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은 불만, 경찰은 부담… 누굴 위해 수사권을 넘겼나
국가정보원의 대공 수사권이 어제부터 경찰로 완전히 넘어갔다. 이제 국정원은 간첩 사건 수사를 할 수 없다.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못 한다. 구속영장 신청도 할 수 없다.
대공 수사권이 이전되면서 국정원이 하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국농민회총연맹 간부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등은 당장 경찰이 맡게 됐다. 보통 첩보 수집에만 수년이 걸리는 게 간첩 수사다. 정보 당국자는 “청주간첩단 사건의 경우 1998년부터 내사 자료가 있었다”고 했다. 이적단체가 북한 공작원 지령을 받아 각종 안보 위해 행위를 했다는 이 간첩단 사건은 첩보 수집부터 수사까지 20년 넘게 걸렸단 얘기다. 당국자는 “이런 사건들의 퍼즐을 맞추려면 힌쪽 가슴엔 인내심, 다른 가슴엔 신중함을 새겨야 한다”며 “경찰이 우리처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물론 간첩 수사는 국정원의 전유물이 아니다. 당연한 권리도 아니다. 국정원보다 경찰이 더 잘할 수 있다면 경찰이 하는 게 맞다.
경찰이 더 잘할 수 있을까. 이를 가늠할 척도는 우선 역량이다. 경찰은 안보 수사 인력을 지난해 724명에서 올해 1127명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여기서 순수 대공 수사 인력만 추리면 750여 명 수준으로 몸집이 확 준다. 여기서 주체적인 대공 수사가 가능한 인력만 추리면 142명 규모로 또 줄어들 거란 게 경찰 자체 평가다. 전직 국정원 대공 수사 요원은 “북한이 대남 공작에 1원을 쓰면 우리는 100원을 투자해야 잡는다”고 했다. 간첩 동선을 쫓아 PC방도 함께 가고 같은 숙소에서 묵을 만큼 고되고 노동집약적인 수사가 대공 수사 영역이란 얘기다. 대공 수사의 핵심 인력이 200명도 안 된다는 건 “간첩들에게 놀이터를 주겠다는 것”이라고 이 전직 요원은 우려했다.
인력 풀도 문제지만 경험은 더 문제다. 올해부터 간첩 수사를 이끌 경찰 간부의 절반 이상은 안보 수사 경력 3년 미만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안보수사단의 머리인 안보수사심의관은 아예 대공 수사 경험이 없다.
경찰이 잘해 보려는 의지조차 작아 보인다는 것도 문제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신년사에서 “안보수사 역량을 근원적으로 혁신하겠다”고 밝혔지만 경찰 내부에선 “쉽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대공 수사를 떠맡게 된 걸 그리 반기지 않는 경찰 내 목소리도 많다”고 했다.
사실 대공 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안보경찰이 경찰 조직에서 찬밥 신세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길게는 10년 이상 걸리는 간첩 수사 성격상 실적 쌓기가 힘들고 승진도 어려운 안보경찰이 기피 보직인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지난해 12월 경찰 고위 간부인 경무관 승진 대상자 명단에도 안보경찰은 없었다.
간첩 수사 프로세스에 구멍이 생기면 국가 안보가 흔들린다. 경찰이 할 거라면 확실한 플랜과 의지를 갖고 제대로 해야 한다. 국정원도 뒤에서 걱정만 할 게 아니라 법적 범위 안에서 일단 최대한 경찰에 협조해야 한다. 경찰과 국정원 모두 그럴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별도 안보수사청을 만들거나 다시 예전으로 돌리는 게 맞다.
신진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