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심장이 뛰는지 확인해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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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 어떻게 볼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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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2 / 이상용(영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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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톤>은 여러 색깔의 감정을 빚어낸다. 기쁨과 슬픔, 분노와 두려움 등을 통해 인간 심리에 대한 오해와 이해를 보여 주는 이 영화는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고 다양한 감정의 무늬들을 담아낸다.
어린 초원이가 의자에 앉아 있다. 맞은편에서 흰 가운을 입은 여자의 질문이 시작된다. 그녀는 질문이 끝날 때마다 초원에게 네 장의 카드를 보여 주며 답을 유도한다. “그러면 초원이는 기쁠까, 슬플까, 화가 날까, 겁이 날까.” 네 장의 카드에는 각각의 감정을 표현하는 얼굴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클로즈업 화면으로 등장하는 카드 위에 새겨진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웃고 있어도, 울고 있어도 딱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람의 자연스러운 표정이 아닌 탓일 것이다. 이 표정들은 자폐아 진단을 받고 있는 초원이의 마른 표정을 닮아 있는지도 모른다. 초원이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표정은 기쁨과 슬픔, 분노와 두려움을 망각한 무표정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영화 초반에 새겨진 이러한 판단은 두 시간 동안 영화를 지켜보면서 오만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엄마 경숙의 말처럼 초원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느끼고 있다. 단지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말아톤>은 초원의 무표정에 담긴 다양한 감정의 빛깔을 서서히 드러낸다. 초원이의 표정은 망각된 것이 아니라 기쁨과 슬픔, 분노와 두려움을 모두 담고 있는, 빛의 삼원색을 모두 혼합한 것 같은 순백의 표정이다. 그것은 관객들에게 다양한 감정의 물꼬를 열어 놓는다. 문득 궁금하다. 영화를 본 후 관객들에게 네 장의 카드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어떤 표정을 선택할까. 기쁠까? 슬플까? 화가 날까? 겁이 날까?
기쁠까?
<말아톤>이 제공하는 기쁨은 인간 승리의 신화를 따라간다. 스무 살의 자폐아 청년 초원(조승우)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기까지 겪는 과정을 그려가면서 ‘기쁨’의 표현은 드라마를 엮는 줄기가 된다. 마라톤 경주 도중에 어린 초원이가 겪었던 절망감이 희열로 바뀌는 장면들이 있다. 다소 도식적이기는 하지만 지쳐 쓰려진 초원에게 한 여인이 초코파이를 내미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과거의 한 장면과 오버랩된다. 초원의 엄마 경숙(김미숙)은 초원의 다리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산행을 하곤 했다. 지쳐 있는 초원에게 초코파이를 흔들면 초원은 초코파이를 잡으려고 산 정상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마라톤의 끝 무렵에 초원이가 역주를 하는 장면 역시 과거의 치유에 가깝다. 경기 도중 비가 내릴 때 전력을 다해 뛰라는 코치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초원은 빗줄기가 내리는 순간 온 힘을 다해 질주한다. 그런데 사실 초원의 몸을 적시는 것은 빗줄기가 아니다. 지친 선수들을 위해 도우미들이 물줄기를 뿜어댄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초원에게는 하늘에서 내리는 단비처럼 느껴진다. 이 장면 역시 어린 시절의 한순간으로 오버랩된다. 초원이가 자폐아 판정을 받은 후 엄마 경숙은 무엇에 화가 났는지 어린 초원을 집 밖으로 끌어 낸 후 빗줄기를 손에 튕기며 “비가 주룩주록 옵니다”라는 말을 해보라며 다그쳤다. 알 수 없는 감정의 물줄기는 영화 속에서 자연을 느끼는 초원을 통해 종종 반복되는 장면이다. 이제 역주를 시작한 초원이 스스로 말을 되뇌인다. “비가 주룩주룩 옵니다.” 마라톤 경기가 초원의 장애를 치유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42.195km의 행진은 자연스럽게 초원의 상처를 치유하고, 엄마 경숙의 무너진 가슴을 보듬어 주고, 새로운 삶을 향한 잠재성을 흔들어 깨운다. 그것은 휴먼 드라마가 보여 주는 작은 승리의 기쁨이다.
이왕 기쁨에 관한 언급을 했으니 <말아톤>에서 은근히 웃음 짓게 되는 장면들이 많다는 것을 부가해 두고 싶다. 그것은 초원의 캐릭터인 자폐증과 깊은 관련을 맺는다. 유명 마라토너 정욱(이기영)은 음주 운전으로 사회 봉사 명령을 받고 초원의 특수 학교로 오게 된다. 이곳에서 초원의 엄마 경숙을 만나 억지 춘향으로 초원의 마라톤 코치를 담당하게 된다. 말과 관습이 다른 두 사람은 점차 서먹함을 벗고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벽이 있다. 정욱은 싸온 음식을 나눠 먹지 않는 초원의 행동에 대해 섭섭해한다. 한번은 운동장을 도는 초원 몰래, 정욱은 자두를 훔쳐 먹는다. 다음날 초원은 가방을 옆구리에 낀 채 운동장을 달린다.
