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봄 최장 가뭄, 여름엔 극한 호우… 겨울되자 ‘기온 널뛰기’
2023년 이상기후 시달린 한반도
‘극한 호우’로 사망자 40여명 발생… 한겨울에 이상 고온으로 장맛비도
최저-최고기온 폭이 40도에 달해… ‘뜨거운 지구’ 올해도 지속될 듯
새해를 맞이할 때는 ‘모든 것이 조금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곤 한다. 그러나 쉽게 희망을 말하기 어려운 것이 있다. 바로 기후위기다.
2023년 지난해는 지구가 12만5000년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해로 기록됐다. 지난해 12월 6일(현지 시간) 유럽연합(EU)의 기후변화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는 1∼11월 전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1850∼1900년) 평균 기온보다 1.46도 높아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국제사회가 ‘이것만큼은 넘기지 말자’고 목표한 상승 한계치인 1.5도에 가까워진 수치다.
유엔은 앞으로 빙하가 녹으면서 산불, 홍수, 폭염, 혹한 등이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가장 뜨거웠던 지난해, 전 세계에선 가뭄, 홍수, 폭염, 혹한 등 ‘재난’에 가까운 이상기후 현상이 벌어졌다. 우리나라도 이를 피해 가지 못했다. 한반도에 찾아왔던 기후위기 순간들을 돌아본다.
● 반세기 만의 극심한 ‘봄 가뭄’
한반도에 찾아온 기후위기 순간들 지난해 3월 광주, 전남 등 남부가 극심한 가뭄에 시달렸을 당시 전남 화순군 사평면 주암호 상류 강바닥이 메말라 갈라진 모습. 화순=뉴시스
지난해 봄 남부지방은 50여 년 만의 ‘타는 목마름’을 겪었다. 2021년 장마철부터 가문 날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3월까지 가뭄 일수가 227.3일로, 1974년 이후 역대 최장일을 기록했다. 호남 최대 규모의 다목적댐인 주암댐, 전북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섬진강댐의 저수율은 평년의 절반 수준인 20%대까지 떨어졌다. 제한급수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가정과 상가는 절수(물 사용 줄이기)에 나섰고, 여수·광양산단 공장들은 생산 일정을 조정했다.
이 가뭄은 2021년 이상기후 현상인 ‘라니냐’로 인해 발생했다. 라니냐는 동태평양 적도 지역에서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0.5도 이상 낮은 저수온 상태가 5개월 이상 계속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라니냐가 발생하면 동태평양의 해수 온도는 평균보다 낮은 반면에 우리가 있는 서태평양의 해수 온도는 상승한다. 여름철 북태평양고기압이 바다의 뜨거운 열을 에너지 삼아 강하게 발달해 오랫동안 남부 지역에서 버티면서 그해 장마철에 비구름대가 내려오지 못하고 중부 지방에서만 오르락내리락한 것이다.
또 기상청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지역별 강수 편중이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약 5∼7년마다 전국에 가뭄이 찾아왔지만 2012년 이후로는 해마다 일부 특정 지역에 심각한 가뭄이 발생하는 ‘국지적 가뭄’ 빈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 인명 피해 불러온 여름 극한호우
지난해 7월 역대급 폭우로 물난리가 벌어진 가운데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제방을 넘어온 빗물에 침수되고 있다. 버스의 빨간 지붕까지 물이 차오른 모습이 보인다. 당시 14명이 숨졌고 11명이 다쳤다. 청주=뉴스1
작년 여름 한반도를 강타한 단어는 ‘극한호우’였다. 극한호우는 ‘1시간당 50mm’와 ‘3시간당 90mm’를 동시에 충족할 때를 뜻하는 것으로, 2022년 8월 서울 동작구에 시간당 14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을 때를 계기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극한호우의 정의가 없었지만 ‘우리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상식을 뛰어넘는’ 비의 기준을 만든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6, 7월 극한호우가 전국에 28차례 내린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48건 발생한 극한호우는 2016년 63건, 2020년 117건, 2022년 108건으로 연평균 8.5%씩 빈도가 늘고 있다.
특히 지난해 7월 13∼17일 5일 동안 충남과 충북, 경북 등에 최고 570mm가 넘는 기록적인 호우가 내려 40명이 숨졌다. 이 중에서도 충북 청주에서는 ‘100년 빈도 강수량’(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100년에 한 번 내리는 수준의 강수량)을 기준으로 쌓은 임시 제방이 이를 뛰어넘는 비로 붕괴되면서 사망자 14명이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기상청은 현재 수준의 온실가스를 계속 배출한다면 극한호우 강수량이 2040년까지 현재(2000∼2019년) 대비 29%, 2060년까지 46%, 2100년까지 53%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 한겨울 이상고온-한파 널뛰기
지난해 12월 이상고온 현상으로 낮 최고기온이 20도 넘게 올라가는 ‘때 아닌 봄 날씨’가 이어졌을 당시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에서 한 시민이 반팔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하반기(7∼12월)에는 지구 온도계가 ‘고장’ 났다. 수은주가 떨어져야 하는 가을과 겨울, 여전히 초여름 수준의 이상고온이 지속된 것이다. 지난해 9월 전국 평균 기온은 22.6도로, 1975년의 22도를 깨고 가장 더운 9월로 기록됐다. 서울에선 88년 만에 ‘9월 열대야’가 발생했다.
더위는 하반기 내내 이어졌다.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영향으로 11월 초 강릉 29도, 서울 26도 등을 기록했다. 12월 역시 8일 경북 경주 20.9도를 비롯해 전국 곳곳이 20도를 넘나들며 12월 일 최고기온을 경신했다. 반팔을 입을 수준의 더위에 눈 대신 비가 ‘장맛비’처럼 내리며 사상 처음으로 환경부에서는 12월에 호우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이상고온 직후에는 ‘북극 한파’가 찾아오며 일주일 새 최고-최저기온 폭이 40도에 달할 정도로 기온 변동이 심했다. 온난화로 인해 북극 인근 고위도에서 찬 공기를 묶어주는 ‘제트 기류’의 힘이 떨어지면서 북극 한기(寒氣)가 순식간에 한반도가 있는 중위도까지 침투하면서다. 전문가들은 “더위가 심한 만큼 추위도 심해지는 극한의 기온 변동이 ‘널뛰기’를 한다. 우리 몸도 더욱 이를 견디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영국 기상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지구가 ‘가장 더운 해’를 경신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2년 연속 기록을 경신하는 것이다. 내년엔 사상 처음으로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5도 이상 오를 가능성도 있다.
페테리 탈라스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은 “앞으로 4년 안에 일시적으로 (상승 기온이) 1.5도에 도달할 것이 확실하다. 10년 안에는 영구적으로 1.5도를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기후위기가 어떤 얼굴을 하고 우리를 찾아올까. ‘지구 종말의 자정’을 앞두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돌아볼 때다.
김예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