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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마지막 권면1
수 23:1-5
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2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들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가 많아 늙었도다
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4 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아 너희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수 23:1-5 / [여호수아의 고별 연설] 이스라엘이 주변의 여러 원수들과 싸우지 않고 평화로이 살 수 있도록 여호와께서 이끌어 주신 지 오랜 세월이 지났다. 여호수아도 나이가 많아 이제 늙은 몸이 되었다. 2) 하루는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식구들, 곧 원로들과 지도자들과 재판관들과 사무관들을 불러 말을 꺼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많아 늙은 몸이 되었소. 3) 그대들도 다 보지 않았소?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서 우리 주위에 있는 뭇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셨는지 말이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 우리를 위해 몸소 싸우지 않으셨소? 4) 뿐만 아니라 아직껏 남아 있던 백성들의 땅을 그대들의 지파에 따라 자손들에게도 계속해서 물려줄 몫으로 나누어 주지 않았소? 그리고 동쪽으로 요단강에서 서쪽으로 큰바다라고 흔히 부르는 지중해까지 이미 정복하였던 땅도 그대들에게 나누어 주었소. 5)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몸소 그들을 몰아내실 것이오. 그대들이 나아가는 대로 그들을 쫓아내실 것이오.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을 그대들이 차지할 것이오. 그 땅이 그대들의 몫이 될 것이오. 이것은 이미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오.
일찍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로부터 신명기를 통해서 필요 적절한 권면을 받았습니다. 나이 많아 늙은 여호수아는 지도자로서 백성들에게 마지막으로 권면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백성들에 대한 마지막 사역으로서 자신의 체험과 은혜를 바탕으로 권면의 설교를 합니다.
나는 나이가 많은지라(1-2)
정복 전쟁과 기업 분배가 다 이루어지고 이스라엘은 10여 년 안식을 누렸습니다. 여호수아는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워지자 백성의 대표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상기시키고 마땅히 그들이 준수해야 할 것들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복 전쟁에서의 은혜 체험을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고, 정착 후 주변의 족속들과 빈번한 접촉을 했습니다. 차츰 현실에 타협하고 안주하며 안락한 삶에 빠져 갔습니다. 삶의 방식이 농경 생활로 전환이 되면서 풍요와 번영의 우상에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들을 향해 입을 열어야 했습니다.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보았느니라(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여러 일을 상기시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이 경험한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눈으로 직접 본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단순히 눈으로 목격했다는 의미를 넘어 몸으로 직접 체험한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그 일들을 결코 잊을 수 없었고 잊어서도 안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의 권면은 적절했습니다. 백성들은 이에 대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10:14, 42)
너희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4-5)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엄청난 땅을 각 지파에게 기업으로 나누어 주셨다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의 노예에서 또 광야 40년간 방랑하던 민족이 땅을 얻고 안식하게 되었던 기적적인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루셨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기업으로 분배를 받은 남은 땅도 주실 것이라 했습니다. 신속하게 정복하지 못한 남은 땅은 실제적인 유익(출 23:29, 30; 신 7:12)과 영적 유익 때문이었습니다(삿 2:22, 23).
적용: 돌아보며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행하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믿어야 합니다.
< 설 교 >
믿고 순종하라
수 23:1-6 / 김광석 목사
오늘 본문은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어 죽기 전에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한 마지막 당부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먼저 여호수아는 그 동안의 가나안 땅 전쟁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위하여 싸우신 싸움이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고 합니다.
또 4절에 보면 가나안땅을 기업으로 제비를 뽑아 주신 것도 이스라엘을 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5절에 보면 앞으로 가나안땅에 있는 남아 있는 가나안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쫓아내셔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약속하신 이 땅을 완전히 차지하게 할 것이라고 말ㅆ씀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1장 30절에 보면 가나안땅을 앞에 두고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대로 이 가나안땅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서 이 땅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확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가 하나님보다 먼저 더 앞서가서 행동하거나 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는데, 우리가 하나님보다 미리 앞서 나가서 말하거나 행동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는 하시는데, 우리는 쉽게 미리 너무 앞서서 염려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앞에서 행동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 동안 가나안땅을 차지하게 된 모든 것도 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너희가 한 것이 아니다. 또 앞으로 가나안의 모든 대적을 다 물리치는 것도 다 하나님이 하실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지금도 살아계시고 당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 온전히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6절 /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우리가 할 일은 더욱더 힘써서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그 모든 말씀을 온전히 다 지켜 행하고 말씀 안에서 조금도 치우치지 않는 삶을 살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염려도 아닙니다. 걱정도 아닙니다. 또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무언가 이루려고 하는 일도 아닙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또 말씀 안에서 한쪽으로 조금도 치우치지 않는 삶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가 그 동안 믿고 살아왔던 삶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함으로 그들을 위해서 싸우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신 그 모든 말씀을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조금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랬을 때 그의 평생에 살아계시고 그와 함께 하시고 그를 대하신 하여 싸워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도님 여러분 우리가 우리의 평생에 여호수아가 경험했던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도 직접 체험하면서 살아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염려는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을 믿고, 또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살아가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호수아의 유언적 부탁
수 23:1-13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인명호피(人名虎皮). 우리가 이 땅위에 수십 년간 각각 나름대로 주어진 시간들을 살다가 떠나갈 터인데 그때 과연 무엇이 남겠는가를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불려 간 다음 사람들은 내 이름 석 자를 기억할 때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요?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마지막 세상을 떠나면서 남기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을 일명 유언이라고 부릅니다. 저도 작년에 호스피스 공부를 하면서 유언장을 작성하여 보았는데 어떤 말을 남길지 상당히 고민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자식에게 마지막 글을 쓰려고 하는데 돌이켜 보니 잘못한 것뿐이었고, 부족한 점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말을 남기라고 한다면 어떤 말을 남기겠습니까?
