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복구와 가난탈피를 위해 모두가 땀흘흘리던 1960년대 말.
국민을 위로하기 위한 쇼 프로그램
당대 최고 인기 가수들이 총출동한 '쇼'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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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샤쓰의 사나이’ 가수 한명숙 별세
‘동남아 순회공연’의 대표 가수
노래 ‘노란 샤쓰의 사나이’로 1960년대 한류 스타로 활약했던 원로 가수 한명숙(90)씨가 22일 오후 별세했다.
가요계에 따르면 고인은 오랜 지병으로 최근까지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 '노란 샤쓰의 사나이'(1961) 발표 직후 자신의 음반을 들고 있는 한명숙. /연합뉴스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인 고인은 1951년 6·25전쟁 중 어머니와 함께 월남했다. 드러머 임원근의 소개로
태양악극단을 거쳐 군예대에서도 활약했고, 1953년 미8군 ‘럭키쇼단’에서 본격적인 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고인의 가수 생활을 꽃피운 건 1961년 노래 ‘노오란(노란) 샤쓰의 사나이’를 써 준 작곡가 손석우와의 만남이었다.
1년 만에 국내서 음반 20만 장이 팔렸고 일본, 베트남, 태국, 대만 등에서도 인기를 얻으며 동남아 순회공연도
했다. 여가수는 청아한 음색이어야 한다는 편견을 깬 고인의 농익은 탁성과 파격적이었던 컨트리풍 악곡이 빚어
낸 열풍이었다. ‘미8군 신데렐라’ 별칭을 얻은 고인은 1962년 노래와 동명 제목으로 제작된 영화에서 당대 최고
스타 배우였던 엄앵란, 신영균과 함께 주연을 맡았다.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국내외 정치인들에게도 사랑받으며 여러 역사적 장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고인은 한 신문
인터뷰에서 “노래 발표 직후 5·16혁명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소장이 즐겨 불렀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회상했
다. 일본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가 1983년 방한했을 때 전두환 대통령과의 만찬장에서 이 노래를 한국어로
직접 부른 일화도 유명하다.
개인사에선 여러 풍파를 겪었다. 1970년 남편과 사별했고 2남 1녀 자녀를 비롯해 시댁과 친정의 생계를 홀로
책임지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10년 퇴행성 관절염으로 다리가 불편해진 그가 두 칸짜리 월셋방에
산다는 소식에 후배 가수들이 헌정 공연으로 모금에도 나섰다. 당시 출연한 가수 송창식은 고인을 “한국에서 팝송
을 기반으로 노래했던 모든 가수들의 어머니 역할을 한 분”으로 기렸다. 2022년 절친한 미8군 가수 동료였던
고(故) 현미가 방송에서 ‘뇌수술 직후 투병 중’이라고 알린 것이 대중에게 전해진 고인의 마지막 소식이었다.
1978년 장한 어머니상, 2000년 국민문화훈장, 2003년 KBS 가요대상 공로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경기 수원
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6일 오전 8시 40분.
윤수정 기자
2025. 1. 23. 0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