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옹진 연평도 평화트레킹 #4
군터널 관광시설로 이어지는 데크로드
11:13 군터널 관광시설
폭 2m, 길이 150m의 군터널은 해병대 제9518부대의 인공터널을 리모델링하여 관광객들에게 제한적으로 공개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NLL까지는 약 1.6㎞, 황해도 해주까지는 약 12㎞라고 한다.
터널은 하절기 오후 5시, 동절기 오후 4시 30분에 출입을 제한한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이북 NLL 쪽으로 포신을 향하고 있는 포대까지 계단으로 이어진 굴을 따라 내려가게 되어 있는데
양 벽면애는 옹진군 7개면의 과거와 현재 역사가 담긴 사진이 터널 양쪽 벽에 전시되어 있으며
계단을 따라 포 진지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한다.
해안가 절벽에 설치된 전시용 포
가래칠기해변, 병풍바위, 빠삐용바위 전경 등
11:30 조기역사관으로 다시 돌아 온다.
11:32 조난어업자 위령비
이 비석은 1934년 6월에 발생한 조난사고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래고, 유가족들을 다소나마 위로하고자 세운 것이다.
연평도는 수백년 동안 조기어장으로 그 명성이 자자했다.
황금어장인 연평 앞바다에는 조기잡이 철이 되면 만선의 꿈을 싣고 온 배들과 파시로 인하여 장관을 이루었다.
"연평바다로 돈 실러가세"라는 뱃노래에서 그 화려했던 면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1934년 6월 1일 폭풍우를 피하여 연평항으로 들어온 어선이 600여 척이었다.
그러나 2일 오후 2시경 밀물 때를 가하여 폭풍이 더욱 세차지고, 태산 같은 파도가 휘몰아쳐서 어선끼리 충돌하였다.
당시 피해선 척수가 323척이고, 사상자가 204명에 달하였다는 신문보도를 통해 그 피해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능히 알 수 있다.
이에 황해도 수산회에서는 1934년 9월 연평어업조합 서쪽에 이 비를 세워 피해 영령을 위로하였다
11:33 연평도 등대
조선 인조 14년(1636년) 연평해역에서 조기가 처음 발견된 이후
연평도는 전국에서 몰려든 조기잡이 어선들이 거쳐가면서 인근해역의 중심지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특히 1960년대에는 연평해역이 황금의 조기파시어장이라 불릴 정도로 경제적 풍요로움의 상징처럼 회자되기도 했다.
연평어장에 몰려드는 어선들의 안전한 조업을 지원하기 위해 1960년 3월 23일에 연평도 등대의 불빛을 처음으로 밝혔으나,
남북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1974년 7월에 소등하게 되었으며, 1987년 4월에는 직원들이 완전히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45년여 굴곡의 역사를 간직한 연평도 등대는 판문점 선언(2018년 4월 27일) 이후
조성된 남북간 화해분위기에 힘입어 2019년 5월 17일 연평해역에 희망의 빛을 다시 비추기 시작하였다.
등대공원
전면은 가수 최숙자의 히트송 "눈물의 연평도" 기념비
2004년에 은퇴한 기종의 M47 전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