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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의 봄 - 귀때기청봉
1. 귀때기청봉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점봉산
저 산은 내게 우지 마라 우지 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버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 정덕수 시인 원작, 하덕규 작사 작곡, 「한계령」 부분
▶ 산행일시 : 2026년 5월 23일(토), 흐림, 안개
▶ 산행코스 : 한계령휴게소,1,299m봉,한계삼거리,귀때기청봉,귀때기청봉 서릉 안부, 온 길 되돌아감
▶ 산행거리 : 도상 9.0km
▶ 산행시간 : 6시간 39분(11 : 47 ~ 18 : 26)
▶ 교 통 편 : 엠티산악회(30명) 버스 이용
▶ 구간별 시간
07 : 30 – 잠실역 8번 출입구
10 : 38 – 팜파스휴게소( ~ 10 : 50)
11 : 47 – 한계령(920m), 산행시작
12 : 23 – 1,299m봉, 한계령 1.0km, 한계삼거리 1.3km
12 : 54 – 한계삼거리(1,353m), 귀때기청봉 1.6km, 대승령 7.6km, 대청봉 6.0km, 휴식( ~ 13 : 05)
13 : 59 – 귀때기청봉(△1,578m)
14 : 20 - 귀때기청봉 서릉 안부, 휴식( ~ 14 : 40)
15 : 10 – 다시 귀때기청봉
16 : 40 – 한계삼거리, 휴식( ~ 17 : 00)
18 : 26 – 한계령, 산행종료, 버스 출발(19 : 00)
20 : 30 – 가평휴게소( ~ 20 : 45)
21 : 28 – 잠실역
2. 귀때기청봉 오르는 길, 안개는 산릉을 덮었다가 걷히기를 반복한다
5. 귀때기청봉 서북 사면
6. 귀때기청봉 정상 표지목
7. 귀때기청봉 서릉의 털진달래, 설악산이 개방된 5월 16일에 이미 끝물이었다고 한다
9. 귀때기청봉 서릉
10. 왕매발톱나무, 울릉도와 강원도에서 자라는 낙엽활엽관목이다
11. 털진달래, 연한 갈색인 일년생가지는 비늘조각이 있고 털이 있다고 한다
칼레파 타 칼라(χαλεπὰ τὰ καλά, kalepa ta kala). “좋은 일은 실현되기 어렵다” 또는 “아름다운 것은 어렵다”라
는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어 격언이라고 한다. 오늘 산행이 그러하다. 당일로 설악산 서북능선(한계령에서 귀때기청
봉 넘어 대승령, 장수대 코스)을 가려는 뜻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 무박으로 가면 한계령에서 한계삼거리를 한밤중에 지나기 때문에 주변 원근의 경치를 볼 수 없어서 훤할 때
보고자 했다. 또한 설악산을 개방한 지 두 번째 주말이라서 무박은 그 길에 등산객들이 워낙 많이 몰려 줄을 서서
가야 해서 좀 한갓지게 가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둘째, 귀때기청봉 주변의 털진달래와 그 너머 산릉에서 참기생꽃, 금강애기나리, 솜다리, 나도옥잠화, 요강나물 등
의 야생화를 보고 싶어서고,
셋째, 엊그제 종일 비가 내렸기에 대승폭포의 장쾌한 물줄기를 보고 싶어서다.
그런데 석가탄신일 대체휴무가 겹친 3일 연휴 시작으로 속초 등지로 떠나는 차량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서울을 빠져
나가기도 힘이 들었을 뿐더러, 서울양양고속도로에 들어서는 기어가다 서고, 좀 달리는가 싶으면 다시 기어가고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아라리 산행대장님의 잠실역을 출발할 때 던진 입방정이 나중에는 오히려 덕담이었다.
한계령까지 11시까지만 도착해도 황송한 일이라고 했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풀린 때는 동홍천IC 즈음해서였다. 화양강휴게소는 만원이라서 진입하기도 힘들고 화장실은
긴 줄을 서야 해서, 그 다음의 팜파스휴게소를 들렀다. 여기도 만원이고 화장실은 긴 줄을 선다. 한계령 가는 버스
안에서 너도나도 제풀에 지치고 만다. 한계령 도착 11시 47분. 당초 산행계획은 대청봉을 가는 팀과, 귀때기청봉
넘어 대승령, 장수대 가는 팀으로 나누었는데, 아무 소용없게 되었다. 귀때기청봉만 갔다 오기로 한다.
분한 노릇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날이 궂어서다. 준령인 한계령(920m)에 오르니 안개구름이 만천만지다.
이래서는 산정에 올라서도 막막할 것이라 산행 욕심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조망 가린 안개 속을 가는 것이 동네 산
을 돌아다니는 것과 무에 다를까. 그래도 여느 산에서 보지 못한 풀숲 야생화는 보일 것이라 서둔다. 한계령도 차량
들로 꽉 찼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재빨리 뛰쳐나간다.
