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와 나 ........................................................... 마광수
나는 30 대 초반까지만 해도 내가 나약한 지식인이라는 사실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던
적이 많았다. 10 월 유신을 거쳐 5. 18 광주항쟁, 그리고 5공 정권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많은 지식인들이 용감한 투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줬기 때문이었다. 어떤 친구는 유신을
반대하다가 투옥되기도 했고 어떤 교수는 5공 때 직장을 잃기도 하였다. 특히 문학하는
이들이 민중문학이나 참여문학을 부르짖으며 그들의 문학관을 행동으로 옮길 때, 나는
겁 많고 소심한 나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게 생각될 때가 많았다.
그렇지만 이제 내가 60 대의 나이로 접어들어 보니, 그래도 나는 웬만큼 지조를 지키긴
했다는 생각이 들어 과거에 가졌던 부끄러운 감정이 어느 정도 희석돼 가는 것을 느끼
게 된다. 무슨 말인고 하면, 50 세를 전후로 해서 스스로의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를
졸지에 허물어뜨리는 지식인들을 많이 목격하게 됐다는 말이다.
20 대나 30 대까지는 그래도 야한 가치관 (진보주의적 가치관 또는 반골기질이라고 해도
좋다) 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중년의 나이가 되자 급작스레 보수성향으로 돌아서는 경
우가 우리나라엔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젊었을 때 반정부 데모하던 사람이 골수 여당인
이 되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젊었을 때 아방가르드(전위)적 문학을 하던 사람이
보수도덕군자로 변신하는 일도 흔하다. 또 나이도 나이지만 주변상황에 따라 스스로의
소신을 굴절시키는 사람도 많다.
소련이 와해되기 전까지는 민중문학이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빠져있던 문학인이,
소련과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자 졸지에 문학관을 바꿔 “이제부터의 문제
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욕망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보았다. 그런 부류의 문학인들은
대개 포스트 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우상에 들러붙어 자신의 변절을 호도하기 바쁘다.
특히 내가 혐오하는 것은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이던 사람이 보수적 권위주의자
로 변모할 경우이다. 젊었을 때는 자유연애를 즐기던 사람이 중년의 나이가 되면 보수
윤리의 옹호자로 변하고 (젊음을 질투해서가 아닐까?), 학생 때는 급진적 진보주의를
외치던 사람이 제도권 언론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금세 어깨에 힘을 주고 보수반동적
관료주의자가 된다.
종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20 대에 그토록 야한 (실존적 저항이라는 의미에서) 소설을
썼던 김승옥 씨는 뜬금없이 성령 체험이라는 것을 겪고 나서 보수적 기독교 신비주의
신앙의 전파자로 나섰다. 또 풍자적 반정부 시를 써서 세계적인 저항시인으로까지 부
상됐던 김지하 씨는 역시 생명사상이라는 애매모호한 종교사상으로 회귀했다. 민중시
인의 대표자 격이었던 고은 씨도 『화엄경』이라는 허황된 종교소설을 발표하여 뜨뜻
미지근한 타협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사람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스스로의 사상을 발전적으로 변신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변절을 변신이라고 우기면 곤란하다. 변신은 구차한 핑계를 동반하지 않지만 변
절은 구차스런 핑계를 동반한다. 그러한 핑계들은 대개 심리적 방어본능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새롭게 마음먹은 생각이 다같이 치열한 고뇌와
사색 끝에 얻어진 것이 아니라 단순한 부회뇌동이나 보신주의(保身主義)의 산물일 때,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한 나머지 도리어 적반하장 격의 핑계를 동원해대는 것이다. 그러
한 핑계의 내용은 대개 ‘남 걱정’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대부분 민족주의나 도덕성 회복,
사회 질서 안정 등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나는 일찍이 10 대 시절부터 야하고 개방적인 생각을 가졌고 지금까지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가 획기적인 변신을 못했을망정 나이 핑계, 시국 핑계 등을 내세워
변절까지는 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적이 안심하게 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유독 윤리에 있어서만은 엉거주춤 양다리 걸치기
식(式)의 회색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나는 내 생각이 맞든 그르든
당분간 돈키호테적 투쟁(?)을 계속해 나갈 필요를 느낀다. 돈키호테는 젊은 나이에 기
사로 나선 것이 아니라 늙은 나이에 기사로 나섰다. 나 역시 돈키호테처럼 늙어죽을 때
까지 낭만주의자 (낭만주의자는 진보주의자요 혁신주의자이다) 의 면모를 간직하고 싶
다.
(마광수 문화비평집 <육체의 민주화 선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