그 사람이 무슨 말을 남기고 갔느냐 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그의 인생이 과연 성공적인 삶이었는지 그저 시간만 보내다가 떠난 삶이었는지를 가늠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 유명한 나폴레옹은 죽는 순간에 세 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군대, 조세핀" 조세핀은 그의 옛 아내였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자기 인생에서 제일 소중했던 세 가지를 유언으로 남기고 갔습니다.
여러분은 죽는 순간 세 마디만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자식의 이름을 부르겠습니까? 아내의 이름을 부르겠습니까? 부모님을 찾겠습니까? 교회를 말하겠습니까? 예수님, 하나님을 부르겠습니까? 바라기는 모름지기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마지막 한마디는 오로지 "하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옵소서!"라고 해야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었다가도 마지막 한 마디가 "어느 은행 통장에 얼마 들어 있다", "재산은 몇 등분해서 너희들끼리 나눠가져라"로 마무리된다면 누가 그 사람을 예수님 믿던 사람이라 하겠습니까? 끝까지 돈 밖에 모르던 인생이라고 비웃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마지막 숨 거두실 때 "다 이루었다"는 한 마디를 남기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당신이 이 땅 위에 오신 목적이 어디 있는지를 한 시도 잊지 않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늘 죽음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십자가 위에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칠 때까지 그 33년의 짧은 생애를 유감없이 하나님께 드렸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인생은 끝이 나봐야 압니다. 내 인생이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 모범된 삶이었는가는 살아있는 나 자신이 점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나라로 간 이후에 후세가 평가해 줄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마지막 남긴 말을 보면 죽음 앞에선 한 인생의 아쉬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다 이루었다"는 말씀은 인생을 아낌없이 불사른 승리의 기쁨이 담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고백
여호수아는 자신의 인생 종착역을 앞에 두고 오직 하나님만을 생각하였습니다. 그가 살아온 인생길을 되돌아보면서 떠올린 하나님은 "자기와 자기 민족을 위하여 싸우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급 인사들을 그의 곁에 부르고 남긴 말을 들어봅시다.
수 23:2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들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가 많아 늙었도다
수 23: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지금 한참 앞만 보고 뛰고 있는 젊은이들은 "쉼표"라는 걸 모릅니다. 때론 우리 인생에 중간점검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저 앞으로 달려 나가기만 할 뿐 지금 내가 달려가고 있는 방향이 과연 옳은지, 지금까지 달려온 인생길이 바른길이었는지를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사람이 바로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마무리 짓는 선배들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객관적인 충고를 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코 잔소리로만 들을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지나온 자기 인생길과 이스라엘의 여정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에 관한 분명한 결론(깨달음)을 하나 얻게 되었습니다. 이 귀중한 깨달음을 혼자만 간직하고 갈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마지막 남기는 말 중 가장 처음으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분이었다."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위하여 싸워주셨음을 인정하십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나를 위하여 싸워주실 분이라는 사실을 믿습니까? 여호수아가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깨달은 하나님은 "오직 내 편 되어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나요? 지금까지의 가나안 정복의 성과가 전부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워주신 결과였음을 겸손하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은 아무 것도 없이 하나님 약속만 믿고 출발하였습니다. 그리고 광야 40년 기간도 먹이시고 앞서 인도하시고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은혜였다고 밖에는 다른 표현 방도가 없었습니다. 이때까지의 총정리는 모세가 다 하였습니다. 그의 결론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다 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 시대를 이끌어 온 여호수아 역시 결론은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믿음의 한길만을 걸어온 사람들의 결론은 다 똑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함께 해 오셨다" 그리고 "앞으로도 내 후손들과 함께 하실 것이다"그러므로 내가 내 후손에게 무슨 말로 당부하고 가면 될까? "지금까지 네가 소유하고 누리는 것 모두가 네가 네 힘으로 얻었다고 생각지 말라 그것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그것은 하나님이 너를 위해 싸워주신 결과라는 것을 꼭 기억해라" 그리고 여호수아는 미래의 하나님의 관해서 즉 자기가 떠나고 없는 때가 되어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어떻게 역사하실 것인가에 대해서 자신 있게 말해줍니다.
