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처럼 옛날도 힘이 된다
울산 달동 사거리 자장면 집에서
손으로 두들겨 뽑은
옛날자장에 불현듯 식욕이 솟는다
자장면이 희망이었던 옛날처럼
남루도 돌아보면 따뜻하게 그리워지는데
슬픔도 흘러가면 빛나는 무늬가 될 수 있는데
자장보다 옛날이 더욱 먹음직스러워
그리운 옛날에 코 박고 먹는 옛날자장 한 그릇
사람에게 상처받아 쓸쓸한 오늘도
살다보면 옛날이 되어
힘이 될 날이 오려니
사진 〈Bing Image〉
착한 시
정 일 근
우리나라 어린 물고기들의 이름 배우다 무릎을 치고 만다.
가오리 새끼는 간자미, 고등어 새끼는 고도리,
청어 새끼는 굴뚝청어, 농어 새끼는 껄떼기,
조기 새끼는 꽝다리, 명태 새끼는 노가리,
숭어 새끼는 동어, 방어 새끼는 마래미
누치 새끼는 모롱이, 숭어 새끼는 모쟁이,
잉어 새끼는 발강이, 괴도라치 새끼는 설치
작은 붕어 새끼는 쌀붕어, 전어 새끼는 전어사리,
열목어 새끼는 팽팽이, 갈치 새끼는 풀치
사진 〈Bing Image〉
그대 내 손금이 될 때까지
정 일 근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꽃이 피었다 지는 슬픔보다도
나무들이 바람에 우는 아픔보다도
슬프고 아픈 일이지만
사랑하며 기다리는 것이
기다리며 눈물 훔치는 것이
내 사랑의 전부라 할지라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지라
흐르는 눈물 손가락에 찍어
빈 손바닥 빼곡하게
뜨거운 그대 이름 적어 보느니
내 손금에 그대 이름 새겨질 때까지
그대 내 손금이 될 때까지
사진 〈Bing Image〉
분홍 꽃 팬티
정 일 근
어머니 병원 생활하면서
어머니 빨래 내 손으로 하면서
칠순 어머니의 팬티
분홍 꽃 팬티라는 걸 알았다
어머니의 꽃피던 이팔청춘
아버지와 나눈 사랑의 은밀한 추억
내가 처음 시작된 그곳
분홍 꽃 팬티에 감추고 사는
어머니, 여자라는 사실 알았다
어느 호래자식이
어머니는 여자가 아니라고 말했나
성(性)을 초월하는 거룩한 존재라고
사탕발림을 했나
칠순을 넘겨도
팔순을 넘겨도
감추고 싶은 곳이 있다면
세상 모든 어머니는 여자다
분홍 꽃 팬티를 입고 사는
내 어머니의 여자는
여전히 핑크 빛 무드
그 여자 손빨래하면서
내 얼굴 같은 색깔로
분홍 꽃물 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