초원을 담당했던 여선생님은 정욱에게 자폐아들의 행동에 대한 조언을 해준다. 편집증의 성향을 보이는 자폐아들은 특정한 물건이나 자리에 집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특성일 따름이다. <말아톤>은 풍부하진 않지만 꼼꼼하게 이러한 모습들을 담아내면서 은근한 유머를 자아낸다. 그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향해 던지는 미소의 조언이기도 하다. 종종 거리에서 초원이처럼 멀쩡해 보이는 아이(혹은 성인)가 다가올 때 그것은 공격적인 행동이 아닐 수 있다. 지하철에서 오해를 사게 돼 실컷 두들겨 맞는 초원이 엄마를 대신해 “우리 아이에게는 장애가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오히려 그것은 증상일 뿐이다. <말아톤>의 작은 웃음은 한국 사회의 편협한 윤리 의식과 타인에 대한 배려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슬플까?
<말아톤>의 슬픔은 초원이의 엄마 경숙으로 대변된다. 10km 마라톤 경기에서 3등을 한 후 인터뷰를 위해 찾아온 기자는 현재의 소원이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질문한다. 태평스럽게 대답했던 경숙은 수영장에서의 작은 소동이 지나간 후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것은 “자신의 아들이 자신보다 하루 먼저 죽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스무 살에 초원을 낳아 스무 살의 초원을 지켜보는 경숙의 눈물 속에는 반평생의 회한이 스며 있다. 자폐를 겪는 아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감당해야 했고, 다른 가족들을 돌보지 못하는 죄책감을 낳기도 했다. 초원의 동생 중원(백성현)은 형을 위해 사는 엄마가 못마땅하다. 남편 역시 이혼을 생각할 정도다.
<말아톤>의 웃음이 사회 속에서 타인들과의 관계를 통한 윤리를 생각하게 한다면, <말아톤>의 눈물은 초원의 가족이라는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사례에 다가간다. 자폐라는 장애가 타인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부족한 탓에 오해와 웃음을 사지만, 한 가족에게는 뜻하지 않는 고통이고 그것을 책임져야 하는 부모에게는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을 안겨주기도 한다. 20년을 보낸 경숙은 이러한 고통으로 끝내 절망한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에 집착하던 경숙은 마라톤 코치 정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경기에 참석했다가 실패를 경험한다. 이것은 무엇보다 경숙의 절망이 된다. 주변의 질타를 완고하게 물리치던 경숙은 이 일로 인해 지난 20년간의 삶이 초원이 원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망과 아집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의심에 빠져든다. 그것은 팽팽하게 유지돼 오던 경숙과 세상의 대결을 무너뜨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초원의 마라톤 서브스리(세 시간 내에 완주하는 것)에 집착하던 기대가 무너지자 한없이 쓰려져 내리는 여인의 모습?한 어머니의 절망을 넘어서 상실감에 휩싸인 인간의 단면을 보여 주는 순간이기도 하다.
화가 날까?
이 영화의 분노는 초원을 제외한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서 표출된다. 경숙은 초원을 찾으러 파출소에 들렀다가 자신의 아들을 병신 취급하는 여자와 한판 드잡이를 한다. 영화는 사회적 편견에 대항하며 분노의 감정을 터뜨린다. 그러한 경숙 역시 분노를 일으키는 대상이 되긴 마찬가지다. 마라톤 코치 정욱은 고집스럽게 마라톤을 시키고자 하는 경숙의 일방적인 태도에 대해 분노를 터뜨린다. “뛰는 게 좋다고요? 한번 뛰어 보시고 그런 말씀 하시죠.” 엄마의 일방적인 태도와 집착에 대해 경고를 보내며 자연스럽게 균형 감각을 발휘하고 있다. 엄마 경숙은 일방적인 찬사를 받는 헌신적인 어머니가 아니다. 남편과 중원에게는 너무나 무심할 수 있는 이기적인 어머니기도 하다. 하나의 인물이 지닌 다양한 관점들을 영화 속에서 충돌시키면서 영화는 인물들이 펼치는 감정적 분노들의 관계를 그려보인다.
