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성심, 파스카의 길
호세 11,1.3-9; 에페 3,8-12.14-19; 요한 19,31-37
예수 성심 대축일; 2024.6.7.
전례력의 흐름: 파스카의 신비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부활대축일 이후 흔치 않은 대축일이 이시기에 집중되어 몰려 있었는데, 오늘 교회가 거행하는 예수 성심 대축일이 이 대축일 시리즈의 결산입니다. 이 범상치 않은 흐름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겪으시고 선포하신 파스카의 신비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고,신자들도 이를 따라서 세상에 나아가 이 신비를 선포하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파스카 신비는 사순 시기와 성삼일에 기념하는 십자가 죽음으로 귀결된 예수님의 수난에서 시작되어 영광스러운 부활로 역전됩니다. 이로써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마귀가 지배하는 현세에서 하느님 나라에로 해방시키는 경로가 계시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 시기 동안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의 새삼스런 신앙 고백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생전에 그분이 가르치신 바가 진리임을 우리도 확인한 후에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을 기념하는 것으로 장엄하게 부활 시기를 마쳤습니다.
다시 맞이한 연중 시기는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에, 또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받은 때입니다. 그분이 보내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예수님께서 앞장서 걸어가신 파스카의 길을 우리도 걸어갈 수 있는 기운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선교 사명을 위해서 모든 이에게 성령의 기운이 활짝 퍼지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삼위일체 대축일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믿는 이들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아가기 위한 양식으로서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고 있음을 기억하는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지냈고,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본받아야 가능한 것임을 기억하는 예수 성심 대축일을 오늘 지냅니다. 이러한 파스카 전례의 대축일 시리즈를 통해서 교회는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파스카의 여정을 계승하여 걸어가고 있음을 상기하면서 필요한 하느님의 은총을 청해 받고 있습니다.
예수 성심에 대한 기억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지낸 다음 금요일인 오늘, 교회는 예수 성심 대축일을 지냅니다. 그것은 금요일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요일이기 때문이고,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던 요일은 목요일이었지만 바로 이때 그 다음 날인 금요일에 일어날 십자가의 신비를 앞당겨서 당신의 몸과 피에 일치시키셨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면서, 십자가에 달리실 당신의 몸을 빵에 일치시키시고는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하고 말씀하셨고, 당신의 몸에서 흘리실 당신의 피를 포도주에 일치시키시고는 “받아 마셔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흘릴 내 피다.” 하고 말씀하셨으며, 이 두 마디의 말씀 끝에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고 당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바, 그분을 기억하라는 당부 말씀은 공생활 동안 행하신 수없이 많은 일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지만 그 초점은 그 일들에 담긴 그분의 마음을 기억하라는 데 있었습니다. 또 그분이 행하라고 명하신 것들 역시 일차적으로는 그분이 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두고 하신 말씀이지만 그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도 그 핵심은 그분의 마음을 닮는 데 있습니다. 마음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음을 닮지 못하면, 일에 대한 기억과 행함은 반쪽에 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성심 대축일이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마무리하는 전례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전례력의 흐름에서 나타나 있듯이, 예수 성심을 닮고자 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정작 기억하고 계승해야 할 일들은 모두 파스카 과업을 위한 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파스카 축제일에 맞추어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드셨고 이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만찬 석상에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루카 22,15). 예수님의 마음이 이토록 간절했던 까닭은 그분이 공생활 동안 파스카 과업으로 행하신 그 수많은 일들을 바야흐로 당신 제자들에게 당부하고 물려주어야 하셨기 때문인데, 예수님께서 공생활에서 드러내신 이 파스카의 신비는 다섯 가지로 추려 볼 수 있습니다.
1. 나자렛 선언: 메시아의 사명 천명
첫째는 성령께서 당신을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루카 4,18)고 천명하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건 사십 주야 단식을 사탄의 유혹 속에서 무사히 마치시고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오셔서 회당에 모인 마을 사람들 앞에서 메시아로서 받으신 당신의 소명을 공개적으로 천명하셨습니다. 이 선언은 향후 당신의 공생활 활동이 이사야 예언자가 내다본 메시아의 정통 노선에 따라 이루어질 것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천명하신 말씀이 메시아로서 예수님 생애의 큰 방향이 되었습니다.
2. 하느님 나라의 선포: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함
둘째, 그리고는 그 말씀대로 실제로 가난한 이들을 찾아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사두가이와 바리사이 같은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도 모르고 지키지도 않는 족속들”이라면서 대놓고 무시하고 억압하며 착취하던 그 가난한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기쁨과 웃음과 행복을 나누어 주셨고, 위로와 치유와 안식을 선사하셨습니다. 산상설교의 첫 머리에 나오는 진복팔단과(마태 5,3-12) 평지설교의 첫 머리에 나오는 행복선언에(루카 6,20-23) 그 자세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던 그 정성으로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사두가이와 바리사이들은 그분이 가난한 이들 안에서 명성을 얻으면 얻을수록 그분을 모함하고 시기하며 급기야 죽일 음모까지 꾸미며 적대시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항하여 열두 제자를 불러 모아 장차 교회를 이룰 주춧돌을 마련하시고 본격적으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 이 파스카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준비를 해 놓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좀처럼 알아듣지 못하고 믿음과 깨달음이 굼뜬 아둔하여 자주 야단을 맞았지만,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이 알아들을 때까지 기다려 주셨습니다.