12. 귀때기청봉 서릉 안부 지난 1,456m봉, 참기생꽃은 저 산 너머에 있나 보다
13. 귀때기청봉 서북 사면
14. 귀때기청봉 자락, 중간 능선은 가리봉으로 간다
15. 가리봉과 주걱봉
16. 금강애기나리, 주근깨가 귀엽다
17. 상투바위골
18. 용아능선
19. 흰인가목,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위기종)이다
20. 왕매발톱나무, 꽃이 피기 시작한다
21. 댕댕이나무,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취약종)이다
한계령에서 한계루 오르는 계단이 이전과 변함없이 108계단인지 세어본다. 맞다. 정확히 108개다. 불교에서 말하
는, 인간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미혹하게 만드는 108가지 번뇌를 뜻하는 계단 수이다. 이를 다스리기 위해 저절로
108배 하며 오른다.
백팔번뇌(百八煩惱)의 뿌리이자 으뜸가는 번뇌는 ‘무명(無明)’이라고 한다. 어리석음이라고도 불리며, 진리를 알지
못하고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근본적인 미혹이라고 한다.
육당 최남선은 그의 시조집 『백팔번뇌』에서 ‘동청나무 그늘, 님 때문에 끊긴 애를 읊은 36수’의 ‘궁거워’에서 첫수
를 다음과 같이 읊었다.
위하고 위한 구슬
싸고 다시 싸노매라
때묻고 이빠짐을
님은 아니 탓하셔도,
바칠 제 성하옵도록
나는 애써 가왜라
아침에는 안개비까지 내렸나 보다. 돌길이 미끄럽다. 모난 돌은 착지가 어긋나지 않지만 동글동글한 돌은 자꾸 발이
엇나간다. 이때쯤이면 건너편에 보이던 늘어선 기치창검 모양의 칠형제봉, 울근불근한 근육질의 가리봉이 안개로
가렸다. 발품 팔아 카메라 들이댈 일이 없으니 부지런히 오른다. 한낮인데도 설악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이 많다.
한 무리 등산객들 추월하고 나면, 또 한 무리 등산객들이 앞서가고, 또 추월하다 내 먼저 지치고 만다.
1,299m봉까지 1km를 오르면 된 가파름은 극복한 셈이다. 전망바위는 오르지 말라고 금줄을 둘렀다. 거기에 오르
면 뒤로는 점봉산을, 앞으로는 장쾌한 서북능선을 볼 수 있는데 오늘은 안개로 캄캄 가렸으니 굳이 오를 필요가
없다. 가파른 내리막이다. 미끄러워 더듬거리다 핸드레일 난간 붙들고 내린다. 등로는 지능선을 두 차례 횡단한다.
오를 때는 가파르고 긴 데크계단이다. 맑은 날에는 뒤돌아보면 계단마다 경점이라 오늘은 그걸 기대하고 왔는데
안개로 지척도 가렸으니 아쉽기 짝이 없다.
속도전이다. 마른 계곡의 무지개다리 아래 너덜을 지나고, 다시 데크계단 쭉쭉 오르고 돌계단은 살금살금 오르고,
산허리 돌아내리고 데크계단 오르고 부드러운 산허리 돌아 한계사거리다. 많은 등산객들이 모여 있다. 나 또한 한쪽
에 자리 잡고 점심 먹는다. 점심이랬자 크림빵이다.
귀때기청봉 오르는 길이 여간 사납지 않다. 숲속 너덜이 지나기가 더 고약하다. 안개비에 젖어 무척 미끄럽다. 바위
마다 부둥켜안고 넘는다. 숲속 벗어나면 하늘 트인 본격적인 너덜지대다. 너덜이 미끄럽지 않아 지나기 오히려 수월
하다. 곳곳에 세운 폴이 등로를 유도한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간혹 안개가 걷히곤 하여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다. 카메라를 꺼내면 그새 안개가 가리기도 여러 차례다.
22. 귀때기청봉 내리는 길에서
23. 점봉산
24. 뒤가 한계령 가는 능선
27. 두루미꽃
꽃이 두루미 머리와 목을 닮고, 잎과 잎맥 모양이 두루미가 날개를 넓게 펼친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29. 풀숲의 신사, 연영초,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약관심종)이다
31. 요강나물, 우리나라 특산식물이다
엠티산악회가 산행안내에 귀때기청봉 털진달래의 황홀한 모습을 올려 모객을 꾀했다. 어느 정도 과장일 거라 예상
은 했다. 그런데 이 정도인 줄을 몰랐다. 털진달래가 볼품이 없다. 설악산이 개방된 지난 16일에 이미 끝물이었다고
하니 그럴만하다. 기대가 무너져 너덜 오르는 발걸음이 팍팍하다. 귀때기청봉 오르는 시간을 1시간 정도 저축했다.
