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국내에서도 사랑 받았던 '유아 온리 론리'를 부른 미국의 컨트리 음악 싱어송라이터 J D 사우더가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고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가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고인은 록 그룹 이글스와 팝스타 린다 론스태트(78)를 위해서도 많은 곡을 썼는데 이글스의 대변인이 그가 뉴멕시코주 자택에서 세상을 떠난 사실을 확인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다만 언제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와 사망 원인은 밝히지 않았다. 다음주 피닉스에서 투어 공연을 시작할 예정이었다는 것을 봐서는 건강에 큰 이상이 없었는데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고인은 1970년대 중반 현을 퉁기는 듯하면서도 사근거리는 서던 캘리포니아 컨트리 록 사운드를 규정한 인물로 기억된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작품으로는 이글스의 '뉴 키드 인 타운'과 '하테이크 투나잇', 론스태트의 '페이스리스 러브'가 손꼽히는데, 본인이 쓰고 노래한 '유아 온리 론리'도 톱 10에 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뿐만 아니라 배우로도 활약해 TV 드라마 '더티섬씽'과 '내슈빌", 영화 '마이 걸 2'와 마이클 니콜스 감독에 셜리 매클레인과 메릴 스트립이 호흡을 맞춘 '헐리웃 스토리'(Postcards From the Edge)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가 쓴 노래들을 녹음한 이들로는 보니 레이트, 제임스 테일러, 조지 스트레이트, 칙스 등이 있다.
지난 1월 고인은 잉글우드의 KIA 포럼에서 열린 공연 무대에 이글스와 함께 나섰는데 돈 헨리는 “송라이터들과 가수들의 긴밀한 공동체의" 일부라고 소개하며 글렌 프레이와 고인이 70대인데도 “노래 하나에 붙들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끙끙거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우더가 '베스트 오브 마이 러브' 등 이글스의 넘버 원 싱글 다섯 곡 가운데 세 곡에 공동 작곡자로 참여했다며 "침대에 누워, 내 꿈 속에서 널 끌어 안고/ 우리가 말한 모든 일들을 생각하며, 그리고 솔기에서 떨어져 나가는" 한 남자에 대해 부드럽고 감미로운 발라드라고 소개했다.
이글스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한 메모에는 고인을 "형제며 친구와 똑똑한 협업자"로 묘사하며 고인이 "최고의 미국 음악의 깊은 뿌리를 연구한 학생이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좋은 음식과 좋은 영화, 좋은 마티니를 사랑했고, 개들을 좋아해 많이 입양해 평생을 함께 했다"고 했다.
본명이 존 데이비드 사우더로 1945년 11월 2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텍사스주 아말리요에서 자라났다. 기타를 잡기 전에 재즈 드럼을 연주했다. 1960년대 말 LA로 이사 와 프레이를 만나 듀오 롱브랜치 페니휘슬을 결성해 짧게 활동했다. 나중에 그룹으로 확대해 웨스트 할리우드의 '트루바두르'(Troubadour)에서 활동하며 1969년 데뷔 앨범을 발매하고 이듬해 해산됐다.
사우더는 그 뒤 솔로 활동을 시작한 반면 프레이는 론스태트 백업 밴드에 들어갔다. 사우더는 론스태트와 연인 사이였다. 헨리가 기타리스트 버니 리든, 베이시스트 랜디 마이즈너와 가세했는데 이 넷이 나중에 이글스 창립 멤버가 됐다. 데이비드 게펜이 자신의 레이블 어사일럼으로 이글스 첫 LP를 1972년 발매했다. 사우더는 2008년 LA 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게펜이 당시에 합류하라고 부탁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나도 고려했으며 우리는 리허설 무대를 꾸미고 데이비드(와 이글스 매니저들인) 엘리엇 로버츠와 론 스톤을 위해 어느 오후에 트루바두르에서 연주했다. 진짜로 1분 만에 안되겠다고 말했다. 그 밴드는 정말 특별했다. 난 집에 앉아 쓰는 것이 너무 좋았다. 내 생각에 그들도 안도하는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1973년 사우더는 버즈의 크리스 힐먼, 버팔로 스프링필드의 리치 푸레이와 사우더-힐먼-푸레이 밴드를 결성해 두 장의 컨트리록 앨범을 내놓았다. 1976년 '블랙 로즈' 앨범을 내놓으며 솔로 활동을 재개했는데 론스태트와 '이프 유 해브 크라잉 아이스'를 듀엣으로 들려줬다. 그리고 '유아 온리 론리'는 빌보드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톱, 모든 장르를 아우른 핫 100 차트의 7위까지 올랐다.
'홈 바이 던'(1984)이 예전의 상업적 성공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는 1990년 LA 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그 LP가 “나중에 '위험한 성공'이라 불린 불운한 호기심"을 얻었다고 표현했는데 "아무도 사지 않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그러곤 사우더는 레코딩 활동을 쉬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음악산업의 성장이 MTV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2012년 뉴욕 타임스 인터뷰를 통해 "난 음악의 중심에 진짜 집중하기보다 반대로 프로덕션의 과잉을 부추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뮤직비디오의 엄청난 팬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송라이터로서 그는 1989년 헨리의 MTV 히트곡 '더 하트 오브 더 매터'를 헨리와 톰 페티 허트브레이커의 마이크 캠벨과 함께 썼다. 같은 해 그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영혼은 그대 곁에'(Always)에 처음 출연해 파티 중 '스모크 겟츠 인 유어 아이스'를 부르는 연기를 했다.
두 차례 그래미상 후보로 지명됐고 송라이터 명예의전당에 입회한 고인은 두 자매와 전 부인, 그녀의 딸을 유족으로 남겼다.
나중에 내슈빌로 이사해 2008년 레코드 작업으로 돌아와 재즈 느낌이 짙은 '이프 더 월드 워즈 유'를 낸 데 이어 재빨리 여러 장의 앨범을 후속 발표했고, ABC 방송의 소프 오페라 '내슈빌'에서 희끗한 머리의 컨트리 음악 심판 매수자를 연기했다.
레코딩을 다시 하게 만든 힘이 뭐냐고 묻자 고인은 LA 타임스에 이렇게 답했다. "아마도 레코드 만드는 일이 날 미치게 만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만 뒀을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난 미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