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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로마서 13장 8~10절에 “서로 사랑하기를 아니면 빚지지 않도록 하라 다른 자를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이룸이니. ‘너희는 간음할 것이 아니라 살해할 것이 아니라 훔칠 것이 아니라 탐낼 것이 아니라’와 다른 계명이, ‘너의 이웃을 너 자신 같이 사랑할 것이라’라는 이 말씀으로 요약됨이라. 사랑은 그 이웃에게 나쁜 것(ill)을 일하지(work) 아니하노라, 그러므로 그 사랑은 율법의 이루는 것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빚지지 아니하여야 하며 오직 서로 사랑하기만 빚져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기를 아니면, 아무에게 아무것도 빚지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빚진다고 해도 우리는 빚지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기를 빚집니다. 파울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아니면 빚지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롬 13:8). 우리가 서로들을 사랑하기는 우리가 평생을 갚아도 갚지 못할 빚입니다. 하나님께 무한한 사랑의 빚을 졌기에 이것을 갚으면서 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으로 빚을 갚아 나가야만 합니다.
오늘날 “사랑”이라는 말을 ‘욕망’으로 낮추어 버리고 있습니다.1)
여기에서 “이루다(fulfill)”라고 번역한 헬라어(플레이로오)는 비유적으로 “완성하다”, “이행하다”, “성취하다”(fulfill)를 의미합니다. “이루다”라는 한글 번역도 매우 좋은 번역입니다.
성령(Spirit)을 따라 걷는 우리 안에 율법의 요구가 성취되며(롬 8:4), 사랑하는 자가 율법을 이루는 것은 “사랑”은 성령의 열매기 때문입니다.
계명은 ‘이웃을 자신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씀에 요약됩니다(롬 13:9). 출애굽기 20장 13절에 “너는 살해하지 말 것이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4절에 “너는 간음하지 말 것이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5절에 “너는 도둑질하지 말 것이라.”라고 명하셨습니다.
성령을 따라 다른 자를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이루었습니다(롬 13:8). 그의 이웃을 그 자신처럼 사랑하는 자는 간음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웃을 그 자신처럼 사랑하는 자는 살해하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웃을 그 자신처럼 사랑하는 자는 훔치지도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웃을 그 자신처럼 사랑하는 자는 탐내지도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1. 그 사랑은 그 이웃에게 나쁜 것을 일하지 아니합니다.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랑은 그 이웃에게 나쁜 것을 일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그 사랑은 율법의 이루는 것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사랑은 그 이웃에게 나쁜 것을 일하지(work) 아니하니 그러므로 그 사랑은 율법을 이루는 것입니다(롬 13:10).
덴마크가 미국에 그린란드를 팔든 안 팔든 상관없습니다. 어떤 방식을 써서라도 미국은 그린란드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정작 그린란드 원주민인 이누이트는 덴마크를 위해 싸우려 하지 않고, 미국이 그린란드를 산다면 차라리 그게 좋겠다고 그들은 생각합니다.2)
1721년 한스 에게데라는 한 남자가 그린란드에 간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가 바이킹의 후예를 찾아서 간 그곳에는 원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3)
덴마크는 원주민들을 덴마크 왕국의 확장을 위한 도구로 봤습니다. 덴마크는 원주민들의 정신을 지배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을 뺏은 후, 원주민들의 자존감을 짓밟고 반항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차지하였던 방법은 국제법을 악용한 사기였으며 한반도의 10배가 넘는 그린란드가 덴마크의 주머니로 들어갔습니다.4)