수 23:5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여러분 내가 시작한 일의 결과를 반드시 내가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지 마세요. 하나님은 역사의 큰 수레바퀴를 굴리고 계시고 그 전체를 다 보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짧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보배로운 믿음"을 전수하게 하셨습니다. 모세 역시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을 이끌고 출발했지만 가나안 땅을 멀리 바라보는 시점에서 떠나갔고 여호수아도 지금 가나안 정복의 과업을 완성하지 못한 채 또 떠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이 큰 그림을 이스라엘 민족을 통하여 '주신 언약을 성취'하며 결국은 온 세게 구속의 큰 그림이 완성될 것이라는 점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지도자는 여기서 다른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앞두고도 자기 한 목숨 죽음을 맞이하는 일보다 자기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할지를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의 눈에는 '과거의 하나님(이기게 하신)과 미래의 하나님(이기게 하실 하나님)'이 보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짧은 인생길이지만 우리 인생길도 이기게 하신 하나님 그리고 이기게 하실 하나님을 믿고 나갈 때 멋진 결론을 짓고 하나님 앞에 갈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여호수아가 자기는 경험할 수 없을 일이지만 자신 있게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나는 비록 우리 집안 신앙의 첫걸음을 내딛었지만, 나는 비록 우리 가문의 신앙의 대를 잇는 작은 한 시대를 감당했지만 하나님은 우리 가문을 통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실 것이다. 큰 믿음의 인물들이 나와서 조상들의 눈물의 기도를 힘입어 교회를 위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무엇보다 복음을 위하여 크게 쓰임 받게 되리라", "나는 낙양교회 역사의 한 부분을 장식하다 떠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이 교회를 통하여 위대한 복음전파 사역을 이루실 것이다. 앞으로 내 시대가 지난 후에라도 이 교회는 대부흥을 이루고 한국교회 복음 전파 역사에 부흥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신본주의 신앙과 신본주의 역사관을 가질 때 얼마나 멋진 말을 후손들에게 남기고 갈 수가 있겠습니까? 여호수아는 죽음을 앞두고도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실 주님 앞에서 자기 백성이 어떠한 자세로 살아야 하겠는지를 꼭 남기고 가고 싶었습니다.
여호수아의 부탁
1)말씀대로 사는 일에 크게 힘쓰라!
수 23:6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6절을 보시면“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그랬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먼저 한 말씀은 “너희는 크게 힘써서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그랬습니다. 모두다 마음에 드는 것은 지키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빼먹고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고 모두다, 전부 다를 지켜 행하라 그랬습니다. “너희는 크게 힘써”그냥 힘쓰는 것이 아니고 크게 힘쓰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힘쓰라”는 말은 어떻게 보면 꽉 붙들고 매달리는 그런 상태를 말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Niv성경에서는 very strong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Living bible에서는 very sure라고 번역을 하는 것도 볼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여호수아가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너희들이 다 지켜 행하라. 그것도 그냥 아무렇게나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고 크게 힘써서 지켜 행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말씀에 대한 바른 인식을 통해서 하나님 백성으로써의 삶을 바로 살아 갈 것을 권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되 담대한 결단력을 가지고 확실하게 그 율법을 지킬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어떤 부분은 지키고, 어떤 부분은 빼먹고, 어떤 부분은 소홀히 하고, 어떤 부분은 중하게 여기라는 것이 아니고 모두 다 중하게 여기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많은 현대 교인들 가운데서는 성경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여러 차례 읽고 외우기까지 하면서 내 마음에 안 드는 성경말씀은 슬그머니 그냥 빠뜨리는 그런 경우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을 한번 오늘 이 말씀 앞에 세우면서 “나는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하는가?”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기에서“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이 말씀을 모세 오경에 있는 것만을 말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줄 믿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 이 모세의 율법을 말했지만 오늘 우리들에게 이 말씀을 적용시킬 때는 하나님 말씀의 전부를 다 포함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줄로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이 율법에 대해서 뭐라고 증언하고 계시는지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오늘 많은 기독교인들은 율법과 복음에 대한 관계를 자꾸만 오해함으로 말미암아서 때로는 복음주의자라는 주장을 하면서 율법 자체를 아주 형편없는 것으로 함부로 속단하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복음을 위해서 율법에게 주어져 있는 그 역할을 바로 이해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피조물로써 새 생명으로써 살아가는데 우리가 지켜야 될 도리를 생각한다면 이 율법에 대해서 소위 말하는 구원파들 같이 함부로 대할 수가 없을 줄 생각이 듭니다.
