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해 달라” 李대표에 접근… “볼펜이라며 흉기 꺼내 공격”
[이재명 대표 피습]
이재명 대표 피습 상황
용의자(동그라미)가 공격 직전 이 대표에게 접근한 모습. 바른소리TV 캡처
“대표님, 사인 하나만 해주세요.”
2일 오전 부산 강서구 가덕도 신공항 인근 대항전망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신공항 건설 계획에 대해 설명을 듣고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던 중 ‘내가 이재명’ 이라고 적힌 파란색 종이 왕관 모양의 머리띠를 한 김모 씨(67)가 이 대표를 향해 소리쳤다.
김 씨는 기자와 당직자 등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있던 이 대표를 향해 인파를 헤치고 다가가기 시작했다. 반경 1m 앞까지 이 대표가 걸어오자 김 씨는 오른손에 칼을 들고 순식간에 이 대표를 덮쳤다. 불과 3분 내에 벌어진 일이었다.
● “‘볼펜’이라고 말한 뒤 기습해”
그래픽=김충민 기자
이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4분경부터 약 20분간 신공항 관련 브리핑에 참석했다. 부산 지역 민주당 의원들과 신공항 관련 의견을 전달할 지역 주민들, 민주당 지지자, 취재기자 등이 현장에 있었다. 브리핑이 끝난 뒤 오전 10시 24분경 이 대표는 기자들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한 질의응답을 하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지지자들이 “대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인파가 몰리자 당직자들이 “위험하니 비켜 달라”며 주변을 정리하기도 했다.
김 씨는 취재진 틈에 섞여 함께 걸어가다 이 대표를 촬영하던 카메라 기자 사이로 비집고 나와 이 대표의 정면 방향에 섰다. 왼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면 김 씨는 “볼펜”이라고 말하며 오른손으로 상의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들었다고 한다. 김 씨는 18cm 길이의 칼을 쥔 채 이 대표를 향해 달려들어 이 대표의 왼쪽 목 부분을 찔렀다.
경찰과 당직자들이 곧바로 김 씨를 제압하고 체포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피습 사건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들이 김 씨를 붙잡아 이 대표와 멀리 떨어진 곳으로 끌어냈고 김 씨를 바닥으로 쓰러뜨렸다. 이어 김 씨의 흉기를 빼앗은 뒤 수갑을 채웠다. 체포 상황을 지켜봤던 한 목격자는 “김 씨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채 저항하지 않았다”며 “눈빛이나 표정도 평범한 편이라 그다지 특별한 인상이 없었다”고 전했다.
● 아수라장 된 피습 현장
그래픽=김충민 기자
이 대표는 불의의 습격을 당한 직후 손으로 목을 붙잡으며 뒤로 쓰러졌다. 곳곳에선 “119를 불러 달라” “의사나 간호사 출신 누구 없느냐”는 긴박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천준호 대표 비서실장과 주변에 있던 지지자들이 손수건 등으로 이 대표의 목을 지혈하며 응급처치를 했다. 이 대표는 눈을 감은 채 일어서지 못했다.
당시 상황을 목격했던 변성완 민주당 국회의원 예비후보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구급차가 바로 도착하지 못해 보좌진과 주변에 있던 이 대표 지지자들이 쓰러져 있는 이 대표 주위를 둘러싸고 응급처치를 하며 우산으로 촬영을 막았다”며 “경찰도 외부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으며 응급처치를 도왔다”고 전했다.
피습 당시 현장을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있던 진정화 씨는 이날 통화에서 “(김 씨가) 사인해 달라고 소리치며 접근했다”며 “왕관 모양 머리띠를 하고 있길래 유별난 지지자라고만 생각했다. 경찰도 아마 지지자라고 생각하고 안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 씨는 “김 씨가 ‘총선 승리 200석’이라고 적힌 손팻말도 들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김 씨는 이 대표가 대항전망대에 도착하기로 예정돼 있던 오전 10시보다 최소 40분 일찍 현장에 와서 이 대표를 기다렸다고 한다. 김 씨를 현장에서 목격했다는 김상환 가덕도 신공항 대항지구 피해보상대책위원장은 통화에서 “신공항 관련 주민들이 30분가량 일찍 도착했는데 김 씨도 먼저 와 있었다”며 “다른 일행 없이 혼자 있었고 이 대표의 이름을 연호하길래 지지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지방 일정 이틀째에 피습
이 대표는 1일에 이어 이틀째 부산·경남 일정을 소화하던 중 피습됐다. 경찰 41명이 현장에 배치됐지만 관련 규정상 정당 대표가 평상시에는 경찰의 밀착 경호 대상이 아니었다.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는 새해를 맞아 1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뒤 2일에는 경남 양산 평산마을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를 예방할 예정이었다. 문 전 대통령 예방 일정에 앞서 부산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를 현장 방문했다가 공격을 당한 것이다.