그린란드 원주민들의 인구가 너무 빠르게 늘고 있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면 덴마크 본국에서 써야 할 돈이 많아집니다. 덴마크 정부는 저들의 대를 끊어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덴마크의 의사들이 그린란드의 가임기 여성들을 줄 세웠습니다. 의사들은 소녀들의 자궁에 루프라는 금속 피임장치를 넣었습니다. 의사들은 초경도 하지 않은 12살 된 어린 소녀들에게 그러하였습니다. 한 민족의 인구를 줄이려는 계획적 대량 학살(genocide)이었습니다.5)
트럼프는 그린란드 원주민에게 1억 4천만 원을 줄 것이라고 하였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그린란드를 먹기 전 미국이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트럼프는 희토류가 묻힌 광산을 같이 캐자고 제안한다는 것입니다.6)
이것은 덴마크가 그린란드 원주민에게 나쁜 짓을 행한 업보입니다. 그린란드의 원주민들에게 나쁜 짓을 한 덴마크의 자리는 없습니다.7)
미국의 그린란드 장악 시 한국 항만의 경제성은 어떠할 것인가요?8)
한국에서 유럽까지 가는 뱃길이 20,000km인데 15,000km면 갑니다. 운행 일수로 열흘 정도 단축됩니다.9)
우리나라가 중간 기지가 되어 부산을 거쳐 북극으로 들어갈 것이므로, 1년에 7,900억 원의 하역비를 얻게 된다는 연구 보고서도 있습니다.10)
이 바다를 러시아라든가 중국이 장악하는 경우보다 미국이 장악할 때, 이 바다가 자유로운 바다가 됩니다.11)
이것을 생각하고 우리한테 무슨 도움이 될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12) 대통령직을 훔친 이재명이 곧 내려가고, 친미정권이 복귀되어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를 체포하였으며 3월 들어서 이란의 정·군 지도자들을 참수 작전으로 제거해 버렸습니다. 세계인들은 트럼프와 이 시대의 미국을 알아야 합니다.13)
그린란드의 원주민이라면 덴마크와 미국 중 어디를 선택할 것입니까? 분명히 자신에게 나쁜 짓을 일한 덴마크를 선택하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덴마크는 그린란드의 원주민들을 사랑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이웃을 사랑하면 그 이웃에게 나쁜 것을 일할 수 없는 것입니다.14)
그 사랑은 율법이라는 그릇의 아귀까지 채울 수 있게 만드는 것으로서 그 사랑이 있어야 율법이 완성됩니다.15)
비록 일면식도 없을지라도 강도를 만나 폭행당한 사람이 이웃입니다.16) UN 평화유지 활동 의료 봉사단이 적군이 다친 때도 치료하는 것입니다. 적군도 이 일을 알기에 한국 의료 봉사단에게는 해코지하지 아니합니다.
바로 옆에서 불친절하고 잔인하게 구는 이웃을 사랑하여야 합니다.17)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18)
율법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요약되고 있는데, 사랑은 항상 행동으로 그 자체를 표현합니다.19)
크리스천들은 사랑에 대해 생각만 하면서 사는 그런 자들이 아닙니다. 사랑하려면 구체적으로 하지 아니할 일들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20)
2. 크리스천들은 빛의 무기와 예수님을 옷 입어야 합니다.
로마서 13장 11~14절에 “그리고 이것을 그 시간을 아는 이미 너희가 잠에서 일으킴을 받기에 시점(hour)인 것을 아니, 이는 지금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믿은 때보다 가까이임이라. 그 밤이 전진하였으나 그날이 접근하였으니(is at hand), 우리가 어둠의 행위들을 벗어버렸으나 그 빛의 무기들을 옷을 입었노라. 낮 안과 같이 우리가 단정하게 돌아다녔으며(Let us behave), 술잔치들(carousing)과 술 취함에(drunkenness) 아니할 것이며, 성교(性交)들과 호색(好色)들에 아니며, 다툼과 시기에 아니하나. 너희가 주 예수 크리스트를 옷을 입으며(put on), 욕망 안으로 그 육체의 예비를 하지 않도록 하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이미 우리가 잠에서 일어날 시점임을, 그 시간을 우리는 알아야 하니,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믿은 때보다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롬 13:11).
“알다”를 영어 성경은 “knowing”이라고 현재분사로 번역하였습니다. 로마서를 받는 수신자들이 그 시간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너희가 잠에서 일으킴을 받았기에 시점”이라고 하였는데, 지금 우리의 그 구원이 우리가 처음 믿은 때보다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종말론(eschatology)은 하나님의 궁극 목적을 말하는 교리입니다.21)
그 밤이 전진하였고 그날이 접근하였으니, 어둠의 행위를 벗어버렸으나 빛의 무기들을 옷을 입었습니다(롬 13:12).
우리가 이 세상을 볼 때 이 세상이 “밤”과 같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22)
“날”(헤메라)은 “day”와 마찬가지로 “낮”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밤”의 대조니 “날”보다는 “낮”이라는 뜻으로 쓰였을 것입니다.
