한 기사들이 창과 칼을 들고 용이 사는 산 정상의 동굴로 들어가 용과 일대 접전을 벌이다가 용도 죽고 기사들도 여러 명이 불에 타 죽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루마니아의 전설과 민담설화에 나오는 용이 상상의 동물이 아니라, 15세기 중반까지 현실세계에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다. 루마니아의 민담설화에서는 용이 악한 괴수로 묘사된다. 인간들이 사는 마을에 내려와 가축을 물어가고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용은 인간에 의하여 격퇴되어야 할 대상이었다.

서양에서 용은 사악한 괴수(怪獸)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동양문화권에서 용은 신성한 동물, 영웅, 제왕 등 상서로움을 상징한다. 이번에 심형래 감독이‘이무기’를 등장시켜 만든 영화 ‘디 워’는 동양적인 인식의 용을 가지고, 용에 대해 터부시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는 서양 문화권의 할리우드에 들이민 영화라는 점에서 그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할리우드가 과연 동양의 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주역(周易)’을 보면 용에 대한 정보가 나온다. 주역은 64괘로 이루어져 있고, 64괘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괘를 압축해 본다면, 제일 첫 번째 괘인 건괘(乾卦)이다. 건괘의 설명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용으로 시작하여 용으로 끝난다. 건괘는 처음에 ‘잠룡(潛龍)은 물용(勿用)이다’로 시작된다. 여기서 ‘잠룡’이라는 것은 물속에 있는 상태의 용을 가리킨다. 어린 용은 물속에서 생활하였음을 암시한다. 물속에 있는 용은 아직 어려 능력이 없으므로 쓸 수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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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괘의 두 번째는 ‘현룡재전(見龍在田)이니 이견대인(利見大人)이라’이다. ‘현룡재전’은 물속에 있던 용이 약간 자라서 고개를 내밀고 물 밖을 나와 보는 단계이다. 재전(在田)은 물속에서 나와 땅에 출현한다는 뜻이다. 건괘의 세 번째는 ‘혹약재연(或躍在淵)이면 무구(无咎)니라’이다. 혹시 뛰어오르더라도 연못이 있으면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육지에 올라온 용이 공중으로 비상하기 위해서 나는 연습을 하는 과정이다. 이때 뛰어오르다가 잘못되면 땅으로 곤두박질치면서 다칠 수밖에 없다. 만약 날아오르다가 잘못돼 연못으로 떨어지면 다치지 않는다.

  건괘의 네 번째는 ‘비룡재천(飛龍在天)이니 이견대인(利見大人)이라’이다. ‘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는 뜻. 땅에서 나는 연습을 마치고 비상하는 단계이다. 다섯 번째는 ‘항룡(亢龍)이니 유회(有悔)리라’. 하늘에 높이 올라가 있는 용은 언젠가 내려와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건괘는 온통 용으로 그 의미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용이 처음에는 물속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땅으로 올라와서 어느 정도 자라다가 비상하는 연습을 해서 하늘로 날아오른다고 하는 용의 성장과정이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 주역의 건괘는 용의 성장과정을 관찰, 묘사하고 있는‘용경(龍經)’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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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용은 물(海), 땅(陸), 하늘(空)을 모두 왕래할 수 있는 특출한 능력을 갖춘 동물인 셈이다. 동물 중에서 이런 능력을 지닌 동물은 없다. 제왕이나 영웅을 용에 비유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경주의 감포 앞바다에는 그 유명한 문무왕의 수중릉이 있다. 문무왕이 죽은 뒤에 동해의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겠다는 서원(誓願)이 서린 곳이다. 감은사(感恩寺)가 바로 용이 되어 신라를 지키는 문무왕의 은혜를 기리는 사찰이다. 이 감은사지에는 특이하게도 수로(水路)가 장치되어 있다. 동해의 용이 감은사를 들락거릴 수 있도록 하는 통로이다. 감은사 근처의 언덕에는 ‘이견대(利見臺)’라고 이름붙여진 곳이 있다. 이는 건괘의 ‘이견대인(利見大人)’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동해의 용으로 화한 문무왕이 ‘비룡재천(飛龍在天)’, 즉 하늘로 날아오르는 광경을 보는 뷰포인트가 ‘이견대’라고 여겨진다.

신라의 감은사처럼 백제에는 익산 미륵사(彌勒寺)가 용과 관련된다. 미륵사 앞에도 커다란 호수와 강이 있어서 용이 드나들 수 있는 사찰구조였다. ‘미륵’은 우리말의 ‘미르’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미르’는 용을 말한다. 따라서 미륵불은 용이 부처로 화한 셈이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가뭄이 들지 않으려면 물이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용은 고대사회에서 수신(水神)이기도 하였다. 기우제는 용신(龍神)에게 비는 행사였다. 불교가 전래되면서 이 ‘용신’이 ‘미륵불’로 변한 것이다. 익산 미륵사는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찰이다.


영화 ‘디 워’의 주제는 이무기이다. 이무기는 뱀과 용의 중간단계를 가리킨다. 민간설화에서는 뱀이 1000년이 되면 이무기가 되고, 이무기가 500년이 되면 용이 된다고 전해진다. 용이 주로 제왕이나 영웅처럼 제도권의 성공한 인물을 가리키는 상징이라면, 이무기는 재야 민초들의 영웅을 상징하였다. 체제에 도전하다가 중간에 실패한 인물을 흔히 이무기에 비유하곤 하였다.



건괘의 과정에서 보면 ‘잠룡물용’은 뱀의 단계이고, 그 다음 ‘혹약재연’ 단계까지가 이무기에 해당한다. 하늘을 나는 연습을 하다가 다치면 이무기에 머물고, 성공을 하면 ‘비룡재천’이 된다. 비룡재천은 여의주를 얻어 완전한 용으로 변한 단계이다.