로마서 10장 4절에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그랬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말미암아 불완전한 율법을 완전한 율법으로 만드신다. 사랑의 복으로 율법을 온전케 하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될 줄로 생각이 듭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참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고 하나님 말씀을 좇아서 살기를 원하는 이 원칙을 우리 자신들이 저버려서는 안될 줄 믿습니다.
우리 복음주의 교회들, 특별히 우리 장로교회 교인들은 우리 자신들의 신앙이 말씀에 기초하고 있고 말씀에 뿌리 박혀 있다는 사실을 하나의 긍지로 여길 수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칼빈이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주도할 때 말씀 중심의 신앙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이 말씀 안에 우리 자신들이 든든하게 서 나갈 수 있도록 항상 애써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말씀을 읽으면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말씀을 내 자신이 지키고 그 말씀에 의거해서 우리의 삶을 살겠다는 결단을 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2)이방 우상 섬기지 않도록 크게 힘쓰라!
수 23:7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 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7절에서는 “말라”라는 말이 4번이 나옵니다. ‘하라’는 논리와 ‘말라’는 논리가 있는데 지금 여기에서는 ‘말라’는 논리가 나옵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는 “섬겨서 그것에게 절하지 말라.” 이렇게 되어있는데 여기에서는 “섬기지 말라.”라는 다섯 가지 우리가 하지 말아야 될 것을 말하고 있음을 우리가 기억을 해야 합니다. 가지 말라, 부르지 말라, 맹세하지 말라, 섬기지 말라, 절하지 말라,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믿는 유일신 사상을 가지고 가나안에 들어갔지만 이스라엘이 들어간 가나안의 영적인 상황은 우상 숭배와 잡신들로 들끓는 그런 무아적인 종교 상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만을 섬기고 하나님 앞에만 순종하고 살아가는 길은 가지 말아야 했고, 부르지 말아야 했고, 맹세하지 말아야 했고, 섬기지 말아야 했고, 절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 긍정적인 화법을 써서 말하는 것이 참 필요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강한 부정적인 화법도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일반적으로 구약에서는 “하지 말라”는 논리라면 신약에서의 일반적인 논리는 “하라”는 논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에도 많은 곳곳에 “하라, 이렇게 행하라.”이런 논리들이 나옵니다. 오늘 여기에서는 다섯 마디로써 우리에게 말라는 명령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들과 가까이 하고, 그 신들의 이름을 부르고, 그것을 가리켜 맹세하고, 그것을 섬기고, 그것에 절하면 결국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징벌을 받고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이것은 바로 이스라엘의 영적인 오염을 나타내주는 그런 말이 되는 것입니다.
수 23:13 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뭐가 된다고 했습니까? 올무가 된다고 했습니다. 덫이 된다고 했습니다. 채찍이 된다고 했습니다. 눈에 가시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너희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땅 축복의 땅을 분배받았지만 이 땅에서 너희들이 멸절하게 된다.”는 무서운 말씀을 하고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될 줄 믿습니다.
3)하나님을 가까이(친근히)하기를 크게 힘쓰라!