확실히 <말아톤>은 꽤 영리한 영화다.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삼는 대다수 영화는 스스로 빠질 수밖에 없는 함정이 있다. 단지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주인공을 미화시키거나 손 쉬운 동정에 빠뜨릴 소지가 크다. 42.195km를 완주하기 위해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듯 슬픈 감정의 상당 부분을 옆에서 지켜보는 경숙에게 분산시키며 드라마의 완급을 적절히 조절한다. 덕분에 <말아톤>이 좀 더 거센 감동을 제공하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최소한의 절제미를 갖춘 휴먼 드라가가 됐다. 그것은 분명 약자를 영화 소재로 다루는 것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담겨 있는 태도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우려할 만한 ‘분노’를 사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나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고 있어, 좀 더 과감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겁이 날까?
조심스러움은 <말아톤>의 미덕이 돼주기도 하지만 최근 한국영화의 신인 감독들이 보여 주는 하나의 경향이기도 하다. 단편영화로 주목받은 후 장편 극영화를 내놓은 신인 감독들은 상업적인 즐거움과 작가적인 야망 사이에서 애매한 영화들을 선보인다. 권종관 감독의 <S 다이어리>는 단편에서 기대했던 빼어난 연출력이 90년대 대학생들의 다이어리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보인다.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 역시 1997년에 선보인 <기념촬영>으로 당시 삼성이 주관하던 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가 장편으로 선택한 <말아톤>은 단편에서 증명해 보였던 안정된 연출력을 반복한다. 하지만 새로운 영화로서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지는 않는다. 초코파이, 빗방울, 카드의 그림, 어린이대공원의 추억과 같은 여러 요소들을 되풀이하면서 아주 안전하게 초반과 후반을 잇는 영화적 장치들을 반복한다. 때로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드라마의 고리들을 엮다 보니 자연스러움을 강조해야 할 <말아톤>이라는 휴먼 드라마가 작위적으로 틀어진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좀 더 많은 자연스러움을 위해 자연스럽게 제거해야 했던 영화적 장치들을 <말아톤>은 다소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는 편이다. 특히 일종의 작은 반전이라 할 수 있는 초원이와 함께 어린이대공원에 놀러갔다가 아이를 잃어버렸던 일을 되뇌이는 장면은 고통의 단면을 보여 주는 기능을 하긴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 줄 수 있는 한계를 되풀이하는 장면으로 읽히기도 한다. 근래에 선보이는 신인 감독들의 아쉬운 작품 목록을 되새기면서 새삼스럽게 묻는 질문은 괜찮은 소재와 형식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영화가 새로운 에너지를 보여 주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무엇이 이들을 겁나게 만드는 것일까.
<말아톤>에서 애매한 지점은 판타지와 현실 사이에서 찾아야 할 접점들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역주를 하는 초원의 모습은 파출소로, 지하철로, 아프리카의 초원으로 이어진다. 초원은 평소 동경해 마지않는 얼룩말과 함께 달린다. 이러한 공간들의 중첩은 초원이 겪어야 하는 현실적 공간들과 동경의 공간들을 아우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이 역시 반복적 기능에 그치고 만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판타지가 오버랩되지 않더라도, 드라마 속에서 현실과 욕망 사이의 갈등을 녹여냈더라면 굳이 이 장면을 반복 삽입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 장면은 감독 스스로가 꿈꾸고자 했던 자의식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하는 한계의 토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에필로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아톤>이 보여 주는 감동에 끝까지 따라가게 된 것은 이 영화가 취하는 미덕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초원에게 42.195km는 마라톤이 아니라 ‘말아톤’이다. 어딘지 낯설면서도 발음에 따라 적은 낯익은 ‘말아톤’이라는 단어는 은근한 웃음을 짓게 하는 초원을 닮은 단어이자 초원의 질주를 의미하는 '고유명'이 된다.
<말아톤>은 초원이라는 한 인간을 증명하는 ‘고유명’을 향해 가는 영화다. <말아톤>은 주변 사람들의 차별의 시선을 넘어, 초원이 어엿한 인간이 됐음을 보여 주는 영화다. 실제로 이 영화는 모델이 된 배형진 군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허구의 차원에서 한 인간의 성장을 담아내고 있다. 왜냐하면 초원의 인간 승리는 인간 차원을 벗어난 초영웅적인 것이 아니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인간이라는 권리의 회복과 보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제 당신에게는 카드의 그림을 선택하는 순간이 남았다. 영화를 본 후 당신은 기쁠까, 슬플까, 화가 날까, 겁이 날까. 물론 그건 질문을 받은 지금이 아니라 영화를 본 후 선택해야 할 문제겠지만 이 영화에 대해 너무 많은 선입견을 갖지 않기 바란다. 두 시간 동안 영화 속에서 초원이 보여 준 표정은 섣불리 어느 한 가지 답을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모든 것을 담은 스무 살 인생의 표정 자체라고 부르는 게 알맞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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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보고왔는데 약간 신파적인 느낌이 나더군요.. 조금 더 잘만들수 있었는데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