요가에서는 인체의 변화를 뱀과 용으로 설명한다. 인체의 첫번째 차크라(chakra)인 물라다라 차크라에 잠재해 있는 에너지를 뱀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 차크라의 에너지는 마치 수십 마리의 뱀이 서로 엉겨 붙어 있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뱀은 성적인 에너지를 가리킨다. 이때 에너지를 성관계를 통하여 배출하지 않고 위로 끌어 올리면 성인이 된다. 배꼽 위의 세 번째 마니푸라 차크라까지 끌어올리면 이무기가 되고, 목젖 부위인 다섯번째 비슈다 차크라를 통과하면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는 것으로 되어 있다. 주역 건괘로 환산하면 비슈다 차크라부터는 비룡재천이 되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징그러운 뱀과 성스러운 용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 주역과 요가는 뱀에서 용으로 변하는 과정을 인간과 우주의 이치에 비유한 것이다. ▒
/ 조용헌 동양학자
<출처;empas 스킨칼라>

 

한국의 전통문양

 

용 龍
물의 신. 제왕. 왕권. 호국. 벽사. 상서. 풍운조화

 



불국사 대웅전 용조각

 

 

 

나는 원래 용성국 사람이요.
우리나라에는 28 용왕이 있는데 그들은 모두사람의 태(胎)에서 났으며 나이 5세, 6세부터 왕위에 올라 만민을 가르쳐 성명(性命)을 바르게 했소.
8품의 성골이 있는데 그들은 고르는 일이 없이 모두 왕위에 올랐소. 그때 부왕 함달파가 적녀국의 왕녀를 맞아 왕비로 삼았소.
-「삼국유사」 권1 기이1 [제4대 탈해왕] 중에서

 

 

한국 고대문헌에서 용은 신화의 단골손님이다.
신라에서 조선에 이르는 건국신화들을 살펴보면, 이제껏 한반도에 세워졌던 거의 모든 나라의 시조들은 대개 용의 자손임을 알 수 있다.
신라의 석탈해는 위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용성국(龍城國) 왕과 적녀국(積女國) 왕녀간의 소생이며 고려 태조 왕건은 작제건(作帝建)과 서해 용왕의 딸이 낳은 용건(龍建)의 아들이다.


또한 후백제의 시조인 견훤은 광주 북촌의 부잣집 딸이 지렁이와 교혼하여 낳았다고 하는데, 이 지렁이는 ‘지룡(池龍)’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선의 국조 신화인 [용비어천가]는 조선을 건국하기까지의 여섯 시조를 해동육룡(海東六龍)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건국신화라는 것이 새로 세워진 왕권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후대에 각색된 일종의 정치적 선전이라면, 용과의 혈연관계를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정통성을 인정받는 확실한 지름길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용이 왕권의 상징으로 통하게 된 이유는 용이 물과 기후를 관장하는 수신이므로 농경문화권에서 절대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또는 용이 바다로부터 왔으며 신화 속에서 ‘해외’에서 온 존재와의 교통이라는 주제로 종종 등장하는 것을 들어 고대 한반도와 남방 또는 서역과의 연관성을 추측하기도 한다.
명백한 상상의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삼국사기」나 「조선왕조실록」 등의 문헌에는 용이 출현하였다는 기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 이것은 아마도 바다에서 일어나는 기상현상인 ‘용오름’의 일종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용은 왕의 권위의 상징물로 궁중유물에 많이 등장한다.
흔히 발가락이 5개인 용은 황제, 4개인 용은 제후, 3개인 용은 재상을 상징하여 중국의 황제만이 5개를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실제 도상에서 그리 엄격하게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다.
절에 있는 용은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이요, 굿판의 용은 비를 내리게 하는 용왕신이요, 민가의 대문에 붙은 용은 잡귀를 물리치는 영물이다.
어떤 고정된 정형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상상의 존재답게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의 용이다.

 

글_편집실
 

 


불국사 대웅전 용조각

 


적룡(赤龍)

 


우현리 강서대묘 현실동벽 청룡도

 


화룡도(化龍圖)

 

 


적룡(赤龍)

 

 

 

용(龍)
1-3-1


실제로 왕건은 자신의 혈통을 증명하기 위해 용비늘 두 개를 국보로 간직했다. 이 용비늘은 조선시대까지 전해져 상의원(尙衣院) 내에 보존되어 있다가 명종 때 발생한 경북궁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1-3-2
용의 출현을 기록한 예를 몇 가지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명종 7년 8월 계사일(癸巳日)에 정주의 창고에 청룡이 날아들어와서 공중으로 올라갔는데 잠시 후에 창고에서 불이 났다.” -「고려사」 권53 지7 오행1
“공민왕 13년 정월 무자일 밤에 서남방에 붉은 기가 나타났는데 용과 같았다.”-「고려사」 권53 지7 오행1
“정의현에서 용 다섯 마리가 한꺼번에 승천하였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수풀 사이에 도로 떨어져 오랫동안 빙빙 돌다가 하늘로 올라갔습니다.”-「조선왕조실록」 세종 22년 1월 30일(癸酉) 기사

 

 



1-3-3
‘용오름’은 대기의 활동으로 생기는 저기압성 폭풍의 일종으로 주로 적운층에서 일어나 매우 빠른 소용돌이를 발생시킨다. 국지적인 저기압이 갑작스럽게 바닷물을 감아올리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기다란 원통형 물체가 하늘로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지난 2001년 8월 25일 죽도 앞바다에서는 직경 20m 이상, 높이 500m 가량의 거대한 용오름이 발생해 멋진 장관을 이루기도 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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