이 “낮”은 “주 예수 크리스트의 날”을 가리키는 것임이 분명합니다.23)
“밤”과 “어둠”은 예수 크리스트 밖에 있는 사람의 궁극 상태를 말하며, 그것은 무지의 어둠인 것이며 타락이 사람들에게 가져온 결과입니다.24) “어둠”은 무지의 어둠일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조건을 묘사합니다.25)
그날에 우리의 몸이 구원될 것이고 영화로워질 것입니다(롬 8:23).26) 어떤 피조물도 창조주의 사랑에서 신자들을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27)
우리는 구원을 감정이나 체험의 차원에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28) 크리스천들은 그 영(the Spirit)의 일들을 생각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바로 이것은 다시 태어남의 위대한 교리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입니다.29)
아직 낮이 접근하고 있어도, 크리스천들은 심령으로 이미 “낮”에 속하였습니다.30)
의롭다 칭함을 받은 신자들은 “빛”이고 불신자들은 “어둠”입니다.31)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여전히 어둠의 잔재나 흔적이 있습니다.32)
우리는 우리의 몸의 되찾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롬 8:23).33) 성화는 체험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써 나타내어야만 합니다.34) 크리스트께서 우리를 선한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죽은 것입니다.35)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해산하겠으니 이름을 ‘예수’라고 부르라 그가 그 백성을 죄들에서부터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하였습니다.
그 탄생 목적은 우리의 영혼을 지옥에서부터 구원하시는 것만 아니라, 우리를 우리의 죄들에서부터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이 성화에 대한 교리를 제시하는 방식이 바로 이것입니다.36) 우리가 실천에 타협하기 시작한다면 금방 신조에도 타협할 것입니다. “밤”과 “어둠”의 위험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기에 타협하는 것입니다.37) 성화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살아가는 것입니다.38)
밤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이 오게 됩니다. 밤이 깊었으니 낮이 옵니다. 다가오는 그 날에 대한 기대는 우리에게 그 어둠의 행위들을 벗어버리나 그 빛의 무기들을 옷을 입는 삶을 살라는 권면의 근거가 됩니다.
성인으로 추앙된 성(聖)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354-430)는 한때 육체적 욕망과 유한한 지혜에 대한 열정으로 인해 방탕한 생활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정원에서 ‘집어 들고 읽어라’라는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듣고 집으로 들어가서 성경을 집어 들고 읽었는데 그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둠의 행위들을 벗어버리나 빛의 무기들을 옷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분에 적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 빛의 무기들”은 낮에 속한 사람들인 우리에게 적당한 옷입니다.39)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우리에게 적당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빛의 자식으로서 하나님의 빛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겠기 때문입니다.40)
우리는 낮 안과 같이 적당하게 돌아다녀야 합니다(롬 13:13). 우리는 우리의 신분에 적당하게 돌아다녀야 합니다.
이 용어의 보편적인 의미는 은혜가 가득함이나 우아함의 개념입니다. ‘보기에 고상하게 행하자’, ‘점잖은 방식으로 행하자’를 의미합니다. 크리스천은 삶에 은혜 충만함으로. 우아함으로 행동하여야 합니다.41)
우리는 암흑의 일들을 벗어버려야 하는데 암흑의 일들은 무엇입니까? 술잔치, 술 취함, 성교, 호색, 다툼, 시기 6가지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술잔치”라는 헬라어(코오모스)는 “마시고 흥청거리는 것”, “술 마시고 떠드는 것”(carousing)입니다.
여기 “성교”(코이테)는 “침상”, “함께 잠”, “성교”를 의미합니다. 본문에 “부정한 성교(sexual intercourse)”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침실을 주는 것”(chambering), “성적인 섞임”(sexual promiscuity), “음란”(lewdness), “성적인 부도덕”(sexual immorality)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호색(好色)”이라고 번역한 헬라어(아셀게이아)는 “음탕함”(lasciviousness), “호색”(sensuality), “방탕”(licentiousness), “음란”(lewdness), “분방”(wantonness), “색욕”(lust)으로 번역됩니다.
파울은 “너희가 옷을 입어라”라고 명령하였습니다(롬 13:14). 크리스천들에게 “주 예수 크리스트를 옷을 입어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예수 크리스트에 관한 교리로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42) 예수 크리스트를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분을 본받아 살아감을 뜻하며, 크리스트를 옷을 입는다는 것은 그분을 의지하여 살아감을 뜻합니다.43) 그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생명을 갖지 않습니다. 그의 살을 먹지 않는 자는 그 자신 안에 생명을 갖지 않습니다(요 6:53).
그를 옷을 입는다는 것은 곧 그를 늘 의뢰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44) 예수 크리스트 안에 숨는 것이 곧 예수 크리스트를 옷을 입는 것이며, 그 안에 있으니 그 안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45)
예수 크리스트를 옷을 입는 것은 예수 크리스트처럼 보여야만 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예수 크리스트께서 나타나셔야 합니다.
모든 말과 행동으로 예수 크리스트의 성품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46)
우리는 주 예수 크리스트를 옷 입고, 욕망 안으로 육체의 예비를 하지 않도록 하여야만 합니다.
