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현대불교 신행수기공모
특별상 (한국불교종단협의회장상)
정상구 (청주시 주성동)
만물이 소생하는 봄은 희망의 계절이라 부릅니다. 하얀 목련꽃이 전해주는 봄 노래를 들으며 즐
거운 마음으로 출근한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따르릉….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떨리고 있었습니다.
“여보! 놀라지 말고 들으세요. 시골에서 형님이 교통사고가 났는데 어머님과 두 분이 함께 돌아
가셨답니다.”
하루의 일과를 시작할 무렵 받은 아내의 전화는 청천벽력과 같이 내 가슴을 내리치고 있었습니
다. 너무나 충격적인 전화에 그저 사무실의 천장만 멍하니 바라 볼 뿐이었습니다. 한 세상을 사시
며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 한번 다녀오지 못하시고 고생만 하시다 이렇게 훌쩍 떠나신 두 분이 안
쓰럽다는 생각에 이르자 어느새 눈물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차를 몰아 청주의 영안실로 향했습니다. 허겁지겁 도착한 영안실에는 먼저 도
착한 동네 어르신들께서 눈물을 훔치시며 장례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눈시울이 붉어진 이웃사
촌들의 위로를 뒤로하고 영안실로 급하게 뛰어 들어가 보았으나 그것은 꿈이 아닌 현실임을 확
인하는 절차에 불과했습니다. 일요일인 어제까지만 해도 웃는 얼굴로 찾아뵈었던 어머님은 하루
사이에 고인이 되시어 오늘은 영정으로 맞아주시니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이 슬픔을 어떻게 글
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단란하던 우리 집안의 시련과 역경은 이렇게 큰며느리 두 분이 함께
떠나시며 눈물로 시작되고 말았습니다.
선장을 잃은 배는 항해를 제대로 할 수 없듯 구심점을 잃은 우리 집안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파도가 일면 파도가 이는 대로 이리 저리 흔들려졌습니다. 동생들의 사업은 점점 부진해져
갔고 하늘나라가 그 어디라고 2년 뒤에는 젊은 제수 씨 마저 두분 곁으로 훌쩍 떠나며 불행의 속
도는 마치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처럼 가속도가 붙어 가는 듯했습니다. 비록 가난했지만 항
상 잔잔한 웃음꽃으로 살아오던 행복은 바람결에 날아가는 연기처럼 자취를 감추어 갔습니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지 3년이 되어 갈 무렵 나는 직장인 은행에서 고향 인근지역인 증평지점의
책임자로 임명되는 영전을 하였습니다. 임명장을 받는 그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어
머님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지난날 중학을 졸업한 둘째 아들이 전기도 안들어오는 산골에서
서울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고 그렇게 좋아라 하셨던 어머님...
서울로 떠나가는 급행버스에 까까머리 아들을 태워 보낼 때에는 산모퉁이를 돌아가는 버스가 눈
에 보이지 않을때까지 손을 흔들며 ‘건강한 몸으로 공부 잘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빌고 또
빌어 주시던 어머님...
서울의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당시 월급을 가장 많이 받는다는 은행시험에 합격하자 삶은 돼지고
기에 막걸리로 동네 어르신들께 후하게 잔치를 하셨다는 자애로우시던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왔습니다. 그러나 어머님과 함께 하지 못한 영전의 기쁨은 그리 길지를 못했습니다.
부임 한 달이 되어 갈 무렵 어머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동생이 임대로 경영하던 주유소를
사게됐노라”하시며 대출을 말씀하시는데 나는 달갑지가 않았습니다. 동생의 지난날 신용도가 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아버님은 동생을 도와 줄 것은 몇 차례 더 말씀하셨고 그 간절한
말씀에 내 마음은 서서히 흔들려졌습니다.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치며 고민을 하다 은행의 담당 직
원들과 상의해 보았으나 진날 날 동생의 신용이 변변치 못함을 소문으로 알고는 이내 반대를 해
왔습니다. 이번의 차주는 동생이 아니고 아버님이시며 무엇보다 내 퇴직금으로 책임이 가능하다
는 제안에 대출을 결국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직원들이 우려했던 대로 대출금 이자는
첫달부터 들어오지 않고 연체가 시작됐습니다. 집안의 시련을 덜어보고자 의도했던 생각은 애당
초 소망일 뿐 연체는 점점 장기화되어 급기야는 법적 절차를 진행해야 할 상태로까지 몰리고 말
았습니다.
지역주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창조적인 지점경영과 끈끈한 직원인화를 유도하여 전국 최고
의 영업실적을 거양하는 명문 지점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시점에서 집안의 대출금 연체문제로
부하 직원들의 사기를 상사인 내가 저하시키는 어려운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은행과 보증인
과 집안 사이에서 사면초가에 몰린 나는 동생을 불러 주유소 매각을 유도했으나 매매는 성사되
지 않고 시간만 흘러 애간장을 태웠습니다. 고향집에서 전해오는 소식은 연일 지진이 난 열도처
럼 흔들리는 소식만 들려오더니 끝내는 선조 대대로 내려오던 문전옥답마저 빚 때문에 팔려나갔
다는 소식을 접하고야 말았습니다.
문전옥답은 어떠한 땅일까요?
그것은 모든 집안의 정신적인 지줏대이자 선조님들의 피와 땀이 흠뻑 배어있는 삶의 젖줄이며
효를 실천하는 도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집안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온 그것이 쇠퇴의 제물이 되어 팔려 나갈 때 아무런 방패 역할을 하
지 못한 자신을 생각해보니 아주 무능하고 초라한 존재로 보였습니다. 이런 저런 고민 속에 밤잠
을 설치며 지내던 나는 퇴직금으로 집안을 살려보는 방안을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막상 퇴직
문제를 그려보니 지난 날 주경야독하며 공부한 땀과 노력이 아까웠고 신혼 초부터 시동생 둘과
시누이 둘의 뒷바라지를 하며 고생해온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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