수 23:8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11절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친근히 함으로 받는 축복이 무엇인지 우리는 깨달아야 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까이 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향수 가게에 근무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모르게 향수에 그 감미로운 향기가 몸에 베이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과 만나는 다른 사람이 그 사람에게서 아주 향긋한 향내를 느낍니다. 그러나 쓰레기나 오물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자기는 아무리 깨끗하게 씻고 샤워하고 야단해도 그 사람에게서 그 더러운 냄새가 풍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서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좋은 사람을 사귀는 사람은 영적인 아름다운 모습이 그 사람에게서 나타나게 됩니다. 영적으로 불평하고 원망하고 늘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과 사귀는 사람은 얼마가지 않아서 그 사람도 불평하고 원망하고 남을 탓하고 아주 고약한 신앙에 빠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앵무새 이야기를 잘 아실 겁니다. 욕쟁이 앵무새와 아주 착한 앵무새가 있었는데 욕쟁이 앵무새 장에다 착한 앵무새를 갖다 넣어주니까 그 착한 앵무새가 금방 그 욕쟁이 앵무새의 욕을 배우더라는 겁니다. ‘엄마가 뿔났다’라는 드라마에서도 앵무새가 주인이 하는 데로 따라 하지 않습니까?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바로 된 사람들과 사귀면 좋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사람들과 사귀면 좋지 못한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경건하고, 진실 되고, 성실하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고 살아갑니다. 세상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분 보시기 바랍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그것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살아가고 하나님을 친근히 하고 살아야 할 것을 여호수아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뭐라고 했습니까?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스스로 조심하여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것은 바로 전 인격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신명기 6장 5절에“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지정의를 포함하는 인간의 내적 정신적 본질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성품은 영혼으로도 번역이 되어있고 생명으로도 번역이 되어있습니다. 그 다음 힘을 다하여란 말은 육체적 정신적 활동력 및 모든 능력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적당하게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고 두마음을 품고 이것도 사랑하고 저것도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게 내 마음 전부를 쏟아 놓으라는 그런 말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랑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울질을 하면서 사랑을 합니다. 상대방이 주는 만큼 나도 주고 상대방이 나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항상 염두해두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나의 사랑은 나의 전부를 다하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나를 향한, 우리를 향한 사랑은 자기 존재 전부를 송두리째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거기에 대한 우리의 사랑에 반응은 내 자신을 전부 드려서 내 마음과 내 성품과 내 힘을 다하여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많이 읽고 또 성경말씀을 많이 듣지만 우리 한국 교인들은 이 설교 불감증에 걸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 교인들만큼 설교 많이 듣는 교인들은 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을 겁니다. 좀 잘 믿는다는 사람은 일주일에 설교를 얼마나 여러 번 듣습니까? 그런데 그 설교를 들은 그대로 삶속에 실천하는 모습은 아마 세계에서 제일 뒤에 갈 거라고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들었으면 그 말씀을 듣고 깨닫고 그리고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순종으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 여호수아 앞에 그러니까 여호수아 이전의 지도자였던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세 편의 마지막 고별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 지켰습니다. 또 지금 여호수아가 두 편의 마지막 고별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 지켰습니다. 그 이후에 이스라엘 역사는 350년간 암흑기가 계속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 삶에 왜 문제가 생깁니까? 왜 무엇이 꼬이고 무엇이 잘 안됩니까? 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있는지, 그로 말미암아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 자신들이 한번 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무엇이 막 잘 될 때 그때 내 자신이 나를 돌아보고 말씀 앞에 나를 세우고 말씀의 원리를 좇아서 하나님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이 청개구리만도 못한 그런 모습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를 드나드는 잘못을 범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면서 여러분 자신들에게 한번 질문을 던져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오늘 여호수아의 마지막 이 고별사가 오늘 이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살아계신 말씀으로 우리 자신들이 받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은 바로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친히 싸워주신 전사이십니다. 이제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고백이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말씀을 크게 힘써 지킵시다. 이방 우상을 멀리하는 데 크게 힘씁시다. 여호와를 친근히 하는데 크게 힘쓰시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
수 23:1-16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여호수아는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 각 지파의 기업의 분배를 마쳤습니다. 이제 그도 이 땅의 나그네 생을 마칠 때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그의 임종을 앞두고 마지막 권면을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표들을 모았습니다. 그의 나이 향년 110세가 되었습니다. 그가 이 세상 나그네 삶을 마감하기 전에 백성들에게 전하는 유언은 자신이 이 땅에서 체험한 하나님을 전하는 것으로 그의 유언의 도입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의 체험에서 얻은 것을 백성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는 광야 교회 40년의 산 증인입니다. 그는 일평생 하나님과 교제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를 감당함에 있어서 자기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그의 고별사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교차되는 권면입니다.
Ⅰ. 긍정적인 면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23장 6절에 『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여기 『 힘써 』라는 말은 꽉 붙들고 매달리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강조의 의미를 지닌 『 크게 』라는 부사가 붙은 것을 감안할 때 '힘써'라는 의미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일평생 동안 고락간에 이 말씀을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방자히 행하다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이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을 정탐하러 갔던 열 사람은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민수기 13장 30-33절에 『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굳게 믿었습니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에 제일 큰 적은 가나안 족속들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적은 바로 백성들이었습니다. 이 모든 갈등과 반목과 불신의 벽을 넘어 마침내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생애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친근히 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23장 8절에 『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 』고 했습니다. 여기 『 친근히 』(티드바쿠, )라는 말은 '바싹 밀착하다', '견고히 달라붙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창세기에서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창 2:24).
이 말의 의도는 백성들이 좌우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언약의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꽉 달라붙어 있는 것이 세속에 오염되지 않게 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신명기 10장 20절에 『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 』고 했습니다.
여기 『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 』는 말은 요단강가의 제단 사건을 배경하고 말하는 것입니다(수 22:10-30).