“육체의 예비”라는 말은 육체적 영화롭게 하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47)
로마서 8장 12~13절에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라 육체에 따라 살기에 그 육체에 아니니. 이는 육체에 따라 너희가 살면 너희가 곧 죽으려고 하나, 영(Spirit)에 그 몸의 행동들을 죽음에 놓으면 살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육체적 자아를 위해 아무것도 예비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48)
출애굽기 20장 17절에 “너는 너의 동료의 집을 선망하지 말라, 너는 너의 동료의 여자와 그의 종과 그의 하녀와 그의 소와 그의 나귀와 너의 동료에게 있는 모두를 몹시 탐내지 말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제10계명은 “너의 동료에게 있는 모두를 몹시 탐내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모든 날에 욕망을 바라는 자들이 있습니다(잠 21:26, 민 11:4).
창세기 3장 6절에 “그 나무가 음식에 좋은 것과 그 눈에 욕망인 것과 총명하게 하기에 탐나는 나무인 것을 여자가 보고 그 열매로부터 취하고 그녀가 먹고 또한 그녀의 사람에게 주었고 그가 먹고.”라고 하였습니다.
그 눈에 욕망 때문에 여자가 금단의 열매를 먹게 된 것입니다(창 3:6). 욕망이 원죄의 원인이 되었고 스스로 범하는 죄의 원인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그 황야에서 욕망을 바랐습니다(시 106:14). 사악한 자들의 욕망(desire)은 멸망할 것입니다(시 112:10).
부의 속임과 욕망이 말씀을 질식시켜서 결실할 수 없습니다(막 4:19). 욕망은 말씀이 결실하지 못하게 하는 주범 가운데 하나입니다(막 4:19). 그런 까닭에 우리는 부유하게 하려고 수고하지 않아야 합니다(잠 23:4). 악마의 자식들은 자기 아버지 마귀의 욕망을 하기에 바랍니다(요 8:44).
하나님께서 불의 안에 진리를 제지하는 사람들을 그 몸을 모욕하기에 그들의 마음의 욕망 안에 불결 안으로 넘겨주셨습니다(롬 1:24).
죄가 몸의 욕망에 말을 듣기로 지배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롬 6:12). 그 계명을 통해 기회를 취한 죄가 모든 욕망을 완수하였습니다(롬 7:8).
마음(롬 1:24)과 몸(롬 6:12)이나 육체(갈 5:16)는 욕망을 가졌습니다. 죄가 우리의 필멸의 몸에 지배하도록 허락하지 않아야 합니다(롬 6:12).
아담이 죄를 범하고 타락한 인류는 그 욕망에 말을 들으면서 살았으나 회개는 이제 그런 삶을 살지 아니하겠다고 후회하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이와 같은 회개를 토대로 하여 세워지는 것입니다(막 1:15).
그 욕망에 말을 들었던 과거의 삶에 대하여 슬프게 여기고 돌이키고서 그 하나님의 음성에 말을 들으며 살겠다고 결단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1) D. M.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3), 251.
2) https://www.youtube.com/watch?v=Lz-7NF62aZA
3) 위 사이트.
4) 위 사이트.
5) 위 사이트.
6) 위 사이트.
7) 위 사이트.
8) https://www.bonhd.net/news/articleView.html?idxno=18019
9) https://www.bonhd.net/news/articleView.html?idxno=18019
10) https://www.bonhd.net/news/articleView.html?idxno=18019
11) https://www.bonhd.net/news/articleView.html?idxno=18019
12) https://www.bonhd.net/news/articleView.html?idxno=18019
13)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S&nNewsNumb=202604100043
1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271.
1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272.
1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273.
1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274.
1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275.
1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277.
2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278.
2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01.
2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18.
23) Douglas J. Moo, 『NICNT 로마서』, 손주철 역 (서울: 솔로몬, 2012), 1099.
2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22.
2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24.
2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48.
2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50.
2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53.
2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57.
3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60.
3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62.
3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64.
3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66.
3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68.
3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70.
36)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71.
3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77.
3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379.
39)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413.
40)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414.
41)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418.
42)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426.
43)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429.
44)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430.
45)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432.
46) 이한수,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 (서울: 도서출판 이레서원, 2008), 1333.
47)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434.
48) Lloyd-Jones, 『로마서 강해 13』, 435.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
💖삶에도 여백의 공간이 있어야 아름답습니다.
내 삶에 여백이 클수록 사랑과 행복을
넉넉히 채울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건강과 행복이 늘 함께 하시길 소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