이 대표는 피습 직전 현장에서 “가덕 신공항은 동남권 산업 경제의 새로운 출발, 지금 안 그래도 무너져가는 동남권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핵심 장치라고 생각한다”며 “부산 엑스포 실패 때문에 많은 상실감을 가지고 계시는데 그것이 혹여라도 가덕 신공항을 지연시키는 이유가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민주당의 한 부산 지역구 의원은 “최근 부산 지역 분위기가 상승세를 타고 있어서 거기에 힘을 실어주려고 문 전 대통령 내외 예방에 앞서 시간을 내어 방문한 것인데 사고를 당했다”며 “지지자들이 주로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정말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이채완 기자, 최원영 기자, 강성휘 기자
첫 지혈자 “이재명, 출혈부위 강하게 눌러달라고 부탁해”
[이재명 대표 피습]
13분뒤 소방대원 올때까지 지혈
“119 전화로 응급처치법 안내받아
피의자, 1시간전부터 범행 현장에”
피습 직후 2일 오전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인근에 있는 대항전망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흉기로 습격을 당한 직후 쓰러지자 주변에 있던 관계자가 붕대로 이 대표의 목을 지혈하고 있다. 이 대표는 김모 씨(67)가 휘두른 18cm 길이의 칼에 왼쪽 목 아래 부위를 찔려 1.5cm가량의 열상을 입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부산일보 제공
“조금 더 세게, 조금 더 세게….”
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흉기로 피습 당한 직후 현장에서 이 대표를 지혈하고 있었던 오재일 씨(60)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가 서너 차례 이렇게 말했다”고 설명했다. 오 씨는 이 대표의 지지자들로 이뤄진 모임인 잼잼자원봉사단 부산 단장을 맡고 있다.
오 씨에 따르면 이 대표는 이날 김모 씨(67)가 휘두른 흉기에 왼쪽 목 아래 부위를 찔린 직후 오 씨에게 출혈 부위를 강하게 눌러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오 씨는 이 대표가 피습당한 부산 강서구 가덕도 신공항 부지 인근 대항전망대 현장에서 오전 10시 27분경 피습 사건이 발생한 직후부터 13분 뒤 구급장비가 있는 경형 소방차가 도착할 때까지 현장에서 응급처치를 맡았다.
오 씨는 이 대표가 피습당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직후 이 대표가 쓰러진 곳으로 달려가 왼손으로 이 대표의 머리를 받친 뒤 오른손으로 출혈 부위를 지혈했다고 한다. 오 씨는 “주변에 있던 지지자들이 손수건이나 면티셔츠를 건네줬다”며 “이 대표는 지혈 내내 다른 표현은 하지 않았고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고 전했다.
오 씨와 함께 현장에서 이 대표를 지혈했다는 류삼영 전 총경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함께 손으로 상처 부위를 누르면서 ‘괜찮으시냐. 더 세게 눌러도 되겠느냐’고 했더니 이 대표가 ‘괜찮다’고 했다”며 “현장이 워낙 어수선해 일부 인파가 이 대표의 발을 밟고 있어 뒤로 물러서게 한 뒤 우산으로 지혈 현장을 가렸다”고 말했다.
오 씨는 “119로부터 전화로 응급처치법을 안내 받아 이 대표의 의식이 또렷한지 계속 살피며 지혈했다”며 “당시 상황이 급박했던 만큼 이 대표가 별다른 말을 남기진 않고 구급차로 옮겨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오 씨는 지난해 1월 봉사단에 가입해 4월부터 부산 지역 단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가 피습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 약 41명의 경찰관이 돌발 상황 대처를 위해 현장에 배치됐지만, 김 씨는 범행 1시간 전부터 현장에서 대기하며 이 대표를 기다렸다고 한다.
오 씨는 “오전 9시 20분경 내가 현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김 씨가 벤치에 앉아 있길래 민주당 당원인가 생각했다”며 “나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는데 미소를 띠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김 씨를 1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도 봤다는 봉사단 단원들이 있었다”며 “봉하마을에서도 인파 앞쪽으로 무리해서 나오려다 제지당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부산=김화영 기자, 부산=강성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