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을 대표하는 윌리엄 새커리의 걸작 『허영의 시장Vanity Fair』은 1847년부터 1848년까지 19개월 동안 월간으로 연재되었다가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된 소설로, 새커리에게 상업적 성공과 비평적 찬사를 모두 안겨준 그의 대표 작품이다. 서머싯 몸은 『허영의 시장』을 격찬하며 최고의 영문소설로 꼽았고, 샬럿 브론테는 『허영의 시장』에 압도되었다고 고백하며 자신의 소설 『제인 에어』를 새커리에게 헌정했다. 또한 문학 비평가이자 옥스퍼드대학교 석좌교수인 존 캐리는 『허영의 시장』은 영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이며, 범위와 주제 면에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견줄 만한 유일한 영문소설이라 평했다.
『허영의 시장』은 가난한 고아 레베카와 유복한 상인 집안에서 자란 아멜리아의 대조적인 삶과 그들의 운명에 얽혀 있는 다양한 인물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전개된다. 새커리가 창조한 최고의 인물로 평가받는 레베카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새커리가 소설의 앞부분을 상당 부분 고쳐 등장시킨 도빈은 겸손하고 이타적이며 아멜리아를 향해 충직한 모습을 보이지만, 도빈을 대하는 아멜리아의 태도가 너무나 무정하기에 그의 모습도 어리석게만 보인다. 도빈의 친구이자 아멜리아와 오래전부터 혼인 이야기가 오간 조지는 인간의 자만심과 천박함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부, 사랑, 결혼, 명예, 지위, 쾌락 등 각자의 허영을 추구하는 동안 새커리로부터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풍자와 조소, 연민의 대상이 되다가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흥미진진한 사건 속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19세기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허영의 시장』은 당시 영국 상류사회를 사로잡고 있던 허영과 위선을 주제로,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고 이기적인 존재인지에 대해 가차 없이 풍자하면서 당대 어느 소설가보다 삶의 진실을 독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사실적이면서 특색 있는 인물들과 박진감 넘치는 사건 전개, 새커리 특유의 표현력과 희극적 필치가 펼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허영의 시장』이 왜 최고의 영문소설이라 평가받으며 시대를 초월하여 사랑받는지 알게 될 것이다.
저자 윌리엄 새커리(William Makepeace Thackeray)는 1811년 인도의 콜카타에서 동인도회사 관리자였던 아버지 리치먼드 새커리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815년 아버지가 죽자 영국으로 보내져 차터하우스와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교육을 받았다. 학위를 받지 못하고 대학을 중퇴한 후 1833년에는 전문 화가가 될 결심으로 파리에 정착해 한동안 그곳에 살기도 했다. 그의 미술적 재능은 이후 그가 자신의 글들에 덧붙인 삽화에서 엿볼 수 있다. 1836년 파리에서 만난 아일랜드 출신의 이저벨라 쇼와 결혼한 후 1837년 런던으로 돌아와 직업 기자로 활동했다.
『허영의 시장』 외에 『펜더니스 이야기The History of Pendennis』(1850), 『뉴컴가The Newcomes』(1855) 등이 있으나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허영의 시장』만큼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새커리는 그 후로도 찰스 디킨스의 유일한 맞수라는 평가를 받으며 다수의 작품을 창작하다가 1863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갑자기 죽음을 맞았다. 『허영의 시장』은 영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오늘날 독자들에게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