이 제단 사건은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 가에 볼만한 큰 단을 쌓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니 자신들의 자손에게 속한 편에 단을 쌓았습니다(수 22:10-11). 이 일로 그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이 일전을 불사하게 됩니다(수 22:12).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르앗 땅에 도착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호수아 22장 16절에 『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날 여호와를 좇는데서 떠나서 자기를 위하여 단을 쌓아 여호와를 거역하고자 하느냐 』라고 했습니다.
이때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만인의 두령에게 대답했습니다. 여호수아 22장 22-23절에 『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께 패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는 오늘날 우리를 구원치 마시옵소서 우리가 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좇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혹시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혹시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어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두 지파 반의 열심과 아홉 지파 반의 의분이 동시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뜨거운 신앙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배경으로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23장 11절에 『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여기 『 조심하여 』(샤마르, )라는 말은 '울타리를 치다', '지키다', '유의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울타리를 치고 그 밖으로 절대로 나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여기 『 사랑 』(아헤브, )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저주를 받지 않고 축복을 받으려고 하면 순종하고 그 말씀을 따르라는 말입니다.
신명기 7장 9-10절에 『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어떤 것을 더 좋아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을 온전히 이룬다고 했습니다.
신명기 6장 5절에 『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신명기 11장 13절에 『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참으로 어려운 시대입니다.
4) 하나님만 섬기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24장 14절에 『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숭배를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신앙적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당위성을 수많은 체험적 증거를 바탕으로 백성들에게 고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백성들을 향하여 조금도 거침없이 후회 없는 바른 선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선택을 외부로부터 강요당할 때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스스로 택할 것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백성들은 그들 스스로가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24:16).
여호수아 24장 18절에 『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 곧 이 땅에 거하던 아모리 사람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
여호수아 24장 21-24절에 『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정녕 여호와를 섬기겠나이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고 했습니다.
Ⅱ. 부정적인 면입니다.
1)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본문 23장 7절에 『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나라들 중에 가지 말라 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에게 절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① 가나안 족속 이방민족에게로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신앙전통과 신앙의 순결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자는 이방종교로 인한 죄를 범할 수가 없습니다. ② 이방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방신들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잡신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③ 신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맹세한다는 말은 이방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약속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방신 앞에서 맹세하게 되면 이방신의 존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이방 잡신의 권위까지 인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④ 그것을 섬겨서 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 섬긴다는 말은 단순한 봉사보다는 어떤 권위에 대하여 복종하고 모든 명령에 순종하여 따르는 일체의 행위를 말합니다. 이방신을 섬기는 데까지 왔을 때는 이방종교의 의식적 참여 정도가 아니라 이쯤 되면 하나님을 버린 상태입니다. 절한다는 것은 자신을 굽힌다는 의미로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닌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우상숭배 단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신들에로 간 자들이 시대 시대마다, 사건이 있을 때마다 수없이 많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율법으로부터 떠나가지 않도록 이방민족을 피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왜 이런 고별 설교를 했습니까? 가나안에 들어왔지만 아직도 미개척지가 있었습니다. 그 미개척지에는 여전히 우상숭배가 창궐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쉽게 이방에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습니다.
2) 세상과 타협하여 통혼(通婚)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본문 23장 12-13절에 『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너희 중에 빠져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하면 정녕히 알라…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 『 퇴보 』(退步)라는 말은 '돌이키다'는 말로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는 배교 행위를 말합니다. 자녀들을 이방족속들과 혼인시켜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신명기 7장 3절에 『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이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8장 22절에 『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명하되 너희는 다윗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왕이 너를 기뻐하시고 모든 신하도 너를 사랑하나니 그런즉 네가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가하니라 하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과의 통혼을 엄히 금한 것은 이스라엘의 순수한 혈통 보존이라는 목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과의 혼인금지의 진정한 의미는 필연적으로 야기(惹起)되는 이방문화와의 동화 때문입니다. 이방문화와의 동화는 곧 우상숭배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문화적 교류는 전부의 교류입니다.
신명기 7장 4절에 『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족속과 끝내 교류하고 혼인까지 하게 되면 결국 가나안 족속으로 말미암아 파멸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3장 33절에 『 그들이 네 땅에 머무르지 못할 것은 그들이 너로 내게 범죄케 할까 두려움이라 네가 그 신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고 했습니다.
민수기 33장 55-56절에 『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 나는 그들에게 행하기로 생각한 것을 너희에게 행하리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죽음은 나팔을 미리 불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간을 예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죽음은 우리에게 최소한 마지막 말을 남길 시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80세의 공자의 마지막 말은 "지는 꽃잎처럼 현자는 그렇게 가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석가(고타마 싯다르타)는 그의 임종시에 "태어나는 모든 사물은 덧없으며 결국 죽는 구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은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빌렸네. 그에게 그것을 제물로 바치게."라고 했습니다.
마호메트의 마지막 말은 "알라시여 나의 사투에 함께 하소서."라고 했습니다.