3. 치유 활동: 고통받는 이들을 도우심
셋째, 예수님께서는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던 가난한 이들을 치유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만나신 가난한 이들은 대부분 고통을 달고 사는 이들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커녕 지옥과도 같은 고통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즉, 육체적인 질병이나 장애 또는 정신적인 아픔으로 고통받고 있기도 했고, 무시당한 나머지 극심한 소외감으로 억눌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들을 치유해 주시기도 하고 위로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치유와 위로의 복음선포 과정에서 숱한 기적들이 일어났고 지옥과도 같이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해방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눈먼 이가 보기도 하고, 앉은뱅이가 걷기도 하였습니다. 나병이나 중풍을 앓던 이들이 깨끗하게 낫기도 했습니다. 또 자식을 잃고 슬퍼하던 어버이들을 보고 함께 슬퍼하시던 그분은 죽을 지경으로 위독하거나 심지어 이미 죽은 아들딸들을 다시 살려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복음을 듣고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체험하게 된 이들은 기꺼이 새로운 하느님 백성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고, 이들이 교회의 주류가 되었습니다.
4. 구마 활동: 마귀 들린 이들을 해방시키심
넷째,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려 고통 받고 있던 이들을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분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던 활동을 반대하고 방해하려 했던 세력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었습니다. 그분이 공생활을 시작하시기 전에 유다 광야에서 그분을 유혹하다가 실패했던 바로 그 사탄이 이미 마귀나 악령으로 불리면서 특히 가난한 이들을 정신적으로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사두가이들이나 바리사이들은 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었으므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좇아서 행동했겠지만, 실제로는 사탄의 하수인으로 조종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귀 들려 고통 받는 이들을 만나실 때마다 그분은 정면으로 마귀와 맞서셨으며 가차없이 쫓아내셨습니다. 그리하여 마귀에 들렸던 많은 이들이 해방되어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이런 구마의 복음선포는 역대 어느 예언자들도 하지 못하던 기적이었는데, 적반하장 경으로 종교 지도자들은 마귀의 편에 서서 그분이 마귀 들렸다고 모함을 해댔습니다.
5. 교회 설립: 하느님께로 돌아온 이들을 기뻐하심
다섯째, 예수님께서는 치유나 구마의 기적으로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현실을 체험하게 된 이들을 당신께서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기쁘게 맞아들이셨습니다. 처음에는 그분이 선포하시던 복음을 좀처럼 알아듣지 못하던 열두 제자도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지방을 벗어나 전국 방방곡곡과 이스라엘 주변의 이방인 마을에까지 그들을 파견하시어, 치유와 구마 활동 등 당신이 하시던 복음선포 활동을 사람들 안에서 자신들이 대신 하게 되자, 그들 안에서 함께 하시던 성령의 도움으로 많은 것을 깨닫고 터득했습니다. 그 열두 제자가 불러 모은 예순 명을 합해 모두 일흔 두 명을 파견하기도 하셨습니다. 물론 똑똑하다고 자부하던 바리사이들이나 권세를 부리던 사두가이들은 스승도 무시했던 판에 그 제자들이 선포한 복음을 받아들일 리가 없이 거부했지만, 도처에서 이 복음을 받아들인 토박이 지지자들이 생겨났고 예수님께서는 귀환한 제자들의 이러한 보고를 받으시고 매우 이례적으로 성령에 가득차서 기뻐하셨습니다.(루카 10,21-24 참조) 땅에 묻혀 있던 보물을 발견한 농부의 심정이나(마태 13,44 참조), 잃었던 잃었던 은전을 되찾은 여인 또는 집 나갔던 아들이 다시 돌아와서 만난 아버지의 심정으로(루카 15,8-9. 11-32 참조) 기뻐하셨고, 이 기쁨을 제자들도 함께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 백성인 교회가 세상에 세워진 것입니다.
이상 다섯 가지로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 일어난 일들을 요약해 보았습니다. 여기에 공통적으로 담긴 파스카 과업 안에 예수 성심이 진하게 담겨 있습니다. 이 마음을 알아보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체험한 이들이 제자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이루었고, 이 교회가 파스카 과업의 소명을 받은 메시아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 성심을 맑고 선명하게 기억하는 일이 교회가 교회답게 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예수 성심은 파스카 과업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짠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지 않고, 빛을 함지 속에 숨겨두지 않고 등경 위에 놓고 세상의 어둠을 비출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첫댓글 오늘은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며 묵주기도를 바치겠습니다.
1. 성령께서 예수님에게 내리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이끄심을 묵상합시다
2. 예수님께서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심을 묵상합시다
3. 예수님께서 신체적인 질병이나 장애, 또는 정신적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 가난한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리라고 선언하시며 실질적인 도움으로 복음을 전하심을 묵상합시다
4. 예수님께서 사탄과 맞서 대결하시고 마귀들린 가난한 이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어 해방시켜주심을 묵상합시다
5. 예수님께서 복음을 듣고 하느님께로 돌아온 가난한 이들을 보시고 기뻐하심을 묵상합시다
정말 고맙습니다!
기존의 전통적인 묵주 기도의 신비들은 겅생과 수난 그리고 부활의 신비로만 되어 있어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빛의 신비를 추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생활에 나타난 면모를 담기에는 너무 간단합니다. 더욱이 그분이 죽음과 부활로써 드러내시고자 하셨던 파스카의 신비가 드러나지 못합니다.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의 중요성이라든가, 그 일에 있어서 치유와 구마 활동의 비중이 너무도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감히 제가 용기를 내서, ‘파스카의 신비’를 제안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녁노을 님께서 이를 받아주시고 댓글로 다시 공유시켜주셔서 정말 고맙다고 표현한 겁니다.
한동안 파스카 신비도 묵상하며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다시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