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무선 호출기(페이저, 일명 삐삐) 폭탄 공격에 목숨을 잃은 이들의 장례식이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쪽 다히예에서 18일(현지시간) 거행되는 중 또 폭발이 일어났다. 이곳은 친이란 반이스라엘 무장조직 헤즈볼라의 진지가 있는 곳인데 전날 희생된 11세 소년과 3명의 헤즈볼라 대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폭발 순간을 담은 동영상을 보면 한 남성이 바닥에 쓰러져 있고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난다.
주변 지역의 거리들에서도 마치 메아리치듯 폭발음들이 계속 들려왔다. 모였던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날 무선 호출기 수천 대가 동시 폭발해 어린이 둘을 비롯해 12명이 숨졌고 3000명 가까이 다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데 이날은 헤즈볼라 대원들이 갖고 있던 워키토키들이 수백대 폭발해 20명이 죽고 450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이로써 어떤 전자장비도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헤즈볼라 지지자들은 방송 제작진을 여러 차례 검문해 전화도 카메라도 사용하면 안 된다고 요구했다.
이날 폭발의 여파로 가정집, 점포, 차량 등에 화재가 잇따랐다. 이틀 연속 헤즈볼라 그룹은 굴욕을 감내하게 됐고 모든 통신 네트워크가 이스라엘에 노출됐을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아울러 레바논 사람들은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엘리아스 와락 박사는 “의사로서 내 인생 최악의 날”이었다고 돌아봤다. 그가 목격한 이들 가운데 60%는 눈 하나를 잃었으며, 많은 이들이 손가락을 하나 잃거나 통째로 손이 잘려나갔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난 희생자 숫자와 피해 양상이 엄청나다고 믿는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많은 눈을 구할 수 없었으며, 불행하게도 그 피해는 눈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몇몇은 뇌 손상을 입었고 얼굴에도 큰 손상을 입었다.”
보도들에 따르면 호출기들에는 운송 단게에서 폭발 장치가 심어져 있어 원격 조종을 통해 점화됐을 것으로 추정됐다. 헤즈볼라는 스마트폰들이 이스라엘군과 첩보기관들에 의해 추적 당해 대원들을 살해할 것으로 우려돼 호출기들을 대량 구매해 나눠줬다. 이날 워키토키 공격이 어떻게 수행됐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공격의 배후에 있다며 응징을 다짐했지만 이스라엘은 늘 그렇듯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전쟁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며 전쟁의 무게 중심이 레바논과의 국경 지대인 북부로 옮겨지고 있다고 밝혀 사실상 이번 공격을 획책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확인해준 셈이라고 분석하는 이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과 서로 철천지 원수로 보는 헤즈볼라가 최근 갈등 양상이 두드러지는 마당에 일련의 공격이 전면전으로 번질까 우려하는 이들도 많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이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를 표하는 것이라며 종전에 의해서만 멈춰질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다히예 장례식에서 공격을 받은 추모객들은 한결같이 BBC에 결연히 맞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 젊은 남성은 "고통은 육체와 정신 모두에 막대하다. 하지만 우리는 적응해야 하는 일이며 우리는 끝까지 항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45세 여성은 BBC에 "이런 일은 우리를 더 강하게 할 것이다. 한 눈을 잃은 이들은 누구라도 다른 눈으로 싸울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단결돼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 다른 전쟁을 벌이는 데 관심이 없다고 암시해 왔는데 레바논은 몇 년의 경제위기에서 채 회복하지 못했다. 이곳의 많은 이들은 갈등의 확산이 이 나라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몇몇은 강한 대응을 요구할 것이다. 헤즈볼라가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19일에는 알기 어려울 것이다. 다만 강력한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첫 공식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주목된다고 방송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