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1요한 4,11) ⠀ 2024/3/5/사순 제3주간 화요일/경칩 ⠀ 마태오 복음 18장 21-35절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용서를 향해 있기 “감실등은 하느님을 위해 빛이 되고 불이 되어야 할 나의 영혼을 상징합니다.” (과르디니) 감실등은 그냥 불이 아니라 성체성사를 기억하는 불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받아주셨고 나를 위해 여전히 목숨을 바치고 계심을 묵상하는 기억의 자리입니다. 감실등처럼 주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말씀드립시다.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 은혜가 흘러가지 못하게 자기 선에서 차단해버린 종의 모습을 봅니다. 그는 자비를 기억하지 못했기에 악합니다. 은혜를 베푸신 분을 기억하지 못했기에 그는 매정합니다. 그 사람은 은혜의 공간에서 너무 급히 빠져나왔습니다. 조심스럽게 자기 자리로 돌아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나를 가엾게 여기신 하느님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나의 용서를 받을 만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가늠하기보단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하느님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분은 용서가 쉬운 일이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용서를 위한 힘겨운 노력을 하느님은 잘 아십니다. 용서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바라볼 때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의 이마에는 용서받은 체험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도 주님께 용서받은 사람입니다.” 그 기억을 놓치면 안 되겠습니다. ⠀ 김현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신부(수원교구) 생활성서 2024년 3월호 '소금항아리'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