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스웨터
김신혜
죽은 양들은
꽈배기 무늬로 완성된다
이곳은 하얀 털실에 둘러싸여 있다
보풀로 만든 눈이 내린다
이 나른함은
죽은 양들에게 파묻혀 지낸
어느 목동이 만들어낸
흐릿한 악몽
스웨터에 초원과 양들을 새기고
먹구름을 뜯어 먹던 양들이
솜사탕처럼 녹을 때
융단 단추처럼 새카맣게 빛나던 눈
그 스웨터를 병든 아이에게 입히고
아이들의 몸에는 푸른 멍이 들고
아이들의 무력함을 사랑할 때
벌어진 상처에서 솜사탕이 흘러나온다
숨이 끊어지면
오래된 스웨터의 보풀로 환생한다고 해
절벽 아래
떨어져도
으스러지지 않는
시체더미가 바닥에
먹구름처럼 깔려 있다
선잠박물관
대리석 위에 누워 잠을 청한다
바닥에 새겨진 혈관들
피가 식는다
실타래로 온몸을 감싼다
이곳은 냉기와 창백한 숨결로 가득하고
나는 곧 번식할 것이다
유리관 속에는 나의 발육 과정이 담겨있다
내가 태어나고 아이들이 생기고 군집을 이루고
눈코입도 없이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번식을 끝낼 줄 모르는 이 세계는
자꾸만 나의 잠 속에 침투해
얼음처럼 시린 모유를 들이붓는다
몸집이 커지고 냄새는 강해지고 무거운 심장을 갖게 되겠지
소음도 뜨거움도 핏덩이도 없이
우글거리는 나의 아이들이
두려움을 모르는 듯 작동하고
그러나 대리석 위에 널브러져 있는 건 생각을 지울 만큼 좋다
검은 사과처럼 변해가는 내 얼굴이 보기 좋다
감은 눈 뜨면 이곳은 나의 아이들로 가득하고
아이들은 뒤척이는 나의 몸에 짓눌리고
나의 전시는 붐빈다
카페 게시글
지난호 읽기
시 두 편
먹구름 스웨터 / 김신혜
김명아
추천 0
조회 34
25.12.23 12:51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