너무 일찍 죽은 세계의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의 마지막 말은 "가장 강한 자"라고 했습니다.
폭군 네로 황제의 마지막 말은 "한 예술가가 가고, 세계는 혼란스러워지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세계를 호령한 징기스칸의 마지막 말은 "죽음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잠을 잤구나."라고 했습니다.
죽음 직전에 회개한 헨리 8세의 마지막 말은 "우선 잠을 좀 자야겠소."라고 했습니다.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을 만든 엘리자베스 여왕의 마지막 말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아주 짧은 한 순간을 위한 것이었어."라고 했습니다.
망명과 패배로 점철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의 마지막 말은 "세단에 참전하셨나요?"라고 했습니다.
군주를 잘못 만난 세네카의 마지막 말은 "그래 네가 거기에 있었구나."라고 했습니다.
로마제국의 대명사 율리우스 가이사의 마지막 말은 "브루투스 너마저도"라고 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대 재상 카라 부스타파의 마지막 말은 "뱀을 내 목 주위에 가지런히 놓아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격동의 시대를 이끈 정치인 윈스턴 처칠의 마지막 말은 "모든 것이 지루하구나."라고 했습니다.
자유의 승리를 이끈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마지막 말은 "머리가 지독하게 아프구나."라고 했습니다.
파시즘의 창시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마지막 말은 "내 가슴을 쏴라."였습니다.
나에겐 꿈이 있다고 한 미국의 흑인 해방운동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마지막 말은 "주여 내 손을 잡아 주소서 를 연주하는 것을 잊지 마시오. 그리고 특히 아름답게 연주해야만 하오."라고 했습니다.
현대를 만든 발명왕 토마스 알바 에디슨의 마지막 말은 "저곳은 참으로 멋진 것 같소."라고 했습니다.
신이 선택한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마지막 말은 "이 세상에서 내 할 일은 다 한 것 같구나."라고 했습니다.
국민 문학의 아버지 레프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농부들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나요?"라고 했습니다.
신은 죽었다고 한 프리드리히 니체의 마지막 말은 "엘리자베스"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칠언 중 마지막 말은 "다 이루었다."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요 13:1).
엘리사가 죽을병에 들었습니다(왕하 13:14). 엘리사는 자기 나라와 자기 백성을 끝까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요아스 왕에게 화살을 취하여 땅을 치라고 했을 때 세 번치고 그쳤습니다(왕하 13:18). 엘리사가 요아스에게 오 육번 치지 않고 세 번만 쳤다고 노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람을 완전히 진멸하도록 했는데도 그가 우유부단하여 끝까지 아람을 치지 않은 것을 예견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에게 땅을 친 횟수만큼의 승리만 허용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백성들로부터 여호와만 섬기겠다는 고백을 받고 돌을 세워 증거를 삼았습니다.
여호수아 24장 27절에 『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보라 이 돌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하신 모든 말씀을 이 돌이 들었음이라 그런즉 너희로 너희 하나님을 배반치 않게 하도록 이 돌이 증거가 되리라 하고 』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돌로 만든 기념비가 말을 듣는 귀를 가진 것처럼 의인화시켰습니다. 돌까지도 이 말씀을 들었는데 하물며 사람들이 말씀을 듣지 못했다고 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누가복음 19장 40절에 『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 앞에서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간 주의 종들처럼 평소에 하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평소에 하는 말을 죽음 앞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처럼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늙었어도
수 23:1, 2
여호수아 “주님은 구원이시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 ‘호세아’ ‘예수’ ‘예슈아’ ‘호산나’ ‘조슈아’.....
수13:1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많이 남아 있도다”
수23:2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래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나는 나이가 많아 늙었도다”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서 늙었다”
여러분은 여호수아 하면 어떤 것이 떠오르나요? 모세의 후계자, 12정탐꾼, 가나안 정복.....
여호수아는 용감하고, 젊고, 강하고 담대한 용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런 여호수아도, 세월이 지나니까 늙습니다. 나이가 많아지고 늙어집니다.
가는 세월은 막을 길이 없습니다. 모두가 세월이 가면.... 늙습니다. 외모가 늙습니다.
옛날.... 연예인들 보세요.... 잘생긴 남자들... 여자들.....
그래서 어떤 연예인은, 일부러 TV에 안나온답니다. 나의 젊을 때를 기억하고 있는 팬들에게 실망을 드릴까봐 차라리 TV에 안나온다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생로병사의 길이 있고요 피할 장사가 없습니다. 늙는 것을 누가 막아요.
그런데도 사람의 심리는 어떻게 하면 늙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할아버지가가 다 되어가는, 중년이 훨씬 지나신 분이, 밖에 나갔다 와서는 화가 많이 났더랍니다. 부인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그러더랍니다.