서릉 안부까지 갔다 올 요량이다. 거기에서 참기생꽃과 금강애기나리를 본 기억이다.
서릉을 간다. 너덜이지만 귀때기청봉을 오를 때보다는 훨씬 순하고 거리도 더 짧다. 등로 주변에는 왕매발톱나무가
흔하다. 포도송이처럼 다발 진 꽃봉오리(총상화서)가 이제 막 꽃을 피려고 한다. 한 번 보고 나면 자주 눈에 띈다.
너덜 내린 서릉 안부는 평탄한 풀숲이다. 여기던가 저기던가 참기생꽃을 찾지만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저 앞 1,456m봉 넘은 안부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금강애기나리를 본다. 왜 나를 모른 채하느냐고 꾸짖는 것 같다.
금강애기나리는 주근깨가 촘촘하여 오히려 귀엽다.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약관심종)이다.
귀때기청봉으로 되돌아간다. 일단의 젊은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씩씩하다. 대승령 넘어 장수대로 간다고 한다. 장수
대 도착시간 19시 30분을 계획한단다. 나도 그리로 갈까 잠시 흔들렸으나 안개가 주변 풍광을 가렸으니 그만 되돌
아가시라는 계시로 받아들인다.
다시 귀때기청봉이다. 아라리 산행대장님 일행과 만난다. 한계령 산행마감시간은 18시 40분이다. 지금 시간 15시
10분이니, 넉넉하다. 등로 주변을 한층 자세히 살핀다. 소득이 있다. 흰인가목과 댕댕이나무를 본다. 이 둘은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이기도 하다. 전자는 위기종이고, 후자는 한 등급 낮은 취약종이다. 댕댕이나무는 그 열매가 ‘속이 꽉
차고 팽팽하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인 ‘댕댕하다’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수없이 오고 간 이 길 너덜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때와 시를 달리 하고 주변 보는 시각을 달리 하고, 주변 경치
가 매 순간 다르니 항상 새로운 길이다. 윤동주가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길’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이 너덜에서 엎어지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중상이다. 사족보행 한다. 날씨가 순식만변 한다. 용아능선이 보였다가
금세 가리고, 점봉산이 구름 위로 솟기도 한다. 그 또한 가경이다. 주춤주춤 내려 한계삼거리 직전 안부다. 비탐구간
인 왼쪽 백운동계곡으로 내리는 길이 잘났다. 그쪽 너른 박새 초원이 보기 좋아 들른다. 여기는 풀숲의 신사인 연영
초가 한창이다. 그 옆에 요강나물도 보인다. 연영초도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약관심종)이고, 요강나물은 설악산
이북의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한계삼거리에서 휴식한다. 우리 일행들과 함께 배낭 털어 먹는다. 한계령 가는 길. 안개비가 내린다. 이때는 으슬으
슬 춥다. 돌길 착지가 확실한 모난 돌을 골라 딛는다. 등로 주변에서 한 무리 금강애기나리를 본다. 귀때기청봉 너머
에만 있는 줄 알았던 금강애기나리다. 대승령을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다. 1,299m봉 오르기 직전 전망바위다.
안개구름이 석고당골을 채우고 올라오는 중이다. 서북능선이 안개구름 위에 떠 있다. 안개구름이 덮을 때까지 보고
또 본다. 오늘의 제1경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사진이 실경보다 훨씬 못하다.
안개 속 내리막 돌계단이 오를 때보다 더 미끄럽다. 세 번이나 미끄러져 얼얼하게 엉덩방아 찧는다. 보는 사람 없어
우세 면한다. 108계단 내려 한계령이다. 안개는 더 짙어졌다. 어둑하다. 서울 가는 길. 오전과는 판이하게 도로가 뻥
뚫렸다. 막힘없이 달린다.
32. 한계령 가는 길
33. 귀때기청봉 남릉 쌍투바위
34. 서북능선 끝청 가기 전 1,459m봉
35. 서북능선 한계삼거리 주변
37. 금강애기나리
41. 한계령 가는 길

첫댓글 양희은의 목소리로 '한계령'을 들으며, 5월 산불방지 입산금지가 해제되면 달려가고픈 설악. 올해엔 악수님으로부터 귀청의 털진달래 소식을 듣습니다. 해제날자를 5월 초로만 해주어도 산악인들은 환호할 터인데... ㅎ
날이 궂어도 설악산은 아름답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입산통제를 좀 더 일찍(1주일만이라도) 해제한다면
더 버랄 게 없겠습니다.^^
연휴에 날도 안 좋아 고생하셨습니다.
끝물이라도 털진달래가 남아 있었네요...
잠실에서 버스 타고 한계령 가기가 산행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털진달래는 그중 상태가 나은 걸로 골랐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구름속에서 예쁜 꽃들을 맞이하셨으니 그 또한 복이겠지요^^
설악산은 갈 때마다 전천후로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