전철을 탔는데 어떤 젊은 사람이,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하는 소리에 기분이 나빠서....
어떤 교회 권사님은, 며느리와 딸들에게 그랬다네요 ‘손자 손녀를 금방 낳지 말고 좀 천천히 낳으라’고 한데요.... 왜? 애들이 아이를 낳으면, 내가 할머니가 되니까 좀 늦게 할머니 되려고 그런다네요...
내가 늙어감을 인정을 못하는 것입니다. 인정을 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 많은 분들은, 성형수술을 한다고 하잖아요.... 주름살을 펴느라고...
여러분 그러나 성경에서 지혜가 뭐지요?
시90편 9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아이들이 “나 몇 살”이거 아는 것이 지혜인 것 처럼요, 어른들도 자기 나이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나잇값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요, 나도 늙고 나도 이 세상을 떠나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오고 오라고 하시면 가야 합니다.
약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성경에서 어리석은 부자가 누구였죠?
눅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여기서 나오는 말이 “내가”입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내 영혼, 내 곳간, 내 곡식, 물건”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언제 나를 부르실 지를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인생의 날이 ‘짧은 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내 인생에도 나이가 들고 늙고 기력이 쇠하고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성경은 ‘늙은 것이 추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잠언 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잠언 20:29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라”
대상29:28절 “그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를 누리다가 죽으매” 다윗 이야기입니다.
김형석 교수 100세, 나이를 다시 돌릴 수 있다면, 몇 세로? 6대 중반으로...
오늘 여호수아는 늙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1. 여호수아는 나이는 들어가고, 몸은 늙어가지만 ‘영적인 권위’는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나이 많아 늙어서 나라의 중요한 사람들을 다 오라고 했는데 그들이 다 왔어요
2절 “온 이스라엘의 장로들, 수령들, 재판장들, 관리들”이 다 왔습니다.
늙은 여호수아가 오라고 했는데, 다 왔습니다. 영적인 권위이잖아요
오늘 모인 사람들 보세요 다 한 자리씩 하는 사람들입니다.
장로들, 수령들, 재판장들, 관리들... 다른성경)지도자들, 우두머리들, 법관들, 공무원들....
이들은 이제 여호수아의 가르침을 이제 받지 않아도 될 만한 지도자들일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제 다 안다’고 하지 않고 다 모입니다.
여호수아는, 늙었어도 ‘영적인 권위’가 있었습니다.
이삭도 그랬습니다. 이삭은 눈이 어두워서 에서인지 야곱인지도 모를 때 이 두 아들은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받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염소털을 붙여서라도 축복기도를 받았잖아요?
야곱도 137년을 살았습니다. 한 때는 아버지도 속이고, 형도 속이는 사람이었지만 야곱은 축복의 통로로 바뀝니다. 그리고 양식이 없어서 요셉이 있는 애급으로 내려가서, 애급의 왕 바로 왕을 축복하잖아요.
그리고 죽기 전에는, 침상에 의지해서, 지팡이를 의지해서, 12아들을 축복하잖아요
모세도 죽기 전에 12지파를 축복하잖아요... 우리는 늙더라도 영적인 권위는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 열심히 하세요 힘들어도 기도하는 자리에 열심히... 말씀을 읽고 잘 들으세요...
두 번째도 중요한 것 인데요...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씀이 뭔지 아세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입니다.. 몇 번나오는지 모르시지요? 13번이나 나옵니다.
1절에도...“여호와께서...” ‘내가 잘했다’가 아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짧은 성경 안에, 13번이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나 여호수아’가 아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가나안을 정복했다가 아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일을 하시지만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모든 영광 하나님께”
시127편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있음이 헛되도다”
여러분 집이 잘 세워졌어요? “여호와께서.” 여러분 건강 물질 명예 잘 지키며 사셨어요? “여호와께서”
시124:1-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하나님은... 내 편이시라 ........... 하나님은... 너를 지키시는 자 ........... 하나님은.... 너를 만드신 분
“내가 이루었다가” 아니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루셨다” “싸워주셨다” “인도 해주셨다”
이것을 우리는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영광 받으십니다.
세 번째로 여호수아는 늙었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14절....
벧전1: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싹이 납니다. 꽃 열매...
사55:10-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합2:3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어떻게 형통할까요?
사55:12절-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습니다. 운동력이 있습니다. 씨앗에 생명이 있기에 싹이 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마음에 믿고 받아드리면 싹이 납니다” “꽃이 핍니다” “열매를 맺습니다”
23:14 하나님 말씀은 하나도 틀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선한 말씀 주시고, 선한 약속을 주시고, 선한역사를 이루십니다.
결론입니다.
여호수아는 늙어서 보니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인 권위가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